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
<gong - 염증나무>
30대 초중반, 혹은 그보다 나이가 많은 힙합 음악 애호가라면 한 번쯤은 ‘0CD’라는 이름을 들어봤을 것이다. 다이나믹 듀오와 협업한 것으로 가장 많이 알려졌지만, 당시 개성 강한 스타일과 깊이 있는 가사로 이름을 알린 0CD는, 그러다 자취를 감췄다. 직접 프로듀싱도 하고 보컬도 랩도 다 하는, 한국 포크 음악부터 랩 음악까지 푹 넓게 영향을 받은 듯한 싱어송라이터는 그렇게 사라지나 싶었다.
이후 2019년 7월, gong(공)이라는 음악가가 등장한다. ‘안개(Haze)’라는 싱글을 발표한 그는 이후 웹진 힙합플레이야 콘텐츠의 주제가인 ‘내일의 숙취(부제: 실망하지마)’를 공개했고, 11월에는 데뷔 후 첫 EP인 를 발표한다. 0CD와 gong이 같은 인물이라는 것은 여러 정황을 통해 얼추 알 수 있었다. 8년 정도의 공백을 깬 등장은 다소 의외이기도 하고 누군가에게는 생소하기도 하지만, 어쨌든 그는 ‘재시작 아닌 재시작’을 하게 된다. 어쩌면 이 음악가의 진짜 첫 시작일지도 모르겠다.
나이가 든 이 음악가는 애써 현재 자신의 모습을 가꾸거나 감추려 들지 않는다. 그의 음악은 있는 그대로의 자신을 보여주되, 과거 사람들이 0CD를 좋아했던 이유를 어느 정도 간직하면서도 2020년에 발표했을 때 부끄럽지 않을 정도의 세련됨을 갖추고 있다. gong 본인도, 듣는 사람도 이번 앨범 <염증나무>를 통해 그의 곪아 있는 여러 감정을 마주하게 된다.
개인적으로는 라이브클립으로 공개된 ‘기도(Prayer)’나 약간은 우악스러운 ‘낡은 뱅뱅(OB)’보다 나머지 두 곡인 ‘염증(Infection)’과 ‘쿨쿨(ZZZ)’이 훨씬 좋다. 힘을 빼고 가면서도 gong이라는 음악가만이 지니고 있는 매력이 확실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공백기만큼 잘 연마된 음악들
모든 곡을 작사 작곡하며, 쓰이는 악기도 직접 연주하는 gong의 앨범은 특정 시기의 유행을 의식하지 않는다. 과거 0CD가 힘 있는 곡을 통해 무언가를 전달하기 위해 매우 애쓰는 사람이었다면, 지금의 gong은 다른 방법으로 본인 이야기를 풀 줄 안다. 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선공개된 ‘안개(Haze)’의 강렬함보다는 다양한 장르가 자연스레 결합되어 있으면서도 부담 없이 접할 수 있는 ‘서울 부띠크’의 아름다움이, ‘네게 다가갈까’나 ‘비온다구(Rain)’가 지닌 감성이 좋다. 잘 연마된 멜로디 라인과 섬세한 편곡 위, gong의 거칠지만 여전히 순수한 목소리가 그의 음악에 귀를 기울이게 만든다.
아주 긴 시간을, 그러니까 2006년부터 음악을 시작해 이듬해 정규 앨범을 내고 2008년 아메바컬쳐에 합류하여 보냈던 잠깐 이후의 공백까지 포함하면, 정말 긴 시간을 그는 혼자 보냈다. 그래서 이만큼 외로움에 사무치는, 절절한 곡이 나오는 것 아닐까. 최근의 랩 음악을 좋아하는 이들에게는 ‘낡은 뱅뱅(OB)’ 같은 곡이 더 흥미로울 수도 있겠지만, 다양한 장르를 좋아하는 이들에게 ‘염증(Infection)’이나 ‘쿨쿨(ZZZ)’ 같은 곡을 추천하고 싶다. 다시 시작했지만, 더 늦게 빛을 보면 어떠한가. 좋은 음악은 세상에 나온 이상, 언젠가는 알려지고 기억될 것이다.
글 블럭 (박준우) by 포크라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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