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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15 컬쳐

영화 '윤희에게', '심판'

2019.11.28 | 지금 주목할 만한 문화 콘텐츠

MOVIE

윤희에게
감독 임대형 출연 김희애, 김소혜, 성유빈, 나카무라 유코
등급 12세 이상 관람가 개봉 11월 14일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밝은 성격의 새봄은 우편함에서 엄마에게 온 편지 한 통을 발견한다. 친구도 없고 가족과 왕래도 끊고 사는 엄마 윤희에게 일본에서 날아온 편지가 신기해 봉투를 열어본 새봄은 엄마에게 남모르는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이혼 후 딸과 단둘이 살며 구내식당에서 일하는 윤희는 삶에 희로애락이 없는 중년 여성이다. 특별히 즐거운 일도 취미도 없이 무표정하게 삶을 버티듯 살고 있는 윤희에게 딸 새봄은 "엄마 어릴 때 인기 많았다며? 연애 안 해봤어?" 등등의 질문을 해보지만 엄마는 여느 때처럼 아무 대답도 해주지 않는다. '윤희에게, 잘 지내니···'로 시작하는 편지는 윤희의 고등학교 친구이자 지금은 일본에 살고 있는 쥰에게서 온 것이고 새봄은 엄마와 쥰이 과거 특별한 사이였다는 것을 짐작한다. 새봄은 윤희에게 '일본으로 여행가자.'고 조르며 편지를 몰래 제자리에 갖다 놓고, 윤희는 20여 년 만에 옛 친구에게서 온 편지를 보고 처음으로 얼굴에 복잡한 표정을 담는다. 그리워하고 아파하고 고민하는 윤희의 표정은 과거 쥰과 윤희가 단순한 친구 사이가 아니었음을 은연 드러낸다. 하던 일까지 그만두고 난생처음 용기를 내 일본 오타루로 여행을 간 윤희는 하얀 설경 속에서 먼 옛날 자신이 버렸던 첫사랑의 기억을 더듬는다. 새봄은 망설이며 쥰의 집 주변만 맴도는 엄마를 응원하며, 윤희와 쥰을 만나게 해줄 계획을 세운다.


<윤희에게>는 자신을 속이고 내가 아닌 다른 무엇으로 살아야 했던 여성이 세월이 흘러 용기를 내 원래의 나를 찾아가는 과정을 그린 영화다. 첫사랑을 찾아가는 윤희의 여정에는 자기 정체성이 담겨 있으며 그런 여성의 등을 두드리고 응원해주는 것은 딸 새봄이다. 올해 부산국제영화제의 폐막작으로 선정된 후 여성이 주축이 된 은은하고 따뜻한 이야기로 호평받았다. 한국에서 만나기 어려운 중년 여성의 서사에 퀴어 소재를 다룬 영화지만, <윤희에게>에서 중요한 것은 윤희와 쥰의 만남이 아니라 윤희가 자신을 찾아 나서는 과정이다. 10대 시절, 자신을 솔직하게 드러냈다는 이유로 가족의 억압 속에서 20년을 살아야 했던 윤희라는 여성은 한국 사회의 다수 여자들의 얼굴을 닮아 있다. 딸이라는 이유로 학업을 포기당하고, 꿈도 버려야 했던 윤희의 얼굴에서는 오직 피로만이 느껴진다. 기쁨도 슬픔도 느끼지 못하고 스스로를 벌주며 삶을 버텨냈던 여성이 '새로운 봄'이라는 이름을 가진 딸의 응원 속에서 먼 나라에서 처음으로 자유를 만끽한다. 설경에서 바람을 느끼고 부치지 못할 편지를 마음으로 쓰는 윤희의 로드무비가 애틋하게 이어진다.<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임대형 감독의 두 번째 장편영화다.

심판
감독 파티아킨 출연 다이엔 크루거, 너맨 아카, 데니스 모스치토
등급 15세 관람가 개봉 11월 14일

터키계 쿠르드인 남편 누리와 결혼해 아들 로코를 낳고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던 카티아는 여느 때처럼 남편과 아이를 데리러 남편의 사무실로 간다. 그러나 거기서 그녀가 마주한 것은 참혹한 테러 현장의 자욱한 연기. 의문의 폭발이 남편의 사무실 앞에서 일어나고 카티아는 한순간에 가족을 잃게 된다. 카티아는 절망 속에서도 범인을 잡기 위해 경찰 조사에 성실히 임하고, 자신이 사무실 앞에서 목격한 사람들의 인상착의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한다. 그러나 경찰관은 과거 마약 판매로 복역했던 남편의 이력을 문제 삼으로 남편 누리가 범죄 집단과 손을 잡아 표적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의심한다. 피해자인 남편을 폄훼하는 경찰과 언론에 분노한 카티아는 인종차별로 인한 테러를 주장하며 테러의 배후에 나치 신봉자 집단을 지목한다. 무능력한 경찰은 사건의 실체에 다가서기보다는 결혼 전 남편의 과거만을 캐내고, 시부모는 이미 충분히 절망적인 카티아에게 "네가 로코를 데리고 있었으면 아이는 죽이 않았을 거"라고 가슴을 후벼 파는 발언을 일삼는다. 카티아의 어머니와 동생은 그녀를 위로하지만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절망 앞에서 카티아는 누구의 말도 듣고 싶지 않다. 가족을 따라 죽기를 계획한 카티아에게 "당신 말대로 나치가 범인이었다. 범인이 잡혔으니 내일 경찰서로 오라"는 경찰의 전화가 걸려온다. 범인들은 나치를 신봉하는 독일인 부부로 사제폭탄을 만들어 이민자만을 노린 것. 카티아는 범인들을 법으로 심판하기 위해 냉정을 가장하고 증인대 앞에 선다.

<미치고 싶을 때>(2004)로 제54회 베를린국제영화제 황금곰상을 수상한 파티 아킨 감독의 <심판>은 독일에서 쿠르드인을 상대로 일어났던 실제 테러 범죄를 모티브로 했다. 독일 내에서는 여전히 독일 순혈만을 신봉하는 네오나치 집단이 활동하고 있고, 2000년대 초반 네오나치가 이민자들을 살해하는 범죄가 일어났다. 이민자를 배척하는 분위기가 더 심각해진 2019년의 유럽 사회에서 감독은 인종차별로 가족을 잃은 피해자 가족의 절망과 분노를 터질 듯한 긴장감 속에서 그려냈다. 감독 역시 이민자의 자녀로 독일에서 자란 경험이 반영됐으며, 무능력한 경찰과 허술한 법 제도에 대해서도 사실적으로 그러졌다. 메시지도 훌륭한 영화지만 무엇보다 주의 깊게 봐야 할 것은 갑자기 가족을 잃은 카티아를 연기한 다이앤 크루거의 연기다. 아이를 잃은 엄마의 슬픔과 복수하고 싶은 여성의 분노를, 다이앤 크루거는 한껏 응축시키며 긴장을 도모했다가 예상치 못한 장면에서 쏟아내는 식으로 연기했다. 타오르는 불꽃의 심지처럼 뜨거운 파란색을 띠는 연기는 관객까지 슬픔에 전이되게 만든다. 다이앤 크루거는 이 영화로 제70회 칸 국제영화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김송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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