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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29 스페셜

5일 제로 웨이스트 도전기

2020.06.25 | 변명은 그만, 일상 속 녹색실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면서 물건을 구매하는 건 가능할까? 사 먹는 건 가능할까? 아니, 살아갈 수 있을까? 모두가 ‘맥시멀리스트’라고 인정하는 나는 며칠 전 집 안 대청소를 했다. 제일 큰 종량제봉투(100리터) 두 개 반이 우리 집 쓰레기로 나왔다. 제로 웨이스트에 도전하면서 지나간 쓰레기들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 쓰레기 배출 ‘0’엔 실패했지만, 덜 사고 덜 버리는 습관이 제로 웨이스트로 가는 길이라는 점은 깨달았다.

1일차 제로 웨이스트 그거 어떻게 하는 건데
일어나자마자 무심코 캡슐커피를 내렸다. 얼마 전 구매한 커피머신은 커피 한 잔당 하나의 캡슐 쓰레기가 나온다. 커피머신 장만 이후 단 한 번도 종이필터에 원두를 내려 먹지 않았다.
하지 말아야 할 것들만 생각났다. 포장재가 많이 나오는 1인분용 채소나 고기는 지양해야 했다. 사실 나는 최근 5년간 직접 밥을 지은 역사가 없다. 한국인이 쓴 일회용 컵을 쌓으면 달에 닿을 길이라고 하던가. 내가 쓴 즉석밥 용기들이 떠올랐다. 일부는 길고양이 밥그릇으로 써왔지만 그마저도 지저분해지면 ‘재사용했다’고 안심하면서 버렸다.
한구석에서 먼지만 쌓여가던 텀블러를 꺼냈다. 카페 사장님이 일회용 컵만큼의 분량이 다 들어가긴 힘들 것 같다고 하셨다. 얼음을 조금만 넣고 뚜껑을 닫았다. ‘1리터 커피’ 광고가 생각났다. 그 정도 크기의 텀블러를 가지고 다닐 의지가 나에게 있을까?
피자가 먹고 싶었지만, 둥글넓적한 음식을 담을 ‘락앤락’은 없었다. 직접 가서 먹으면 쓰레기가 안 나올까. 친구들과 고깃집에 갔다. 안심도 잠시, 물수건은 삶아서 재사용하는 형태였지만 그걸 감싸고 있는 건 비닐이었다. 물도 종이컵에 마셔야 했다. 바쁜 식당에서 ‘제로 웨이스트’를 하긴 너무 어려워 보였다.

2일차 비누 하나로 온몸 씻기
환경보호에 관심이 많은 이들에게 조언을 얻었다. 샴푸 등에서 나오는 계면활성제를 줄일 순 없을까. “비누로 머리를 감아도 돼. 린스 대신 식초를 사용해도 좋고.” 다만 친구는 웬만해선 머리를 감을 정도의 거품이 나지 않는다면서, 비누를 머리카락에 마구 문질러야 한다고 했다. 물과 식초를 섞어 머리를 헹궈봤지만 영 어색했다. 빗질을 하다 머리가 확 엉켜버렸다.
캡슐커피를 보이지 않는 곳으로 치우고, 전통 방식(?)으로 컵에 필터를 얹고 커피가루를 넣었다. 주전자로 물을 붓는데, 원하는 양이 나올 때까지 3분이 넘게 걸렸다. 기계로는 15초 남짓 걸리던 일이다. 전날부터 먹고 싶었던 피자를 먹기로 했다. 집 근처 피자집은 대부분 배달만 가능해, 집에서 30분 정도 떨어진 곳을 찾았다. 계산 후 매출전표와 포인트 할인 영수증을 따로 받았다. 대기업에선 전자영수증을 발행하고 있지만 소규모 가게에선 어떻게 해야 할까. 배달이 아니어서 좀 안심할 수 있다고 생각했는데 물티슈와 콜라 페트병이 ‘쓰레기’다. 손님이 많은 곳이 아닌 이상 음료 디스펜서를 마련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물티슈 대신 비누로 손을 씻었다.

