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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6 스페셜

넷플릭스 왓챠에서 뭐 봐?

2020.05.11 | 아주 사적인 OTT 큐레이션

<부부의 세계>와 <슬기로운 의사생활> 외에도 볼 건 많다. 다만 선택지가 너무 많은 우주 속에서 피곤한 우리 마음은 자주 심란해진다. 하염없이 썸네일 사이를 누비다 보면, 손가락은 결국 늘 보던 콘텐츠로 향한다. 바야흐로 대다수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 하나쯤은 구독하는 시대. 매체와 장르의 경계에 아랑곳 않는 잡식 취향의 소비자가 된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시청의 허기와 갈증 또한 키워간다. 매일 무언가를 보고 싶은 콘텐츠 중독을 달래줄 아주 소소하고 사적인 추천 리스트를 제안한다.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에서 진즉부터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으나, 아직까지는 그 유명세가 조금 덜한 작품들이다.


<프라이빗 라이프>, 장편 극영화
넷플릭스 오리지널

감독 타마라 젠킨스
출연 폴 지아마티, 캐서린 한
제작연도 2017년

<결혼 이야기> 전에 <프라이빗 라이프>가 있었다. 인공수정을 통해 2세를 갖기 위해 노력 중인 레이첼 (캐서린 한)과 리처드(폴 지아마티) 부부의 생활을 다루는 <프라이빗 라이프>는 뉴요커 영화가 전시하는 세련된 생활양식과 날렵한 대화의 미덕을 잘 갖춘 영화다. 지성과 예술적 소양, 경제력까지 두루 갖춘 남부러울 것 없는 중산층 부부의 풍경은, 이들이 번번이 체외수정에 실패하면서 신체와 감정의 영역을 오가는 불편한 체험의 장이 된다. 특히 난자 기증자를 찾기 시작한 부부가 건강한 난자를 기증해줄 것으로 기대되는(!) 수양조카 세이디(카일리 카터)와 한집에 살기 시작하면서 벌어지는 일들이 난감 그 자체다. 따뜻하면서 영리한 영화인 <프라이빗 라이프>는 세 사람의 동거를 어느새 중년 부부와 대학생 자녀의 일상처럼 그리기 시작하면서, 부부의 임신 프로젝트 이면에 담긴 각 세대의 성장통으로 관심을 넓혀간다. 조카의 난자를 빌려 부모가 되려는 부부와, 호르몬제 투여 후 예측불허의 상태로 날뛰기 시작하는 젊은 힙스터의 동거는 그렇게 작가주의 영화와 인스타그램 시대의 이미지를 포섭하는 다채로운 뉘앙스로 결혼 생활의 기쁨과 슬픔을 말한다. 보통의 도시인을 적절한 유머와 애수 속에서 묘사하는 타마라 젠킨스 감독의 화술은 병 걸린 아버지를 돌보는 남매(필립 세이무어 호프만, 로라 리니)의 좌충우돌을 그린 전작 <세비지스>에서도 빛났던 장기다. 삶의 고약한 농간에 어쩐지 점점 더 끌려가고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찾아온다면, 여기 놓인 어느 뉴요커 부부의 가장 사적인 삶을 들여다보면서 위로받을지도 모른다.

<인페르노 속으로>, 장편 다큐멘터리
넷플릭스 오리지널

감독 베르너 헤어조크
출연 베르너 헤어조크,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제작연도 2016년

