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 홈리스에 관한 정보를 찾다 보니 2000년대 초반까지 거슬러 올라갔다. 그때도 홈리스라는 복지 사각지대에서도 가장자리에 있는 여성 홈리스의 가시화와 이들을 위한 정책 수립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있었다. 20여 년 동안 여성 홈리스를 위해 일해온 열린복지디딤센터(이하 디딤센터) 김진미 소장은 홈리스 문제를 여전히 남성 중심으로 이해하는 현실의 어려움을 토로했다.
여성 홈리스 일시 보호시설인 디딤센터가 ‘여성 전용’으로 출발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
여기는 일시 보호시설이다. 거리에서 노숙하는 분들이 갑자기 잠자리나 밥 먹을 곳이 필요할 때를 대비한 곳이고, 생활시설을 비롯해 필요한 정보를 쉽게 얻을 수 있게끔 돕는다. 남성을 위한 일시 보호시설은 서울의 주요 홈리스 밀집 지역 근처에 있는 반면, 여성을 위한 시설은 전혀 없었다. 여성들도 남성 시설을 이용해야 했다. 그러나 여성 홈리스 가운데 남성에게 거부감이나 공포를 느끼는 이들이 있다. 거리에서 성희롱을 당하기도 하고, 공포감을 덜기 위해 남성 홈리스 중 한 명을 택해서 의탁하면서 의도치 않은 성매매가 이뤄지기도 한다.
여성을 위한 일시 보호시설의 필요가 인정돼 2016년에 만들어졌다.
김 소장은 센터 개소 전에도 꾸준히 여성 홈리스를 위한 사업에 집중해왔다. IMF 금융 위기로 홈리스가 급증하던 1999년부터 같은 기관에 속한 열린여성센터에서 일하기 시작해 20년이 넘었다. 일하다 보니 2000년대 초반부터 여성 홈리스를 위한 쉼터가 부족하다는 문제가 많이 제기됐다. 당시 상담을 위해 거리로 나가면 정신 건강에 문제가 있는 여성들이 무방비로 앉아 있는 일이 많아서 보호할 시설이 필요하다고 느꼈다.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에는 노숙 문제를 경제 불황의 여파로 이해하는 경향이 더 강했다. 노숙 문제를 실직이나 경제적 어려움과 등치로 보고 남성의 문제로 이해한다. 여성 홈리스를 위한 전문적인 보호 서비스가 부족하다는 데 문제의식을 느꼈고, 내가 여자다 보니 관심이 더 컸다.
홈리스 중 여성의 비율은 얼마나 되나.
거리와 시설이 다른데, 거리는 여성이 5% 내외다. 시설은 요양시설, 자활시설, 재활시설을 다 합해서 17~20%다. 여성에게 거리 노숙은 굉장히 힘들다. 현장에 술을 마시는 문화가 있다 보니 폭력 사건에 휘말릴 위험이 크다. 게다가 여성은 성폭력 위험에 노출돼 있어 잘 보이지 않는 데 숨어서 노숙하는 경우가 많다. 공중화장실에서 청소 노동자가 일을 끝내고 나가면 안에서 문을 걸어 잠그고 잠을 자기도 한다. 눈에잘 띄는 곳에서 남성 홈리스와 어울리는 분도 있긴 하지만 소수다. 똑같이 경제적으로 어려워도 여성은 성매매 등 노숙 외 다른 위험에 빠지기 쉽고 거리로 나오기가 더 어렵다. 이른바 ‘노숙 예비군’으로 있는 거다. 디딤센터 이용자들을 봐도 경제활동을 했던 분이 많지 않고, 집에 어려움이 있어서 나오는 분도 있다.
가정폭력이 이유가 되기도 할 것 같다.
그렇다. 가정폭력 발생 시 당장 피할 수 있는 가정폭력 피해자 보호 시설이 따로 있는데, 거기에 입소할 여건이 안 되거나 집을 나온 지 시간이 많이 지난 분들이 오기도 한다.
주로 어떤 경로로 디딤센터를 찾아오나.
