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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3

우리는 왜 해양 동물에게 육상 동물만큼 연대감을 느끼지 못할까?

2021.06.27 | 녹색빛

바다에 대한 음모
얼마 전 넷플릭스에서 개봉한 다큐멘터리 <씨스피라시>가 국내외에서 화제가 되고 있습니다. ‘씨스피라시(seaspiracy)’는 바다와 음모의 합성어로 말 그대로 바다를 둘러싼 음모를 다룬 다큐멘터리에요. 감독 알리 타브리지는 상업적 어업과 죽어가는 바다의 연관성을 강조하며, 해양 쓰레기 중 플라스틱 빨대 같은 생활 쓰레기보다 어업에서 발생하는 쓰레기가 훨씬 더 많다고 폭로합니다. 해양 생태계를 지키기 위해서는 환경단체가 어업의 문제를 직시해야 한다며 비판의 목소리를 높입니다. 또한 대안으로 논의되는 ‘지속 가능한 어업’은 해양 생물에게 어떤 고통이 가해지든 뭔가가 이어질 수 있게 산업을 유지하겠다는 인간 중심적인 대안일 뿐이라고 꼬집습니다.

해당 다큐멘터리에서는 해초와 다시마 숲 등 해양 식물이 열대우림보다 단위면적당 20배 많은 탄소를 흡수하며, 지구상 가장 작은 생명체인 식물성 플랑크톤의 놀라운 탄소 포집 능력을 조명하기도 했는데요. 감독은 다큐멘터리 끝부분에 책 <물고기는 알고 있다>의 저자 조너선 밸컴의 인터뷰를 담아 ‘물고기의 지능, 기억력, 지각력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우리와 비슷하다.’며 결국엔 물고기도 생명이라는 당연한 사실을 강조합니다. 인간을 위한 ‘자원’과 ‘쓸모’의 관점에서 벗어나 이들도 결국 우리와 비슷한 하나의 생명체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고요.

다큐멘터리의 파급력만큼이나 내용에 대한 논란도 컸습니다. 인용한 통계 자료에 오류가 있고, 인터뷰에서 다큐멘터리의 메시지에 맞는 내용만 편집해 내보냈다는 것이 그 이유입니다. 하지만 미래를 예측한 데이터는 균일하지 않을 수 있고, 일정한 수치 이상이라는 사실 자체에 의의가 있습니다. 세세한 수치와 편집 방식보다는 해당 다큐멘터리가 드러내는 문제의식과 우리에게 던지는 질문에 주목해보면 어떨까요?

3초간 유지되는 기억력에 고통도 못 느끼는 원시적인 냉혈동물
물고기는 최초의 척추동물로 물속에 사는 우리 사촌이라고도 하는데, 저는 좀처럼 그들과 연대감을 느끼지 못했습니다. 비건을 지향하면서도 물고기를 가장 나중에 ‘포기’했죠. 저뿐 아니라 채식을 시작한 많은 사람이 보통 소, 돼지, 닭에서 시작해 우유와 달걀, 물고기 순으로 먹지 않는 경향성을 보입니다. 그러다 보니 ‘사람들은 왜 해양 동물에 육상 동물만큼 연대감을 느끼지 못할까?’ 궁금해지기도 했습니다.

물고기는 ‘3초 기억력’이라는 표현처럼 기억도 잘 못 하고 고통도 못 느끼고 표정도 없는 다소 멍청한 동물로 여겨지기도 합니다. 하지만 앞서 말한 조너선 밸컴은 다양한 과학적 연구 결과를 근거로 들며 물고기에 대한 편견을 뒤흔듭니다. 물고기에게 인간의 상상을 초월하는 감각의 세계가 있을 뿐 아니라 협력하거나 속임수를 쓰는 등 복잡한 사회생활을 한다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들을 소개합니다. 물고기도 도구를 사용하거나 계획을 수립할 수 있으며 쾌감을 느낀다는 사실 말입니다. 물고기의 신비한 감각과 능력보다도 물고기와 인간이 놀라울 정도로 닮아 있다는 사실이 흥미로웠습니다.

저자는 이어 ‘사람들은 동물의 감각과 지능을 인간과 똑같은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능력이라고 가정하지만 이는 지극히 자기중심적으로 바라보는 사고방식’이라고 말합니다. 일례로 ‘물고기는 조용하다’는 통념과 달리 물고기는 이를 갈거나 뼈를 마찰시키거나 아가미를 울리거나 항문으로 물방울을 배출하는 등 어떤 척추동물보다도 많은 방법으로 소리를 냅니다. 또한 동물은 신피질이 있어야만 통증을 느낄 수 있다고 여겨져왔지만 저자는 포유류의 뇌 영역 중 신피질에 버금가는 물고기의 뇌 영역, 겉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합니다. 물고기가 부정적인 자극에 단순히 반응하는 것이 아니라 통증을 느낀다는 것인데요. 저에겐 물고기에 대한 지독한 편견을 깨는 책이었습니다.

인간중심주의와 종차별

기후위기, 코로나19 등 전 지구적 재난 상황에서 모두의 지속 가능한 삶을 위해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지 생각해봅니다. 지금의 기후 및 생태 위기는 자연과 동물을 착취하는 인간중심주의에서부터 비롯된 것이기도 해요. 기후위기, 상업적 어업, 각종 오염 등으로 물고기가 사라지고 바다가 망가지고 있는 현실에서 우리는 기후위기를 초래한 인간중심주의를 성찰할 필요가 있습니다. 인간중심주의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동물, 그리고 동물 종 사이의 위계를 나눈 사고이기 때문에 다른 종에 대한 차별이기도 합니다. 아인슈타인이 말했듯 문제를 일으킨 사고방식으로는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물고기’라는 표현에서도 종차별을 발견할 수 있어요. 보통 육상 동물은 살아 있을 때 고기라는 말을 붙이지 않는데, 해양 동물은 멀쩡히 살아 있는데도 먹기 위한 존재라는 의미가 내포된 ‘물고기’로 표현합니다. 최근엔 누군가를 먹기 위한 존재로 상정하지 말고 이들이 느끼고 살아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말자는 취지에서 물에서 사는 존재라는 의미의 ‘물살이’라는 표현을 사용하자는 움직임이 퍼지고 있습니다.

차별금지법을 제정하자는 국민동의청원이 진행되고 있습니다. 성별, 성 정체성, 장애 여부, 병력, 외모, 나이, 출신 국가, 인종, 혼인 여부, 가족 형태 등에 상관없이 차별과 혐오 표현을 금지하고 평등을 약속하는 법을 제정하자는 움직임입니다. 위기의 시대, 전 지구적 재난 상황에서 저는 이러한 차별금지법에 적극 찬성하며, 우리가 차별의 범주를 인간에서 나아가 인간과 동물 간, 동물 종 간 차별까지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후위기 대응, 인간중심주의와 종차별을 성찰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할 수 있지 않을까요?


진채현
녹색연합 활동가.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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