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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3 스페셜

가수 이설아 인터뷰

2020.03.25 | 살아남아 같이 노래하자

이설아를 소개할 때, 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은’을 불렀던 여자 가수, 라고 하면 다들 ‘아하!’ 하고 기억을 떠올린다. 혼자 조용히 피아노 앞에 앉아 자작곡을 부른 이설아의 음악은 무럭무럭 자라서 나와 세상과의 관계를 말하고 있다. 작년에 나온 이설아의 정규 앨범 1집 수록곡 ‘수상한 사람’ 가사에는 힘든 상황이 ‘내 탓이 아니라고 해달라’라는 호소가 담겨 있다. ‘그냥 있자’의 가사는 ‘아무도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을 때 그냥 같이 있자’라고 누구에게 말한다. 독백하듯 피아노로 담담히 노래하는 그의 음악에는 위로, 공감, 사유, 간결하고 담백하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아직 얼어붙은 땅의 흙을 밀어내며 여린 싹을 내어놓는 봄의 식물처럼 이설아는 연약해 보이는 껍질을 뚫고 나와 목소리를 낸다. ‘엄마도 소녀일 때가, 엄마도 아리따웠던 때가 있었겠지’ 하는 가사의 마지막은 ‘아프지 말거라, 그거면 됐다’다. 아마도 그녀는 처음부터 계속 그 말을 하고 싶었는지도 모르겠다. 아프지 말거라, 그거면 된다.


2019년 11월에 정규 1집이 나오고, 2020년 2월에 단독 공연 ‘생명에게’를 열었습니다. 공연 이름을 ‘생명에게’로 정한 이유가 있나요.
한 살 한 살 먹을수록 생일에 무감해지더라고요. 반대로 주변에서는 생일 축하를 많이 해주잖아요. 저도 주변 친구들 생일은 잘 챙겨주면서 정작 제 생일에는 ‘뭐 특별한 날인가’ 싶은 마음이 들었는데, 어느 날 저를 축하해주고 싶더라고요. 제가 살아남기까지 주변의 응원도 많이 받았고, 그런 고마움을 남에게 표현할 수 있는 날이기도 하니까요. 누가 제 생일을 축하해준다면 저도 냉큼 그 마음을 받아서 베푸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잘 태어나줘서 고맙고, 그동안 사느라 애썼다, 앞으로도 잘 살아달라고… 모든 생명에게 말해주고 싶었어요. 그런 생각들이 많았어요. 작년엔 많이 힘들기도 했지만 내가 힘들 때마다 도와주는 사람들의 힘을 많이 받았거든요. 사람, 동물 그리고 내 주변의 모든 생명들에게 ‘살아남은 것을 축하해’주는 그런 마음으로 ‘생명에게’라고 지었어요.

지난 2월에 전 소속사와 계약이 종료되고 혼자 일하고 있습니다. 혼자 작업하고, 공연하고, 음악을 알려야 하는데 힘들지 않나요.
에 나오고 많은 회사의 러브콜을 받았는데 당시에는 어디에도 들어가지 않았어요. 하고 싶은 게 많고 여러 음악 장르에 관심도 많았는데 방송에서 제 이미지가 너무 분명해서, 제안도 그쪽이 많았거든요. 음악이 한정 지어지는 것도 싫고, 회사에 들어가는 게 조심스러워서 스물한 살 때부터 혼자 모든 것을 했어요. 제안이 들어오면 미팅도 혼자 나갔는데 생각보다 어린 여자애가 나오니까 당황하는 분들도 많았지만 계약서도 저 혼자 검토하고 직접 도장 찍고 그랬어요. 그때부터 혼자 결정하는 게 버릇이 돼서 회사 계약이 만료됐을 때에도 두려움은 없었어요. 물론 귀찮고 챙길 건 많겠지만, 하려면 다하죠.(웃음) 혼자 놓인 게 무섭지도, 두렵지도 않았어요.

2014년 에서 부른 곡이 ‘엄마로 산다는 것은’이었고, 자작곡을 가지고 나와 부른 게 이설아를 알리는 데 결정적이었어요. 이후에도 혼자 활동한 거네요.
그때의 저를 돌이켜보면 참 겁이 없었어요. 지금은 살면서 타인에게 상처도 받고 조심하는 것도 생겼고 사람들 시선도 의식하게 됐는데, 그땐 모든 게 처음이었잖아요. 제가 생각해도 참 야무지고 용감했던 것 같아요. 자라온 환경이 혼자 결정하고 알아서 해야 했어요. 어릴 때는 ‘난 왜 일찍 성숙해야만 하지?’ 하면서 제 환경을 미워한 적도 있는데, 지금은 다 좋아요. 저를 마주볼 수 있게 된 것 같아요.

