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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8 인터뷰

나는 때때로 혼자서 낯선 곳을 찾는다.

2021.09.12

고대 로마 사람들은 편지로 안부를 물을 때 ‘당신이 잘 있으면, 나도 잘 있습니다.’라는 말을 자주 썼대요.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든, 그 거리가 무색해지는 다정한 말인 것 같아요.

당신은 안녕하신가요? 저는 어땠느냐면요, 며칠 동안 집에도 잘 들어가지 못했고, 끊임없이 이겨내야 하는 고난과 함께했어요. 이가 군데군데, 발도 퉁퉁 부었죠. 하루는 겨우겨우 씻고 침대에 누웠는데, 문득 방이 온몸으로 저를 감싸며 자장가를 불러주는 것 같았어요. ‘지치고 힘들 땐 내게 기대, 언제나 니 곁에 서 있을게.’(god ‘촛불하나’ 중에서) 하고….

나름대로 잘 지내고 있네요, 멀어진 만큼 가까워지고 싶은 것들이 있으니까요. 그 때문인지 먼 타지 생활을 하느라 오랫동안 만날 수 없었던 한 친구가 생각났어요. 잠은 잘 자는지, 힘든 일은 없었는지, 나는 잘 있는데 당신은 잘 있는지 궁금했죠. 때마침 그 친구가 한국으로 돌아왔다는 소식을 들었어요. 그래서 오늘은, 안부를 물으러, 내 친구 용현이네 집으로 갑니다.

한국의 방 벽면~2021, 대한민국

우리 거의 2년 만에 만났네. 나는 한때 즐거운 시간을 함께 보내며 가까웠어도, 오랜만에 만난 친구는 조금은 낯선 사람으로 느껴져. 얼마나 멀어졌을지 모르니까. 관계의 거리 조절은 항상 어려운 것 같아.

- 요즘 내가 친구를 대하는 태도는 한마디로 ‘될 대로 돼라.’야. 함께 있을 때 최선을 다해 즐기고, 내 솔직한 모습을 보여줬을 때 그 사람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크게 신경 쓰지 않으려고 해. 나는 나 자체고, 그 자체로 서로 끌리는 사람들이 곁에 남게 되는 것 같아. 지금은 이렇지만 나중에는 어떻게 바뀔지 모르지. 시기마다 관계에 대한 정의가 다른 것 같아. 친구의 질보다 양이 중요했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소중한 친구들을 만나는 게 더 중요하거든.

때때로 달라지는 것들이 있지. 나, 너, 관계, 사는 곳, 하는 일, 이름 같은 것들. 예전부터 스스로를 루시라고 불렀는데, 요즘은 망상업자라고도 소개하던데?


- 루시(Lucy)라는 이름은 어학연수를 가기 전에 용현이라는 내 이름이 외국인이 발음하기 어려울 것 같아, 영어 이름이 꼭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지었어. 그때 비틀스를 무척 좋아했는데, ‘Lucy in the Sky with Diamonds’라는 노래가 떠올랐고, 어쩐지 나랑 잘 어울릴 것 같았어. 결과는 대성공이었지. 다들 나와 잘 어울린다는 반응이었고, 마침 <루시(LUCY)>(2014)라는 영화가 개봉해서 소개할 때도 편했지(웃음). 명랑하고 쾌활하고 통통한 느낌이라, 이름이기도 하지만 내가 갖고 싶은 이상형의 느낌도 담고 있어.

망상업자는, 내가 생각이 너무 많은 것 같아서 지었어. 상상을 많이 하는 것이 좋을 때도 있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어쨌든 이런 생각들을 잘 활용하면 어떨까 싶었어. 이를테면 신발에서 냄새가 나는데, 개미들이 그 발 냄새를 맡고 사랑의 감정을 느끼는 상상. 옛날에는 왜 이런 생각이 나는 거지 하며 그냥 잊어버리곤 했는데, 요즘은 다 적어두고 있어. 나중에 어떤 영감이 될지도 모르니까.

한국의 방에서 보이는 불꽃놀이

용현, 루시, 망상업자가 살아온 방에 얽힌 변천사도 듣고 싶어.

지금까지 이사를 많이 다녔어. 어릴 때는 평범하지만 내가 하고 싶은 걸 할 수 있는 정도로 잘살았던 것 같아.

