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이지상단으로이동
신간 · 과월호 홈 / 매거진 / 신간 · 과월호
링크복사
링크가 복사되었습니다.
글자확대
글자축소

No.228 컬쳐

6월의 콘텐츠 - 음악 gong <염증나무>

2020.06.18 | 긴 세월을 지나 발하는 빛

[MUSIC]
<gong - 염증나무>

30대 초중반, 혹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힙합 음악 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0CD’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다이나믹 듀오와 협업한 것으로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 개성 강한 스타일과 깊이 있는 가사로 이름을 알린 0CD는, 그러다 자취를 감췄다. 직접 프로듀싱도 하고 보컬도 랩도 다 하는, 한국 포크 음악부터 랩 음악까지 푹 넓게 영향을 받은 듯한 싱어송라이터는 그렇게 사라지나 싶었다.

이후 2019년 7월, gong(공)이라는 음악가가 등장한다. ‘안개(Haze)’라는 싱글을 발표한 그는 이후 웹진 힙합플레이야 콘텐츠의 주제가인 ‘내일의 숙취(부제: 실망하지마)’를 공개했고, 11월에는 데뷔 후 첫 EP인 를 발표한다. 0CD와 gong이 같은 인물이라는 것은 여러 정황을 통해 얼추 알 수 있었다. 8년 정도의 공백을 깬 등장은 다소 의외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재시작 아닌 재시작’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음악가의 진짜 첫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든 이 음악가는 애써 현재 자신의 모습을 가꾸거나 감추려 들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되, 과거 사람들이 0CD를 좋아했던 이유를 어느 정도 간직하면서도 2020년에 발표했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gong 본인도, 듣는 사람도 이번 앨범 <염증나무>를 통해 그의 곪아 있는 여러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라이브클립으로 공개된 ‘기도(Prayer)’나 약간은 우악스러운 ‘낡은 뱅뱅(OB)’보다 나머지 두 곡인 ‘염증(Infection)’과 ‘쿨쿨(ZZZ)’이 훨씬 좋다. 힘을 빼고 가면서도 gong이라는 음악가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공백기만큼 잘 연마된 음악들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며, 쓰이는 악기도 직접 연주하는 gong의 앨범은 특정 시기의 유행을 의식하지 않는다. 과거 0CD가 힘 있는 곡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매우 애쓰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gong은 다른 방법으로 본인 이야기를 풀 줄 안다.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공개된 ‘안개(Haze)’의 강렬함보다는 다양한 장르가 자연스레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서울 부띠크’의 아름다움이, ‘네게 다가갈까’나 ‘비온다구(Rain)’가 지닌 감성이 좋다. 잘 연마된 멜로디 라인과 섬세한 편곡 위, gong의 거칠지만 여전히 순수한 목소리가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아주 긴 시간을, 그러니까 2006년부터 음악을 시작해 이듬해 정규 앨범을 내고 2008년 아메바컬쳐에 합류하여 보냈던 잠깐 이후의 공백까지 포함하면, 정말 긴 시간을 그는 혼자 보냈다. 그래서 이만큼 외로움에 사무치는, 절절한 곡이 나오는 것 아닐까. 최근의 랩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낡은 뱅뱅(OB)’ 같은 곡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염증(Infection)’이나 ‘쿨쿨(ZZZ)’ 같은 곡을 추천하고 싶다. 다시 시작했지만, 더 늦게 빛을 보면 어떠한가. 좋은 음악은 세상에 나온 이상, 언젠가는 알려지고 기억될 것이다.


블럭 (박준우) by 포크라노스
포크라노스는 현재의 가장 새롭고 신선한 음악들을 소개하며,
멋진 음악을 실시간으로 공유하는 큐레이터이자 크리에이터입니다.


1 2 

다른 매거진

No.330

2024.12.02 발매


올해의 나만의 000

No.330

2030.03.02 발매


올해의 나만의 000

No.329

2024.11.04 발매


요리라는 영역, 맛이라는 전개

《빅이슈》 329호 요리라는 영역, 맛이라는 전게

No.328B

2027.05.02 발매


사주 보는 사람들, 셀프 캐릭터 해석의 시대

《빅이슈》 328호 사주 보는 사람들, 셀프 캐릭터 해석의 시대

< 이전 다음 >
빅이슈의 뉴스레터를 구독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