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를 위해 마주 앉은 이경선 빅이슈 판매원(이하 빅판)은 말이 별로 없었다. 질문에 단답형으로 짧게 대답하고 마는 그를 보며 이 지면의 ‘분량’을 걱정했다. TV 예능인도 아닌 내가 분량 걱정을 할 줄이야. 스스로 말주변이 없다는 그가 말이 많아지는 때가 있었다. 20년지기 친구 앞이었다. 말이 없는 이경선 빅판을 수다쟁이로 만들던 유일한 사람이 지난해 11월에 세상을 등졌다. 그 친구가 떠난 뒤 그는 빅이슈에 다시 찾아와 빅판을 시작했다. 새로운 마음으로 빨간 조끼를 입고 지하철역 앞에 선 그의 이야기가 지금 시작된다.
이경선 빅이슈 판매원
《빅이슈》 판매를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셨지요? 해보니 어떠세요?
지난해 12월 6일에 빅판을 시작했으니까 지금 한 달 반 정도 됐어요. 꽤 재미있어요. 그동안 사람 만날 일이 별로 없었는데 사람들 만나니 좋네요. 특히 젊은 사람들이 잡지를 많이 사 가는데 그들을 만나는 게 재미있어요. 빅판 하기 전에는 거의 방에만 있었어요. 그러다가 일 있으면 일 나가고 그랬죠.
어떤 일을 하셨는데요?
건설 현장에 일용직으로 나갔었죠. 현장에서 주로 청소를 했는데 먼지를 많이 먹었어요. 일용직 일은 꾸준히 할 수 있는 게 아니에요. 하루 나갔다 오면 여기저기 아파서 며칠 또 못 나가요. 하루 이틀 일하고 나면 또 일이 없고… 그러다 보니 생활 패턴이 깨져요. 생활이 그런 식으로 이어지니 돈이 안 모이는 거예요. 그래서 아직 쪽방을 못 벗어나고 있어요.(웃음)
2016년에 빅판으로 활동하다가 그만두셨지요. 그땐 왜 그만두셨던 거예요?
그때 상수역에서 판매했는데 3개월 정도 했어요. 상수역이어서 독자의 99퍼센트가 젊은 사람들이었어요. 판매지 옆에 가게가 있었는데 그 집 사장님이 거기 서서 《빅이슈》를 팔지 말라고 했대요. 아무래도 자기네 장사하는 데 좋지 않다고 생각했나 봐요. 판매지를 옮겨야 하는 상황이었어요. 그리고 주변에서 하지 말라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때 쪽방촌 사람들 중 빅판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들은 빅판이 동냥한다는 인식을 갖고 있었어요. 그래서 왜 길거리에서 그런 동냥을 하느냐, 그만해라 이런 거였죠. 그런 말을 자꾸 듣다 보니 또 정말 그런가 싶어져서… 그만뒀어요. 지금 생각해보니 가스라이팅이었죠.(웃음)
쪽방에서 사는 건 어떠세요?
많이 불편하죠. 방이 딱 큰 침대 크기예요. 한 평 정도. 이름은 여인숙인데요, 거의 쪽방촌이라고 봐야죠.(웃음) 기초생활수급자, 일용직 노동자 뭐 이런 분들이 주로 사세요. 그런데 거기 일용직으로 일하는 분은 일을 잘 안 나가고 늘 방에 계시더라고요.(웃음) 일 나가는 걸 몇 번 못 봤어요.
고시원은 밥과 김치 정도는 제공되잖아요. 쪽방촌이면 조리 공간이 없을 텐데 식사를 어떻게 하세요?
방에서 밥통에 밥 하고, 라면 정도는 끓여 먹을 수 있어요. 반찬까지 만드는 건 어려워도요. 빅이슈에서 도시락 보내주는 거 먹고, 서울시에서 기초생활수급자한테 하루 한 끼 지원하는 게 있어서 그걸로 식사하고요. 하루에 두 끼만 먹어요. 식사 텀이 기니 배가 고파서 중간에 간식을 조금 먹고요.
옆방 사람들하고는 소통하세요?
각자 생활이 힘드니까 서로 간섭 안 하려고 하죠. 마주치면 인사 정도만 나누지요.
쪽방보다는 고시원이 환경이 좀 더 낫지 않나요?
고시원은 워낙 조심스럽게 다녀야 해서 불편해요. 샤워할 때 물소리 내는 것도 조심스러워요. 쪽방은 문만 닫으면 소음은 그렇게 크지 않은데, 고시원은 다른 방 문 여닫는 소리까지 다 들려요. 숨도 제대로 못 쉬겠더라고요.(웃음) 그래서 전 고시원보다 쪽방이 편해요. 《빅이슈》를 부지런히 팔아서 일단 쪽방에서 벗어나는 게 목표예요. 임대주택에 들어가면 가장 좋긴 한데 그게 어디 쉽게 되겠어요. 일단 《빅이슈》가 하루에 열 권 이상 팔릴 때까지는 쪽방촌에 머물러야 할 것 같아요. 생활비가 부족하니까요.