초등학교 5학년 즈음이었나, 갑자기 이사를 가서 경기도 수원시 정자동에 있는 60평 정도 되는 집에 살게 되었어. 넓어서 좋기보다는 그때 우리 집 분위기를 생각하면 조금 우울했던 것 같아. 휑한 느낌도 있었고, 아빠의 사업이 순탄치 못했거든. 그러다 내가 서울에 있는 예술중학교에 진학하게 되어서 서울 건국대학교 입구 쪽으로 옮겼지.

1년 정도 뒤에 또다시 이사해야 했는데, 15평 정도 되는 오피스텔에 살게 되었어. 거기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지냈는데, 꽤 힘든 시기였지만 우리 네 식구가 그 작은 집에서 썩 잘 지냈던 것 같아. 대학생이 된 뒤에는 서울 구의역 근처로 이사를 갔는데, 그때 가정 형편이 안정되기 시작해 내 방이 생겼어. 그 전에는 방을 꾸민다는 생각이나 감정이 없었는데, 그때 처음으로 방에 대한 감정이 생긴 것 같아. 그러다 미국에 있던 언니가 그 학기에 뉴욕에서 공부하게 되어 언니를 따라 2개월 정도 뉴욕에 어학연수를 가게 되었지. 그때 처음으로 나 혼자 생활하기 시작했어.

2014, 미국

미국에서 지냈던 방

미국에서 언니랑 같이 살지 않았어?


나는 학교 근처에 집을 얻기 원했고, 언니는 나와 같이 살 만한 집을 구하기는 힘들었어. 종종 언니네 집에 놀러 가기는 했는데, 언니가 내가 사는 집에 오는 경우가 더 많았지.

청소 도구를 살 때 혼자 산다는 사실이 가장 피부에 와닿았어. 아무것도 없는 제로 상태에서 시작한다는 느낌이 들어서. 가족과 함께 살 때에는 집에 이미 있는 것들이 많잖아. 생활용품을 저렴하게 살 수 있는 곳에서 언니와 함께 큰 대걸레를 사서 돌아오는 길이 참 좋았지.

생각해보니 언니와 함께한 기억이 많아. 언니한테 빼앗은(?) LP판이 있는데, 혼자 있을 때 틀어놓고 들으면서 언니는 이런 음악을 듣는구나, 이런 걸 좋아하는구나 하고 깨닫게 됐어. 언니와 떨어져 지낸 기간이 꽤 길었는데, 그때 언니가 어떻게 지내는지 알 수 있었지.

2016, 2017, 2020, 일본

일본 방에 있던 선반

일본에서는 교환학생으로 잠깐 있다가 대학원 때 유학했지. 그때 살던 방은 어땠어?


교환학생 때는 방에 침대랑 책상이랑 냉장고밖에 없었고, 그것만으로 꽉 차는 공간이었어. 조금 큰 큐브 안에 갇힌 느낌을 상상하면 될 것 같아. 그래서 방이 답답하고 싫었어. 탈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많이 했지. 대학원 기숙사는 주방과 화장실이 딸린 1인실이어서 방 안에서 모든 생활이 가능했어. 엄청나게 넓어서 열 명은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았어. 혼자 있을 때 자꾸 무서운 생각이 들어서 큰마음 먹고 TV도 샀어. 잘 때는 무조건 틀어놓았는데, 이상하게 잠이 잘 오더라고.

대학원 유학 시절에는 코로나19 때문에 불편한 점이 많았겠다.


입학식을 한 달 정도 앞두고 일찍 일본에 갔어. 하늘길이 막힐 수도 있겠다 싶어서, 실제로도 그랬고. 가장 큰 문제는 당장 지낼 곳이었지. 그래서 어쩔 수 없이 호텔에서 3주를 지냈어. 아무리 괜찮은 호텔이라도 정착했다는 느낌은 들지 않잖아. 잠시 스쳐가는 곳이라는 느낌이니까. 그래서 마침내 기숙사에 들어갈 때 무척 행복했어. 짐을 다 들고 택시를 타는데 이제 진짜 집에 가는구나 싶었지.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는 일상이 불안정했던 것 같아. 입학식은 그럭저럭 진행됐지만, 개강은 미뤄졌고 온라인 수업 기간은 늘어만 갔어. 과제도 별로 없고 딱히 하고 싶은 것도 없으니까 밖에도 잘 안 나갔어. 내가 혼자 사는데 초짜잖아. 잘해보기로 다짐하고, 밥 먹고 바로 설거지하고, 일어나면 바로 샤워하고 해봤지만, 괜찮지 않은데 괜찮다는 주문을 계속 걸었더니 힘들었어.

