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시 성매매 집결지
선미촌에 책방을 연
물결서사의 예술가들
전주시청 뒤편에 위치한 선미촌은 전주 시민들에게는 오랜 기간 터부시된 공간이었다. 밤이면 유리창 너머에 붉은 등을 켜는 성매매 업소가 모여 있는 이 동네는 서노송동이나 물왕멀길이라는 지명보다는 선미촌 혹은 시청 뒤 홍등가로 불려왔다. 1950년대에 시청과 역사 부근의 인파가 늘어나며 형성된 서노송동의 성매매 업소 집결지는 60년 넘게 그 자리에서 운영되어왔다. 걸어서 10분 거리에 학원가, 보도만 건너면 병원과 시장이 있고 200m 부근에 대형 쇼핑몰도 들어섰지만, 밤이 되면 거짓말처럼 도심의 가로등은 꺼지고 선미촌에 붉은 등만이 형형하게 빛을 냈다. 전주시가 도시재생 사업의 일환으로 성매매 업소 집결지의 낡은 건물들을 매입하기 시작하며, 한때는 50여 곳이 넘었던 업소들도 점차 폐업하고, 지금은 12개 남짓한 업소만이 남아 있다. 현재는 '서노송예술촌 프로젝트'로 사업명이 바뀌었지만 거리를 바꾸려는 노력은 느리게 진행 중이다. 예술촌이라고는 하지만 예술의 흔적은 전무했던 선미촌에 처음 예술다운 것이 생겨났는데, 바로 책방 '물결서사'다. 성매매 업소로 운영하던 건물 자리에 작은 책방이 들어선다는 것부터 이미 범상치 않지만 이 책방 안에서 일어나는 일들은 더욱 심상치 않다. 시를 쓰고 그림을 그리고 영상을 만들고 노래를 하는 일곱 명의 예술가가 운영하는 책방, 물결서사(전북 전주시 완산구 물왕멀2길 9-6)를 찾았다.
일곱 명이 모두 장르가 다른 예술을 하는 작가이고, 일주일에 6일간 돌아가면서 책방을 지킨다고 들었습니다. 각자 자기소개를 부탁합니다.
임주아 시를 쓰는 임주아라고 하고, 물결서사 대표를 맡고 있습니다.
서완호 그림을 그리는 서완호입니다. 물결서사의 재무 담당입니다.
고형숙 한국화 작업을 하는 고형숙이라고 하고 물결서사의 일요일 지킴이입니다.
민경박 영상 작업을 하는 사람이고, 물결서사의 월요일을 지킵니다.
최은우 그림 작업을 하는 최은우이고 미화 담당입니다.
김성혁 몸이 악기인 성악가 김성혁입니다.
장근범 사진 찍는 장근범입니다.
서로 분야가 다 다른데 어떻게 모이게 되었나요. 전주시에서 예술가들에게 제안해서 만들어진 책방인가요?
김성혁 서로 지인도 있고 모르는 사람도 있었는데, 사진을 찍는 장근범 작가가 주축이 되어 모이게 되었어요.
서완호 책방의 하드웨어는 장근범 작가가 만들고, 책방 안의 내용은 같이 채웠어요.
김성혁 시에서 제안한 게 아니라, 그 반대예요. 일단 물왕멀길이 전주시 도시재생 프로젝트에 포함된 동네이긴 한데, 여기 모인 작가들은 이 안에서 꾸준히 작업을 했던 사람들이에요. 전주시가 매입하고 활용하지 못하던 공간을 저희가 대안 공간으로 책방을 해보겠다고 시에 제안했어요.
굳이 선미촌으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임주아 선미촌을 중심으로 지속적으로 작업해온 장근범 작가가 저희에게 이곳에 문화 공간을 만들고 함께 예술을 채워가는 것이 어떠냐고 제안했어요. 선미촌이 예술가들이 모여서 무언가 해볼 만한 장소라고 생각했어요. 사람들이 이 길로 들어서지 않아서 문화적으로 낙후된 것은 이곳이 오랫동안 성매매 업소 집결지였기 때문이잖아요. 한옥마을이나 객사 같은 공간은 이미 전주시에서 중심이고 무언가가 새로이 필요하진 않지만, 이곳은 고립되어 있었으니까 저희에게는 더 끌리는 곳이었어요.
