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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4 에세이

내가 바라는 검찰개혁

2019.11.12 | 모두가 원하는 게 다르다

검찰개혁은 교육개혁과 닮은 면이 있다. 다들 한국 교육은 문제가 심각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어디를 어떻게 고쳐야 하느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답이 다르다. 누군가는 학벌주의가 가장 큰 문제라며, 대학서열화 체제를 깨야 한다고 한다. 입시 경쟁이 중등교육을 너무 짓누르기 때문이다. 또 누군가는 직업 간 격차가 여전하면, 학벌주의를 깬다고 크게 달라질 일은 없다고 한다. 경쟁의 총량이 그대로라면, 대학 간판을 향한 경쟁이 줄어든 만큼 다른 경쟁이 더 격화된다는 게다. 예컨대 유명 대학에 다닌다는 안도감에 젖어 취업 준비 대신 다른 활동에 시간을 쏟던 부류까지 취업 경쟁에 골몰하게 된다는 설명이다. 정신노동을 육체노동보다 위에 두는 문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고용 안정성 격차, '사'로 끝나는 직업에 대한 지나친 쏠림 등을 함께 바꿔야 한다고 한다.

1.
모두가 원하는 게 다르다

다른 이야기를 하는 이들도 많다. 이른바 4차 산업혁명 시대가 임박했는데, 지금의 교육과정은 너무 낡았다고 한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우는 내용 자체가 확 바뀌어야 한다고도 한다. 수학과 과학이 앞으로는 더 중요해질텐데, 교육과정에선 내용이 계속 줄었다고 개탄하는 이들도 많다.

위에 열거한 많은 주장들은 성격이 제각각이지만 교육개혁이라는, 같은 구호를 지지하는 목소리 안에 뭉뚱그려져 있다. 막상 개혁이 진행되면, 이런 차이는 적대가 된다. 누군가에겐 개혁 방향인데, 누군가에겐 퇴행이다. 누군가는 학교에서 수학을 너무 적게 가르쳐서 문제라고 하는데, 다른 누군가는 과학자나 공학자, 경제학자가 될 마음이 없는 학생에게도 왜 수학을 가르치느냐고 한다.

검찰개혁을 외치는 목소리 안에서도 비슷한 풍경이 담겼다. 누군가는 검찰이 정권에 휘둘렸던 게 문제이므로, 독립성을 강화하는 개혁이 필요하다고 한다. 다른 누군가는 검찰 자체가 수구 기득권 세력이므로, 이를 깨는 개혁이 절실하다고 한다. 모두 검찰개혁을 외치지만, 속내는 많이 다르다.

정답을 누가 알겠나. 교육과 마찬가지로, 검찰의 잘못에 대해서도 사람마다 예민하게 느끼는 대목이 다른 뿐이다. '이것이야말로, 진짜 개혁'이라고

섣불리 이야기하기보다, 자기가 절실하게 느낀 문제를 솔직하게 털어놓는 게 출발점이라고 본다. 물론, 자기 경험을 일반화하려 해선 안 된다. 내 경험은 그저 내 경험일 뿐이다.

내 이야기를 하겠다. 나 역시 검찰을 개혁해야 한다고 믿는다. 내가 느낀 문제는 검찰의 재벌 편항이다. 많이 바뀌었다곤 하나, 여전히 검찰은 부유층의 경제 범죄에 관대하다. 검찰을 비하하는 용어, 이른바 '떡값검사' 역시 삼성이 검찰에 뿌린 돈에서 비롯됐다. 내 입장에선 이런 병폐를 고치는 게 검찰개혁이다. 검찰이 재별과 부유층에 관대했던 과거를 외면한다면, 어떤 것도 개혁이 아니다.

2.
< 삼성을 생각한다 > 가 나오기까지

약 10년 전, 나는 책 출간을 위해 온갖 출판사들을 전전했었다. < 삼성을 생각한다 >라는 책이다. 2009년 말에 김용철 변호사로부터 만나자는 연락이 왔다. 얼마 뒤인 2009년 초에 그를 만났다. 그는 책을 내고 싶다며, 준비해온 원고 파일을 건넸다. 김 변호사가 후배 변호사와 함께 정리한 글이었다. 검사 시절, 삼성 근무 시절의 경험이 담겼다.
다만 책 한 권이 되기엔 내용이 적었다. 다음 날 내가 김 변호사에게 연락했다. 책 내는 일을 돕겠다고 했다. 회사의 허락을 받은 뒤, 그가 있는 곳으로 출퇴근 했다. 그와 대화한 내용을 정리하고, 사실관계가 불분명한 내용은 내가 다시 확인했다. 도입부와 마무리는 내가 새로 써넣었다.
이렇게 원고를 완성했다.

