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려서부터 꾸준히 텔레비전을 탐독하며 TV 중독자의 엘리트 코스를 밟아온 나이지만, 언젠가부터 TV를 끄고 유튜브를 켜게 되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더 재미있기 때문에”. 1979년 영국의 밴드 버글스는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를 노래하며 매체의 변화를 안타까워했는데, 만약 2022년에 이 노래를 리메이크한다면 ‘유튜버 킬 더 티비 스타’ 정도가 되지 않을까?
유튜브 세계에 사람들이 모이고,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 이야기가 생겨난다. 유튜브는 가장 빠르게 현재의 한국, 세계, 사람들의 관심사를 담아낸다. 트렌드에 민감한 구독자들이 관심 가질만한 영상을 빠르게 만들어내야만 크리에이터도 도태되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10월, 일본 정부가 2년 7개월 만의 무비자 입국을 허용하고, 달러 대 엔화의 가치가 24년 만의 최저 수준을 이어감에 따라 일본을 찾는 관광객의 수요가 증가했다.
사실 코로나19 직전의 유튜브 세계에서 ‘일본’이란 키워드는 쉽게 언급해서는 안 되는 볼드모트와 같은 존재였다. 노재팬 운동의 바람이 유튜브에도 불어닥치며 일본으로 떠난 여행기는 물론, 일본 제품을 소개하는 콘텐츠까지 한동안 찾아보기 힘들었다.
하지만 코로나19 시국으로 인한 각종 규제가 완화되며 일본과의 거리두기도 다소 누그러진 모양새이다. 역사‧정치적으로 어려운 관계가 지속되지만, 민간 외교의 끈만큼은 쉽게 놓아버릴 수 없는 복잡한 이웃 일본. 유튜브 세상에 비춰지는 일본의 지금은 어떤 모습일까? 현지인의 관점으로 일본을 이야기하는 채널을 통해 비슷한 듯 다르고, 가까운 듯 먼 일본과, 일본 사람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미니멀 유목민

ⓒ <미니멀 유목민> 스틸컷
궁극의 미니멀리스트, 결벽증 한일 부부가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초기에는 한국인 남편 ‘박 작가’가 단독으로 출연해서 미니멀리스트의 삶에 대해 설파하는 영상이 많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일본인 아내 미키가 등장하며 부부의 여행 영상이 주를 이루게 되었다.
정해진 주거지 없이 세계를 떠돌며 살아가는 부부는 다양한 삶의 방식을 지향하는 지인들을 소개하기도 하는데, 그 인물 한 명 한 명이 꽤나 매력적인 캐릭터의 소유자들이다. 특히 소유했던 물건의 90%를 버린 후 자신이 운영하는 셰어 하우스의 쪽방에서 지내는 1945년생 마사미 씨의 이야기는 한 번쯤 찾아보기를 추천! 그간 미디어에서 흔히 보아오던 단정하고 친절한 스테레오 타입을 벗어난 자유롭고 털털한 매력의 일본인들을 만나볼 수 있을 것이다.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 TV

ⓒ <오사카에 사는 사람들 TV> 스틸컷
일본 오사카를 거점으로 하는 부동산 업체 ‘오너즈 플래닝’에서 운영하는 유튜브 채널이다. 채널이 본격적으로 인기를 끌기 시작한 것은 깔끔한 정장 차림에 서류 가방을 든 미중년 마츠다 상이 일본스러운 분위기가 넘치는 노포를 오가며 퇴근 후 한잔을 즐기는 회사원 시리즈를 선보이면서부터. <심야식당>이나 <고독한 미식가>와 같은 낭만적인 일본의 풍경을 연상시키는 화면에 호감형 외모, 한국인보다 한국말과 문화에 익숙한 마츠다 상의 캐릭터는 ‘나야~’, ‘죽이지~’ 같은 유행어를 만들고, 패러디 콘텐츠가 나올 정도로 고정 팬덤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한국어에 서툰 한국 국적 오오카와 사장과 완벽한 한국어를 구사하는 일본 국적 마츠다 부장이 콤비 플레이를 이루며 일본 문화나 일본 집을 소개하던 채널 초기를 그리워하는 편. 영상 전담 팀이 생기기 이전의 소박한 화면과, 말끔한 마츠다 상보다 엉뚱한 오오카와 상의 팬이었다고 하면 남들이 좋다는 것엔 괜스레 마음이 안 가는 ‘홍대병’이려나.
박가네

ⓒ <박가네> 스틸컷
한일 부부가 일본 현지의 다양한 소식을 시사토크 쇼 형식으로 소개한다. 극단적인 시선과 근거 없는 뉴스가 판치는 유튜브 세계에서, 비교적 중도의 시선으로 전달하는 팩트 기반 일본 뉴스를 접할 수 있다. ‘일본에서 배스킨라빈스가 고급인 이유’ 같은 가벼운 주제부터 ‘엔저의 경제 상황’이나, ‘일본 젊은이들이 보수 정당을 지지하는 이유’ 등과 같은 사회경제적인 측면의 이야기까지, 폭넓은 주제의 현지인발 뉴스가 일본과 일본인에 대한 이해도를 높여준다.
THE ROLAND SHOW

ⓒ <THE ROLAND SHOW> 스틸컷
일본 호스트 업계의 제왕이라 불리는 남자, 롤랜드와 그가 운영하는 호스트바에서 근무하는 호스트들의 일상을 다큐멘터리 형식으로 보여준다. 우리나라와 달리, 호스트를 관대한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본이기에 가능한 채널. 하지만 영상의 제작 및 촬영은 한국인 ‘송 PD’가 담당하는 덕에 충실한 한국어 자막을 제공하며 한국인 구독자를 배려하는 채널이기도 하다.
접객 시 술을 전혀 마시지 않고 오로지 화술만으로 업계의 정상에 올랐다고 하는 롤랜드. 화려한 금발, 이국적인 이목구비, 진한 화장을 한 그의 모습을 처음 본다면, ‘도대체 왜 인기가 많은 거지?’라는 의문을 가질 확률이 높다. 하지만 호스트바 외에도 에스테틱이나 요식업 등 다수의 사업체를 운영하는 CEO로서, 그리고 사람들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셀럽으로서 살아가는 그의 일상은 꽤 금욕적이고 엄격한 자기 관리로 가득 차 있어서 외모가 주는 편견을 넘어 사람 자체에 대한 호감을 갖게 한다. 처음엔 ‘뭐야?’ 싶다가 점점 빠져드는 그의 매력을 채널의 구독자들은 ‘롤며든다’라고 표현한다.
글. 김희진
글팔이 독거 젊은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