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창기 유튜브 크리에이터들은 '유튜버'라는 공통적인 이름 아래 거의 모든 유형의 영상을 다 만들었지만, 곧 유튜브 영상에도 장르가 생겼고 한 장르에 특화된 유튜버들의 인기가 부상했다. 이 때 다수 등장한 vlog브이로그는 video와 blog를 합친 말로, 주로 그들이 직접 크리에이터들의 일상을 녹화한 영상을 일컫는다. 한때 새로웠지만 이제는 뻔하고 지루하다고 여겨지는 브이로그 장르에 최근 새로운 물결이 일고 있다. 여기 소개할 세 유튜버들은 유튜브가 크리에터들에게 강요한 수익 구조와 검열에서 벗어나 형식적으로, 그리고 내용적으로 기성 브이로그와 차별을 두고 있는 '누벨 브이로그'를 만들고 있다.
JOSH OVALLE
조쉬 오바예
조쉬 오바예의 영상은 업로드 스케줄이 정해져 있지 않고, 길이는 1분에서 8분 내외를 오가며, 내용은 썸네일이나 제목으로 전혀 가늠이 안 된다. 게다가 시간순대로 전개되지도 않고 현실세계와 가상세계를 끊임없이 왕복한다. 원래 브이로그는 현실세계의 일상, '비하인드 더 신'을 보여주는 것으로 시작했기 때문에 하루 일과를 순차적이고 진솔하게 보여주는 것이 원칙이다. 하지만 곧 브이로거vlogger들도 다른 유튜버들과 함께 조회수와 수익을 높이기 위해 자극적이고 과장된, 심지어 만들어진 이야기를 하기 시작했고, 진솔함은 증발해버린 지 오래다.
현재 많은 브이로그는 창작자가 보여주고 싶은 것만 보여주고 어린 시청자는 브이로그 형태로 포장된 거짓 이야기를 '진실'로 받아들이는 지경에 이르렀다. 이런 모순 현상을 아주 어린 나이 때 부터 지켜봐온 98년생 조쉬 오바예는 중학생 시절부터 영상을 만들기 시작하여 스물한 살이 된 현재, 현실과 가상을 오가는 줄 타기의 달인이 되었다.
그의 영상에는 < 기묘한 이야기 > 시리즈의 핀 울프하드를 비롯한 다른 친구들 네다섯 명이 고정 출연하지만, 매번 그들의 '캐릭터'가 다르기 때문에 이들이 하는 행동이 연기인지 실제인지 알 수 없다. 이게 무슨 상황인지 카메라를 들고 있는 사람, 즉 조쉬가 개입해서 설명해주지도 않기 때문에 시청자는 영상 내내 이게 진짜인지 가짜인지 고민해야 한다. 하지만 결국 여느 브이로그처럼 끝나도 별 다를 것이 없기 때문에 이 영상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감별하는 것은 사실 의미 없는 일이다.
조쉬 오바예의 영상은 소셜 미디어 시대에 진실과 거짓의 차이는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크지 않고, 어쩌면 그것을 구분하려는 노력이 헛된 것일 수도 있다고 암시한다. 조쉬의 영상은 소셜 미디어와 함께 자란 세대의 시선으로 그것을 어떻게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는지 보여준다.
DAVID DOBRIK
데이비드 도브릭
데이비드 도브릭은 모든 영상을 10분 이상이 아닌 4분 20초 길이로 제작한다. 하지만 데이비드가 조쉬와 다른 점은 자극적인 제목과 썸네일로 뷰어를 낚는 것, 즉 낚시질clickbait을 서슴 없이 한다는 것이고, 보통 크리에이터라면 숨기려 했을 낚시질의 명백한 의도까지 영상에서 노골적으로 밝힌다. 그의 영상 중 조회수가 가장 높은 'WE HAD TO GO TO THE EMERGENCY ROOM!!응급실에 가다!!'에서 친구들과 와인 병을 던지면서 놀다가 데이비드의 손이 크게 베였을 때, 피가 철철 나는데도 데이비드는 썸네일을 뽑자고 친구들에게 말한다. 다친 데이비드를 둘러싼 친구들이 과장된 표정을 짓는 흉내를 내고 직후 응급실로 가긴 하지만, 이 상황의 어이없음은 브이로그가 끝날 때까지 계속 언급된다. 데이비드와 친구들은 자신들을 비롯한 나이가 어린 크리에이터들이 종종 보여주는 무모함이 사실상 얼마나 터무니없는 일인지 너무나 잘 인식하고 있기에 말 그대로 자학개그를 하는 것이다.
