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황소연 | 사진. 몰스킨 홈페이지
아날로그 메모와 디지털 메모의 병행은 오랜 기간 나에게 미결 과제였다. 다소 거창해 보이지만 간단하게 말하면 여기저기 쓴 메모가 정리가 안 된다는 뜻이다. 친구들과 모이면 연례행사로 다이어리를 고르듯 ‘종이와 디지털 기록 중 무엇이 더 나은가.’를 토론 주제로 던졌고, 타인의 기록 방식을 새겨들었다. 지류 다이어리에만 기록하는 사람, 노션이나 스티커 메모를 활용하는 사람, 아예 어디에도 기록하지 않는 사람, 스마트폰 메모장만 사용하는 사람 등 그 방식과 볼륨도 참 다양했다. 할 수만 있다면 하나씩 따라 해보고 싶었지만 ‘게으름 이슈’로 그렇게까지는 하지 못했고, 좋은 메모 방법이나 장안에 소문난 일정 관리 및 기록 소프트웨어를 사용하며 적응기를 거쳤다. 그 과정은 너무 어렵다는 투덜거림과 신상 디저트를 처음 먹는 사람처럼 환호성을 동반했다.
올해는 일찍 다이어리를 장만했다. 몰스킨의 클래식 위클리 다이어리 18개월 버전이다. 2024년 7월부터 사용할 수 있는 이 제품을 9월 중순 구매해 사용하고 있다. 연말연시를 맞이하는 일련의 의식이 부담스러워서인지, 새해를 별일 없이 맞이하고 싶었다.(그래도 재쓰비의 ‘너와의 모든 지금’을 1월 1일 0시에 들을 노래로 골라놨다.) 종이 다이어리의 공백기 2년을 거친 뒤의 일이다. 메모를 디지털로 일원화하는 것이 오랜 꿈(?)이었기에 지난 2년간 노션과 아이폰 메모 앱, 일정 앱으로 업무 일정과 글감, 기타 아이디어를 기록해왔는데, 애플 미국 계정과 한국 계정을 동반 사용하다가 실수로 600여 개의 메모 앱 글들이 삭제될 뻔했다. 이후 어떤 기록이든 ‘여벌’이 있어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의식적으로 메모를 여기저기 분산시키고 있다. 종이와 디지털 기기 어디로도 일원화가 안 되는, 뒤죽박죽 메모로의 귀환이다.
기록은 탐험과 비슷하다. 포스트잇 덩굴에 묻힌 메모에서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기도 하고 아무 의미 없어 보이는, 오타가 난무한 메모 앱의 문장은 ‘이걸 왜 썼을까’ 기억을 거슬러보게 한다. 책 사이에, 블로그에, 앱에 흩어진 메모를 기분 좋은 여벌로 여기는 2025년을 맞이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