방송에 나오기 전, 2013년 <유재하음악경연대회>에서 금상을 탔습니다. 그 대회에서 수상한 아티스트가 라는 아이돌을 뽑는 경연에 나온 것도 이례적이지 않나요.
<유재하음악경연대회>는 10대 때부터 제 로망이었어요. 그 대회 출신 음악가들에 대한 동경도 있었고, 어릴 때부터 ‘대학생이 되면 꼭 저길 나가야지.’ 다짐했어요. 에 나갈 때 아직 대학생이었고 이런저런 음악 공모에 도전할 때여서 그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크게 다르단 생각이 없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막상 가보니 다른 친구들은 1등을 향해 간절히 달리는데, 전 그렇게까지 못했어요. 그냥 ‘피아노 앞에서 내가 만든 곡을 들려드릴 수 있는 기회’ 정도로 생각했는데 대회가 진행될수록 그게 아니었던 거죠.(웃음) 1라운드에서 ‘엄마로 산다는 것은’이 주목을 받아서 그다음에는 ‘잘해야만 한다’라는 강박이 생기니까 음악에 대한 제 마음 같은 게 해쳐지더라고요. 같이 출연하는 친구들은 ‘난 이거 아니면 안 돼’였는데, 전 마음의 준비가 안 됐던 것 같아요.

‘엄마로 산다는 것은’도 그렇지만 1집에 수록된 노래들의 가사도 직설적이면서도 여러 생각을 하게 만드는 가사들이에요. 평소에 기록을 많이 하고 그걸 다듬는 과정이 긴 것 같습니다.
사실 가사라는 게 생활 중에 다 있는 것 같아요. 제 삶이나 경험이 다 기록이 되는 편이에요. 오늘 아침에 마주친 설탕이(이설아의 반려견)의 얼굴이 가사가 될 수도 있고, 타인의 이야기나 세상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가사가 될 수도 있어요. 내가 보고 듣고 느낀 모든 것, 삶 속에 가사가 있어요. 평소 메모를 많이 해두는 편이고, 어떤 글은 곡으로 만들고 싶을 때가 있는데 그걸 읽으면서 노래를 해요. 많이 쳐내고 포기하는 작업을 거치고요. 저는 너무 은유적인 표현보다는 쉬운 말이 좋더라고요. 미안하다, 고맙다, 사랑한다… 이게 되게 직관적인데, 좋은 표현들이잖아요. 듣는 사람에게 쉽게 들리면 좋겠지만 한 번 생각에 잠기게 되면 좋겠다, 하는 바람이 있어요.

이설아를 검색해보면 ‘이설아 가사에 공감이 됐다.’, ‘공연 갔다 와서 위로받았다.’ 등 위로와 공감이라는 여성 청자들의 표현이 많이 보입니다.
나는 그냥 내 눈에 보이는 걸 음악으로 만들었는데, 사람들이 공감됐다고 이야기하는 게 충격으로 처음 다가온 건 ‘엄마로 산다는 것은’ 때였어요. 우리 엄마의 모습, 내 생각을 쓴 건데 ‘어? 사람들이 이걸 듣고 자기 일처럼 느끼네?’ 그게 참 신기한 감각이었어요. 개인적인 경험이 개개인에게 닿을 때 자기 얘기가 될 수 있구나 싶었어요. ‘위로받았다’는 말에 제가 오히려 위로를 받기도 했고요. 예전엔 저 자신의 음악을 했다면 요즘은 듣는 분들을 생각하게 돼요. 작년에 친구들이 제게 ‘니가 곁에 있어서 살았어. 니 덕분에 살았어.’ 그런 말을 해줬어요. 작년에 고양이와 개를 구조하고 살렸는데, 그 ‘살린다’는 감각이 제게도 중요했어요. ‘아, 내가 세상에 할 수 있는 역할이 있구나. 그 역할을 잘 해보면 좋겠다.’라고 생각했어요.

