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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3 스페셜

유지은 대전MBC 아나운서 인터뷰

2020.03.24 | 돌아가기 위해, 오늘도

방송계는 대표적으로 고용 불안이 만연한 업계다. 하고 싶은 사람은 많고 자리는 없다. 유지은 아나운서는 대전MBC에서 6년째 일하고 있는 프리랜서 아나운서다. 2014년, 더 큰 비전을 품고 이직해 묵묵히 일해왔다. 프리랜서라기엔 정규직만큼이나 회사 일이 많지만 그런 대로 참을 만했다, 일이 재밌으니까. 그런데 어느 날 회사는 프리랜서 앵커 자리에 여성을, 정규직 아나운서 자리에 남성을 채용했다. 속 아픈 날들이 시작됐다. 유 아나운서는 목소리를 내기로 결심했다. 지난해 6월 국가인권위원회 채용 성차별에 대한 진정서를 제출했고, 묵묵부답인 결과를 기다리며 오늘도 일하고 또 싸운다. 그가 싸우는 이유는 사랑하는 직업을 포기하지 않기 위해서다.


대전MBC 이전에도 여러 방송사에서 근무했다. 그때도 정규직이 아니었는데 이직을 거듭하며 아나운서라는 일을 계속해왔다.
너무 좋아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게 이 직업의 맹점이고 사용자도 그 점을 안다. 돈을 주고서라도 경력을 쌓고자 하는 사람이 많고, 나도 그런 마음이었다. 경력이 있어야 다음 경력을 쌓을 수 있으니까 일했고, 그다음엔 고용 안정이 될 거라 믿었다. 지상파에선 울산방송UBC에서 처음 일했는데 역시 비정규직이었지만 배우는 단계라고 생각했고 현 직장으로 이직했다. 그런데 전과 같은 일이 반복되니까 참을 수 없었다. 이제는 경력 쌓겠다는 것도 아니고… 왜 이런 일이 반복되는가 생각해보니 채용 성차별이라는 걸 알고 문제 제기를 하게 됐다.

이직이 결정되던 순간을 기억하나.
전 방송국에서 일하던 중에 시험을 봤다. 뉴스를 하고 나왔는데 부재중 전화가 와 있었다. 지역번호가 달라서 바로 직감했다.(웃음) 잘됐다고 생각했고 기뻤다. 울산도 좋았지만 고향이 서울이라 조금 멀다고 생각해서 시험을 본 거였다. 또, 같은 프로그램을 하면 옮길 이유가 없었는데 이곳에 더 다양한 프로그램이 있어서 기대하는 마음이 컸다.

이직 5년 차에 인권위에 채용 성차별에 대한 진정을 넣었다. 특별한 계기가 있나.
남성 아나운서의 정규직 채용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특정한 사람 때문이라고 말하는 게 아니다. 날 지지해주는 소중한 동료인데, 단지 남성 아나운서라는 이유로 정규직 채용이 된 것이 계기가 됐다는 점을 분명히 하고 싶다. 2017년 공영방송 정상화를 위한 MBC 전체 파업이 끝나고 여성 아나운서 처우에 대한 논의가 있을까 싶었는데 여성 프리랜서 앵커를 뽑았다. 정규직 여성 아나운서 공채가 있을 줄 알았는데 뉴스 하나만 할 프리랜서 앵커를 채용한 거다. 또 비정규직이었다. 그러다 남자 아나운서 선배가 다른 부서로 발령 나면서 남성을 상정한 정규직 공채가 논의됐다. 상실감이 컸다. 실은 전에 다닌 회사에서도 전형 절차가 같았던 남성 1년 후배가 정규직이 됐던 같은 경험이 있었다. 이 회사에서 같은 일을 겪게 된 거다. 작년, 연차도 6년 가까이 돼가는데 급여는 갈수록 떨어지는 상황에 있었다. 프리랜서니까 프로그램별로 받다 보니 월 급여가 불안정했다. 남성 신입 아나운서보다 6년 차인 내 급여가 적었다. 여러 가지 면에서 박탈감이 들었고 상황이 불합리하게 느껴졌다.

