
아기, 임부 그리고 집
사진으로만 보던 조카를 처음 마주했을 때, 고사리 같은 작은 손에 보일 듯 말 듯 있는 작디작은 손톱을 보며 어떻게 이리 작은 몸이 자라 어른이 될 수 있는지 궁금했어요. 아무것도 숨기지 않은 볼은 또 왜 이렇게 빵빵한지 신기해하던 것도 잠시, 먹고 자고 싸는 아기의 단순한 생활에 맞춰 일상을 보내고 있는 언니가 보이더군요. 최근에 둘째를 임신한 언니가 가까이 이사 오면서 아기와 임부의 일상을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볼 수 있었습니다. 아기와 임부에게 집은 몹시 중요한데, 언니는 과연 어떤 삶을 보내고 있을까요? 오늘은 언니의 집으로 갑니다.

결혼과 출산
가족에게 자기소개를 요청하려니까 어색하지만, 부탁해.
안녕하세요. 글 쓰는 손유희의 언니, 두 살 아기 예나의 엄마이자 임부, 스물일곱 살 손채윤입니다.
아기가 사는 집이라 그런지 공간이 전체적으로 귀여운 느낌이야.
알록달록한 장난감이나 푹신한 바닥 매트처럼 눈에 보이는 물건은 물론, 반복 재생되는 동요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까지 모두 아기에게 맞춰져 있어서 그런 것 같아.
예나 데리고 이사하느라 고생 많았지? 집을 옮긴 이후로 어떻게 지내고 있었어?
최근에 XXS 사이즈 마스크가 나왔지만, 예나가 마스크 끼는 걸 불편해해서 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내. 또 요즘 예나가 유모차를 타지 않으려고 해서 한 팔에 예나를 안고 한 팔로 유모차를 끌어야 하니까 힘들어서 잘 안 나가.
결혼 전 언니는 외출하는 걸 좋아했는데, 답답하지는 않아?
지금은 집에 있는 걸 더 좋아하는 것 같아. 한번 외출하려면 분유, 젖병, 기저귀, 손수건, 장난감 등 챙겨야 할 것이 너무 많아. 물건을 챙기는 것도 일이지만, 돌아와서 정리하는 것도 일이라서 잘 안 나가게 돼.
언니도 그렇고, 형부도 친구들 중에서 결혼을 제일 빨리 했잖아.
내가 육아로 관심이 옮겨 간 것처럼 남편도 관심사가 달라졌어. 친구들이랑 만나기보다 어떻게든 열심히 일해서 가족을 먹여 살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일상을 보내는 거지. 그래서 결혼 이후 우리 둘 다 자신이나 친구들보다 가족을 더 우선시하게 되는 것 같아.
그런데 언니 비혼주의자였잖아.
예나를 임신하기 전에 지금 네 형부랑 결혼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혼전 임신을 한 사실을 알았을 때 솔직히 당황했지.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자책하기도 했어. 당시에 남편이 책임감 있는 모습을 보여줘서 나 역시 결혼을 결정하고 출산했는데, 지금 일상이 무척 행복해서 과거의 내 선택에 감사해.
언니가 임신한 사실을 처음 내게 알렸을 때, 엄마의 삶이 아니라 손채윤의 삶을 살았으면 좋겠다고 말한 거 기억나?
기억나. 그런데 지금은 예나에게 맞춰진 삶을 사는 것 같아. 예나가 아직 워낙 어려서 도움의 손길이 많이 필요하거든. 억지로 맞춘다기보다 환경이나 마음이 저절로 그렇게 되는 거지.
사실 이번 인터뷰에서 엄마나 아내의 삶보다 언니의 삶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어. 그래서 결혼 이후에 가치관 자체가 달라졌기 때문에 완전히 자유로울 수 없다는 말이 슬프게 들려.
지난해 내 생일에 남편이 예나를 돌보기로 해서 친구들이랑 재밌게 놀고 있는데, 맛있는 밥을 먹으니까 남편 생각이 나고, 자연스럽게 예나는 뭐 하고 있는지 궁금하더라. 그때 나도 누군가의 아내이자 엄마가 되었구나 하고 생각했어.(웃음) 자유가 제한되는 걸 감수할 만큼 행복하니까 나는 그다지 슬프지 않아.
