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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1 에세이

오픈하우스서울 2023 (1)

2023.11.28

건축물 안팎을 거닐며 그 안에 숨겨진 이야기를 듣다 보면 도시의 새로운 결이 보이기 시작한다. 건축물 안에 켜켜이 녹아 있는 맥락들이 도시의 입체성을 발견하게 만드는 것이다. 이 경험이 누적되면 익숙한 도시의 풍경을 새롭게 상상할 수 있는 힘이 된다. 훌륭한 건축물을 경험할 수 있는 행사 ‘오픈하우스서울’은 그 힘의 구심점 역할을 꼬박 10년이나 해왔다. 강산도 모습을 달리할 길고 촘촘한 시간이다.


ⓒ 후암동 H HOUSE

출입 금지. 이 말 앞에서 나는 묘한 양가적 감정을 느낀다. 발걸음을 멈추어 돌아 나오면서도, 마음 깊은 곳에서는 그 너머에 뭐가 있을까 자꾸만 그 존재를 욕망하게 되는 것이다.

얼마 전 서울시청 아래 숨어 있던 1000여 평(약 3300㎡)의 공간이 40년만에 일반인에게 공개되었다. 소수의 신청자에게만 허용된 답사였는데 생각보다 많은 사람이 몰렸다. 지난 10월 3일, 해설사의 인솔하에 10여 명의 시민들과 함께 평소에는 인식조차 하지 못했던 시청 아래 가려진 공간을 탐험했다. 지하상가 바로 아래, 지하철 2호선 바로 위쪽의 숨은 공간으로 빛이 한 줌도 들지 않는 335m의 긴 터널. 이런 공간이 왜 생겨났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서울 도심의 개발사를 들여다보며 사람들은 이런저런 원인을 유추했다. 1967년 서울시청과 프레지던트 호텔 지하를 연결하는 서울 최초의 지하상가 ‘새서울 지하상가’가 건설되었다. 이후 시청 주변의 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서울시는 1983년 지하철 2호선 을지로입구역~성수역 구간을 개통했고, 각기 다른 시기에 설계한 지하상가와 지하철에 높이 차이가 생기면서 쓸모없어진 통로가 생긴 것이라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방진 마스크를 써야만 들어갈 수 있는 어둡고 분진 가득한 그 공간을 걸으며 내가 살고 있는 이 도시의 이면에 어떤 것이 숨겨져 있을까 생각했다. 지하 공간 위로 배수로가 지나는 터라 지하수를 타고 형성된 종유석과 석순도 볼 수 있었다. 도시 개발의 방향이 조금만 바뀌었어도 수많은 서울시민이 오갔을지 모르는 공간. 유동 인구 과밀 지역에 텅 빈 숨은 공간을 목격한 것도 인상적이지만, 해설사의 설명을 들으며 시청 주변의 도심이 어떻게 팽창하고 그 과정에서 어떤 비용과 에너지가 유실되었는지 맥락을 들여다본 것이 더 큰 수확이었다. 옛날로 돌아가 도시 아래 이 지하 건물을 다시 짓는다면 어떤 설계와 전략이 필요할까. 이 숨은 공간은 이후 새로운 모습으로 시민들 앞에 모습을 드러낼 예정이다.

ⓒ 성수동에 위치한 도만사(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공간

건축물을 경험하며 만들어지는 공간 감수성
서울시가 주관한 ‘숨은 공간 탐험’이 1970~80년대 도시 맥락을 읽는 기회였다면, 10월 21일부터 29일까지 열린 ‘오픈하우스서울 2023’은 현재 내 일상 속 좋은 건축물을 생각하게 하는 자리였다. 평소에는 대중에게 공개하지 않는 명소와 유명한 건축물의 내부 공간을 구경할 수 있는 행사로 어느덧 10년째를 맞이하는 서울의 대표 도시 건축 축제다. 이 행사의 가장 큰 매력은 건축물을 설계한 건축가가 동행하며 숨은 이야기를 들려준다는 것. 건축가가 참여하지 않을 때도 그에 준하는 전문가가 건축물의 다양한 사회적, 문화적 맥락을 짚어준다. 일반인에게는 평소 공개하지 않는 내밀한 공간을, 15~20명의 소규모 인원으로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건 흔치 않은 기회다. 이 과정에서 사람들은 자기가 살고 있는 도시환경을 그간 한 번도 보지 않은 각도로 조명하며 건축물과 살가운 스킨십을 한다.

