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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6 인터뷰

제주도 해녀 언니들과 함께

2020.05.19 | 프로젝트 그룹 씨앗 김하영·김명지·정희선 작가 인터뷰

씨앗(Sea-Art)은 제주의 해양 쓰레기를 작품으로 재탄생시키는 업사이클링 아티스트 집단이다. 구성원 셋 다 대략 10년 차 제주도민으로, 작품 활동과 교육을 하다가 지난해 새 프로젝트에 나섰다. 해녀 언니들을 작가로 데뷔시키기로 한 것. 봄비 내리는 어느 날, 제주에서 만난 씨앗 아티스트들은 때론 눈물짓고 때론 함박웃음을 웃으며 하도리 해녀들과 함께 지낸 1년 동안의 이야기를 전해줬다.


세 명 모두 제주 이주민인데, 언제부터 제주에서 살게 됐나.
김하영 내가 2008년에 왔고, (정)희선 작가가 2011년, (김)명지 작가가 2012년에 왔다. 돌이켜보니 꽤 오래됐다.
김명지 10년쯤 살다 보니까 설렘만 가득해서 설레발치던 때와 다른 깊이를 갖게 된 것 같다. 제주라는 장소에 책임감을 느껴서 더 조심스럽다.

원래 알고 지내던 사이였나. 프로젝트 그룹 씨앗을 결성하게 된 계기가 뭔가.
김하영 기본적으로 자연에 애착이 있고, 자연과 관련한 작품 활동을 하는 사람들끼리 전시를 해보면 어떨까 싶어서 명지에게 제안했다. 툭 던진 말이었는데 “그럴까, 언니?” 하면서 시작됐다.
정희선 원래 두 분이 아는 사이였고 내가 명지 언니 사는 동네로 이사 가면서 알게 됐다.
김명지 처음엔 단발적인 전시로 시작했다. 2016년에 처음 공식적으로 <바다에서 놀다가>라는 작은 전시를 했다. 여기에서 살면서 우리가 정말 바다에서 놀다가 가기도 하고, “놀다 가세요.”라는 의미를 담았다. 작은 전시였는데 나름대로 반향이 있었다. 이대로 묻기 아깝다 싶어서 차츰차츰 하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 (웃음) 처음엔 넷이 함께하는 모임이었는데, 한 사람이 개인 사정으로 나가면서 셋이 됐다. 각자 생업을 하면서 프로젝트 형식으로 모여서 작업하고 있다.
정희선 세 사람의 이야기를 모으다 보니 작품에 사용하는 재료가 거의 바다에서 온 것이었다. 바다에서 물질하는 해녀도 작품의 50%를 차지할 만큼 주요한 소재다. ‘씨앗’이라는 모임 이름도 ‘시아트(Sea-Art)’에서 온 것이다.

세 사람의 작품 스타일은 어떻게 다른가.
김하영 바다라는 주제는 같은데 해석하는 방식과 소재에 차이가 있다. 작품의 방향에 따라 소재가 달라진다. 새활용(업사이클링)을 폭넓게 해석하고 있다.

지난해 11월엔 하도리 굴동 해녀들과 함께 프로젝트 전시 <바다 사람 예술>을 진행했다.
정희선 우리 작품이 아니라 해녀분들의 작업을 기반으로 숟가락 얹듯이 도와드렸다. 드로잉이나 구상을 돕는 식으로 그분들의 작업에 함께했다. 1년 동안 해녀분들이 물질하러 가기 전에 한두 시간씩 모여서 그림을 그리고 이름도 쓰며 여러 작품을 만들었다.
김명지 제주에서 하도 바다가 가장 깨끗하다는 자부심을 가진 분들이다. 해양 정화 작업을 하시는데, 건져 올린 쓰레기가 생태나 미술과 연결되더라. 그 쓰레기들을 미술적으로 해석할 수 있게 도움을 드렸다. 1년간 같이 작업하면서 그분들이 어릴 때 꿈을 다시 떠올리고 설레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해녀분들은 작가로 데뷔한 셈이고, 우리는 그분들을 통해 바다를 다른 방향으로 해석할 수 있었다.