프리랜서 계약은 어떻게 맺나.
고용계약서를 쓴 적도 없고 6년간 구두계약으로 일했다. 모든 지역 방송사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프리랜서면 프로그램별로 계약하는데, 나는 입사하고 모든 국에 인사하고 프로그램을 배정받았다. 출연료도 입금되는 거 봐야 알고. 아무리 봐도 프리랜서가 아니었다. 프리랜서 아나운서라고 하면 한 방송국 일만 하지 않고 여러 방송국의 정말 다양한 프로그램을 할 수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내가 입사하기 전까진 모든 여성 아나운서들이 2년 계약직으로 일했다. 잘하면 전환 논의를 하는 게 아니라 애초에 2년씩만 일을 시켰다. 그래서 입사하고 1년 후부터 이직을 준비했다. 사람들은 여자 아나운서들이 회사를 자주 옮기지 않느냐고 말하지만 과연 정규직이라면, 정규직이 될 수 있다면 옮겼을까? 남성 방송직군 종사자들도 이직률이 높지만 이직 때 비정규직으로 입사하지 않는다. 그 잣대는 여성 아나운서에게만 들이밀어진다.

사측은 ‘채용 성차별이 아니다’라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연대하는 사람들, 단체들이 많고 언론 보도도 많이 나갔다. 변화의 기미는 없나.
없다. 정말 안타깝다. 진정 결과가 나오는 대로 다음 스텝을 진행할 거다. 많은 분의 응원으로 버티고 있다. 가끔,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으면 행복하게 일했을까 생각해본다. 속으로 곪아갔을 거다. 속으로 곪느냐, 이렇게 싸우면서 힘든가의 문제라 나는 괜찮다. 끝까지 갈 거다. 그런데 회사는 언론사고 공영방송이면서, 파업도 함께 겪은 분들이 나를 이렇게 대하고 있다. 개인 하나는 짓밟을 수 있다는 권력 의식이 아닐까… 안타깝다.

프로그램 네 개를 진행하다가 지금은 라디오 프로그램 한 개만 맡고 있다. 일을 좋아하는 사람으로서 아쉬움이 크겠다.
그래도 라디오는 피드백을 많이 받을 수 있는 매체라 힘을 많이 받는다. 남은 한 가지가 라디오라서 정말 다행이다. 한번은 공기업을 준비하던 애청자분이 합격했다고 하셔서 내 자식 일처럼 너무 기뻤다.(웃음) 그러다 얼마 전에 새로운 도전을 위해 퇴사했다는 소식을 전해주면서, 내 이야기를 접했고 취업에 도전하면서 여자로서 얼마나 힘든지 알게 돼서 더 응원한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내가 그분께 드렸던 메시지 “최선을 다해 보낸 시간은 배신하지 않는다. 언젠간 다 나에게 돌아올 거다.”를 내게 돌려줬다. 너무 벅찼다. 나도 나약한 인간일 뿐인데, 내가 뭐라고 응원해주고 내게서 큰 힘을 얻는다고 하시는지…. 이런 응원을 받으면 ‘아나운서 하길 잘했다, 이거 안 했으면 어떡할 뻔했어?’ 싶다.

직업이 천직인가 보다.
너무 좋다. 너무 재밌고. 그러니까 더 안정적이고 합리적인 상황에서 일하고 싶은 거다.

최근 언론 발전에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수여하는 성유보 특별상을 수상했다. 수상하고 기뻤겠다.
지인들은 멋있다고 하는데 나는 부끄러웠다. 내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데, 많은 분들이 내게 상을 주기 위해 어필했을 거고 거기에 감사한 마음이 컸다. 가끔 내가 맞게 가고 있는지 고민할 때가 있다. 진정 결과는 언제 나올지도 모르겠고, 버티고 기다리는 상황에서 내가 가는 길이 맞다고 이정표를 세워준 상이다.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가치와 상징성을 생각하게 됐다. 의지를 다지는 계기가 됐다.

