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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08 이슈

Over the Rainbow

2019.08.22 | 당신의 가족은 누구인가요

어떤 레즈비언 커플 중 한 명이 긴 투병 생활을 했다. 혈연관계의 사람들은 거의 교류가 없었기에, 파트너와 친구들이 책임을 지고 그를 돌봤다. 하지만 그가 사망하자마자 가족들이 찾아와서 모든 장례와 관련된 권리를 다 가져갔고, 파트너와 친구들에게 장지의 위치조차 알려주지 않아 찾아갈 수도 없게 했다. 그의 재산도 모두 가족들 몫이 됐다. 그럼에도 이러한 문제를 공식적으로 항의할 수 있는 권한이 파트너에겐 없었다. 파트너가 실질적인 그의 가족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장례를 치를 수 있는 권리, 상속의 권리는 민법상 가족으로 한정됐기 때문이다.

가족이란 무엇일까? 법이 규정하는 가족은 남녀가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 또 그 아이가 자라 이성과 결혼을 해 아이를 낳고…의 반복일지 몰라도, 실제 가족은 해체되기도 하고 재구성되기도 한다. 법으론 규정할 수 없는 가족의 형태가 늘어나고 있다. 제도 밖에 존재하는 가족의 형태에 대해 ‘가족구성권연구소’의 나영정, 김현경 연구 위원과 이야기를 나눴다.

호주제 폐지 이후의 새로운 가족 제도

가족구성권연구 모임의 시작은 호주제 폐지 후였다. 2005년 가부장제의 근간인 호주제가 사라지면서 2006년부터 대체 법안에 대해 성소수자 단체, 여성 단체, 인권 단체 등 여러 곳에서 논의가 이어졌다. 그간 제도 밖에 있던 한부모 가정, 재혼 가정, 동거 커플, 성소수자 커플 등 다양한 가족의 형태에 대한 문제의식이 대두된 상황. 하지만 “호주제를 폐지하면 가족이 해체되고 국가가 무너질 것이다”라는 막강한 반대 여론 앞에서 다양한 가족 형태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뒷전으로 밀렸다.

국가가 규정하는 ‘정상 가족’, ‘건강 가족’을 축으로 법 개정이 이뤄졌고, 민법으로 가족의 범위를 규정했다. 법이 포섭하고 있는 범위는 한정적이다. 민법상 법적으로 혼인한 배우자와 직계혈족만이 가족이다. 형제・자매와 배우자의 직계혈족은 생계를 같이할 때만 가족으로 규정한다. 우리의 신분을 증명하는 ‘가족관계등록증’을 보면 여전히 개인보다는 가족 단위를 중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호주제 폐지 이후 생긴 이 가족관계등록법은 양성이 평등해지긴 했지만 본인과 배우자, 양친과 자녀의 구성원을 가족이라 칭한다.

건강한 가족이 무엇이길래

2005년 제정된 건강가정기본법엔 이성애를 기반으로 배우자, 출산, 입양을 ‘정상 가족’, ‘건강 가족’으로 구분하고 다른 형태의 가족 구성은 ‘취약 가족’으로 분류한다. 건강 가족은 의학적 개념이 아닌 이념적 개념이다. 건강 가족이 무엇이냐는 반대로 취약 가족을 누구로 규정했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 한부모 가정이나 조손 가정 같은 경우는 취약 가족으로 구분한다. 가족의 형태를 비교하다 보면, 결국 양친이 모두 존재하고, 주로 남성 생계 부양자가 돈을 벌고 여성은 보조를 하면서 양육을 담당하며 아이가 있는 형태를 정상 가족이라 칭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하지만 이러한 가족 형태 중심은 문제를 안고 있다. 연구 위원들은 지금의 법에 따른 “건강 가족은 사람들이 형태를 유지하게 하는 데 애를 쓰게 만든다”고 지적한다. 가정 폭력이나 가정 내 차별 등은 신고를 하거나 이혼을 하고, 떨어져 살아야 행복해질 수 있다. 하지만 법의 지향점이 건강 가족의 구성원이 유지될 수 있도록 대화를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니 가족 내 개인의 인권을 보호받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아무리 화목할지라도 재혼 가정은 취약 가족이고, 어떤 가정은 폭력과 차별이 만연해도 정상 가족으로 분류된다니, 아이러니하다.

가족을 구성할 권리

현 규범의 아이러니는 결국 가족은 무엇인가라는 원초적인 질문으로 돌아간다. 연구 위원들은 가족의 정의에 대해 “오래된 이론이긴 하지만 가족은 명사가 아니라 동사다. 가족 은 법으로 규정하는 구성원이 아니라, 실질적으로 ‘가족 실천’을 하는 이들”이라고 말한다. 가족을 형성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모여서 가족이 되기 위해 돌봄, 양육, 부양 등 어떠한 실천을 하는 상태라는 것이다. 이들은 만약 법적 혼인 관계 를 넘어서 실제로 가족 실천을 하고 있는 사람들이나 생계형 동거를 하고 있는 사람들까지 가족 개념을 넓힌다면 훨씬 더 포용 범위가 다양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결혼이라는 틀을 넘어서 가족의 범위를 생각할 필요가 있다. “국가로부터 인정받는 결혼을 할 수 없다는 건 2등 시민이라는 표지이기도 하다. 나는 다른 이들보다 한 단계 아래구나. 결혼의 의미가 이념적으로 강한 나라일수록, 다른 선택지가 없는 나라일수록 결혼은 정상성을 획득하는 과정이다. 그 때문에 결혼하고 싶어도 할 수 없는 나는 누구인가? 그렇게 느끼는 사람들이 생겨난다.” 기혼자, 미혼자, 비혼자 모두가 각자의 방식으로 가족 실천을 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아야 한다. 어떠한 가족을 만들 것인가, 누구를 선택할 것인가, 본인이 무엇을 원하고 중요한 관계를 어떻게 가꾸고 있는가가 중요하다.