1년이면 긴 시간이다. 작업하면서 많이 가까워졌겠다.
김명지 하영 언니가 해녀들에 관한 작업을 하면서 그분들과 먼저 관계를 맺고 있었다. 거기에 우리 둘이 합세한 건데, 언니 덕분에 처음부터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주셔서 수월했다.
정희선 셋 다 제주 토박이가 아니라 이주민이라 마음의 거리가 있게 마련인데, 다행이었다.
김명지 제주 방언이 워낙 독특하지 않나. 해녀분들의 말을 반은 못 알아들은 것 같다.(웃음)
김하영 해녀들 품으로 들어가면서 얻은 것이 많다. 제주 사람들이 타지 사람을 ‘육지 것’이라고 말할 때가 있다. 40~50년 함께 살다가도 어느 날 불쑥 인사 한마디 던지고 가버리는 사람을 많이 보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을 다 열지 못한다. 이번에 작업하면서 어떻게 작품이 될 수 있느냐고 하면서 일상 이야기를 풀어내시는데, 제삼자로 또 작가적 시각으로 보면 작품이 되기에 충분했다. 이번 전시에서 이런 부분을 잘 발견했다고 생각한다.

각자 기억에 남는 작품을 꼽아주기 바란다.
정희선 고향옥 선생님의 <동화속바다>가 기억에 남는다. 고향옥, 고영애 선생님이 같이 작업하셨는데, 왼쪽이 향옥 선생님이 그린 부분이다. 옆에선 막 떠들고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는데, 이분은 가만히 앉아 집중해 그리시더라. 그림도 참 예뻐서 가장 기억에 남는다.
김명지 <명>이라는 작품이 있다. 바다에서 건진 유목(流木)에 크레파스로 이름을 써달라고 했는데, 글씨를 못 쓰는 분들이 있다는 걸 간과했다. 하영 언니가 그 사실을 알아차리고 이름이 아니면 아무 그림이라도 그려달라고 부탁하니까 그제야 다들 그리기 시작하셨다. 그런데 한 분이 가만히 계시기에 여쭤보니 불에 탄 유목을 보고 옛날에 물질하러 간 사이에 집에 불이 나 어린 딸이 죽은 기억이 떠오른 거였다. 짧은 시간 내에 이야기를 끌어내야 해서 급한 마음이 있었는데 무척 죄송스러웠다. 그런데도 그 나무에 집을 하나 그려주셨다. 그분 작품이 많이 생각난다.
김명지 1년은 미술 작업만 생각하면 긴 것 같아도, 이분들을 알아가고 바다에 대한 생각을 공유하기엔 짧은 시간이었다. 물질하러 가실 때 배 타고 쫓아가서 배웅하고 정화 작업도 같이 하는 등 미술 작업을 끌어내기 위해 들인 시간만 몇 개월이었다. 끌어낸 쓰레기를 작품으로 어떻게 만들지 이야기도 나누고. 해녀분들이 우리에게 내어주신 품이 참 컸다.

전시장에서 작품을 감상하고 해녀들은 어떤 반응을 보였나.
김명지 서울에선 한 시간에서 한 시간 반 거리면 별것 아니지만, 제주에선 끝과 끝이라 먼 거리다. 하도(제주 동북부)에 살면서 서귀포 (제주 남부)에 발걸음을 한 번도 안 한 분들도 있을 정도로 먼 거리인데 전시회를 한다니까 개인적으로 버스를 타고 새벽부터 오셨다. 1년의 기록을 담은 영상을 보고 눈물지으시다가 방명록을 써달라니까 어떻게 글을 쓰냐고 하시더라. 그러다가 ‘누구누구 작가’라고 쓰고는 눈물을 왈칵 쏟으셨다. 사실 그 1년이 굉장히 힘든 시간이었다. 새벽 3시에 일어나서 물질하시는 데 쫓아다니고…. 그분들의 눈물과 그날 보여주신 모습으로 다 보상받았다.
정희선 일반 관람객도 많이 좋아하셨다. 진심은 전달되는 것 같다. 몇 번을 보고도 또 오시고 다른 분들을 데려오시기도 했다. 기록 영상이 20분짜리인데, 열이면 열 모두 끝까지 보셨다. 이제까지 본 전시 중 최고라고 말씀해주신 분도 있다. 작품 보면서 우는 사람도 많았는데, 처음엔 왜 우나 싶어 당황했었다.(웃음)
김하영 해녀분들도 우셨다. 하도리는 유일한 해녀 합창단이 있는 곳인데, ‘나는 해녀이다’ 라는 노래가 있다. 전시를 본 뒤 모셔다드리는데 이 노래를 합창하시더라. 노래하시다가 “우리 여자지? 할망 아니고 여자지?” 하시는 거다. 살랑거리는 스카프도 하고 더없이 예쁘게 꾸미고 오셔서는. 그러다가 한 분이 “우리 작가지?” 하시곤 ‘나는 해녀이다. 나는 소녀다. 나는 엄마다.’라는 가사를 노래하시다가 막 우시더라. 옛날엔 해녀를 비천한 직업으로 여겨 농사짓는다고 속이는 일도 비일비재했다고 한다. 그래서 작가가 됐다는 사실이 더욱 기분이 좋으셨던 것 같다. 서로 작가라고 부르면서 식사하러 가셨는데, 뭔가 의미 있는 걸 찾아드린 것 같아서 마음이 먹먹했다.

