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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195 이슈

PLAN G

2019.06.05 | 왜 그렇게 사니? 이 미련 곰탱아!

잔혹한 동화 같은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조금 긴 이야기가 될 수도 있겠어요. 몇 년 전, 농장에서 사육하는 곰을 조사 할 때였습니다. 보지 않고서는 도저히 믿을 수 없는 광경을 마주하고, 전 “어떡해, 어떡해” 이 말만 무의식적으로 반복하고 있었습니다.

미로처럼 연결된 좁은 철창 사이, 이끼 낀 더러운 물통이 뒹 굴고 온몸의 털이 듬성듬성 빠진 채 머리를 끊임없이 좌우 로 흔드는 반달가슴곰이 있었습니다. 갓 태어난 새끼는 다 른 곰한테 물려 한쪽 팔을 잃어서 그런지 눈빛에 두려움이 가득합니다. 무슨 이유인지 한쪽 눈을 잃은 곰도 있습니다. 오물이 뒤엉켜 질펀한 우리 바닥에 식당에서 거둬온 잔반을 퍼주는 모습은 모두를 경악하게 했지요. 그마저도 양이 충 분치 않아 인기척만 느껴도 철창을 부술 듯이 흔들고 울부 짖던 거대한 맹수의 모습이 잊히지 않습니다. 흡사 지금 당 장 죽여달라는 절규와도 같았지요. 그렇게 인간 탐욕의 끝을 보았습니다.

이 곰들은 어쩌다가 이 잔인한 생을 살고 있는 것일까요? 37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봅니다. 1981년 정부는 농가 소득 을 올리기 위해 곰을 수입해서 수출용으로 사육하는 것을 허용했습니다. 그러다 국제적으로 멸종 위기 야생동물인 곰 에 대한 보호 여론이 들끓기 시작하자 곰 수입을 중단했지 요. 수출이 불가능해지면서 내놓은 대안이 곰의 쓸개, 곧 웅 담을 취하기 위한 용도로 곰을 기르는 ‘사육 곰’ 제도였습니 다. 사육 곰은 열 살이 되면, 오로지 웅담만을 위해 합법적 인 죽임을 당합니다. 한국은 그렇게 동물권에 대한 고려도, 법에 대한 이해도 없이 궁여지책으로 웅담 채취용 곰 사육 과 도축을 법으로 보장하는 나라, 지구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사육 곰 특별법을 만들어 이 잔인한 운명의 고리를 끊어내 고자 많은 이들이 수년간 노력했지만, 정부의 책임에 대한 명백한 근거가 없다는 이유로, 국회가 곰 몇 마리 때문에 다 른 문제를 등한시할 수 없다는 이유로 번번이 좌초되었습니 다. 법을 바꿔 한꺼번에 구할 수 없다면 살릴 수 있는 곰부 터 구해내자고 목표를 수정해야 했지요. 먼저 농가 사유재 산이라 제대로 관리도 안 되는 사육 곰에 대한 유전자 검사 를 해서 한 마리 한 마리 고유 번호를 부여하고, 더 이상 어 미와 같은 운명으로 태어나는 새끼가 없도록 불임수술도 하 기로 했어요. 그런데 유전자 검사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어 느 농가의 반달가슴곰 한 마리가 한국 토종으로 판명 납니 다. 지리산에서 귀하게 대접받으며 복원 중인 멸종 위기 반 달가슴곰과 같은 종이라는 것이지요. 옳거니! 한 마리라도 기구한 운명에서 구해낼 명분이 생겼습니다. 그 곰을 농가 에서 구입해 지리산으로 보내기 위해 기금을 모았습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기금이 금세 모였어요. 후원자들이 나서서 더 나은 삶을 살라고 ‘보담’이라는 이름도 붙여주었지요.

농가에서 막 데려오기 전, 보담이의 운명은 한 번 더 바뀌고 맙니다. 정밀 유전자 검사 결과, 어미는 한국 토종이지만 아버지가 순수 토종이 아닌 것으로 밝혀져 지리산에서 받을 수 없다고 결정을 뒤집은 것이지요. 아! 다시 이 거대한 맹수 를 보낼 만한 시설을 갖춘 곳을 찾아야 했어요. 전국으로 수 소문했지만 시설 부족을 이유로 모두 거절했습니다. 중국에 있는 곰 보호소로 보내는 방법까지도 궁리했지만 사정이 여 의치 않았지요. 결국 보담이를 구출하기 위해 모은 기금을 돌려드리기로 하고, 후원자들에게 연락을 했습니다. 구출 해내지 못해 정말 죄송하다는 말에 거짓말처럼 한결같은 답 이 돌아왔습니다. 제대로 쓸 것이라 믿고 후원한 것이니 보 담이를 구출해내지 못하더라도 사육 곰을 위한 활동에 써달 라고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어렵게 말을 꺼낸 이도 울 고, 기금을 보탠 이도 같이 울었습니다. 애석하게도 보담이 는 웅담 채취에 볼모가 되어 열 살에 짧은 생을 마감하고 말 았습니다. 바로 그 보담이 목숨 값으로 만든 광고가 아직도 서울 시내 정류장 곳곳에 붙어 있습니다. “왜 그렇게 사니? 이 미련 곰탱아!” 이 광고 메시지는 저를 향한 말인 듯 살려 내지 못한 생명의 무거운 책임으로 남았습니다.

지난 12월, 첫 번째 한파가 닥친 날, 보담이는 아니지만 새 끼 사육 곰 세 마리를 구출했습니다. ‘반이’, ‘달이’, ‘곰이’라 는 이름의 세 마리 새끼 곰을 죽을 운명에서 구해내기까지 무려 37년이 걸린 셈입니다.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보호 시설을 찾고, 3000명 가까운 시민이 기금을 보탰기에 가능 한 일이었어요. 우리가 보담이에게 진 빚을 조금은 갚은 것 이겠지요? 부디 하늘의 보담이가 수호천사가 되어 남은 537 마리의 사육 곰을 지켜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인간의 탐욕 과 무지와 무책임으로부터 한 마리라도 구해낼 수 있게요.

반이, 달이, 곰이는 안전한 보금자리에서 사육사와 수의사 의 보살핌을 받으며 잘 적응하고 있습니다. 태어나 처음 대 하는 사과를 낯설게 바라보다 ‘아그작 아그작’ 맛있게 깨물어 먹는 모습에 모두 눈물 섞인 환호를 보냈지요.

이 잔혹한 동화는 대체 어떻게 끝이 날까요? 새해 첫 번째 소원을 빌어봅니다.

“반이, 달이, 곰이와 사육 곰 친구들은 모두 생을 다할 때까 지 행복하게 살았습니다.”

Writer 윤소영 (녹색연합 상상공작소)
Editor 손유미
Photo Providing 녹색연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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