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USICAL]
<렌트>
오십이만 오천육백 분의 귀한 시간들,
우리들 눈앞에 놓인 수많은 날,
오십이만 오천육백 분의 귀한 시간들,
인생의 가치를 어찌 판단을 하나.
고된 청춘의 한가운데서도 사랑하고 생을 긍정하는 뮤지컬 <렌트>가 9년 만에 돌아왔다. 뉴욕 이스트빌리지, 재개발이 한창인 철거 지대에 사는 가난한 청년 예술가들은 집세는 못 내도 꿈을 저당 잡히지는 않는다. 원작인 푸치니의 오페라 <라 보엠>이 19세기 말 파리의 젊은 예술인들을 다뤘듯, 낭만적인 도시의 가난한 예술가 집단은 시대를 뛰어넘어 매력적이고, 2020년 서울도 연결된다.
<렌트>에는 스토리텔러인 다큐멘터리 제작자 마크를 비롯해 여덟 명의 주인공이 등장한다. 뮤지션 로저, 로저에게 한눈에 반하는 댄서 미미, 자유로운 컴퓨터 천재 콜린과 사랑에 빠지는 여장 남자 엔젤, 공익 변호사 조앤과 마크의 전 애인이자 조앤의 현 연인 모린, 이들의 친구인 동시에 재개발 계획으로 친구들을 압박하는 건물주 베니까지. 사랑에 빠지고 사소한 오해로 싸우고 재능에 좌절하는 젊은 예술가들의 이야기가 강렬한 록 스타일 넘버와 함께 그려진다. 마냥 즐겁지만은 않다.
<렌트>에는 낭만과 함께 죽음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보다 깊은 사유를 가능케 한다. 죽음이 가까이 있다 생각하면 힘든 하루하루도 견딜 만하게 느껴지는 인생의 진리가 헤드 카피 “No Day But Today”에 담겨 있다. 극 중 용감하고 당당한 언행으로 모두의 영감이 되는 엔젤은 에이즈(후천성 면역 결핍증후군)로 투병하다 세상을 떠난다. 연인 콜린과 친구들은 엔젤의 죽음에 슬퍼하면서도 ‘사랑’이라는 그의 뜻에 따르려 노력하며 삶을 이어간다.
자신의 이야기를 뮤지컬에 녹여낸 원작자 조나단 라슨은 “이렇게 위험한 시대에, 세상의 경계가 다 찢겨나가는 것 같은 시대에, 매일매일 죽음을 똑바로 바라보는 사람들을 보면서 어떻게 살아남아야 하는지 볼 수 있다. 우리는 서로 연대하고 삶의 공포 때문에 숨지 말아야 한다.”고 했다.
1996년, 뮤지컬 정식 개막 하루 전 요절한 조나단 라슨의 유지는 엔젤의 것과 겹쳐진다. 가난한 예술가, 성소수자, 에이즈 환자, 중독자, 거리의 홈리스가 포용하고 연대하는 ‘렌트’ 정신으로 품위를 잃지 않고 살아가는 것. 재개발로 쫓겨나는 쪽방촌 주민들, 젠트리피케이션으로 밀려나는 예술가들, ‘나중에’라는 말로 지연되는 성소수자 인권 문제가 반복되는 지금의 한국은 <렌트>가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최적의 기반이다. 다시 한 번 이 지난한 반복을 긍정하게 하는 <렌트>는 좋은 이야기는 시대와 장소를 초월해 감동을 준다는 명제를 생각하게 한다.
기간 8월 23일까지
장소 서울 디큐브아트센터
글 양수복
사진제공 신시컴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