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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87 컬쳐

매화는 피고 화산은 흐르네

2022.11.23


*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거지 키우기’ 게임, <슈퍼맨이 돌아왔다>, <어벤져스>, <취권>, ‘원나블(원피스, 나루토, 블리치)’, 그리고 ‘회빙환(회귀, 빙의, 환생)’ 소설과 화산파의 상징인 ‘매화맛’까지. <화산귀환>은 이 모든 걸 섞어놓았지만 여전히 맛있다.


ⓒ 러프미디어

또 회빙환이야? <화산귀환>을 본 첫 번째 인상은 이랬다. 청명은 절대악인 ‘천마’를 죽이는 데 가까스로 성공한다. 하지만 승리에 대한 고양감은 없다. 대신 그는 전멸해버린 아군들 사이에서 고독과 후회로 생을 마감하는 세계관 최강자이자 주인공이다. 회빙환을 소재로 하는 작품 주인공답게 청명은 100년 뒤 다시 태어나게 되는데, 제2의 인생에 내려진 퀘스트가 심상치 않다.

챕터 1, 답답함
고구마 피자에 고구마 솥밥을 돌돌 말아 먹고 디저트로 고구마 라테까지 퍼먹는 상황이 잇따른다. 천마를 제외하면 사실상 세계관 최강자였던 청명은, 100년 뒤 눈을 뜨자마자 거지굴에서 거지에게 죽도록 맞는 신세가 되었다. 절대악을 물리치기 위해 총대를 멘 청명의 문파인 명문 ‘화산파’조차, 골목의 누구도 기억해주지 않는 문파로 전락했다. 화산파의 각종 비급과 건물들은 복수를 하겠다고 내려온 천마의 추종자에게 활활 타버렸고, 후대 제자들은 문파를 연명하기 위해 조상님들의 제사상까지 팔아버리는 처지다. 게다가 ‘언젠가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천마의 선언에, 청명은 지난생의 능력치를 그대로 가져와 전쟁 대비를 해도 모자랄 상황. 그런데 지식을 제외한 그의 모든 능력치가 리셋 됐다. 이렇게 쌓여 있는 문제를 어쨌든 풀어나가야 할 텐데, 하고 청명이 내놓는 해결책을 궁금해하는 시점이 되면, 독자는 숨 쉴 틈 없이 거대한 분노를 맞이하게 된다.

챕터 2, 분노
마치 친일파는 대대손손 승승장구하는 반면 정작 독립운동가 후손들은 비루하게 산다는 소식을 들은 상황과 비슷하다면 적절할까? 화산파가 먹여 살렸던 마을 사람들이 화산파의 장부가 불타 없어졌다는 걸 이용해 화산파 재산을 꿀꺽하는 걸로도 모자라, 고리대까지 씌워 화산을 깡그리 파탄 내버릴 작전을 꾸미고 있었다는 걸 알게 된 순간, 그리고 화산파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 천마와의 전쟁에서 모든 것을 바쳤는데, 연합해서 싸운 타 문파들은 이를 도와주기는커녕 현재 제자들도 모르는 화산의 무학을 훔쳐서 꿀꺽한 걸 알게 된 순간 “아니?! 아니?!”를 연발하며 명예화산파가 되어 분노와 울분을 뿜어내게 된다. 청명이 빨리 몰염치들에게 복수하길 바라고 있는 나를 발견해버렸다.

ⓒ 러프미디어

챕터 3, 청량함
이렇게 답답함에 분노가 차오르는 와중, 여느 먼치킨물처럼 청명이 80년 동안 굴렀던 세계 최강자의 지식과 지혜를 바탕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장면을 만나면 그 청량감이 이루 말할 수 없다. 이 감정을 고조시키는 건 <화산귀환>의 귀환이 화산파 ‘청명’의 귀환이 아니라 ‘화산파’의 귀환 스토리라는 점을 깨닫는 장면들이다. 옳은 것을 추구한 선대 덕분에 덕을 보기는커녕 무엇도 계승받지 못하고 외려 가난과 절망감을 마주한 화산파의 후대가 돌아온 조상, 청명으로 인해 화산파가 잃어버린 것들을 하나씩 찾아가는 순간은 가슴을 벅차오르게 한다. 전승이 끊겨 열 수도 없는 비밀창고 앞에서 흐느끼던 문파 수장의 어깨가 청명으로 인해 점차 넓어질 때나, 제자들이 다시 찾은 화산의 무학을 이용해 화산이 망한 뒤로 한 번도 이겨보지 못한 이웃 문파를 상대로 첫 승리를 거뒀을 때처럼 말이다.

챕터 4, 유머
회빙환으로 시작하는 <화산귀환>의 이야기는 거지 문파를 키우는 경영 스토리 같고, 복수를 위해 무위를 쌓는 모습은 무협지에서 본 듯하다. 검술은 최강자였을지 몰라도 인성은 뒤에서 첫 번째인 탓에 따르는 제자도 없던 청명이 ‘맏내’가 되어 화산파 사람들에게 폭력과 사랑으로 무위를 전파해주는 모습은 우당탕탕 육아 스토리처럼 읽힌다. 이렇게 키워진 병아리들이 어느 순간 동료가 되고, 화산파의 성장과 더불어 다른 문파에서까지 동료가 생겨나는 모습은 우리가 사랑했던 소년만화 스토리들을 보는 느낌을 준다.
무엇보다 <화산귀환>이 특별한 건 이 모든 스토리를 엮어내는 감정이 유머라는 점에 있다. 활자를 읽으면서 이 정도로 소리 내서 웃은 적이 얼마나 있었나 싶다. 분명 나는 웹소설을 읽고 있지만, 어느 저잣거리에 사람들과 둘러앉아서 탁월한 이야기꾼의 재담을 듣는 듯하다. 작품 초반에 휘몰아치는 청명의 유머에 깔깔거리며 <화산귀환>에 입문하다 보면, 어느 순간 화산파와 함께 분노하고, 기뻐하고, 심지어 그 슬픔에 공감해 울고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연재가 벌써 1300화를 넘어서 걱정이라고? 괜찮다. 그 10%만 읽어도 앞서 열거한 <화산귀환>의 매력을 충분히 느낄 수 있을 테니, 걱정은 그 이후에 해도 늦지 않다.


글. 강지원
이미지제공. 러프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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