3일차 한 끼에 이렇게 비닐이 많이 나오다니
알고 보니 식초를 너무 적게 넣으면 머리가 그대로 ‘떡이 진다’고 한다. 친구의 추가 조언에 따라 식초 양을 늘렸더니 머리카락이 덜 뻣뻣한 것 같다. 같은 마스크를 이틀째 썼다. 면 마스크를 쓰고 싶지만 코로나 바이러스로부터 안전한지 잘 모르겠다. 슬슬 날이 더운데, 하나의 마스크를 얼마나 오래 쓸 수 있을까. 최대한 깨끗이 말려 재사용을 했다. 얼핏 금방 썩어 사라질 것같이 생겼지만 마스크 포장재와 코 부분의 지지대는 썩지 않는다고 한다.
계속 외식을 할 수 없어 이날은 ‘냉장고 파먹기’를 했다. 지난주 사다둔 고기와 즉석냉면이 있었는데, 한 끼니에 비닐 포장 두 개와 일반쓰레기 한 개, 고기를 포장한 랩이 나왔다. 제로 웨이스트를 위해서는 매번 정육점과 시장을 찾아야 할까.
‘금자의 쓰레기 덕질’이라는 유튜브 채널에서 힌트를 얻었다. 이탈리아의 ‘까판노리(capannori)’에선, 도시 전체가 정책적으로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하고 있다. 퇴비화와 재활용이 30여 개의 일자리를 만들 때, 한걸음 나아간 ‘재사용’ 산업으론 290여 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제로 웨이스트는 지구에만 좋은 일이 아니라, 인간에게도 이로운 일이었다.

4일차 구겨진 종이컵
환경의 날이다. 재사용이 되는 화장솜을 주문했다. 테이프나 플라스틱 포장재 없이 배송된다고 해서 더욱 좋았다. ‘리유즈 화장솜’ 마니아인 친구는 스무 개를 사서, 비누로 세탁해 사용하고 있다고. 하지만 기념일에 걸맞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안과에 방문했다가 정수기 물을 마시려는데, 딱 종이컵이 들어갈 정도의 작은 정수기라 텀블러로 물을 받는 것이 불가능했다. 목마른 제로 웨이스트 실천자가 병입생수를 살 수는 없었다. 페트병과 종이컵, 뭘 골라야 할까. 결국 종이컵을 쓴 뒤 집까지 가져왔다. 나도 모르게 ‘버리는 물건’으로 생각한 탓에 물 몇 잔을 마시자마자 컵을 구겨버렸는데, 음식을 만들다가 계량이 필요할 때 사용해보기로 했다.

비닐봉지 대신 천 주머니를 챙겨 편의점에 갔다. 라면과 즉석밥, 건전지, 맥주…. 포장을 피할 길이 없었다. 특히 라면은 낱개포장이 없어 5개짜리 묶음을 살 수밖에 없었다. 5개를 묶기 위해 또 포장이 만들어졌다. 환경부에 따르면 ‘1+1’ 묶음 포장이 7월 1일부터 금지된다고 한다. 마트에 박스포장 테이프가 없어져 난처한 사람들이 부랴부랴 테이프를 구매했다는 이야기가 떠올랐다. 세상은 더 빠르고 복잡해지는데, ‘제로 웨이스트’로 가는 길은 점점 더 어려워지기만 하는 것 같다.

5일차 쓰레기 ‘0’으로 살 수 있을까
‘무엇을 쓰레기로 규정할 것인가?’는 지난 5일간 가장 자주 했던 질문이었다. 텃밭에서 따 온 상추를 준다던 친구는 “꽁다리도 못 떼고 먹어서 어쩌느냐”고 말했고, 과연 상추 꽁다리가 ‘웨이스트’에 해당하는지 생각했다. 쓰레기 배출이 두려워서 식당에 갈 것이라고 하자 “결국 쓰레기의 외주화 아니냐.”는 장난스러운 비판도 받았다. 통조림 참치와 달걀 프라이에 맛간장, 참기름, 깨를 뿌려 한 끼를 만들었다. 달걀 껍데기는 고이 씻어 말려두었다.
원두와 달걀 껍데기를 섞어 내리면 더 맛있는 커피가 된다는 이야기를 들은 차였다. 맛은 잘 모르겠지만 어쩐지 뿌듯하다. 이후 며칠간 쌓여 있던 커피캡슐을 재활용쓰레기로 만들기 위해 가위와 티스푼, 빵 칼을 써 통과 원두가루를 분리했다. 13개의 캡슐과 원두를 분리하는 데 걸린 시간은 20분 정도. 처음엔 손이 느렸지만 점점 익숙해졌다.
지금 옷장에는 예전 같았으면 바로 버렸을 목이 늘어난 양말이 개켜져 있다. ‘헌옷수거함’에 넣기도 민망한 퀄리티다. 아직까지 쓰임새를 찾은 건 아니지만, 내가 제로 웨이스트를 실천 방법으로 삼은 첫 번째는, 버리기 전 한 번 더 생각하는 일뿐이다. 그간 일회용품과 물욕에 충성해온 삶을 반성하면서.


글 · 사진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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