수상 소감도 감동적이었다. 어떤 아나운서가 될 것인지 고민을 멈추지 않았는데 이제 답을 찾은 거 같다고 했다.
지금 이 순간까지도 어떤 아나운서가 될지 늘 고민한다. 아나운서는 말하는 사람이고, 입력된 대로만 말하는 사람은 아니어야 한다. 나라는 필터를 거쳤을 때 내가 내 영향력을 말할 수 있어야 하는 사람이어야 한다. 뭔가를 영향력 있게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 진짜를 말하는 사람이 되는 게 최종 목표겠구나 싶었다.

지금의 유지은 아나운서가 일을 막 시작한 10년 전의 유지은을 만난다면 어떤 말을 해주고 싶나.
그래도 그 일을 하라고 말해주고 싶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과를 다 알지만 그렇다. 힘들지만 사람들의 응원 때문에 나라는 사람이 다시 태어난 거 같다. 언제 이런 반응을 받아보겠나 싶다. 아이러니하다. 안 힘들었다면 못 받아봤을 테니까. 10년 전의 내가 이 사랑을 모르고 살게 하고 싶진 않다. 지금은 파도처럼 살고 있지만 모든 감정이 소중하다. 좋아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는 건 축복이다.

지치고 힘들 때는 어떻게 해소하는 편인가.
정신 승리를 한다. 핑곗거리를 찾는다. 힘들 때, 전에는 행복했을까 의심해보면 꼭 그렇지도 않더라.(웃음) 전 회사에서 저녁 뉴스를 담당하다가 이 회사에 와서 아침 뉴스를 하게 됐다. 새벽부터 일하는 게 힘들어서 이것 때문에 그만두는 사람도 있다. 그래도 4~5년 할 수 있었던 이유는 둘 다 힘든 걸 알기 때문이다. 저녁 뉴스는 저녁이 없는 삶을 살아야 해서 힘들다. 그런데 아침 뉴스를 하면 저녁은 있으니까. 자꾸 괜찮은 이유를 찾는 작업을 잘해오고 있다. 나도 사람인지라 무너질 때가 있지만 비교적 정신 승리를 오래 지속하려고 하고 상처 회복력도 빠르다. 이건 내 긍정적인 기질 덕분이다. 나와 기질이 다른 사람에게 이 방법을 권할 수는 없다. 또 금전적인 문제에서 아직 괜찮고, 라디오를 하고 있기에 버틸 수 있다. 같이 문제 제기를 했던 김지원 아나운서는 작년 10월에 쇼호스트로 이직했다. 프로그램에서 다 하차하게 됐고 게스트 출연만으로는 월 급여가 20만 원도 안 됐다. 부당함을 느끼고 함께 시작했지만 그 친구가 이 정도로 생계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붙잡는 건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다. 혼자서 뭐라도 결론을 내야겠다는 마음이다. 싸움을 시작했으니 돌아갈 수는 없다. 뭐라도 썰고 끝낼 거다.

일하기 위해 선택한 싸움이다. 앞으로는 어떻게 일하고 싶은가.
하고 싶은 게 너무 많다. 이제까지 비정규직 여성 아나운서라는 틀에 갇혀 있었다고 생각한다. 아나운서라는 롤에 대한 고민은 현재 진행 중이다. 영역을 확대하고 능력치를 얻는 건 내가 하기 나름이다. 그런 의미에서 진행뿐만 아니라 연출 등 다양한 역할을 능동적으로 해내고 싶다. 월급 따박따박 받아가면서 그저 편하게만 일하고 싶진 않다. 그러지 않기 위해 싸우고 있다. 더 능동적인 아나운서가 돼서 다양한 사안에 대해 외치는 ‘스피커’가 되고 싶다.


·사진 양수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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