그렇다면 예술 공간으로서 시작한 게 왜 책방이었나요.
임주아 일단 여기에 문화 공간이랄 곳이 없잖아요. 신기하게도 책방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어요. 책을 사든 안 사든 책방은 다들 좋아하거든요. 책이라는 영역이 가진 드넓은 장르의 매력 때문인 것 같아요. 그리고 여기에 세탁소, 미용실, 슈퍼…이런 최소한의 상점밖에 없었어요. 시내로 나가면 객사에는 카페, 영화관 다 있는데 이곳에는 이런 공간이 전혀 없었거든요. 그래서 주민들이 책을 볼 수 있는 장소가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선미촌에 사는 걸 부끄러워하는 주민들이 많으세요. 누가 '어디 사세요' 물어보면, 그냥 '전고(전주고) 근처요' 이렇게만 말씀하신대요. 그런데다 어디 들를 만한 문화 공간 하나 없으니 자기 동네인데도 애정을 갖거나 사랑을 줄 수가 없죠. 책방 만들기 전에 "선미촌에 뭐가 생겼으면 좋겠냐"고 주민들에게 여쭤보니 '책을 보고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었으면 좋겠다고 많이 말씀하셨어요. 멤버 대부분이 책과 문장에서 영감을 받는 사람들이라서 잘 맞겠다 생각했어요. 하지만 누군가 우리 얘길 들으면 '책방을 액세서리 삼아 허울 좋은 아지트를 만들었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우려에도 책을 팔면 그 금액으로 무조건 다른 책을 사요. 한 달에 강제적으로 읽어야 하는 책도 정해져 있어요. 지난달엔 성매매 경험 당사자가 쓴 <길 하나 건너면 벼랑 끝>이라는 책을 읽었죠. 나름 철저하고 팽팽하게 굴러가고 있어요. 무엇보다 저희가 모이려면 대안 공간을 유지해야 하는데, 책을 실제로 판매하는 개념으로 창업하면 공간을 좀 더 긴장감 있게 유지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긴장감 있게 힘이 들잖아요.(웃음) 매일 문을 열어야 하니까요.
임주아 직장이 있는 사람도 있고, 다들 자기 작업을 하는 예술가들이라 처음에는 무인 서점으로 기획했어요. 그런데 그러면 책방에 사람이 없고 온기가 없잖아요. 책방에 책만 있는 건 우리가 생각한 그림이 아니어서 계획을 수정했어요. 운영 시간도 처음에는 일주일에 3~4일만 할까 했는데, 이것도 엄연히 자영업이고 상점이잖아요. 여기에 좀 더 오래 머물고 싶어서 6일간 문을 열어요. 일주일에 딱 하루 수요일에 쉬는데, 그날 자리를 지킬 수 있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에요.
2018년 12월에 문을 열었으니 책방을 운영한 지 1년이 넘었습니다.
임주아 이 동네를 찾아오는 사람은 이곳이 성매매 업소 집결지라고 아는 분들이잖아요. 처음에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성매매 업소인 줄 알고 책방에 들어오기도 했어요. 일단은 그런 결을 맞추는 시간이 필요했던 것 같아요. 처음에는 동네 주민들의 이야기를 들으러 주변을 많이 다녔어요. 최근에는 성매매 업소에서 일하는 여성들과 인사를 나누기도 하고, 저녁에 책방을 알리는 전단지를 나눠주기도 해요. 이전에는 그런 것들이 폭력이라고 생각했거든요. 우리가 뭐라고 그분들을 연민하고 대상화할 수 없는 거니까요. 지난 1년의 시간이 서로 존재를 알아보고 속으로 끄덕이는 시간, 그러니까 간접적으로 친밀해지고 내밀해지는 시간이었던 것 같아요. 도시 재생을 한다고 하면 건물을 다 부수고 거기에 새로운 건물을 짓는 식의 재생이 많잖아요. 그런데 저희는 책방을 열면서 원래 공간이 가지고 있던 결들을 살리려고 했거든요. 만약 외부 사람들이 이곳에 들어와서 편안함을 느낀다면 그건 낮은 지붕과 건물 안의 원래 숨을 그대로 살려놔서 그런 것 같아요. 가끔 이 공간이 살아온 시간의 숨들이 살아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거든요. 공간이 주는 힘을 여기 찾아오는 사람들이 느끼면 자부심을 느끼죠.