가족을 선택할 권리, 즉 ‘가족구성권’은 1948년 채택된 UN 세계인권선언에 포함된 개념이다. “성인이 된 남녀는 인종이나 국적, 종교에 따른 어떠한 제약도 받지 않고, 결혼할 수 있는 권리 그리고 가족을 구성할 권리가 있다.” 이성 간 관계로 규정하긴 했지만, 당시는 인종 간 결혼이 불법이었으므로 상당히 진보적인 선언이었다. 가족구성권은 많은 사람의 투쟁으로 얻어낸 권리였다. 우리나라도 동성동본 간 결혼이나 호주제 폐지 등 투쟁의 역사가 존재하고 지금도 성 소수자 커플, 동거 커플 등의 투쟁이 진행 중이다. “가족 실천을 기꺼이 하고 있는 사람들을 가족으로 인정해달라. 혹은 최소한 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있었으면 좋겠다” 는 목소리가 높아진 지금, 이는 생활동반자법의 요구로 이어지고 있다.

생활동반자법과 차별금지법

연구 위원들은 차별금지법과 생활동반자법은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라고 말한다. 가족생활에 있어 차별을 받는 건 대부분 가족 구성원 때문이다. 구성원 안에 장애인이 있다거 나, 다문화 가정이라거나, 성소수자 자녀가 있다거나, 한부모 형태거나, 혼자이거나. 이런 가족을 향한 배제와 차별 은 일상적으로 행해지고 있다. “정상 가족이 아니라는 이유로 차별받았기 때문에 생활동반자법에 대한 요구가 생겨났다.” 생활동반자법이 생기더라도 모두를 포용할 순 없다. 생활동반자법으로 관계를 맺었다가 풀 수도 있고, 결혼을 했다가 이혼할 수도 있고, 동반자가 없을 수도 있다. 1인 가구를 추구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그 사람은 차별금지법으로 보호받아야 한다는 것이다. 어떠한 가족 구성원이든 차별받지 않는 차별금지법과 주거 정책, 의료 결정권, 공동으로 형성한 재산권 등을 보장받을 수 있는 생활동반자법을 제정해야 한다.

특히 현재의 한국 가족 정책은 ‘출산’과 ‘재생산’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출산이 가능한 생산적인 가족과 그렇지 않은 비생산적인 가족을 국가가 나서서 차별하고 있다. 사회가 규정하는 생산적인 인구는 이성애자와 비장애인이다. 이런 관점에서 성소수자는 출산을 할 수 없는 비생산적 가족이기 때문에 생활동반자법이 생기더라도 차별금지법이 없는 한 건강 가족과 비교되어 차별받을 수밖에 없다.

이러한 법 제정이 필요한 건 현재 위기의 순간에 이들의 관계를 보호할 수 있는 장치가 없기 때문이다. 사회보험 안에서 어디까지 사회적 자원을 분배할 수 있을까. 법이 규정한 가족 중심으로 분배가 이뤄지고 있기 때문에, 다양한 형태 의 동거 관계나 인척 등의 비혈연 관계처럼 포섭되지 못하는 이들도 있다. 제도 밖 가족의 형태에서 가족 실천을 하던 사람 중 한 명이 아프거나 사망했을 때 문제는 심각해진다. 최근엔 무연고사 이슈가 늘어나고 있다. 모든 혈연관계가 없고 사실혼 관계에 있는 사람만이 유일하게 몇 년간 곁에 있었건만, 현실은 법이 규정한 가족 관계가 아니기에 무연고 처리를 해야만 한다. 일본이나 대만 같은 경우는 의료나 장례 결정자를 가족뿐만 아니라 중요한 관계자로까지 넓히고 있다.

연구 위원들은 현재의 가족 정책이 너무나 고립되어 있다고 말한다. “고용, 주거, 돌봄, 의료 등 모든 분야가 다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가족의 위기를 해결하려면 다른 사회적 정책과 연동해야만 한다. 여기에 인권과 성 평등의 관점을 배제한다면 앞으로 더 나아갈 수 없다.” 예를 들어 건강가정 지원센터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은 ‘건강 가정 상담 지원, 예비부부 교실, 아버지 교실, 남성 돌봄 사업’ 등이다. 철저한 이성애 중심과 성차별적 명칭이다. 이를 양육자 교실, 동반자 교실, 1인 가구 네트워크 교실 등 모두를 아우를 수 있 는 프로그램으로 바꾸는 것부터 시작해야 한다고 연구 위원들은 지적한다.

가족구성권에 대해 질문을 던지고 제도를 바꾸려 하는 건 가족을 해체하고자 함이 아니다. 개개인이 맺는 다양한 가족의 관계를 인정하고 차별하지 말자는 것이다. 시대의 변화에 발맞춰 자기가 선택하고 만들어갈 가족을 어떻게 대할 것인지, 어떻게 가족 실천을 행할 것인지 미리 고민하고 준비해야 할 때다.

Editor 문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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