오픈하우스서울의 또 다른 매력은 미시적 관점으로 건축물을 바라볼 수 있다는 점이다. 공공기관이 주관하는 건축 답사는 역사적 상징성이나 거시적 관점의 포인트를 짚는 대규모 패키지여행 같은 데 반해 오픈하우스서울은 누군가의 오래된 집, 어느 건축가의 스튜디오에서 보내온 아주 사적인 모임의 초대장을 받아 든 기분이다. 그렇게 도시의 문턱이 낮아지고 사람들은 삶 안에서 체감하지 못한 건축을 지척에서 만나게 된다. 그러고는 생각하는 것이다. 내 일상 속 건축은 어떠한가. 나는 어떤 집에서 살고 싶은가. 내가 사는 이 도시의 형태는 왜 이렇게 변화하고 있는가.

ⓒ 성수동에 위치한 도만사(도시를 만드는 사람들) 공간

1992년 런던에서 시작한 도시 건축 행사
오픈하우스는 1992년 설립자 빅토리아 손턴(Victoria Thornton)의 주도로 영국 런던에서 처음 시작한 행사다. ‘오픈하우스런던’이라는 이름으로 런던에 17개 프로그램을 마련했고, 약 100명의 인원이 소형 버스를 타고 런던 시내 곳곳을 방문하는 방식이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반응이 미온적이었지만 2000년대 초반에는 방문객 수가 10만 명에 달할 정도로 성장했다. 오픈하우스런던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2003년 ‘오픈하우스뉴욕’이 시작되었고 현재는 서울을 비롯해 로마, 헬싱키, 타이베이 등 전 세계 50여 개 도시에서 열리는 글로벌 행사로 발전했다. 모든 행사의 목적은 비슷하다. 평소 방문하기 어려운 장소를 개방해 짧은 기간이나마 도시의 건축물을 일상 안에서 경험하게 하는 것. 이 과정에서 우리를 둘러싼 도시환경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공론화하는 것이다.

오픈하우스서울은 ‘오픈하우스서촌’이라는 이벤트를 시작으로 2012년부터 그 토대를 모색해온 행사다. 건축 저널리스트 임진영 씨가 비영리단체 오픈하우스서울의 대표로 10년 동안 총괄 기획을 맡고 있다. 오픈하우스서울은 코로나19 팬데믹 기간에 영상으로 오픈하우스 프로그램을 소개하는 등 그 경험과 가치를 유지하기 위해 다양한 방법을 강구해왔다. 스페셜 프로그램인 ‘인물 특집’과 건축가와 함께 훌륭한 건축물을 직접 경험하는 ‘오픈하우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를 그들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만나는 ‘오픈 스튜디오’ 등이 오픈하우스서울의 대표 프로그램이다. 그간 김중업, 황두진, 조병수 등의 건축가를 특집으로 다루었으며, 다양한 근현대 건축물을 소개했다. 한국을 대표하는 건축가 김수근이 누나를 위해 마지막으로 설계한 명륜동 주택 ‘고석 공간’도 지난해 오픈하우스서울을 통해 처음 대중에게 공개되었다.

이 글은 '오픈하우스서울 2023 (2)'에서 이어집니다.

소개

김선미
서울 북아현동에서 기획 및 디자인 창작집단 포니테일 크리에이티브를 운영하고 있다. 단행본 <친절한 뉴욕>, <친절한 북유럽>, <취향–디자이너의 흥미로운 물건들>, <베이징 도큐멘트>를 썼으며 한겨레신문, <샘터> 등에서 디자인 칼럼니스트로 활동했다. 현재 1930년대 한국 근대 잡지에 관한 단행본을 집필 중이다.


글 | 사진. 김선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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