어느 날엔 god의 ‘촛불하나’라는 노래와 가사에 꽂혔는데, 그 노래를 그날만 수십 번 들었던 것 같아. 기분 전환을 위해 기차를 타고 다른 지역으로 가는데 이 노래를 들으면서 완전 오열했어. 실패하면 안 돼, 지금은 한국에 절대 못 돌아가, 어쨌든 여기서 버텨야 해, 하는 생각에 힘들었는데 위로가 되었거든.

일본 집의 쓰레기 더미

한국이 가까이 있지만 생각보다 멀게 느껴졌을 수도 있겠다.


일본 유학을 결심한 이유는 힘들면 잠깐 한국에 와서 있다가 다시 나갈 수도 있고, 이런 걸 생각했는데 그때는 오히려 미국보다 멀게 느껴졌어. 한국과 거리도 가깝고 시차도 없는데 왜 나는 한국에 못 가는 거지, 하면서. 코로나19 때문에 항공편이 도쿄와 오사카에만 열려서, 한국에 들어오려면 나고야 근방에서 도쿄까지 간 다음, 다시 나리타 국제공항까지 가야 했고, 그게 예닐곱 시간이 걸렸어. 그러니까 엄두가 안 났던 것 같아.

2021~ 대한민국

'떠나면 돌아오고 싶은 방, 돌아오면 떠나고 싶은 방, 그리고 꿈을 향해 나아가는 방' @lucy._.cho

네가 생각하는 방이 궁금하다고 했을 때 그림을 그려 줬잖아.


미국과 일본에서도 지냈지만 어쨌든 가장 중심인 곳, 나의 집은 서울의 방이라고 생각하거든. 내 진짜 삶과 연관이 많다고 느껴. 내가 요즘 그리는 일러스트의 주제는 ‘러브 유어 셀프(Love Your Self)’야. 서울의 방을 이 주제를 담아 보여주고 싶었어.

따뜻한 사랑에 관한 이야기를 하고 싶은데, 내가 생각하는 사랑은 나 자신을 향한 것이 가장 큰 것 같아. 하트 이미지는 흔히 볼 수 있어 어쩌면 식상하지만, 한편으로는 재밌는 것 같아. 이런 형태의 이미지는 누가 처음 만들었을까? 언제부터 이 이미지를 쓰게 되었을까?

난 지하철을 타면 목적지가 있으니 다행이라는 기분이 들어. 가려는 곳이 있기에 타는 거잖아. 그래서 난 기차를 좋아하는 것 같아. 인생을 축약한 것 같기도 해. 목적지를 향해 가고, 도착하고, 길을 잃을 수도 있고. 정거장은 정착지일 수도 있고 동시에 환승이나 출발의 의미를 모두 품을 수 있는 공간이라고 생각해.
사람을 그리지 않은 이유는, 상상의 여지도 있지만, 단순히 기차를 기다리고 있는 나를 그리기 싫었어. 내가 어디에 있는지는 내가 결정하고 싶어서. 조그마한 트렁크는 준비되어 있는 느낌을 주고 싶었고, 별들은 판타지 느낌이 들었으면 했고. 가구는 내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그렸어.

지금의 우리는 우리 과거의 총합일까?


지금의 나는 내 과거의 총합이기도 하지만 난 단순히 더해지는 사람이 아니라 더하는 사람인 것 같아. 주도권이 나에게 있다는 거지. 과거를 되새겨보며 어떤 과거를 더할지, 어떤 과거를 뺄지, 어떤 과거를 곱할지, 그것도 나에게 달려 있는 것 같아. 무조건 더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아.


*글 전문은 빅이슈 258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조은식
소개말 잘 쓰는 싶은 사람이 되고 싶은 사람.
사진·그림. 조용현
망상업자. 망상을 업으로 삼고 있습니다. @lucy._.ch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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