넷플릭스에서 이런 경험을 하기란 쉽지 않다. 베르너 헤어조크라서 가능한 시도와 정념으로, <인페르노 속으로: 마그마의 세계>는 불에 매혹된 인간 정신의 수수께끼를 풀어가는 다큐멘터리다. 영화의 첫 장면부터 작품 특유의 분위기를 어렵지 않게 감지할 수 있다. 어둠 속에서 악마의 눈빛처럼 이글거리며 끊임없이 요동치는 분화구 속 용암이 클로즈업되고, 웅장한 성가가 흘러나온다. 이윽고 헬리콥터 숏으로 인도네시아의 활화산 절벽 위를 아슬아슬하게 내려다보고 있는 헤어조크 감독과 화산학자 클라이브 오펜하이머 일행의 모습이 점처럼 보인다. 그러니까 이건 살아 있는 화산을 눈으로 직접 확인한 뒤, 원시적 불과 인간이 관계 맺음한 방식을 추적하는 헤어조크의 사회학이자 신비학이다. 이 무모한 감독은 자기 주변으로 뜨거운 재가 이리저리 튀어오르는 분화구 앞에서도 유유히 카메라를 켜놓고 일행과 대화를 나눈다. 그의 기행에 가장 큰 영감을 준 건 지질학자이자 화산학자인 모리스 크라프트, 카티아 크라프트 부부다. <인페르노 속으로>가 공개한 크라프트 부부의 생전 모습은 헤어조크가 어째서 이 위험을 무릅쓰고 자신 또한 불의 세계에 천착하게 되었는지를 단번에 설득시킬 만큼 아름다움과 경외심을 불러일으킨다. 아스라한 필름 촬영본에서 부부는 용암이 흐르는 화산지대를 마치 넋이 나간 사람처럼 유유히 누비고 있다. 자칫 발을 잘못 디디면 곧바로 온몸이 녹을 수도 있는 거리에서 불을 촬영하고 불을 응시한다. 그리고 영화는 라흐마니노프, 비발디, 바그너의 성가 속에서 이 미친 행위가 인간의 존재론을 설명할 수도 있는 무엇이라고 말하는 듯하다. 만약 당신이 잠시 속세와 멀어지고 싶다면, 기꺼이 헤어조크가 그렇게 도와줄 것이다. 거대한 불의 지배 아래 살아온 인간의 신비로운 생태학은 겸손과 경외, 그리고 광기와 자유의 감각을 일깨운다.

<어그레시브 레츠코>, 애니메이션 시리즈
넷플릭스 배급

감독 라레코
목소리 출연 카오립, 이노우에 리나, 가토 신고
제작연도 2016년

넷플릭스를 구독하는 워라밸 시대의 직장인이라면 일본 애니메이션 <어그레시브 레츠코>는 특별히 타율이 높은 콘텐츠다. 회사 경리과에서 일하는 스물다섯 살의 오피스레이디 레츠코는 평소 온화한 표정과 태도를 유지하는 레서팬더. 레츠코가 갓 입사한 회사를 살펴보면 부장은 돼지, 동기는 하이에나와 사막여우, 후배는 가젤, 동경하는 여자 선배는 고릴라이다. 인생은 실전, 사회는 정글이라는 만국 공통의 공감대를 <어그레시브 레츠코>는 이렇게 은유가 아닌 현실로 풀어버렸다. 동물 캐릭터가 작품의 콘셉트에 가깝다면, 본론은 제목이 더 정확히 말해주고 있다. 사회적으로 상냥한 여성성을 교육받았으나 실은 그 안에 대단히 폭발적인 스피릿, 즉 ‘어그레시브 버전’을 내재하고 있는 주인공의 웃지 못할 이중생활기가 <어그레시브 레츠코>의 진짜 묘미다. 갓 직장 생활을 시작한 그는 성차별적인 발언을 일삼는 부장 앞에서 잔뜩 열이 받는데, 하필 아부 떠는 계장까지 나타나 부장이 계장의 일까지 레츠코에게 떠넘겨버린다. 그럴 때면 우리는 어떻게 내적 분노와 눈물을 다스려야 하는가. 레츠코는 조용히 회사 화장실로 가서 문을 걸어 잠그고, 갑자기 죽음의 헤비메탈을 외쳐 부르기 시작한다. 그녀의 헤비메탈은 이렇게 종종 회사 화장실에서, 창고에서, 퇴근길 노래방에서 화면을 찢고 스피커를 깨부술 듯 넘쳐흐른다.(레츠코가 헤비메탈을 부를 때의 목소리는 감독 자신이다.) 애니메이션만이 할 수 있는 과장된 만화 연출의 승리라 할 만하다. 물론 그녀의 폭주적 분노는 대개 내면적인 것으로 처리될 뿐, 현실에서 그녀는 여전히 성실하고 조용한 직원이다. 그러니까 실사였다면, 이 젊은 여성 직원의 수난기에 훨씬 더 많은 고통과 스트레스, 그리고 사회의 냉정함이 묻어났겠지만 다행스럽게도 애니메이티드 버전은 뮤지컬 코미디 정도로 명명이 가능해진다.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 드라마
왓챠플레이 배급, 일본 TBS