데이비드의 대표 굿즈의 슬로건도 'clickbait'이다. 이렇게 온라인 크리에이터로서의 자의식을 갖고 자신의 영향을 메타적으로 인지한다는 것을 과시하는 모습은 이들이 과거 초창기 유튜버들과 구분되는 점이다. 데이비드 특유의 카리스마 또한 그를 독보적 위치에 올려놓는 데 보탰다. 좋은 카리스마란 주변 사람들을 제압하는 것이 아닌 모두를 최고 상태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데이비드는 자신을 모든 영상의 주인공으로 만드는 대신 늘 주변 친구들과의 조화로운 분위기를 조성하려 한다. 이들의 찰떡같은 티키타카를 4분 20초라는 짧은 시간 안에 꾹꾹 눌러 담아 만든 영상은 정말 쉴 틈 없이 재밌다.
비단 유튜브뿐만 아니라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통틀어서 찾기 힘든 리더십의 소유자 데이비드 도브릭은 이미 유튜브 바깥의 할리우드 예능계에서도 이름을 알리고 있다. 그의 궁극적 목표는 <레이트 나잇> 토크쇼 진행자가 되는 것이라고 한다. 유튜브를 언젠가 그만둘 것이라는 말이니 아쉽긴 하지만, 다른 소셜 미디어 플랫폼에서 시작하여 그곳에서 얻은 인기를 유튜브로 가져와, 한동안 생기를 잃었던 유튜브에 전에 없던 에너지를 불어넣고 브이로그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데이비드 도브릭은 다른 플랫폼에서도 빛날 것으로 예상된다.
SHANE DAWSON
셰인 도슨
11년차 오리지널 유튜버 셰인 도슨에게 '새롭다'라는 수식어가 어색하긴 하지만, 최근 영상 스타일이 눈에 띄게 달라지면서 그는 현재 유튜브에서 가장 주목받고 있는 크리에이터가 되었다. 2017년 초반까지 10분 내외의 간단한 영상을 만들던 셰인은 그 해 하반기부터 유튜브 커뮤니티가 주목하는 이슈를 다루는 회차 당 30분가량의 다큐 시리즈물을 제작하기 시작했다. 당시 논란의 중심에 있던 다른 유튜버들을 아주 가까이, 입체적으로 다룬 셰인의 다큐 시리즈는 심지어 그의 구독자가 아닌 사람들의 관심까지도 불러 모았다. 특히 뷰티 유튜버 제프리 스타Jeffree Star가 출연한 다큐 시리즈는 최고 조회수가 약 4500만에 달했다.2019년 10월 20일 기준
셰인의 다큐 시리즈는 소셜 미디어의 '동시성'을 강력히 활용해 뷰어들의 피드백을 다음 회차에 바로 반영하는 식으로 제작됐다. 즉, TV나 할리우드보다 더 유연한 프로덕션 팀과 스케줄로 사람들이 '지금 당장' 관심 있어 하는 주제를 다룬 콘텐츠를 시기적절하게 내놓은 것이다. 셰인이 10년 이상의 경력으로 쌓아온 신뢰와 영향력 또한 그의 다큐 시리즈를 차별화한다. 다른 사람이라면 접근도 못했을 각종 루머의 중심에 있는 인물을 인터뷰할 때, 세인이 그들에게 부드럽게 다가가 먼저 이해하려는 모습이 많은 이들에게 충격이었다. 이는 단죄가 팽배한 인터넷 공간에서 보기 드문 광경이었고, 셰인은 폭발적 조회수뿐만 아니라 커뮤니티의 애정까지 얻어 유튜브의 비공식 왕좌에 오르게 됐다.
셰인 도슨은 이제 회차당 약 1시간에서 1시간 40분가량의 영화의 러닝타임에 가까운 시리즈를 제작하고 있다. 평균 2천만 조회 수를 기록하는 그의 다큐멘터리는 현재 북미에서 TV를 통틀어 사람들이 가장 기대하고 있는 시리즈물 중 하나다.<브레이킹 배드> 시즌5 피날레의 시청률이 천만이었다. 유튜브가 그렇게 바라던 유료 서비스 '유튜브 오리지널'의 성공은 아이러니하게도 '오리지널 유튜버'에 의해 무료로 실현됐다. 셰인 도슨의 다큐 시리즈는 브이로그 형식의 영사이 어디까지 갈 수 있는지 보여준 증명이자, 크리에이터가 독립적으로 제작한 영상이 거대 프로덕션 기업이 제작한 콘텐츠의 진지한 경쟁자가 되었음을 알리는 신호탄이다.
글·사진제공 문재연
문재연
영화 팟캐스트 '씨네는맞고21은틀리다'에서 수다를
떠는 것으로 모자라 브런치와 왓챠에서 puppysizedelephant라는
이름으로 활동 중이다.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