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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66

1평 이후, 삶은 계속된다

2022.01.16 |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지난 2021년 12월 7일, 양동(서울시 중구 남대문로5가 542~626 일대)이 자리한 서울시 중구에서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의 북 콘서트가 열렸다. 홈리스행동 생애사기록팀이 지난 1년간 양동 쪽방 주민들이 구술한 내용을 채록한 이 책은, 양동에 불고 있는 재개발 바람의 중심에 있는 이들의 삶을 구체적으로 담고 있다. 양동 쪽방촌 골목 중심에서는 인근 힐튼호텔 건물 일부를 볼 수 있지만, 쪽방촌에서 호텔로 바로 이어지는 길은 없다. 인근 고층 빌딩 사이 쪽방에서 살아가는 쪽방촌 주민 가운데 화자로 참여한 여덟 명에게 이것은 본인의 이야기이자 이웃의 이야기다.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는 지금 쪽방촌 주민들의 생활과 이들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전한다.

쪽방이 결정하는 삶의 질
누구나 원하는 집을 상상할 때 떠올리는 최소한의 조건이 있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그것은 화장실과 부엌이 딸린 방과 따뜻한 물이 나오는 수도다. 전기밥솥 사용을 위한 전기 요금이 포함된 월세를 지불하면 방에서 음식을 해 먹을 수 있지만, 제대로 환기할 수 없고 방음과 방한이 전혀 되지 않는 곳이 쪽방이다. 겨울엔 전기장판으로 난방을 하는 주민들도 있지만, 그것만으로 냉기 가득한 방에서 편하게 생활하기는 역부족이다. 이렇듯, 쪽방에선 ‘평범한’ 삶의 질을 확보하기가 매우 어렵다. 비바람을 막아주는 중요한 공간이지만, 딱 몸을 누일 수 있는 최소한의 요건만 갖춘 방이다. 쪽방촌 주민 장영철 씨는 “깨끗하게 살고 싶어도 도무지 그러기 힘든 곳이 쪽방이다.”라고 말했다. 장애 등으로 움직임이 불편한 이들에겐 층수가 높거나 화장실에서 떨어진 쪽방 역시 불편하다. 집을 사람에게 맞추는 것이 아니라, 사람이 불편한 집에 어렵사리 적응해야 하는 공간이 쪽방이다.

코로나19의 확산으로 쪽방촌 주민들의 생활은 더욱 제약받고 있다. 거리두기를 실천하기 어려운 쪽방은 바이러스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홈리스행동에 따르면, 일부 쪽방 임대인들은 코로나19와 유사한 증상을 보인다는 이유로 임차인을 쫓아내기도 했다. 쪽방 밀집 지역에서 주민들에게 생계 및 행정 지원을 하는 쪽방상담소는 코로나19 검사를 권고하고 외출을 자제할 것을 당부하고 있으나, 화장실과 부엌 등이 방 바깥에 있기 때문에 외출을 완전히 자제하는 것은 쉽지 않다. 2평도 안 되는 공간에서, 볕이 들지 않는 상태로 며칠씩 보내는 건 누구도 버티기 힘겨운 일이다.

[홈리스주거팀 © 서울시 중구 양동 일대의 쪽방촌]

왜 쪽방이냐고 묻기 전에
쪽방촌 주민들은 모두 빈곤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쪽방에 거주하는 이들은 대부분 노숙 경험이 있고, 삶의 많은 시간 동안 저임금 고강도 노동에 시달렸다. 이들은 세간의 짐작처럼 노동 없는 게으른 삶을 살지 않았다. 오히려 언제나 더 나은 삶을 위해 할 수 있는 노력을 해왔다. 문형국 씨는 중국집에서 긴 시간 일하며 류머티즘을 얻은 탓에 기초생활수급자로 신청하면서 쪽방에 들어오게 되었고, 이석기 씨는 어릴 때부터 구두닦이와 넝마주이, 염전 일을 해왔다. 리어카나 벤치 등 여러 곳에서 노숙한 끝에 양동에 ‘첫 내 집’을 얻었다. 이양순 씨는 가정폭력을 피해 무작정 서울로 왔다가 양동에 살게 됐다. 믿었던 사람들에게 배신당해 삶의 의욕을 잃었거나 범죄를 저질러 이후 떠돌이 생활을 시작한 경우도 있다. 개인적인 사건뿐 아니라 IMF 외환위기 같은 사회의 변화를 온몸으로 겪기도 했다. 이렇듯 누군가가 쪽방촌에 들어오게 된 이유는 단순하지 않다. 이곳에서 사는 삶이 개인적인 게으름의 결과가 아님을 주민들의 삶이 말해준다.

쪽방촌 주민들에게 필요한 것
쪽방촌 주민들은 누구나 계절에 알맞은 상태로 쾌적하게 지낼 수 있는, 여유 공간이 확보된 더 나은 주거 조건을 원하지만, 그것이 꼭 쪽방촌을 떠나고 싶다는 의미는 아니다. 문형국 씨는 “임대주택에 들어갔던 사람들도 몇 개월 살다 쪽방촌으로 돌아온다. 남대문시장에 일당 일이라도 하러 갈 수 있는, 일자리가 있는 이곳을 벗어나기 어렵다.”라고 말한다. 이석기 씨와 장영철 씨는 “지방이나 수도권은 서울보다 기초생활수급비가 낮아서 가고 싶지 않다.”라고 말했다.