하루에 열 권이 채 안 팔리는군요. 몇 권 정도 나가요?
판매량이 얼마 안 돼요. 하루에서 평균 다섯 권 정도 팔려요. 하루에 네 시간 정도 서 있는데 그 정도 나가요. 충무로역은 《빅이슈》의 불모지라고 볼 수 있어요. 거기서 《빅이슈》 판매를 안 한 지가 꽤 오래됐어요. 그래서 그 역을 다니는 사람들이 대개 《빅이슈》 자체를 모르시더라고요. 거기 빅판이 왜 서 있는지도 모르시고요. 《빅이슈》를 홍보할 이런저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보는데, 잘 모르겠어요. 제가 말을 잘해서 잘 파는 것도 아니고, 말주변이 없다 보니 더 어려워요.
8년 전 빅판을 그만두실 때 언젠가 빅이슈로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셨어요?
네. 전 그때도 언젠간 다시 《빅이슈》를 팔 거라고 생각했어요. 빅이슈에서는 주거를 우선적으로 해결해주니까요. 일단 판매하겠다고 하면 고시원을 마련해주고 임대주택 입주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도와주잖아요. 그래서 그만두면서도 언젠가는 다시 와서 빅판을 할 거라고 생각했어요. 근데 7년이 걸렸네요.(웃음)
이경선 빅이슈 판매원
왜 이렇게 오래 걸리셨어요?
한동안 《빅이슈》를 잊고 지냈어요. 그러다 두 달 전에 생각이 났어요. 제 가장 친한 친구가 지난해 11월 4일에 죽었어요. 근데 그 친구가 빅판을 못 하게 계속 말렸었거든요. 그 친구가 죽고 나니 다시 빅판을 해보자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 친구도 구세군 지원센터에서 만난 홈리스였어요. 제가 서른 초·중반일 때 만났으니 20년 가까이 친하게 지낸 친구였지요. 제가 유일하게 말을 많이 하던 친구였어요.
가장 친한 친구를 떠나보내서 마음이 많이 아프시겠어요.
그렇죠 뭐….
판매지를 충무로역으로 택한 이유가 있다면요?
저에게 두 가지 선택지가 있었어요. 회사에서는 예전에 판매했던 곳과 가까운 망원역하고 충무로역 두 군데를 추천했는데, 지금 사는 곳과 가까운 충무로역을 택했지요. 지금 서울역 근처에 사니까 다니기가 충무로역이 낫거든요.
충무로역에는 어떤 독자층이 많은가요?
전반적으로 오후 서너 시에는 사람들이 별로 안 다녀요. 주변에 회사가 많은데, 다들 회사 안에 있는 시간인가 봐요. 5시가 넘어야 다니는 사람이 좀 늘고요. 《빅이슈》도 주로 저녁 시간에 나가요.
《빅이슈》 판매를 시작하기 전에 준비해 간 봉지에 쓰레기를 주워 담아 주변을 깨끗하게 하신다고 들었어요.
내가 일하는 장소만 하는 거죠.(웃음) 담배꽁초가 떨어져 있고 하니까 그런 거 좀 치우고 시작해요. 깨끗한 데서 팔아야 저도 좋고요. 사실 저를 위한 일이죠. 내 자리가 밝아지니까. 청소 범위가 자꾸 넓어지고 있기는 해요.(웃음)
판매하면서 언제가 가장 힘드세요?
안 팔리는 시간이 길어질 때, 그때가 제일 힘들죠. 그러다 한 권이라도 팔리면 기분이 좀 풀리고요. 책이 잘 팔리냐 안 팔리냐에 따라 기분이 많이 달라요. 그래서 판매 시간을 좀 조절하려고 해요. 지금 오후 4시부터 10시까지 파는데, 8시 30분 정도까지만 할까 해요. 그 이후에는 거의 안 나가거든요. 안 팔리는 시간이 너무 길어지면 지치니까요. 회사에 얘기해서 판매 시간을 조절해볼까 생각 중이에요.
재도전이어서 더 각별한 각오로 판매에 임하시는 것 같네요.
네, 전에 판매할 때보다 지금이 더 재미있어요. 그때는 하지 말라는 주변 사람이 많았는데, 지금은 그런 사람이 없으니까 더 재밌게 판매하러 나가요. 주변 사람들 얘기가 크게 영향을 주잖아요. 열심히 해서 일단 안정된 주거지를 마련하고 싶어요. 한참 걸릴 것 같긴 해요.(웃음) 주거지가 제대로 딱 확보돼야 뭔가 다른 걸 생각하고 목표로 삼을 여유도 생기겠죠.
먼 길을 돌아 빅이슈로 다시 오신 게 헛된 걸음이 되지 않도록 판매도 잘되고 독자들과도 좋은 관계를 유지하셨으면 좋겠어요.
판매 시작한 지 이제 한 달이 지났는데 단골 독자도 몇 분 생겼어요. 남자분 두 명, 여자분 세 명.(웃음) 매호 신간 나오면 사러 오시는 분이 몇 분 계세요. 정말 감사하지요.
글. 안덕희 | 사진. 김화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