동네 주민들과 함께 하는 문화 프로그램들도 운영하고 있던데요.
임주아 옆집에 만신이라고 여자 무당분이 사시는데, 낮에는 고물을 주우러 다니시고 동네를 반장님처럼 돌아다니세요. 저녁에는 신당에 신을 모시기 위한 돈을 벌기 위해 고물 줍는 일을 하시는 건데, 그게 저희랑 비슷해요. 저희도 창작자로 살아가기 위해 투잡하면서 밥벌이를 하니까요. 이분이 매일 저희한테 오시는데 이야기꾼이세요. 자기 살아온 이야기, 보고 들은 이야기를 해주시는데 듣고 있으면 정말 재밌거든요. 무당으로서의 전문성과 한 사람이 살아온 역사성이 있잖아요. 이분을 모시고 인생 이야기를 듣는 주민 발굴 프로젝트도 했어요. 그날 교회에 다니는 주민분이 전도하겠다고 오셨어요. 이모는 "내가 교회 안 다녀봤을 거 같여?" 하고 정색하시고.(웃음) 이 프로젝트의 목적은 '우리 동네에 평범한 사람은 없다'는 거예요. '평범함에서 비범함을 찾아낸다'는 말처럼 주민들의 이야기를 듣는 물줄기를 물결서사에서 트고 싶었죠.
동네 주민들로서는 낯선 젊은이들이 와서 책방을 열었으니 신기했을 것 같아요.
김성혁 신기해하기보다는 욕을 많이 하셨죠.(웃음) 너희가 뭔데 여기 와서 땅값 올리려고 하느냐 하고. 처음엔 좋은 소리 못 들었어요. 저희가 소통하려고 애쓰니까 시간이 지나서 맘을 열어주신 거지. 1년의 시간이 지나면서 주민들과 대화도 하게 됐고 여기서 일하는 여성들도 저희를 먼저 알아보기도 하고. 예술가가 책방 운영한답시고 잘 오지도 않고, 몇 달 하다 말았으면 신뢰가 쌓이지 않았을 거예요. 그런 변화를 느낄 때 보람 있어요. 저희가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은 대하는 분위기가 사뭇 달라요.
실내 인테리어도 직접 한 건가요.
장근범 도시재생은 특정한 곳에서 완전히 새로운 걸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곳이 원래 갖고 있던 역사나 이야기를 유지하는 게 중요하잖아요. 이 공간을 변화시킨 방식이 저희가 바라는 도시재생이에요. 저희는 60년 된 이곳의 흔적을 다 유지했어요. 천장도 그대로 두고, 휠체어 이동을 생각해서 문도 넓게 만들었어요. 최대한 공간에 해를 끼치지 않는 선에서 저희 지혜를 활용했고, 벽지도 원래 있던 것 위에 하얗게 칠하기만 했어요. 이 위에 지붕 자리도 일부러 남겨놨고요. 이 건물이 뜯고 보니까 덧대고 덧댄 흔적이 남아 있어서, 그걸 없애고 새로 만들지 않는 데 집중했어요. 보시면 동네에서 주워온 게 더 많아요. 의자나 그런 것도 이 동네에 원래 있던 거나 이 장소에 원래 있던 것들을 그대로 뒀어요. 저기 포스기도 저희 어머니가 가게족발집에서 쓰시던 거 가져왔어요.