‘인디 뮤지션 이설아’라고 소개되는 걸 봤어요. 한국에선 흔히들 대중 뮤지션과 인디 뮤지션으로 구분하죠.
저는 인디 뮤지션 하기 싫은데 인디 뮤지션이긴 해요. (웃음) 인디펜던트라는 말이 사실은 스스로 모든 것을 만드는 사람을 칭하는 건데, 요즘은 자본이 많은 회사에서 제작을 해도 음악 장르에 따라 인디 뮤지션이라고도 하잖아요. 그 경계가 모호한 것 같아요. 개인적인 생각이지만 음악의 전 과정을 스스로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인디 뮤지션이라고 생각했는데, 만드는 게 끝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그것을 들려주는 것은 창작자 혼자서 해내기엔 어려움이 많은 것 같아요. 하루에도 너무 많은 음악들이 쏟아져나오는데 좋은 음악이 자본의 힘에 밀려서 더 알려지지 못하는 구조잖아요. 저는 수익 분배도 창작자보다는 유통 쪽에 훨씬 더 많은 비율로 돌아가다 보니 아티스트가 생활이 안 되는 지금 상황이 맞는 건가 싶은 고민도 있어요. 음악이든 미술이든 좋아서 하는 일이라도 결국 생업이고 이걸로 돈을 벌어서 내 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는데 그게 안 되거든요. 그래서 많은 창작자들이 생업을 위한 일을 따로 하고, 그걸 음악에 다시 투자하는 생활의 반복이거든요. 제 주변의 좋은 음악 하는 분들이 다 그래요. 최소 생활만 가능한 금액이 들어와도 좋을 텐데 그게 왜 구조적으로 안 될까. 생활이 녹록지 않다는 게 의아하죠.

얼마 전 네이버 온스테이지에서 ‘비밀수첩’ 공연을 했죠. 원래 가사에는 없는 내레이션이 무대에서 추가됐고요. “살아 움직여서 너에게 닿을 거야. 나쁜 사람들은 벌을 받게 만들 거야.”라는 내레이션이었어요. 상징적으로 느껴졌습니다.
그게 가사를 만들기 전의 초벌 글이었어요. 피해자인 저는 괴로워 잠을 못 이루는데, 제게 상처를 주고 죄를 지은 사람은 과연 이 시간에 불안이라도 할까 싶을 때 그게 너무 괘씸한 거죠. 사실 처음 글을 쓸 때 마음은 극단적으로 내가 이걸 유서로 남기면 당신이 죄를 깨달을까 그런 생각까지 간 거였어요. 온스테이지에 나가기 이틀 전에 공연을 했는데, 그때 곡 소개를 하면서 ‘이 노래는 세상을 잘 살아내고 싶은 사람의 노래이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야기입니다.’라고 처음으로 공개했어요. 이전에는 그 노래를 부를 때 힘들었는데, 그걸 설명하고 부르니까 너무 행복하더라고요. 그래서 온스테이지에서도 그렇게 내레이션을 추가했어요.

온스테이지는 가수 이설아를 알리는 데도, 오랜만의 무대였을 것 같습니다.
온스테이지는 각 무대마다 선정 위원의 글이 있더라고요. 그런데 글이 올라오고서야 알았는데 제 무대는 SBS 최다은 PD가 선정 위원으로 글을 써주셨더라고요. 무대 하고 와서도 전혀 몰랐거든요, 누가 제 음악을 추천하고 글을 쓰실지…. 너무 감사하죠. 글에서부터 이분이 내 음악을 많이 좋아하고 아껴주신다는 애정이 느껴졌어요. SNS에도 공유해주셨는데 ‘네이버 온스테이지 선정 위원이 되고 첫 번째로 선택한 아티스트입니다.’라고 해주셔서 신기하고 또 감동적이었어요.

노래 ‘그냥 있자’ 가사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아무것도 하지 말고 그냥 같이 있자.’라는 부분이 있습니다. 팬들이 이 노래를 ‘그냥 있자’가 아니라 ‘같이 있자’라고 부르기도 하던데. 그냥 혼자가 아니라 같이 있자는 게 중요한 거죠?
2017년에 제가 정신적으로 아주 불안했어요. 암울하고 무력하고, 그냥 누구라도 상관없으니까 곁에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같이 무언가를 하자’가 아니라 옆에 ‘그냥 있어주는 존재’가 필요했던 것 같아요. 내 슬픔을 같이 나누고 싶고, 저의 검은 것들을 같이 해소하고 싶었어요. 제가 앨범에 그 곡을 재작업할 때 코러스 부분을 동료들이 얹어줬어요. 제 노래 위에 동료들이 목소리를 얹어주는 게 ‘같이 있자’라고 위로해주는 것 같더라고요. 그 따뜻한 마음이 좋아서 그 곡의 친구들 목소리를 자주 돌려 들어요. 제가 힘들 때는 주변 사람들의 마음도 보이지 않았는데, 이제는 그런 따스함을 받아들일 수 있게 됐어요.