이런 과정은 < 삼성을 생각한다 > 머리말에서 언급했다. < 프레시안 > 기사로도 공개했다. 문제는 출간이었다. 당초 약속이 돼 있던 출판사가 갑자기 말을 바꿨다. 이런 일이 반복됐다.
대놓고 "삼성이 보복하면 어떡하느냐."라는 경우도 있었다. 한참 헤맨 끝에 운 좋게 책을 내겠다는 곳을 찾았고, 책은 나오자마자 베스트셀러가 됐다. 15만 부 넘게 팔렸다. 그래도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의 매체가 책 소개 기사를 내지 않았다. 그건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 광고 게재까지 거절했다. 당시 편집자에 따르면, 출판사 측은 홍보를 위해 중앙일간지 다섯 곳에 전면광고 지면을 잡아놓았다. 그런데 막상 광고일이 되자 신문사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광고를 거부했다.

두려움 때문이다. 깡패가 제일 무서운 순간은, 평소처럼 건들거릴 때가 아니다. 누군가 대들었는데, 잔인하게 때려눕힌 직후다.
< 삼성을 생각한다 >를 낼 무렵이 그랬다고 본다. 2008년 10월 김 변호사가 양심고백을 했을 때만 해도,
언론의 취재 열기는 뜨거웠다. 하지만 이후 특검이 구성되고 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분위기가 달라졌다. 특검은 노골적인 봐주기 수사를 했다. 그간 제기된 온갖 비리의혹을 덮어버렸다. 법원 역시 비슷한 판결을 했다. 삼성 권력에 대한 도전은 무참하게 박살났다. 그러니까 두려움이 공기처럼 펴졌다.
삼성 비리에 대한 문제제기는 해봤자 소용없는 짓이라고 여겼다. 잇따른 출간 거절은 그 때문이라고 본다.

다행히 < 삼성을 생각한다 >가 나온 뒤엔 상황이 바뀌었다. 나나 김 변호사 모두 별일 없이 잘 산다. 보복 따위 당하지 않았다. 이 책을 낸 출판사는 돈도 많이 벌었다. 이런 사실이 알려지니까, 사회 전체를 주술처럼 옥죄던 두려움이 사라졌다. 보수 매체조차 삼성 비판 기사를 냈다. 정치권에선 '경제 민주화'가 의제로 떠올랐다. 이후 역사는 다들 아는 대로다.
적어도 이 점에 관한 한 나는 자부심이 있다. '퍼스트 펭귄'역할을 헀다.
먹이를 찾아 몰려가던 펭귄들은 바닷가 앞에서 일제히 멈춘다. 그러다 펭귄 한 마리가 먼저 뛰어들고, 그가 안전하다는 것을 본 뒤에야 우르르 뛰어든다.

원고를 들고 출판사를 알아보던 10년 전이 생각난다. 수사기관과 법원이 범죄를 벌하지 않은 대가는 흔히 상상하는 수준 이상이다. 그저 정의가 실현되지 않았다는 차원이 아니다. 법을 초월한 존재가 있다는 두려움을 심는다. 이는 다시 법 위에 군림하는 자의 권력을 키우다. 악순환이다.
내가 생각하는 검찰개혁의 목표는, 이런 고리가 아예 생기지 않게끔 하는 것이다. 돈과 인맥, 지식이 많은 이들의 죄에 대해서도 정의가 실현되게끔 하는 방향이다. 아울러 법을 다루는 이들이 돈과 인맥의 영향에서 벗어나게끔 하는 방향이다. 삼성에서 떡값 받는 검찰이라는 표현은 더 듣고 싶지 않다.

성현석
언론인. 16년 남짓 기사를 썼습니다. 앞으로는 다른 글을 써보려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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