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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3 스페셜

장도연이라는 예능 신대륙

2020.03.25 | 웃음의 판도를 바꾸는 여자

얼마 전 디시인사이드와 한 AI 어플리케이션이 ‘숨만 쉬어도 웃기는 천생 개그맨’이라는 주제로 온라인 투표를 진행했다. 그 결과 1위를 차지한 것이 장도연이었다. 인기 개그맨 순위가 아닌 ‘숨만 쉬어도 웃기는 천생 개그맨’이라는 주제에서 1위를 차지했다는 것이 2020년 장도연이라는 여성 예능인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보여준다. ‘사실 장도연 대표작이 뭐야?’라고 누가 물으면 아직까지 대표작이 있는 것도 아니고 고정으로 출연하는 방송 또한 많지 않다. 그의 프로필에 나오는 2020년 출연작들은 대개가 아직 방영 전이거나(<리얼연애 부러우면 지는거다>) 이제 막 방송이 시작했거나(<밥블레스유 2>), 이미 방송이 종료된(<핑거게임>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 것들이 대다수다. 그렇다면 장도연은 도대체 어떻게 숨만 쉬어도 웃긴 ‘뼈그맨’이라는 찬사를 얻게 된 것일까.

장도연은 2019년 MBC 방송연예대상에서 베스트엔터테이너 상을 수상했다. <같이 펀딩>과 <호구의 연애>라는 프로그램이 출연작이었는데, 아마 이 글을 읽고 있는 대다수의 독자들은 그 방송을 보지 못했을 것이다. 평균 시청률이 3%대였고, 그렇다고 유튜브나 SNS에서 화제가 된 방송도 아니었다. 중요한 것은 MBC가 준 그 상이 장도연이 데뷔 후 방송사 연예대상에서 받은 최초의 상이었다는 것이다. 장도연은 “무대에 올라오는 게 다섯 계단인데 올라오는 데 13년이 걸렸다.”며 “장도연 너 겁나 멋있다.”라고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이 시상식에서 전설의 ‘장도연 엄지짤’이 탄생했다. 절친 박나래가 대상을 타자 객석에 있던 장도연이 진심으로 신이 나서 쌍엄지를 마구 휘두르는 장면이 인터넷 밈이 되어 돌아다녔다. 13년 만에 처음 상을 탄 자기 자신을 “너 멋지다.”라고 자축하고, 절친이 대상을 타자 신이 나서 ‘엄지척’을 휘두르는 키가 큰 숏컷의 여성 코미디언. 장도연은 이렇게 지상파 고정 MC 자리 하나 꿰차지 않아도 대중에게 자연스럽게 웃기고 매력적인 사람으로 각인됐다.

장도연 하면 다수가 떠올리는 철벽녀 이미지는 <코미디빅리그>의 콩트에서 비롯됐다. 장도연은 콩트 속에서 “오빠 기억 나?”라고 아는 척하는 구남친에게 천연덕스럽게 “스미마셍~ 아임 낫 코리언”이라고 외치고, “야 너 도연이 맞잖아. 우리 사귀었잖아.”라고 치근덕대는 남성을 피해 달리는 택시에서 뛰어내리기도 한다. 장신의 키와 긴 팔을 활용해 상대 남성이 다가오지 못하게 밖으로 밀어내는 과장된 액션을 취하기도 한다. 여성의 외모나 과체중을 소재로 삼지 않고도 잘 짠 콩트만으로 웃음을 줄 수 있다는 것을 그는 보여준다. 장도연의 코너가 유튜브에서 유독 재생수가 높은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티 나지 않게 조금씩, 누구도 불편하지 않게 개그의 트렌드를 바꾸는 역할을 장도연이 하고 있다.

장도연은 어떤 상황에서도 무리한 개그를 하지 않고 치고 빠지는 토크에 능하다. <런닝맨>이나 <라디오 스타> <아는 형님>과 같이 남성 MC 집단이 진행하는 예능에서 장도연이 능수능란에서 그들을 자기 페이스로 끌고 오는 토크를 보라. 그는 먼저 공격받기 전에는 상대를 공격하지 않으면서도 웃긴 상황을 만들어낸다. 여성 게스트가 출연하면 러브라인을 만드는 <아는 형님>의 관습 속에서 서장훈에게 철벽을 치며 핑크빛 웃음을 제조하는 장도연을 보고 있으면 물이 올랐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에서 장도연의 존재감은 또 어떤가. 첫 회 게스트였던 공유와 이동욱이 진지한 삼천포에 빠질 때마다 그들에게 웃음의 구명튜브를 던지며 방송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것도 장도연이었다. <이동욱은 토크가 하고 싶어서>의 마지막 회 게스트로 출연한 장도연에게 이동욱이 묻는다. “추구하는 개그가 무엇인가요?” 장도연은 이렇게 답했다. “이 얘기를 했을 때 누구 한 명 불편하지 않은 개그”라고.

더불어 장도연은 15분 이상 혼자 스탠딩 코미디를 할 수 있는 코미디언이기도 하다. 2016년 <말하는대로>에서 좌중을 쥐락펴락하며 이야기를 펼쳐가는 장도연을 보고 함께 출연했던 표창원 의원은 “이야기 공학자 같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최근 출연했던 <스탠드업>에서도 마찬가지다. “저는 좀 애매모호한 경계선에 있는 사람”이었다며 “너무 못생기지도 그렇다고 예쁘지도 않고, 막 웃기지도 않은 내가 이 일을 하기에 괜찮은가 고민”이었다던 그는 “먼 미래 너무 생각하지 말고 오늘을 즐기되 너무 막 살지는 말자.”라고 토크를 마무리짓는다.

출연하는 방송마다 갑자기 종영되거나 자기만 잘려서 ‘나는 방송에 안 맞는 사람인가’ 고민했다던 장도연은 이제 모든 예능 프로그램에서 찾는 예능인이다. <나 혼자 산다>에서의 실제의 장도연을 보면 그가 어떻게 지금의 차분하면서 웃긴 장도연이 됐는지를 알 수 있다. 먹지도 않을 콩나물을 키우면서 신나 하고, 페미니즘과 인문학 서적을 쌓아두고 매일 신문을 읽으며 공부하는 여자. 멋지게 운전을 하다가도 주차를 못 해서 내 차를 가로막는 저 전봇대 좀 치워달라고 눙치는 웃기고 매력적인 사람. 장도연은 과거 <씨네21> ‘내 인생의 영화’에 글을 기고한 적이 있는데, 인생 영화로 <트루먼 쇼>를 꼽으면서 마지막 문장에 이렇게 썼다. “내가 만약 트루먼이었으면 어땠을까 상상을 해봤는데… ‘장도연 쇼’라…. 전체 관람가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시청률은 잘 나올 거다.” 제작진들은 뭐 하고 있나요. 얼른 <장도연 쇼> 안 만들고.


김송희
그림 진하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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