우울증 때문에 상담받는 내용을 SNS에 공유했어요. 힘들 때 상담을 받으신 건가요?
이번에 진짜 의지를 많이 했어요. 제가 치료받은 지 4년 정도 됐는데, 그때는 누구에게도 의지를 못했어요. 상담 선생님에게도 제 마음을 잘 못 기댔는데, 이번에 어려운 일을 겪으면서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었어요. 그때 친구가 집으로 저를 데리러 와서 같이 병원에 가줬어요. 친구들이 “밥 먹었어?”, “잠은 잤어?” 하면서 저를 상자에서 꺼내주고, 밥 챙겨먹으라고 죽이나 떡볶이 기프티콘을 보내주는 걸 보고 ‘사람들이 이렇게 나를 걱정하는구나.’ ‘같이 있고 싶은 마음을 표현해주는구나.’ 싶었어요. ‘그래, 나 이 사람들이 있으니까 문제없다.’ 그런 마음이 생기더라고요.

혼자 활동하는 여성 아티스트가 자기 목소리를 담대하게 내기가 쉽지 않아요.
음, 일단 여성에 대한 그런 편견이나 시각들이요. 저도 과거에는 둔하게 살다가 한 번씩 그런 편견이나 차별이 눈에 보이기 시작하니까 끝이 없더라고요. 그때마다 예민해지고, 또 제가 예민해져서 주변을 피곤하게 만드는 게 많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조심하고 서로 불편해할 수 있게 목소리를 내는 게 필요한 것 같아요. 저는 보이는 이미지가 어쩔 수 없이 연약하고 조용한 이미지가 있어서 어디에서 그런 말을 많이 들었어요. 실제로 만나면 제가 잘 웃고 밝은데 ‘설아는 안 그럴 것 같은데, 의외네.’라는 그런 말들. 인간을 한 사람의 분리된 인격으로 보는 게 아니라 단아한 여성성이라는 틀에 가둬서 보는…. 예를 들면, 저는 흡연을 하는데 예전에 흡연 사진을 제 SNS에 올렸다가 ‘담배 피우세요?’ 같은 댓글이나 메시지가 엄청 왔어요. 문득 ‘남자 아티스트가 올렸으면 이렇게 지적 안 했을 거잖아.’ 싶었어요. 그리고 혼자서 비즈니스 미팅 자리에 가거나 어떤 현장에 갔을 때 저를 그 자리에서 가장 어리고 귀여운 막내 여자아이로 구분 짓고 ‘너 진짜 귀엽다.’ 그런 말을 하기도 하고요. 그건 제 음악이나 저라는 사람이 아니라 외형을 평가하는 거잖아요. 회식 자리에서도 불편한 농담이나 스킨십 이런 것들이 일하려면 당연히 참아야 하는 것처럼 이야기되고, 제가 살아남기 위해선 강해져야만 했어요. 제가 엄청 강한 사람은 아니지만 그런 불필요한 일을 겪고 나면 ‘두고 봐, 당신이 아무리 그래도 나는 이 일을 끝까지 해낼 거야.’ 같은 오기도 생겼어요. 그 자리에 있고 싶어서 나를 해치면서까지 노력해왔던 것들이 지금 생각해 보면 참… 아프죠. 저뿐만 아니라 많은 여성들이 불합리한 환경 속에서 꿈을 포기해버리는 게 너무 안타까워요. 저는 그래서 꼭 살아남을 거예요. 절대 안 죽을 거예요. 계속 음악을 하고 내 목소리를 내고, 건강하고 좋은 몸과 정신으로 좋은 사람들과 함께 살아남을 거예요.

요즘은 어떤 것에 위로를 받으세요?
‘설탕이’요. 설탕이를 만난 게 12월인데 제게 다른 세계가 생겼어요. 새로운 지구가 하나 더 있었던 거예요! 우울한 시간이 없어지는 건 아니지만 그런 저를 이 친구가 너무 예쁜 눈으로 바라봐주니까 이겨낼 수 있어요. 이 친구는 산에서 구조한 아이인데, 저는 제가 얘를 살린 줄 알았는데 설탕이가 저를 살린 것 같아요.

한국의 다른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우선은 동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한 사람으로서 저는 제 자리에서 굴하지 않고 하고 싶은 말을 하면서 건강하고 선하게 제 삶을 지켜낼 거예요. 그렇게 걸어 나갈 거예요. 그런데 그 걸어 나가는 길에 같이 살고 있는 모든 여성들이 씩씩하게 옆에 서서 연대하고, 지지해주고, 같이 걷고 있으면 좋겠어요. 누구를 위해서도 아니고 자기 자신을 위해서 길을 걷는데, 나란히 다른 여자들이 있는 거죠. 그게 너무 단단해서 누구도 해칠 수 없게…. 자기 안위를 걱정하면서 자기를 사랑하면 타인도 자연스럽게 사랑하게 되는 것 같아요. 하고 싶은 일이 무엇이 됐든 굴하지 않고 그 자리에서 살아가고 있으면 저도 옆에 가고 있을 테니까.(웃음) 옆이나 뒤를 봤을 때 우리 다 같이 있으면 좋겠어요.


김송희
사진 백상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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