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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0 컬쳐

슬로 라이프 서점 나이롱

2020.02.13 | 제주 삼양동에 위치한 동네 책방

제주 삼양동에 위치한 동네 책방 나이롱에 들른 건 순전히 이름에 끌려서였다. 제주 출장길, 짧은 자유 시간을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던 중 '나이롱'이라는 이름이 눈에 띄었다. 매일 아침 '출근하기 실어증'을 앓으며 나이롱 환자가 될 것인가 말 것인가로 고민하는 직장인을 홀리는 이름이었다. 큼지막한 글자로 '책'이라고 쓰여 있는 나무 입간판 역시 대담해 보였다.

삼양 검은모래 해변으로 알려진 삼양리는 사실 관광지보다는 사람 사는 동네의 분위기에 가깝다. 작은 상점과 다가구 주택이 뒤섞인 풍경이 골목길을 따라 이어지고, 오래된 벽돌 건물 1층에 나이롱이 보인다. 미닫이문을 열고 들어가면 오후의 나른한 공기로 가득한 서고가 모습을 드러낸다. 대중없이 쌓아둔 것처럼 보이지만 '먹고사는 생활', '온 가족 그림책', '아는 만큼 보이고, 보이는 만큼 느끼는 페미니즘 이야기'와 같은 주제로 세심하게 분류된 책들이다.


작은 책방에 오래 머무를 이유
나이롱에는 주인이 직접 읽고 추천하는 책만 입고되는데 그 목록을 살펴보는 것만으로도 책방 주인의 취향을 엿볼 수 있다. 진열된 책에는 짧은 독서 후기와 추천 코멘트가 첨부되어 있다. 대형 서점보다 작은 동네 책방에 더 오랜 시간 머무르는 이유다.

나이롱은 작은 북카페도 겸하고 있다. 아메리카노와 라떼 외에도 유기농 보리차와 밀크티, 아쌈, 얼그레이 등 티 종류도 제법 다양하다.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구입한 책을 읽어볼 수 있도록 창가에는 크고 작은 테이블도 마련되어 있다.

책과 커피를 계산하며 책방 주인과 짧은 대화를 나눴다. 배낭 디자이너였던 그녀가 도시에서의 숨 가빴던 삶을 정리한 뒤 좋아하는 곳에서 좋아하는 일을 하기 위해 시작한 일이 바로 작은 동네 책방이었다. 미니멀리스트의 삶을 선택하며 이것저것 버리고 나니 남은 게 책뿐이었다고. 책방의 콘셉트 역시 '슬로 라이프'다. '어찌 나', '이로울 이', '희롱할 롱'의 한자로 이로운 장난이란 뜻을 붙이긴 했지만,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꾀병을 뜻하는 단어의 의미도 담겨 있다. 작은 일탈을 꿈꾸는 공간. 그래서인지 소소한 삶에 대한 격려와 위로를 건네는 책들이 주를 이룬다.


나이롱 환자가 될 수 있다면
동네 사랑방처럼 한 달에 네 번 작은 모임이 열리기도 한다. 미술 전공자와 그림 도구를 한 번도 만져본 적 없는 비전공자들이 한자리에 모여 그림을 그리고 이야기를 나누는 자리다. 선생님이 따로 있진 않지만 서로의 응원을 자양분 삼아 그림을 완성해나간다.

마치 이불 속에 누워 있는 평일 오후와 같은 분위기랄까. 한 사람의 취향으로 온전히 채워진 나이롱은 매일 꾀병과 출근 사이에서 갈등하는 직장인이라면 한 번쯤 꿈꿔봤을 공간이다. 골라든 책은 프리랜서의 애환을 주제로 한 에세이집이었다. 서울로 돌아가는 비행기 안에서 마음을 다독일 요량이었지만 다음엔 진짜 나이롱 환자가 되어 이곳을 다시 찾을지도 모를 일이다.

동네 책방 나이롱은 매주 수요일을 제외한 오후 12시쯤 문을 열고 저녁 6시쯤 문을 닫는다. 혹시나 헛걸음을 하는 손님들이 없도록 매일 SNS를 통해 운영 시간과 휴무 여부를 공지하고 있으니 방문 계획이 있다면 미리 참고하자.


주소
제주 제주시 선사로2길 37 1층
운영시간
12:00~18:00
인스타그램
@nylong.bookshop


글・사진 양여주
인생이 지루할 땐 모든 걸 내려놓고 이곳저곳을 떠도는 프로 방황러.
현재는 여기어때에서 전국을 떠돌며
좋은 숙소들을 발굴해 소개하는 여행 에디터로 일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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