사랑하는 가족과 집에서 같이 생활한다는 건 삶에 안정감을 주는 것 같아. 언니가 결혼 전보다 지금 훨씬 더 행복해 보여.
엄마가 편해야 아기도 행복하다고 생각하거든. 예나를 행복하게 해주려면 내가 먼저 행복해야 한다고 생각했고, 남편도 생각이 같아 서로 최대한 육아를 분담하고 있어. 그래서 안정감을 느끼고, 행복한 게 아닐까?
지난 1년간 결혼을 비롯해서 언니의 삶에 큰 변화가 있었는데, 멀리 떨어져 있으니까 함께한 순간이 적어서 아쉬웠어. 늦었지만 형부와 예나, 뱃속의 소떡이에게 우리 가족이 된 걸 환영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오늘 예나에게 장난감을 선물한 걸 시작으로 앞으로 더 자주 연락하고 지내면 돼. 소떡이도 있으니까 이제 본격적으로 이모 생활 시작이야.(웃음)


모유와 분유
육아를 하면서 공유하고 싶은 이야기가 생겼다면서?
모유 수유가 순조롭지 않아 스트레스를 받는 엄마들에게 자책하지 말고 분유 수유를 해도 된다고 말해주고 싶어.
모유 수유가 아이에게 더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잖아?
내가 모유 수유를 할 때 스트레스를 받아서 예나에게도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것 같았어. 초유(출산 후 약 10일간 나오는 젖)에 들어 있는 영양분은 다른 음식에서 얻을 수 없는 거라서 꼭 먹여야 한다는 말도 있지만, 그 기간 이후에는 분유로도 충분해. 분유 통에도 모유보다 좋은 건 없다고 적혀 있어서 나도 처음엔 모유 수유를 하고 싶었어. 하지만 아기가 젖을 빠는 힘이 생각보다 세서 꽤 아프고, 샤워할 때는 유두에 물이 닿으면 참기 힘들 만큼 아팠어. 엄마가 힘들다면 상황에 맞게 하면 되는 거지 정답은 없는 것 같애.
그런데 모유를 끊고 싶다고 끊을 수 있는 거야?
아기에게 젖을 물리지 않으면 양이 점점 줄어. 처음에는 젖의 양이 아기랑 맞춰져 있지 않기 때문에 아기가 배고픈 시간과 젖이 차는 시간이 맞지 않아서, 양이 많아지면 가슴이 부풀고 심하게 아프더라. 그래서 몇 시간 간격으로 유축을 해야 하는데, 양쪽을 다 끝내면 30분 정도 걸려. 쉴 시간이 줄어드는 거지.
분유로 바꾸니까 어땠어?
정신적, 신체적으로 많이 힘들어서 분유를 먹였는데, 예나가 거부반응이 없고 나도 너무 편하더라. 그리고 모유 수유할 때는 먹는 양을 기록하지 못했는데, 분유는 정해진 양을 주니까 아기가 밥을 먹는 간격이 일정해서 좋았어. 앱을 통해서 시간을 기록하고 있는데, 밥 먹을 시간이 아닐 때 울면 기저귀를 확인하거나 재우는 등 다른 원인을 찾아볼 수 있지.
아기가 있는 집은 아기 선물도 좋지만, 육아에 지친 엄마와 아빠를 위한 선물이 필요한 것 같아. 하나 추천해줘.
맞아. 아기를 보러 갈 때, 부부를 위한 선물을 준비하는 것도 좋아. 영양제가 가장 적당할 것 같아. 내 돈 주고 사기에는 망설여지잖아.

육아 기록
예나가 많이 컸어. 지난해에는 보행기를 못 탔잖아.
그때보다 키가 많이 자랐어. 젖병도 혼자 잘 잡고 먹어서 역방쿠도 이제 안 써.
‘역방쿠’가 뭐야?
아기는 식도에서 위까지 일자로 되어 있어서 잘 토해. 그래서 역류를 방지하기 위해서 쿠션을 밑에 깔고 분유를 먹이지. 이때 까는 쿠션을 엄마들끼리는 줄여서 역방쿠라고 불러.(웃음)
육아 용품은 신기한 게 참 많아. 정보는 주로 어디서 얻어?
