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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2 에세이

방치견의 탄생

2022.09.12


'이 글은 《빅이슈》 215호에 실려 있습니다.'

ⓒ unsplash

집을 가져본 적 없는 개들에게 집이란 어떤 의미일까. 산 중턱에 아무렇게나 묶인 개들은 유기견 출신이라고 했다. 풀려 돌아다니는 개들까지 어림잡으면 그 수는 약 30여 마리. 누군가 버린 개들인데, 어찌 해야 할지 몰라 묶어놓고 밥이나 먹이던 것이 번식을 하거나 누가 또 개를 갖다 버려서 개체 수가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게 사건의 전말이었다.

유기견을 가엾게 여겨 돌보는 의도는 좋았으나 개들의 환경은 나쁜 축에 속했다. 개들은 2미터가 안 되는 무거운 목줄에 매여 있었고, 보호자인 아저씨가 얻어 오는 음식물쓰레기를 먹으며 목숨을 연명하고 있었다. 주변엔 온통 쓰레기 더미와 고물뿐이었다.

허름한 합판으로 얼기설기 만든 개집이 있는 개들은 그나마 비라도 피할 수 있어서 다행이지, 다 깨진 대야를 집으로 삼은 녀석도 있었고 찬바람을 피할 널빤지 하나 없는 녀석도 있었다.

“오늘도 한 마리가 머리가 어디에 끼었는지… 피투성이가 되어 죽어 있어 묻어줬어요.” 제보자에 따르면 환경이 좋지 않은 만큼 죽음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고 했다. 질병에 걸려 죽는 개들도 있었고, 새끼들은 펜스에 목이 끼거나 성견에게 물려 죽는 일도 잦단다. 어제도 오늘도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고 죽어가는 곳, 고통이 끊임없이 반복되는 문제가 여기서도 현재진행형으로 전개되고 있었다.

ⓒ unsplash

급한대로 우선은 보호자로 하여금 음식물쓰레기 급식을 중단하게 했다. 시민들이 십시일반 보내준 사료를 트럭에 실어 보내고 깨끗한 물그릇도 꼭 마련해줄 것을 당부했다. 다음 날 개들은 너무나 오랜만에, 혹은 생애 처음으로 음식물쓰레기가 아닌 사료를 먹었다. 거리낌 없이 먹을 수 있는 한 끼 식사가 너무나 반가웠을 것이다.

하지만 며칠 후 다시 현장을 방문했을 때, 몇몇 개들에게는 깨끗한 사료와 물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사람의 손길이었다. 입구에 묶여 있는 리트리버 ‘페퍼’를 비롯해한 몇 마리의 개들은 사람이 오자 사료는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오직 사람에게 가기 위해 발버둥이었다. 안약을 넣어주려고 가까이 가자 얼굴을 핥고 꼬리를 흔들기 바빠서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지경이었다. 안약을 넣어주기 위해서는 우리 또한 흙투성이가 되어야 했다.

그리고 한 백구 믹스견의 새끼들 중 하나가 사라져 있었다. 신나서 쫄래쫄래 달려오는 백구가 한 마리, 고개를 갸웃거리는 누렁이가 한 마리 있었는데, 그 애들의 형제 중 하나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대충 고물로 둘러놓은 담벼락 사이를 헤집고 밖으로 나간 듯했다. 인근 도로로 내려가 사람에게 발견됐다면 그나마 생존 확률이 있을 텐데, 산속으로 들어가버렸다면 죽은 목숨이었다. 조그만 새끼는 그렇게 또 사라졌다.

누군가는 개들의 보호자를 욕할지도 모르겠다. 어떻게 개들을 이렇게 방치할 수 있냐고. 진부한 동시에 아이러니하게도, 개들의 보호자는 동물에게 연민을 가진 사람이었다. 개를 어떻게 돌봐야 할지 모르고, 또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해야 할지 모르는 사람이었다. 물론 몰라서 하는 행동들이 개들에게는 학대가 됐다. 그런데 이 학대는 혼자 한 건가. 개를 이곳에 갖다버리는 사람들, 반려동물로 하여금 책임 못 질 새끼를 낳게 하는 사람들, 그것을 가능케 하는 사회구조, 우리 모두 공범이 아닌가.

ⓒ unsplash

그냥 무작정 비난할 수가 없었다. 보호자에게 어떻게 동물을 돌봐야 할지 알려준다면 개들도 충분히 잘 지낼 수 있을 것 같았다. 더군다나 개들에게는 멀리서까지 달려와 보살펴주는 제보자들도 있었다. 동물단체의 입장에서는 더 이상 동물을 구조할 여력이 없었다. 환경 정비를 하고, 중성화 수술을 하고 개들을 입양 보내는 것, 그리고 최소한의 숫자만 이곳에 남기고 더 이상 개체 수가 늘어나지 않도록 모니터링할 것을 결정했다.

우리는 환경 개선과 개들의 입양을 위한 모금 캠페인을 진행했다. 개들에게 번듯한 개집을 마련해주고 청소를 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기 위해 정말 많은 사람들이 십시일반 후원금을 보냈다. 우리는 지금 집단 중성화 수술을 준비하는 중이고, 또 입양을 보내려고 여러 차례 시도하는 중이다. 다음 주에는 이곳에서 태어난 강아지들을 위한 입양 파티도 진행한다. 11월에는 많은 것들이 정리된다. 그곳에 남게 되는 최후의 개들일지언정 겨울의 칼바람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어미 없는 새끼들은 임시보호처에서 지내고 있다. 남매들끼리 해맑게 장난을 치고, 뽀짝거리며 신발끈을 풀기도 하고, 한시적이지만 따뜻하고 안전하게 보호받고 있다. 이들도 여느 반려견처럼 제대로 살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가 모든 방치견을 책임질 수는 없지만 우리의 행동이 누군가에게는 반성과 성찰의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들 모두 우리의 책임이니까. 방치된 동물 모두의 건강과 행복을 빈다.


글 김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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