갈수록 제주의 환경도 달라지고 있다. 처음 왔을 때와 지금이 다를 텐데, 변화를 체감하나.
정희선 하늘이 다르다. 2012년 5월에 왔는데 하늘은 이런 거구나 싶을 만큼 봄 하늘이 맑았다. 봄에 항상 예쁜 하늘을 보며 스쿠터 타고 다니면서 놀았는데, 몇 년 전부턴 하늘이 뿌옇고 알레르기성 비염도 다시 시작됐다. 서울에서 면역 치료를 받을 만큼 힘들었다가 제주 와서 증상이 싹 사라졌었는데, 다시 도져서 병원에 다니고 있다. 공기청정기도 샀고.
김명지 바다에서 자주 놀며 작업할 재료를 찾는데 조개 종류가 달라졌다. 해류에 쓸려 오는 종이 정해져 있었는데, 못 보던 아이들이 생기고 늘 보이던 아이들이 보이지 않는다. 해가 갈수록 다르다. 해수 온도나 여러 가지가 변하고 있다는 걸 실감한다.
김하영 딸아이와 새를 조사하고 있는데 종이 계속 바뀐다. 오던 아이들이 안 오고, 안 오던 아이들이 와서 정착하기도 하고. 10년 사이에 아주 많은 것이 바뀌었다. 가속도가 붙으면 앞으로 10년 동안은 얼마나 더 바뀔까 싶어 걱정이다. 개발도 마찬가지다. 제주의 원래 집들은 담보다 낮고 소박한 형태다. 그런데 고층 건물이 생기고, 심지어 한라산을 가리는 건물도 많다. 예컨대, 안도 다다오의 건축물이 성산일출봉을 가리는데, 예술이란 것이 자연 앞에서 교만하다고 생각되기도 한다. 이 심각한 문제를 왜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지 책망이 될 때도 있다.

제주의 미래 환경이 어떻기를 바라나. 씨앗의 활동이 목표하는 바는 무언가.
김명지 내가 바란다고 뭐가 변할까 싶지만, 우리의 작업으로 많은 사람에게 환경문제를 한 번씩 일깨울 수 있었으면 좋겠다. 미술과 환경을 접목한 교육도 진행하고 있는데, 우리가 하는 일이 미약하지만 모이면 변화가 생길 거라고 믿는다.
정희선 제주에서 방과후 교육을 했는데, 아이들이 색종이를 쓰고 남은 부분을 다 버리고 새것을 달라고 해서 충격을 받았었다. 그러다 업사이클링 교육을 하면서 쓰레기를 재료로 생각하게 되는 것이 좋았다. 거부감을 느끼던 아이들이 변하는 모습을 보니 잘될 것 같다.
김하영 제주에도 그레타 툰베리 같은 환경 인식을 가진 아이들이 많다. 생태와 관련해 몇몇 가족이 탐방을 다니고 활동하는데, 제주가 지난해와 비교해 달라진 점에 대한 데이터를 제시하며 나를 비롯한 부모들에게 “기성세대 들으세요.” 하고 비판하기도 한다. 어른으로서 책임감을 느끼고, 효과가 있을지 모르지만 무언가 하는 게 중요하니까 기록이나마 하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보다 미래의 주인공인 아이들이 더 필사적이라 많이 미안하지만, 하지 않을 때보단 죄책감이 덜하다. 우리도 최대한 각자 작품 활동과 교육을 해가면서 작게나마 변화를 만들고 싶다.


·사진 양수복
작품사진제공 프로젝트 그룹 씨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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