이 동네에서 친해진 사람들이 있을 텐데, 지금 선미촌에는 어떤 분들이 거주하고 있나요.
고형숙 옆에 국수 가게 하시는 아주머니가 있는데, 성매매 업소 여성들에게 새벽에 국수를 배달하시거든요. 그분이랑 옆에 만신 이모. 이 두 분이랑 특히 친해요. 책방에 앉아 있으면 하루에 두세 번 오실 때도 있을 정도죠. 일요일에는 저한테 고장난 TV를 와서 고쳐보라고 하시고.(웃음) 가서 봤는데 결국 못 고쳤어요. 그리고 동짓날에는 옆집 이모가 동지죽을 끓였다고 들고 오셔서 맛있게 먹었어요. 이모들이 정이 많아요. 저희가 회의하는 날은 국수 먹는 날이에요. 다 같이.
김성혁 이 공간의 영역에 있는 사람들과 얼굴을 대하고 서로 뭐 하는지 알고, 그런 부분에서 위계가 없는 것 같아요. 이웃들도 우리를 그냥 책방 하는 예술가들로 이해하고, 저희도 그분들을 직업으로 판단하지 않거든요. 사실 아직도 성매매 업소가 영업 중인 이곳에 타 지역 사람들이나 시민들이 책방을 보러 오시는 거고, 여기가 여러 사람이 모이는 거점이 되는 거니까 그런 점이 특별하지 않을까 싶어요.
책방에서 예술가들이 '물결 워크숍'이라는 이름으로 다양한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죠.
김성혁 각자 장르가 다르니까 자기가 할 수 있는 기획을 해서 워크숍을 진행해요. 임 대표는 시 읽기 워크숍을 계속 진행하고 있고요.
임주아 시 읽기 수업은 철저하게 '가르치지 않는 콘셉트'예요. 시를 같이 읽고 제가 필요한 해설을 해준 후에 백지를 나눠 주고 그냥 시라고 생각되는 뭐라도 쓰게 해요. 제가 '100행'이라고 1백 줄의 시를 쓴 적이 있는데, 멤버들이 그걸로 뭔가 해봤으면 좋겠다 해서 워크숍이 탄생했어요.
오래전부터 이 거리를 알고 있는 전주 시민들은 이 거리에 발을 들이는 데 거부감이 있을 수 있지만, 외지인들은 오히려 여행지로 찾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김성혁 처음에는 타지 손님이 많았는데 지금은 반반이에요. 국가에서 주도하는 도시재생 사업이나 공공사업을 하는 분들이 참고 삼아 보러 많이 오세요. 다른 지역에도 성매매 업소가 있잖아요. 이 공간이 어떻게 바뀌는지 사례 답사를 위해 전국 각지 공무원들이 다녀갔어요. 행정적으로 보면 좋은 사례니까요. 한번은 학교 교장 선생님들이 탐방을 오셨는데, 알고 보니 저 중학교 때 은사님이시더라고요.(웃음) 제가 중학교 때 방황했는데, 자라서 책방을 하고 있으니 신기해하셨어요. 어릴 때 그룹사운드 보컬로 활동하면서 공부는 안 해서 선생님들이 "말썽쟁이가 노래만 잘한다." 그랬는데.(웃음) 보통 공무원들이 견학 오면 책을 한 권도 안 사는데, 선생님이 다른 선생님들 다 모셔 와서 책도 몇 권이나 사셨어요.
최은우 저 있을 땐 검찰청에서 검사 두 명, 사무관 다섯 명이 왔는데 여기 공간이 묘하다면서 "나 여기 아는데!"하는 거예요. 예전에 사건이 있었던 곳이라고 하더라고요. 한 여자 검사가 책을 추천해달라고 해서 노석미 작가의 <매우 초록>을 권했더니 무척 좋아하고, 책도 세 권이나 사가서 기억에 남아요.
이곳이 60년 된 곳이죠.
