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오픈하우스서울 2023 (1)'에서 이어집니다.
ⓒ 후암동 H HOUSE
해마다 커지는 오픈하우스서울의 인기
올해 오픈하우스서울 2023의 주제는 ‘서울 산책’이다. 작가 특집으로는 정영선 조경가를 선정했다. 1973년 서울대학교 농학과를 졸업하고, 1980년 조경기술사 자격을 취득한 최초의 여성 기술자인 그는 우리 땅의 고유한 풍경을 건축이나 도시 공간 안에 조경 작업으로 풀어낸 인물이다. 국내에서는 크게 화제가 되지는 않았지만, 지난 9월 4년에 한 번씩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최고의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제프리 젤리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조경계에서 최고 권위를 지닌 상으로 세계적인 수준의 업적을 이루거나 그에 준하는 활동을 펼친 조경가에게 수여하는 상이다. 오픈하우스서울 2023에서는 정영선 조경가가 꿈꾸는 서울의 경관, 도시의 공원과 광장, 정원에서 풀어내는 여백의 가치를 인터뷰와 다큐멘터리영화를 통해 대중에게 공개했다.
매년 10월경 개최하는 오픈하우스서울은 누리집(www.ohseoul.org)을 통해 사전 예약을 할 수 있으며 현재는 무료로 진행하고 있다. 신청만 해놓고 불참하는 노쇼를 방지하기 위해 1만 원의 예약금을 내야 하며, 이는 참석이 확인되면 다시 돌려준다. 부분적으로 유료화한 오픈하우스뉴욕과 같이 다양한 방식으로 지속 가능성을 타진하는 중이라고 한다. 행사의 수준과 밀도가 어느새 소문이 나 웬만한 프로그램은 예약이 시작되자마자 마감되어버리는 것이 단점이라면 단점. 그래도 올해는 몇몇 관심 있는 건축가의 이야기를 오롯이 들을 수 있었다. 매일 해당 누리집을 들락날락하며 예약에 성공한 프로그램을 소개한다.
ⓒ 후암동 H HOUSE
후암동 H HOUSE - 서승모 건축가
오픈하우스 프로그램 중 하나로 용산구 후암동에 위치한 개인 주택이 있다. 광복 후에 지은 일식 목조 주택을 새롭게 리노베이션한 프로젝트. 한때 미군 관사로도 쓰인 이력을 가진 집으로 정면의 페디먼트 장식, 현관문을 열면 복도로 양 측실이 나뉘는 미국의 소규모 목조 주택 구조를 띠고 있다. 걸레받이나 아치 장식, 문틀 등 이질적 요소가 많이 섞여 있는 기존의 모습을 최대한 수용하는 대신, 심플하고 군더더기 없는 셰이커 스타일을 접목했다고 한다. 머무는 공간을 보면 그 사람이 보인다고 했던가. 미닫이 창호 문으로 분절되고 다시 통합되는 1인용 서재, 정성스럽게 관리한 목가구의 깔끔한 마감, 광목천으로 창문을 사선으로 가리고 여는 작은 포인트 등을 보며 이곳에 사는 이의 집을 대하는 태도를 엿볼 수 있었다. “이 집 안의 묘하게 섞인 것을 긍정하며 설계를 시작했다.”는 서승모 건축가의 이야기를 들으며 어떤 것이 사라지고 어떤 것이 남는가 하는 생각에 빠져든 시간.
기록으로서의 창작 - 황두진 건축가, 김종신 감독
황두진건축사사무소 목련원에서 진행한 오픈스튜디오 프로그램. 평소 황두진 건축가의 글을 흥미롭게 읽는 터라 기대되는 시간이었다. 건축으로서 대지에 새기는 기록과 그 건축을 영상으로 담는 기록 행위에 관한 것이 주된 화두였다. “건축은 사회경제적 상황, 지역의 특성, 관련된 사람들 등 다양한 ‘기록’이 체화된 결과이면서 동시에 하나의 창작물.”이라는 황두진 건축가의 말에서 동네와 골목의 관계에 주목해온 그의 관점이 이런 토대에서 나왔겠구나 짐작할 수 있었다. 팬데믹 시기에 오픈하우스서울의 영상 콘텐츠를 제작한 기린그림은 건축 전문 영화 영상 제작사로 김종신 감독은 아내 정다운 감독과 함께 이타미 준의 건축 세계를 다룬 <이타미 준의 바다>, 정영선 조경가의 건축 철학을 다룬 다큐멘터리 <땅에 쓰는 시>를 만든 곳이다. 설계하는 사람 입장에서 건축물 안에 사람들의 이야기가 들어차고 그들의 일상이 담기기 시작할 때 비로소 그 건축물과 이별하게 된다는 건축가의 코멘트가 인상적이다. 건축 영상을 찍을 때 그 집에 살고 있는 실제 거주인을 종종 등장시키는데, 공간과 사람의 일상이 자연스럽게 담겨 자연스러운 풍경이 만들어진다고 믿는 까닭이다.
프라우드건축사사무소 & 도만사 - 임동우 건축가
프라우드건축사무소는 지극히 개인적인 흥미에서 출발하지만, 그것이 결과적으로는 지극히 사회적인 결과를 만들어내는 집단이었다. 임동우 건축가는 “건축가의 역할이 하나의 건물을 디자인하는 데 국한되기보다는 교육하고, 책을 쓰고, 기획하고, 큐레이팅하며, 때로는 미래에 대한 목소리는 내는 것까지 모두 포함한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그의 행보도 이러한 관점에 따라 움직인다. 2010년 보스턴에서 결성한 설립 초기부터 프라우드는 건축가의 역할 범위를 확장하는 데 관심을 두었고, 이를 위해 건축, 도시,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에서 리서치를 수행했다. 도만사(Domansa, 도시를 만드는 사람들)라는 작은 도시 문화 플랫폼을 운영하며 동네 안에서 다양한 문화를 실험할 뿐 아니라 잡지(<도만사 매거진>)를 발행해 그들의 도시 리서치를 아카이빙하고 대중과 공유한다. 사람을 중심에 둔 열정적이면서도 성실한 건축가는 도시의 풍경을 언제나 더 흥미롭게 만든다. 프라우드건축사무소에서 불과 몇 미터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8평(약 26㎡) 남짓한 도만사는 2020년 초부터 운영하기 시작해 3년 반이 넘는 기간 동네의 문화 플랫폼 역할을 해왔다. 다양한 전시와 토크, 작은 콘서트 등이 실험적으로 펼쳐지는 동안 동네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모여 사랑방처럼 쓰기도 하고 동네 아이들의 놀이터가 되기도 했다. 건축가의 시선이 일상을 머문 결과, 동네 사람들의 삶은 조금 더 다채롭고 행복해진다.
소개
김선미
서울 북아현동에서 기획 및 디자인 창작집단 포니테일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단행본 <친절한 뉴욕>, <친절한 북유럽>, <취향–디자이너의 흥미로운 물건들>, <베이징 도큐멘트>를 썼으며 한겨레신문, <샘터> 등에서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1930년대 한국 근대 잡지에 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다.
글 | 사진. 김선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