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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95 에세이

하얀 침묵의 시간, 연희동 고원 (2)

2023.03.19


이 글은 '하얀 침묵의 시간, 연희동 고원 (1)'에서 이어집니다.

공간의 에너지로 살아나는 감각들

고원에 머무르는 내내 이 공간의 에너지에 관해 생각했다. 하늘과 맞닿은 연희동 일대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곳, 누워 있으면 온몸에 지구의 중력이 느껴지는 곳. 이 공간을 알아본 이는 무대미술가이자 작가, 연출가로 활동하는 여신동이다. 13년 전 연극 <소설가 구보씨의 일일> 무대를 시작으로, 이자람의 판소리극에서, 메종 에르메스 도산 파크의 윈도 디스플레이에서, 얼마 전 피크닉의 국내 여행 전시에서 나는 여신동 작가의 날 선 감각과 탁월한 공간 연출력을 목격했다. 연희동 고원은 그에게 사색의 시간이 쌓인 작업실이자, 일상 명상 프로젝트를 확장하는 또 다른 무대였다.

“공간에서 들리는 소리, 보이는 풍경, 전체적인 느낌이 저에겐 명상적이었어요.” 여신동 작가는 작업실로 쓰면서 느낀 공간의 에너지, 그 안에서 살아나는 감각의 영역을 타인들에게도 전하고 싶었다며 고원의 기획 의도를 밝혔다. 누군가의 감각을 일깨워 자기 자신과 온전히 대면하는 시간을 선사한다는 것은 얼마나 멋진 일인가. 나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아는 것, 나를 들여다보고 제대로 돌보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그는 숨 가쁘게 달려온 지난날을 통해 체득했다.

한 시간 남짓한 체험을 마치고, 다시 좁고 가파른 계단을 내려와 일상으로 향했다. 명상이 주는 평온함을 느끼기에는 극적인 장면들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었던 고원. 오롯이 자기와 대면하는 시간이라 했지만 ‘형식’과 ‘공간’을 계속 의식하게 되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이상한 일이었다. 일상에서 문득 그 하얀 침묵의 시간이 떠오르는 것이다. 부드러운 곡선으로 공중을 부유하던 연기와, 입안을 감돌던 제주 화산차의 고소함이 툭 나타났다가 사라졌다. 연희동 고원이 나에게 남긴 것. 성글었던 나의 필터가 조금씩 촘촘해지고 있었다.


. 김선미
사진. 김선미·고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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