최은우 그 때문인지 검찰청에서 오신 분이 계속 여기 어디서 본 것 같다고.(웃음)
고형숙 만신 이모는 맨날 여기 귀신이 있다고 하세요. 저기 있구먼 하고 그냥 지나가세요.(웃음)
(갑자기 옆집 만신이 나타나서 책방 문을 두드리며) 뭐라고 하세요?
김성혁 아, 그림 그려준 삼촌 어디 갔느냐고. 여기에서 문화 재생 사업이라고 해서 '인디' 사업단이 들어와 있거든요. 사업단에 물왕멀 팀도 몇 명 들어가 있어요. 그 팀에서 저희랑 작업도 많이 하는데 그중 하나가 2월에 열리는 전시예요. 거기서 동네 주민들의 기억이나 생각을 그림으로 표현하고 전시할 건데 최은우 작가가 그림을 가르치고 있거든요.
최은우 여기 그림 그리는 사람이 있으니 같이 뭔가 해보자 해서 시작했는데. 저도 어려운 것 같아요. 동네 분들에게 그림을 가르친다기보다는 그냥 같이 그리려고 해요. 누가 누굴 가르쳐요.(웃음) 낙서라도 좋으니까 그냥 여러 가지를 자유롭게 표현하시게 하려고 해요.
서점이 서노송동 물왕멀 선미촌에 어떤 영향을 줬을까요.
임주아 '올라갈 땐 몰랐던 꽃 이름이 내려갈 땐 알게 된다.' 이런 시구가 있거든요. 꼭 이런 기분이 들었어요. 거창한 게 아니더라도 저도 모르는 사이에 이분들이 우리를 알고, 이분들이 나를 안다는 걸 나 역시 얼떨결에 알게 되고, 계산적으로는 일어날 수 없는 만남이 자연스럽게 이뤄지는 것. 여기 사람들이 그냥 서점이라고 하는 게 아니라 '물결서사'라는 이름을 정확히 말해주는 모습을 보면 뿌듯하고. 이름을 기억한다는 건 사실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물결서사'를 '선미촌의 예술가들이 운영하는 서점'이라고 정확히 기억해주세요. 각인시키는 거, 그 작업을 저희가 실행한 것 같아요. 이름을 알리고 그 안에서 세부적인 프로그램도 진행하고 있고 그래서.
최은우 검색창에 선미촌을 검색하면 저희 책방이 먼저 나와요. 인식이 그렇게 바뀌었다는 점도 의미가 있죠.
임주아 그리고 '물결서사'라는 하나의 이름에 많은 함의가 있어요. 오늘 이야기한 것처럼 도시재생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청년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지역 이야기도 할 수 있죠, 책방 이야기, 예술 이야기. 그런 것을 하나로 모으는 역할도 하는 것 같고. 전주에 이런 공간이 또 없으니까. 전국적으로도 찾아보기 어렵고요. 장 작가 말로는 세계 최초일 거라는데.(웃음) 성매매 업소 집결지 안에 서점이 있고, 일곱 명의 예술가가 운영하는데 예술가들의 장르가 다 달라? 이런 다양성을 책방이 품고 있다는 사실이 전 무척 자랑스러워요.
선미촌에서 책방을 하면서 예술가들의 작품에도 변화가 생겼을 것 같아요.
김성혁 우리가 가진 언어가 물결서사, 선미촌이라는 생활권에 속하면서 다양한 장르의 예술이 이들을 대변하는 역할을 하는 것 같아요. 저는 제가 할 수 있는 노래로 이분들을 위로할 수 있는 지점이 생기는 거죠. 한 가지를 예로 들면 전주에서 나고 자란 서른 살 된 후배가 있어요. 성악가인데 이 친구를 데뷔시키는 무대를 지난해 이 공간에서 마련했어요. 50명 정도 모여서 공연했는데, 그런 형태로 다른 사람의 이야기들이 이곳에서 계속 만들어질 수 있다는 것. 저는 그래서 여기에 계속 있고 싶어요.