친구들 중에서 결혼, 임신, 출산을 제일 먼저 해서 주변에서 육아 정보를 얻을 데가 없다 보니까 인스타그램이나 맘 카페에 올라온 걸 자주 보게 돼. 아이를 키우면서 자연스레 검색어가 바뀌니까 추천 광고가 잘 뜨더라고. 그러다 보면 육아 용품의 이름도 외우고, 종류도 알게 되는 거지.
언니는 예나를 위해 이렇게 애쓰는데, 예나가 요즘 언니 말을 잘 안 듣는다면서?
아이가 말을 안 듣는 기준이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둘째를 임신 중이라 더 힘든 것 같아. 원래 임신 초기에는 잠이 아주 많아지고, 주변 환경에 민감해지거든. 내 몸이 힘드니까 예나가 옆에서 울면 배로 힘든 것 같아.
직접 경험해보니 엄마 또는 부모는 아이에게 어떤 존재라고 생각해?
사람에게 엄마나 부모라는 존재는 어릴 때는 물론, 성인이 되어서도 필요한 존재 같아. 다른 사람들은 육아 시 엄마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고 하는데, 나는 부모님이 이혼하셔서 그러지 못했어. 나중에 일을 한다고 해도 아이를 편하게 맡길 수 있는 곳이 없으니까 그 점이 조금 아쉽지. 그래서 나중에 혹시나 내가 잘못되었을 때 예나가 엄마가 된다면,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으로 육아 일기를 쓰고 있어.
유튜브로도 예나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잖아. 우리가 어릴 때는 주로 사진을 찍었는데, 예나는 영상으로 볼 수 있으니까 더 생생할 것 같아.
예나의 성장을 영상으로 기록하면 좋을 것 같아서 유튜브를 시작했는데, 육아 브이로그를 만들면서 성취감이 느껴져서 재밌었어. 육아하는 일상은 겉으로 봤을 때 눈에 잘 띄지 않는데, 영상으로 만들면 결과물이 눈에 보여서 좋더라고. 소떡이를 임신한 뒤로는 쉽게 피로해져서 꾸준히 못 올려서 아쉬워.
아이들에게 어떤 엄마가 되었으면 좋겠어?
걱정이 있다면 언제든지 편하게 이야기하고 대화할 수 있는 엄마이고 싶어. 그러려면 신뢰를 잘 쌓아야겠지만, 동시에 남편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생각해. 어느 한쪽만 독단으로 아이의 일을 결정할 수는 없다고 생각하거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은?
코로나19가 종식되면 신혼여행으로 갔던 괌에 아이들과 함께 가고 싶어. 둘만 갔던 곳을 가족 넷이 가면 어떤 기분일지 궁금해. 그리고 올해 7월에 소떡이를 무사히 출산하고, 우리 가족 모두 아프지 않고 잘 지냈으면 좋겠어. 건강한 게 최고인 것 같아.

언니의 삶 그 자체
육아의 과정이 고통스럽지만 동시에 크나큰 행복감을 느낀다는 언니의 말을 처음에는 이해할 수 없었어요. 글을 쓰고, 친구들과 대화하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삶의 우선순위였던 저는 육아가 그 시간을 뺏는다고 생각했거든요. 그런데 언니가 10분이 넘도록 모유에 대해 이야기할 때부터 문득 언니가 자유를 빼앗긴 게 아니라 언니의 삶 자체를 열심히 살아가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딸에게 이유식을 먹이고 기저귀를 갈아주며 여유롭게 답변을 이어가는 모습은 마치 한 편의 글을 완성하는 것 같더군요. 글을 써내는 과정은 무척 고통스럽지만 글감을 찾고, 단어를 고르고, 퇴고하며 완성하는 순간마다 행복감을 느끼니까 언니의 감정도 이와 비슷한 게 아닐까요. 비혼을 이야기했던 언니가 결혼한 지 1주년이 되고, 둘째까지 임신하고 있으니, 사람 일은 한 치 앞을 알 수 없습니다. 동시에 그렇기에, 예나와 소떡이 그리고 형부와 언니가 괌에서 신나게 뛰노는 미래도 꿈꿔볼 수 있겠죠.
글 손유희
좋아하는 것들을 기록하다가 기록 자체를 좋아하게 된 사람. 주로 글을 쓰고 가끔 영상도 만드는 블로거이자 유튜버.
사진 이규연
바쁜 일상 속 반짝이는 찰나를 담는 사진작가.
편안하고 차분한 사진을 좋아하고 시선이 오랫동안 머무르는 사진을 찍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