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가 태어나 200일을 갓 넘겼을 무렵, 나는 아이를 데리고 중동으로 왔다. 물론 서울 마포구 중동이 아니고 200일 기념 여행은 더더욱 아니었다. 아시아 남서부의 아랍 지역을 일컫는 중동, 그중 아라비아 반도에 있는 '카타르'에서 3개월째 지내고 있다.
남편이 3년 전 이곳으로 파견을 오면서 나도 매년 방문해 몇 달씩 지내기도 했고 자연스레 중동, 아니 이슬람 국가에 대한 문화적 이질감과 부정적인 선입견을 어느 정도 걷어내긴 했지만 돌도 안 된 젖먹이를 데리고 뭐? 어디? 장 보는 데 손가락을 두 개 이상 쓰지 않는 한국에서도 힘든 육아를 문화센터도, 새벽 배송도, '떡뻥'도 없는 나라에서 어떻게 한단 말인가. 하지만 남편의 국내 복귀는 기약 없이 자꾸 미뤄졌고 나는 독박 육아에 지치다 못 해 점점 미쳐갔다. 그리고 정말 이러다 무슨 사단이 나겠다 싶던 어느 새벽, 결국 카타르행 항공권을 결제하고 말았다.
초보 엄마의 아득하고 막연한 두려움은 아주 구체적이고 무질서하게 수화물로 옮겨졌다. 선 주문 후 고민, 산 걸 또 사는 덜떨어진 쇼핑으로 완성한 다섯 개의 상자와 두 개의 캐리어. 어느 정도 각오는 했지만 초과 수화물 비용과 EMS 국제 택배비로 100만 원 가까이 지출하기에 이르렀다.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을 때는 이미 비행기에 몸을 실은 뒤였고, 내가 얼마나 헛된 걱정들을 창의적으로 했는지 확인하는 데는 몇 주가 더 걸렸다. 물론 막상 도착해서야 '세상에 이게 없다니, 이런 것도 없다니?!'하며 발을 동동 구른 적도 많았다.
대부분의 사람들에겐 딱히 쓸모없지만 누군가에겐 너무도 절실한 '밤 깎는 가위' 같은 글을 쓰고 싶었는데 오늘이 그날인 듯싶다. 혹시 나처럼 아이와 함께 느닷없이 중동에서 살게 돼 '멘붕'에 빠진 양육자들을 위해, 지난 3개월 동안 '멍청비용'을 두둑히 지불하고서 추려낸 필수 아이템들을 공유한다.
카타르행 육아 동지에게 추천하는 7가지 아이템
① 유아용 간식
퓨레나 주스류는 꽤 다양해서 따로 챙길 필요 없지만 떡뻥 같은 곡물 스낵은 종류도 적고 가격이 한국의 두세 배에 달한다. 만약 짐이 많다면 부피가 크고 가벼운 간식거리는 EMS 택배로 잔뜩 보내는 게 무조건 이득이다.
② 젖병 전용 세제와 세척솔
대형 마트나 약국에서 구할 수는 있지만 종류도 세척력도 정말 변변찮다. 마트 진열대에 놓인 젖병 전용 세제와 세척솔을 보면 그야말로 실소가 나올 지경. 참고로 젖병도 종류가 몇 없다.
③ 샤워 필터
영혼을 팔아서라도 가져가야 하는 아이템. 카타르의 수질은 우리나라의 미세먼지 공포에 가히 맞먹을 정도다. 한국에서 족히 한 달은 사용할 수 있는 필터가 이곳에선 사나흘을 버티지 못하고 새카맣게 사망하는 걸 직접 목격했다. 현지에서 오래 거주한 교민들은 아예 포기했거나 잊고 사는데, 간혹 아이만은 생수로 씻긴다는 이도 있었다.
④ 난방 텐트
여름에는 '덥다'는 말보다 '뜨겁다'는 말이 적절한 만큼 무더운 곳이지만 11월부터 3월, 특히 저녁부터 새벽까진 코끝이 시리고 입김이 나올 정도로 춥다. 카타르를 비롯한 중동 지역 주택들 대부분이 단열에 취약하기 때문에 중동에 오래 머물 일이 있다면 아이가 없더라도 챙겨 올 만하다.
⑤ 수면 조끼
다시 말하지만 정말 춥다. 유아용품 매장에서 침낭처럼 생긴 아기 침구류는 본 적 있지만 '수면 조끼'는 품목 자체가 없다. 그리고 카타르는 우리나라보다 공산품을 비롯한 의류의 가격이 비싸고 몇몇 글로벌 브랜드를 제외하면 소재와 질도 좋은 편이 아니다.
⑥ 물티슈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곳에서 판매하는 물티슈는 죄다 향이 독하고 심하게는 손이 미끌미끌한 거품이 묻어난다. 혹시 한 장씩 빨아 쓰는 거냐는 우스갯소리가 농담으로 들리지 않을 정도. 한국에 들어갈 때마다 물티슈만 몇 박스 씩 가져오는 교민도 있다.
⑦ 상온 보관 이유식
이런 신문물이 있을 리 만무하다. 아기와 외출할 때마다 보온 죽통까지 챙기는 수고를 하고 싶지 않다면 체류 기간을 고려해 최대한 챙기자. 이슬람 율법상 돼지고기는 물론 돼지고기가 첨가된 음식은 모두 반입할 수 없다. 굳이 카타르에서 돼지고기를 먹이고자 한다면 QDC(Qatar Distribution Company)라는 곳에서 구입할 수 있지만 매장에 입장하기 위해서는 거주증과 라이선스가 필요하다.
글・사진 박코끼리
하나라도 얻어 걸리는 바라는 마음으로 이것저것 쓴다.
요즘은 일생일대의 선택에 대한 책임을 지고 있으며, 주로 참을 忍을 쓰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