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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4 스페셜

코로나에 빼앗긴 대학로에도 봄은 올까

2020.04.23 | 해시태그 오아시스딜리버리, 따뜻함을 응원합니다

“기원 씨, 미안한데 이번 공연은 보러 못 갈 거 같아요.” “괜찮습니다. 요즘 걱정 많이 되시죠. 다음 공연은 미리 알려드릴게요.” 작년 5월 공연을 보고 ‘너무 좋았다’고 회식비까지 주고 가시면서, 다음 공연 일정을 꼭 알려달라고 하신 관객분과 며칠 전 통화한 내용이다. 지금 공연하는 뮤지컬 <스페셜 딜리버리>(1/31~3/29)로 우리 공연단은 전전긍긍하고 있다. (이 글이 실릴 때쯤은 모든 고민도 끝나고, 홀쭉한 지갑을 계산하고 있으리라)


첫 공연을 위해 무대 셋업 중이던 1월 19일, 한국에서 첫 확진자가 나올 때만 해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이하 코로나)이 이렇게 확산될지 짐작도 못 했다. 2월 19일, 31번째 확진자가 나왔을 때도 대학로와 우리 공연장은 괜찮으니, 공연 보라고 주위에 열심히 이야기했다. 내심 불안했지만, 설마 하면서 호기롭게 관람을 권했다. 그런데 3월 2일 ‘사회적 거리두기’에 대한 서울시 기자회견을 보면서 바로 ‘2주간 공연 멈춤’을 결정했다. 대학로에 확진자가 발생하지는 않았지만, 우리 공연장이 그 첫 번째 장소가 되는 부담감을 짊어질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러다 3월 17일 공연을 재개했다. 그 이유는 공연이 새롭게 만들어져 이제야 제대로 관객들과 만나고 있는데, ‘완전히 멈춤’ 했을 때 도저히 다시 공연할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들지 않아서였다. 하지만 객석에는 빈자리가 많았다. 그래도 우리 공연을 손꼽아 기다린 관객들이라 객석 반응은 정말 뜨거웠다. 마스크를 쓴 관객과 배우는 서로를 응원하며 함께 공연을 즐겼다.

대학로의 많은 공연들은 ‘긴 멈춤’을 선택하고 어쩔 수 없이 공연하기로 한 곳들은 때로는 관객 없는 온라인 중계를 시도하기도 한다. <스페셜 딜리버리>도 페이스북 라이브로 ‘관객과의 대화’를 진행하고, 주요 노래를 유튜브에 올리고, 공연 스토리로 웹툰을 만드는 등 온라인으로 관객과 만나기 위해 다양한 시도를 했다. 또한 MBC <놀면 뭐하니>에서는 ‘방구석 콘서트’로 다양한 공연을 하고, 베를린 필하모닉은 유료 ‘디지털 콘서트홀’을 전 세계에 한시적으로 무료 제공하고, 예술의전당이나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산실 등에서도 온라인 중계로 공연예술 프로그램을 선보이고 있다. 공연의 3대 요소 중 하나인 ‘관객’을 만나기 위한 다양한 노력은 계속되고 있다.

하지만 무대 위에서 펼쳐지는 공연을 직접 만나지 못하는 ‘온라인’은 화면만큼이나 차갑고 거리감이 느껴진다. 공연을 멈춘다고 했을 때, 사회 분위기가 그럴 수밖에 없어 동참했지만, 사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의 걱정은 ‘약속된 페이’였다. 기본적으로 공연 계약은 회 차당 진행하는데, ‘천재지변’ 같은 상황으로 멈춰 설 때는 참 난감한 상황에 빠진다. 대학로에 있는 많은 소극장 공연들은 투자를 받고 공연하는 게 아니라, 티켓 판매로 운영되기 때문에 관객들이 올 수 없는 상황에서는 대관료, 배우 및 스태프 인건비 등, 참 대책이 없다. 우리 공연은 예술위원회 지원금으로 일부 지급을 하고, 모든 관계자 간 논의를 통해 급여를 조정하며 해결됐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학로 극장은 누군가의 희생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러나 어떡하랴, ‘사회적 거리두기’로 학교도 대개의 종교시설도 멈췄는데, 극장으로 오라고 강요할 수는 없는 일이니.

코로나로 인해 공연과 레슨이 없어져서 생활고에 빠진 예술가들의 소식이 들려온다. 언제 다시 좋아질지 모르는 상황에서 바짝 말라버린 통장에 별 수 없이 방구석으로, 동굴로 들어가는 동료들을 찾아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재빨리 ‘10만 원’을 후원해주는 프로젝트를 하게 되었다. 조금은 따뜻해지도록 서로를 돕자는 것이다. 그리고 후원자로 참여하고 싶은 이들이 본인의 페이스북에 ‘#오아시스딜리버리’를 태그하는 게시글을 올리고, 자발적인 SNS 캠페인으로 넓혀나갔다. 독립영화감독, 오보에 연주자, 소설가, 예술대학원생, 인체 모델과 사진가, 스트리트 댄서, 미술이론가 등 다양한 예술가들에게 작은 따뜻함을 후원했다.

사람들을 만나고 함께해야 살아 움직이는 예술판은 코로나에게 봄을 빼앗긴 것처럼 찬바람이 불고 있다. 공연이 멈추면서 많은 배우와 연주자 그리고 무대감독, 조명감독, 분장사, 하우스매니저, 티켓 매니저 등은 망연자실한 실업자가 되었다. 하지만 겨울 눈밭 밑에 ‘봄’이 오고 새싹이 자라나듯 예술가들은 각자 온라인에서 관객들과 더 먼저 더 많이 만나 자신과 세상을 위해 조금씩 노력하고 있다. 갑자기 만개하는 벚꽃처럼 코로나로 빼앗긴 들판에 예술가들이 쏟아져나오는 ‘그날’이 어서 오기를 바라며, 오늘도 조마조마하게 공연을 올려본다.


권기원

육아하며, 공연하며, 오지랖 떨며 허둥지둥 ‘하루’를 보내는
문화기획자. 10년 전 주말마다 ‘빅판쌤’들과 발레할 때가
참 좋았다고 자주 회상하는 ‘라떼말야’ 아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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