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른 김장하>의 영어 제목은 ‘A Man Who Heals the City’다. 한약사로서 60여 년간 아프고 지친 사람들에게 저렴하고 좋은 약을 지어준 어른. 어려운 곳에 언제나 자신이 가진 것을 아낌없이 쏟아부었던 어른. 그렇게 사람들을 치유해온 어른. 무엇도 바라지 않은 채 베푼 마음은, 이제 김장하 선생의 정신을 이어가려는 사람들의 의지로 이어진다. 그럼에도 자신의 선행을 꼭꼭 숨기려는 김장하 선생과 그를 끈질기게 취재하는 김주완 기자, 두 사람의 이야기를 MBC경남 김현지 피디가 담았다.
인터뷰이들은 김장하 선생의 생각을 닮을 수 없어 부끄럽다고 한다. 그에게 도움을 얻었으니 나 역시 어른이어야 한다고도 말한다. <어른 김장하>는 그렇게 먼저 살아가는, 앞서 걷는 선생(先生)의 깊은 마음을 전한다. 김장하 선생을 사랑하는 사람들, 그리고 영화를 본 관객들은 같은 소망을 가질 것이다. 타인을 기꺼이 보듬고 위로하고 응원하는 이 마음이, 더욱 평범한 장면으로 우리 사이에 자리 잡기를.
ⓒ 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
기자와 피디가 협업한 작품이 OTT에도 서비스되었고, 영화로 개봉했습니다. 관객들을 만나는 소회가 궁금합니다.
방송 피디로서 일할 땐 시청자가 눈에 보이지 않잖아요. 가상의 어떤 인물들이 앉아서 보고 있을 것이라고 상상만 했기 때문에 관객을 이렇게 직접 만나는 게 무섭고도 떨리네요. 지역 언론인으로서 받는 관심도 새롭고요.
<어른 김장하>가 MBC경남에서 공개된 후 상도 받으셨고 좋은 반응도 많았는데, 그런 관심이 여전히 새로우신가요?
영화 산업은 경험해보지 않았던 거라 그런가 봐요. 방송과는 시스템이 다르더라고요. 사실 피디는 아무리 고생해도 칭찬을 받건 욕을 먹건, 송출하고 나면 끝이죠.(웃음) 하나의 아이템을 계속 만지고 새로 고치고 이야기를 나누니, 허투루 만들면 안 되겠다는 생각도 했어요.
다큐에서 영화로 옮겨가는 과정에서 있었던 변화는 뭘까요?
경남에서 처음 방송됐을 때의 풀 버전은 많이들 못 보셨을 거예요. 넷플릭스에 서비스 됐을 때도, 전국 방송된 것도 평당 50분으로 많이 축소된 버전이고요. 거기에서 잘렸던 이야기들을 많이 넣으려고 했어요. 무엇보다 내러티브가 강화됐으면 해서 편집을 공들여서 했어요. 특히 절대 취재에 응하지 않으려는 김장하 선생님과 어떻게든 취재하려는 김주완 기자의 대결처럼, 이야기 구조가 선명하게 보이게끔 노력했어요.
<어른 김장하>는 김장하 선생에 대한 이야기이자 그를 취재하는 김주완 기자에 대한 이야기인데요. 취재기를 다큐에 녹이는 형식은 다른 다큐 작업과 어떻게 달랐나요?
신문 기자와 방송 피디의 협업이잖아요. 좀 낯설고 긴장도 됐어요. 김주완 기자는 제가 지역에서 원래 존경하던 선배님이셨고요. 김 기자님 섭외 당시에 말씀하셨던 조건이 “연출은 하지 마세요.”였어요. 담백하게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한계와 대안을 명확히 정리하고 시작할 수 있어서 좋았어요. 대신 김 기자님이 대중교통을 이용하시니까, 택시와 버스 등을 타는 모습이 자연스럽게 담겼어요. 오히려 서로 다른 취재 방법이 시너지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아요.
ⓒ 영화 <어른 김장하> 스틸
타인을 돕는 데 돈과 마음을 아끼지 않는 모습 외에도, 자신을 비난하는 전화를 단호히 끊는 장면에서도 김장하 선생의 성격이 보여요. 이런 면이 다큐를 좀 더 입체적으로 만든 것 같은데, 이 작품이 다른 인물 다큐와 다른 입체성을 띤다고 생각하는 장면이 있을까요?
선생님이 워낙 다양한 일을 해오셔서 많은 얘기가 담겼지만, 이 영화는 사실 김장하라는 인물의 전기나 생애사 전반을 다루지는 않거든요. 선생님은 워낙 인터뷰를 안 하시니 정확하게 인터뷰 형태를 갖출 수도 없었고, 굉장히 조심스러웠죠. 대신 김장하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어디에서 뭘 하고 있는지를 간접적으로 보여줌으로써 선생님의 생각이나 태도를 드러내려고 했어요. 영화 속에서 인터뷰이로 나오신 분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좋은 어른으로 역할 하고 계시기에, 그들이 존경하는 사람은 어떤 모습일까에 초점을 맞췄어요. 대신 저는 진지하기만 한 걸 못 참거든요.(웃음) 그래서 인터뷰이가 “선생님과 회식으로 갈빗집에 갔다.”고 하면 “돼지갈비?” 이렇게 묻는 장면도 나왔던 것 같아요.
다큐에서 내레이션을 다 빼셨다고 들었어요. 피디의 시각이 드러날 수 있는 통로가 사라진 셈인데 아쉽진 않으셨나요?
맞아요. 원래 저 내레이션 직접 쓰는 걸 되게 좋아하거든요.(웃음) 피디가 가진 진짜 효율적인 도구잖아요. 근데 이번엔 못 하겠더라고요. 감히 내가 이 어른을 몇 마디 말로 규정짓고 평가해도 되나, 이런 생각이 자꾸 드는 거예요. 또 현장에서 모든 인터뷰이에게 ‘김장하를 한마디로 표현하면 어떤 분이죠?’라고 질문을 던졌어요. 근데 실컷 물어놓고 결국 하나도 못 쓰게 됐어요. 그 평가를 내보내는 게 맞나 싶었거든요. 대신 관객들이 직접 각자의 시선에서 김장하를 만나셨으면 했어요. 누군가는 ‘여성운동 하는 할아버지’에 꽂힐 수도 있고, 누군가는 ‘학교를 설립했지만 절대 가르치려 들지 않는 선생님’, 또는 ‘포토샵 배우는 60대 할아버지’ 아니면 ‘유머의 소중함을 아는 남자’로 이해할 수도 있겠죠.(웃음) 각자 평소 갈증을 느끼고 있던 부분이 다를 텐데, 그 디테일을 관객들이 찾아가실 수 있을 거예요.
이 글은 '<어른 김장하> 김현지 감독 (2)'에서 이어집니다.
글. 황소연 | 사진제공. 시네마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