임주아 저희가 혼자 작업하는 사람이기도 하지만 한 명 한 명 뜯어보면 뭘 만들어온 사람인 것 같아요. 어떤 아이디어가 있을 때 나 혼자 작업하는 게 아니라 항상 어떤 방식으로 같이 해볼 수 있을까 생각하게 돼요. 방금 얘기한 성악 공연도 서점 안에서 한 게 아니라 저 창문을 이용해서 TV를 바라보는 것처럼 기획했거든요. 우리끼리 그런 아이디어를 모으고 여기서 펼쳐내는 게 잘되는 편이에요.
전주에서 지속 가능한 삶을 꾸려가는 직업인이자 예술가예요. 지방 청년이라는 감각을 유지하면서 전주에서 예술을 하는 건 쉽지 않은 일 같은데, 예술가 혹은 개인으로 이루고 싶은 목표는 무언가요.
임주아 대확행?(웃음)
최은우 우리가 '물결서사'를 통해 예술을 알릴 수 있으면 좋겠지만 그건 욕심이고, 지금은 일단 각자 자생력을 가질 수 있었으면 해요.
서완호 현대미술은 모색이 중요하거든요. 지금까지 이렇게 해왔는데 앞으로는 이런 게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유의미한 모색이 중요한데 지방에서 그게 가능할까 하는 회의도 들었거든요. 자본도 없고 사람도 없는데 전주에 문화 도시라고 슬로건은 걸려 있어요. 시대를 타고 흐르는 문화가 전혀 없는데 말이에요. 심오하고 복잡한 얘기 같지만 그냥 우리 어떻게 살 건지 이야기하자는 건데, 이런 것이 예술과 자연스럽게 연결되는 거죠. 저는 희망이 없다가 여기서 희망을 봤어요. 청년 작가들이 모여서 어떤 이야기를 해갈지도 생각하게 되고. 그런 면에서 계획이 더 생길 거라고 생각해요. 꿈이 뭐냐고 물으면 할 얘기는 없지만.
민경박 "전주에서 예술 하기 쉽지 않죠?"하고 물어보셨는데, 진짜 쉽지 않아요. 예술 생태계가 형성되어 있지 않거든요. 물이 없으니 물고기가 숨을 쉬기 어렵죠. 그나마 꿈이라면 그런 생태계를 저희 힘으로 만들어내는 거예요. 김성혁 작가도 후배를 여기서 데뷔시켰는데, 저희가 여기서 자리를 잡으면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될 수 있지 않을까요? 그게 제 꿈이기도 하고 '물결서사'의 꿈이기도 해요.
서완호 한국에서는 답이 정해져 있고 그 안에서 계급이 나뉘어 있어요. 저는 운 좋게 해외에서 전시하면서 외국 작가들을 만났는데, 그들은 자신이 어디 출신이고 거기서 영향을 받아 이런 작업이 나왔다고 말하더라고요. 그 점이 부러웠어요. 우리는 서울이 아니면 정답이 아니라고 생각하고 낙오됐다고 여기잖아요. 지금은 각자도생만 있을 뿐 문화적 형태나 색깔이 없는 것 같아요. 저도 한때 자포자기했었는데 지금은 내 방식을 자랑스럽게 내세우려면 기반을 만들어야겠다는 생각을 해요. 다른 곳에 가지 않아도 여기에서 자기 이야기를 해나갈 기반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요?
임주아 요즘은 흩어지면 살고 모이면 죽는다고 하잖아요. 모여서 뭐 했다가 망하면 사이 나빠지고 원수 된다고. 각자도생해서 잘 사는 게 최고라는 거죠. 그런 말을 듣고 자란 우리 세대가 모여서 뭔가 하면서 공동체의 의미를 느끼거든요. 문학 하는 제 또래가 여기 없었어요. 창작을 이어가는 제 또래 친구들이 없어서 외롭던 차에 동료들을 만나서 힘이 되고, 예술이라는 구심점을 찾아서 함께 실험해보는 게 좋아요. 흩어져야 사는 게 아니라 그래도 모여서 뭔가 해보면 나아지지 않을까 하는 희망이 지금은 생겼어요.
글 김송희
사진 장근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