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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319 스페셜

SPECIAL - 왓츠 인 마이 플레이리스트(1)

2024.05.09

점점 많아지는 콘텐츠 바다에서, 우리는 어떻게 자신만의 플레이리스트를 구성하고 알고리즘을 수용하고 있을까? 더 효율적으로, 더 재미있게 시간을 즐기기 위해 콘텐츠를 즐기는 방법도 진화하고 있다. 물론 꼭 재생목록을 만들어야 하는 건 아니다. 스트리밍 서비스와 유튜브, OTT가 추천을 해주니까. 하지만 더 즐겁게 콘텐츠를 즐기기 위해, 우리는 기꺼이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수고를 감수한다. 블록처럼 플레이리스트 커스텀을 하면서 재미를 느끼는 사람들과 취향을 세분화할 때의 즐거움을 체감해보자. 나만의 플레이리스트를 만드는 일들은 내 관점이 담긴 팔레트를 만드는 일이다.



글. 황소연

알고리즘을 엉망으로 망쳐보자
- 유튜브에서 마구잡이 뽑기를 하다


유튜브 플레이리스트에 어느새 취향이 비슷한 콘텐츠가 쌓였다. 추천 영상 역시 내가 좋아하는 스타일의 콘텐츠가 눈에 띈다. 이럴 때 나와 무관하다고 생각하는 영상으로 알고리즘을 망쳐보기로 했다. 뽑기를 하듯 관련 없는 콘텐츠를 재생하며 관심이 돋아나기를 기다렸다.


내가 좋아하는 콘텐츠는 가방이나 화장대를 보여주는 영상, 뭔가를 고치고 수리하는 영상, ASMR, 독서 노트 쓰는 법, 노션(Notion) 서비스 사용법, 아이돌 음악 방송, 게임 OST 모음, 요리 영상 등이다. 알고리즘을 망치기 위해 이것과 관련 없는 키워드를 먼저 추출했다. 등산을 좋아하지 않으니 산과 관련한 영상을 포함할 수 있고, 렌즈 삽입술을 한 터라 더 이상 쓸 일이 없는 안경과 렌즈도 키워드에 넣어야겠다 싶었다. 뇌과학이나 물리학, 수학도 나와 직결되지 않는 분야다. 이외에도 재무제표 보는 법, 체지방을 빨리 줄이는 법까지, 이제껏 관심을 기울이지 않던 영상만 골라 계속 재생해보기로 했다.

마지막 등산을 한 지 10년째, 등산 콘텐츠를 보다
우선 안경과 렌즈, 등산에 관한 영상을 무작정 누르고 몇 개는 끝까지 시청했다. 나에게 맞는 안경 착용법, 적절한 가격에 안경 구매하는 방법, 등산로 안내 등 뽑기 하듯 계속 새로운 영상을 클릭하다가 뜻밖의 유튜버도 발견했다. ‘산행 고글 어떤 걸 사야 하나?’라는 주제의 영상이었다. 산과 안경을 함께 검색한 결과일까? <이원발TV>라는 이름의 이 채널에선 산행 안내와 장비 소개를 주로 하지만, 이 밖에 드라마부터 연극, 영화, 생활, 이벤트까지 일상의 이야기도 방송한다고 한다. 네이버 밴드까지 개설되어 있다. 산행용 고글을 추천하는 영상에서 등산모 위에 고글을 척 얹은 모습이 무척 친숙한 등산객의 모습이라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저도 고글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만, 산행하면서 자주 쓰진 않거든요. 근데 또 없으면 허전해요. 이렇게 모자에 고글을 끼고 다닙니다. 어때요, 괜찮나요? 하하.” 호탕한 웃음이 마음에 들어왔다.
영상 오른쪽 상단에는 또 다른 등산 유튜버의 영상이 보였는데, 20대 여성이 운영하는 <윤또산>이라는 채널이었다. 확실히 등산은 모두의 취미가 되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영상에서도 여름 등산의 필수품이라는 선글라스를 추천한다. 앞서 언급한 영상과 달리 아기자기한 배경음악(유튜버들이 즐겨 사용하는 무료 배경음악인데 굉장히 귀엽다)에 조곤조곤한 말투로 선글라스의 장점을 설명하는데 나름 재미있었다. 계속 보다 보니 등산 고글이 멋있게 느껴졌다.

가장 무서웠던 주제
사실 별로 검색하고 싶지 않은 키워드는 물리학이었다. 무서웠다는 게 더 정확한 표현일 것 같다. 평생 관심을 가질 필요 없고, 나와 다른 세상의 이야기라고 생각한 주제다. 유튜브로 꽤 많은 정보를 접한다고 생각하지만, 이건 달랐다. 스크롤을 내리다 ‘1. 물질의 이중성과 확률 해석’이라는 영상을 재생했다. 지난 2013년 1학기 한양대학교에서 진행한 한양대학교 자연과학대학 물리학과 신상진 교수의 양자역학 강의 첫 시간이었다. “세월이 흘러도 퇴색되지 않을 명강의.”라는 댓글이 눈에 들어왔다. 신 교수는 이렇게 강의를 시작한다. “양자역학이 뭐냐에 대해 우리는 한 줄로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하고, 한 시간에 걸쳐 이야기할 수도 있어야 하고, 한 학기 동안도 이야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과학적 세계관 안에 녹아 있는 인문학적 개괄을 들으며 학문은 참 멋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연관 없어 보이는 키워드가 연결되어 새로운 콘텐츠를 추천해 재미를 주듯, 양자역학 강의가 나와 무관하지 않음을 느꼈다. ‘교수님’은 판서와 동시에 학생들에게 질문을 던지며 강의를 진행했다.

앞으로의 알고리즘
알고리즘 망치기가 목적이긴 하지만, 그럼에도 재생에 거부감이 드는 영상도 많았다. “지금 안 하면 × 되는 거야.”라는 문구가 적힌 썸네일은 주식 투자를 ‘권유’하는 영상이었다. 단기간에 살을 급하게 빼기 위해 필요한 것을 알리는 영상에는 실제로 그 방법을 실행해서 성공했다는 댓글이 다수 있었다. 종종 사이버 레커 영상도 보였다. ‘킹받는’ 걸 넘어서 유튜브 생태계에 이런 영상이 있다는 사실 자체가 불편하고 혼란스러웠다. 알고리즘 뽑기 탐험은 새로운 동네에 놀러 가는 마음으로, 꽤 자주 하게 될 것 같다. 사이버 레커나 과도한 어그로를 끄는 영상 외에도 유튜브에는 생각보다 유익하고 건전한 영상도 많다는 사실은 확실하게 깨달았으니 말이다.

이 글은 "SPECIAL - 왓츠 인 마이 플레이리스트(2)"에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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