3차 병원이나 무료 급식소, 생필품을 지원받을 수 있는 여러 단체와 시설 등, 꼭 필요한 생활 인프라가 서울에 집중되어 있다는 점도 쪽방촌 주민들이 다른 지역으로 쉽게 이주할 수 없는 이유다.
지난 2019년, 홈리스의 주거권 보장을 위한 연대 모임으로 발족한 ‘홈리스주거팀’의 조사에 따르면 양동 재개발지역 주민의 83.1%가 재개발 이후 살던 곳으로 돌아오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익숙한 곳에서 어울리던 사람들과 편안하게 지내고 싶은, 누구라도 품을 법한 집에 대한 소망이다. 특히 주거지를 중심으로 한 커뮤니티에 속하고 싶은 갈증은 해소되어야 할 중요한 문제다. 인간관계에서 고립된 쪽방촌 주민들은 고독사 위험이 높다. “여기 계신 분들은 대부분 50~60대에 돌아가신다. 뒤늦게 방에서 주검으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해피인 서울역 위원장 신종호 씨의 말이다.
다행히 지난 2021년 10월, 양동에 쪽방촌 주민을 위한 임대주택 건설이 결정되었다. 주민들이 2017년부터 재개발 계획에 임대주택 건설을 포함할 것을 요구한 결과다. 양동 주민회는 서울시에 최저주거기준(1인 가구의 경우 14㎡ 방 1개에 입식 부엌, 전용 수세식 화장실, 목욕 시설을 갖춰야 함) 이상을 충족하는 적정 규모 주택을 제공하고 비수급자 주민들과 거동이 불편한 주민들, 건물주에게 퇴거당한 주민들을 보호할 대책을 내놓을 것을 요구하는 동시에 주민들이 어울릴 수 있는 휴게 환경의 필요성을 지적하고 있다.
연세대학교 문화인류학과 조문영 교수 역시 “지역과 관계를 맺고 있는 오늘의 쪽방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라고 말했다. 양동 주민들이 쪽방촌에서 느끼는 익숙한 친밀감은 공간적 측면뿐 아니라 인간관계가 녹아 있는 커뮤니티가 삶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기에, 지역으로서 쪽방촌에 주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범죄 피해나 강도 높은 노동의 후유증으로 신체적‧정신적으로 병든 쪽방촌 주민들이 자신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얻고자 하는 것은 무엇인지, 그리고 ‘최적의 삶’을 꿈꿀 수 있는, 최적의 주거가 지금의 쪽방으로 충분한지 사회가 대답해야 한다.

[홈리스주거팀 © 서울시 중구 양동 일대의 쪽방촌]

[박스 처리]
Q. 쪽방촌 주민들이 생활에 도움을 얻을 수 있는 곳은?
A. 쪽방 건물주는 대부분 쪽방 건물의 생활 편의 시설을 개선하지 않으려 한다. 인근 쪽방상담소에서 따뜻한 물로 씻거나 세탁기를 사용하는 등 생활 편의를 얻을 수 있지만, 24시간 이용할 수 있는 시설은 아니다. 쪽방상담소에서 도움을 받아 신청 절차를 마치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되는 주민이 많다.

Q. 팬데믹 시기에 쪽방촌 주민들의 식사는 어떻게 이뤄지나?
A. 쪽방촌 주민, 홈리스 등 주거취약계층은 무료 급식소에서 식사를 해결하거나 숙식을 제공하는 시설을 찾아간다. 기초생활수급자들은 싼값에 정부미를 구매할 수 있지만, 조리하기 열악한 환경에 살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이를 감안해 해피인 등의 단체에서 쪽방촌 주민들에게 도시락을 전달하고 있다. 팬데믹 이후 레토르트식품이나 두유 등 포장된 대체 식품을 전달하는 곳도 있다.

Q. 쪽방에서 고독사를 맞는 이들을 위한 대책은?
A. 지난 2021년 6월, 양동에 쪽방 주민회가 생기면서 주민들이 공영 장례에 함께 할 수 있게 되었다. 정신 질환을 앓고 있거나 경제적·신체적으로 취약한 이들이 대다수인 쪽방촌 주민들은 고독사에 처할 위험이 높다. 2020년 1월부터 3월까지는 양동 쪽방촌 주민들이 매주 한 명꼴로 세상을 떠났다. 대부분이 ‘무연고 사망자’였다.

* 북 콘서트 출연자들의 발언과 책 속 화자의 이야기를 참고해 작성했습니다. 주민들의 이름은 모두 가명입니다.

[참고 자료]
<힐튼호텔 옆 쪽방촌 이야기>, 홈리스행동 생애사기록팀, 후마니타스, 2021
<착취도시, 서울> 이혜미, 글항아리, 2020
홈리스행동 홈페이지(homelessaction.or.kr/xe/)

※ 더 많은 사진과 기사 전문은 매거진 '빅이슈'266호에서 만나보실 수 있습니다.


글. 황소연 | 사진제공. 홈리스주거팀, 홍서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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