각본 오쿠데라 사토코, 시미즈 유카코
출연 요시타카 유리코, 무카이 오사무
제작연도 2019년

순전히 제목에 이끌려 클릭했다.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라니. 하고 싶습니다, 도 아니고 합니다, 가 보여주는 가벼운 선포의 태도가 마음에 들었다. 실제 드라마의 내용도 그랬다. IT 회사의 디렉터인 30대 여성 히가시야마 유이(요시타카 유리코)는 칼같이 정시에 퇴근하는 대신, 업무 시간 중 효율을 극대화해 생산성을 높인다는 철학을 고수하는 인물. 당연한 정시퇴근에 무슨 철학씩이나 가져야 하나 싶지만, 유이를 동경하는 후배들조차 눈치가 보여 선뜻 정시퇴근을 실행하지 못하는 게 드라마 속 현실이다. 그런 와중에도 유이는 상사의 핀잔에 눈 하나 깜짝 않고 퇴근을 향한 자신의 의지를 알린다. 스스로를 특별히 낮추지도 않고, 그렇다고 대단한 운동가도 아닌 채로 무심하게 자기 생각을 던지는 직장인의 태도가 은근히 시원한 쾌감을 준다. 그는 딱히 수완을 부려 누군가를 설득할 생각도 없다. 그저 시간이 되면 자리를 정리하고 엘리베이터로 향할 뿐이다. 그런 그가 정시퇴근 후 매일 부리나케 달려가는 곳은 동네의 한 식당. 할인 시간이 끝나기 전에 맥주 한 잔을 들이켜는 게 삶의 낙인 주인공의 하루는 심심한 만큼 건강하고 단단해서 보는 이를 안심시킨다. 결과적으로 일본 드라마 <저, 정시에 퇴근합니다>는 배우 요시타카 유리코의 매력과 일본 방송계의 만년 인기 콘텐츠인 전문직 오피스 드라마의 현재를 알게 해준다. 현실의 공감대를 형성하면서도, 현실의 긴장을 탁 놓게 하는 노하우가 거기에 있다. 또 하나의 매력은 러브라인의 강박이 없다는 점일 테다. “의무감에 남친 캐릭터 하나 만들어놓은 것 같은 무색무취의 심심함”이라 평가될 정도로 연애와 결혼은 때가 되면 퇴근해야 할 직장처럼 삶의 지극한 일부일 뿐이다. 그리고 유이는 또 하나의 시간을 쪼개 맛있는 음식과 맥주를 들이켠다.

<러브>, 장편 극영화
왓챠플레이 배급

감독 가스파 노에
출연 칼 글루스맨, 아오미 뮈요크
제작연도 2015년

선정 속의 순정, 이 <러브>를 만든다. 2016년 전주국제영화제에서 가스파 노에 감독의 내한과 함께 공개된 영화 <러브>는 상영 당시 영화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포르노그라피적 묘사로 화제가 되었다. 수위가 높을 뿐 아니라 심지어 이를 3D로 상영했기 때문이다. 영화의 스토리는 단순하다. 어린 아내, 막 걸음마를 뗀 아이와 가정을 이룬 남자 머피(칼 글루스맨)는 어느 날 이른 아침에 잠에서 깨 한때 연인이었던 일렉트라의 실종을 알리는 전화 한 통을 받는다. 영화는, 사라진 여자의 안녕을 간절히 바라는 머피가 비 내리는 아파트에 남아서 떠올리는 지난 기억들을 파편적으로 따라간다. 그 기억이란 사랑과 마약, 그리고 섹스에 취해 방종으로 일관한 나날들을 가리킨다. 가진 것이라곤 젊음과 욕구뿐이었던 연인은 서로를 던지고 부숴가며 사랑을 했었다. 이 구역에서 가스파 노에의 영화는 그저 감각의 총체를 기록하기 위해서만 존재한다. 지난한 반복도 마다 않으며 두 연인이 몸을 섞었던 침대와 걸었던 거리와 취해 정신을 잃었던 클럽을 배회하는 영화다. 그러나 그 기쁨과 무의미의 장면들이 스크린 타임과 러닝 타임을 교차하며 켜켜이 쌓이는 효과는 생각보다 힘이 세다. 사랑의 환희가 피로와 실망감으로 이어지기까지,<러브>는 어느새 우리가 겪었던 시간과 혹은 겪지 못한 시간까지 아우르는 노스탤지어를 불러낸다. 가스파 노에 감독은 자주 부정적으로 풀이되곤 하는 ‘감상성’을 생의 어느 때 기꺼이 잠길 수밖에 없는 아름다운 인간적 조건으로 보고 거리낌 없이 푹 빠져든다. 녹음이 우거진 초저녁 파리의 공원과, 비 오는 거리를 고스란히 감각하게 하는 후반부의 롱테이크 대화 장면은 극장이 아닌 집에서도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의 환각을 부른다.


김소미
영화 주간지 <씨네21> 기자.
순간을 발견하고 더 정확히 쓰기 위해 노력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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