절반 정도는 거리에서 오신다. 주요 노숙 지역에 아웃리치outreach 활동을 하는 상담원들이 있다. 이분들이 발견하고 연계해주는 경우가 있다. 4분의 1 정도는 경찰이 순찰하다가 발견해서 모셔 온다. 이외에도 지자체를 통해 오기도 하고, 본인이 알아보고 오시기도 한다.
시설 이용 기한은 얼마나 되나.
법적으로 20일까지 있을 수 있고 연장하면 한 달까지 가능하다.
이후에는 어떻게 되나.
시설 생활을 원하면 안내해드리는데 그게 어렵다. 홈리스들이 다 시설을 원하는 것이 아니다. 보통은 ‘급한데 무슨 이유로?’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생활시설은 다 공동생활을 해야 한다. 생활습관이 각기 다른 성인 여럿이 한 방에서 함께 생활하는 건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굉장히 큰 인내와 교양을 요구한다. 직접
경험해보고 싫다는 분도 있고, 안 해봤지만 소문으로 듣고 싫다는 분도 있다. 또 시설은 나름의 목적이 있다. 예컨대 자활시설은 자립 준비를 돕고, 재활시설은 치료에 동의하고 성실히 재활훈련에 임하는 사람들을 지원한다. 각자의 욕구가 다 생활시설의 입소 조건과 맞지는 않는다. 생활시설은 자립 노력을 보여달라고 하지만 홈리스 당사자는 여러 이유로 일자리를 구하는 노력조차 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고, 술 문제가 있으면 입소하기 쉽지 않다.
지난해 기준 디딤센터 연간 이용자의 절반 이상이 정신장애가 의심되거나 진단을 받았다고 고지되어 있다.
정신질환이 있는 사람이 생활시설에 입소하려면 재활시설을 먼저 거쳐야 한다. 재활시설은 정신과 치료를 받고 재활에 성실히 참여한다는 데 동의해야 입소할 수 있다. 그런데 이들 중 상당수는 자신에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인정하지 않는다. 치료를 받지 않으면 시설에 들어갈 수 없다는 문턱이 존재한다. 그래서 디딤센터 이용 기한이 지나면 다시 노숙 생활로 돌아가기 쉽다.
이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일단 신뢰감 있는 관계를 형성해서 치료하도록 설득하는 것이 최선이다. 정신질환이 있는 분들은 원치 않는 응급 입원을 당한 경험이나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가지고 있다. 내게 정신질환이 있다는 걸 받아들일 수 없는데 강제로 입원시키면 누구나 두렵지 않나. 그래서 시간을 오래 두고 치료하도록 설득해야 한다. 그런 관계를 맺기까지 지난한 노력이 필요하다.
정신질환을 가진 홈리스들이 겪는 다른 문제는 없나.
현재 홈리스를 위한 대부분의 정책은 생활시설을 기반으로 자립을 준비하게 되어 있다. 시설에서 나갈 때 독립 거주지를 유지할 수 있는지가 중요한 심사 기준인데, 정신질환 유병자는 대부분 우려를 산다. 질환이 언제 재발할지 모르고, 혼자 약을 챙겨 먹기 힘들며, 일자리를 유지하기도 어려울 거라고 우려하기 때문에 독립이 계속 지연된다. 그리고 정신질환이 있으면 공동생활을 하기가 더 어렵다. 피해망상이나 조현병이 있으면 남들이 하지 않은 말을 듣기도 하기 때문에 오해가 생기기 쉽다. 공동생활이 어려운 사람들이 시설을 기반으로 독립하는 건 말이 안 된다. ‘선 시설, 후 주거’를 주요 정책으로 삼으면 따를 수 없는 사람들이 생긴다. 최근엔 거처를 먼저 주고 치료를 받게 하는 ‘지원주택’ 모델을 시행하고 있다. 주거가 안정되면 치료 동기도 높아질 수 있으니까. 하지만 주택 물량이 현저히 적다. 정신 건강 문제에 개입하려면 사회복지 인력도 충원해서 지원의 질을 높여야 한다. 정신질환자가 지역사회에 나갔을 때 사례 관리가 세심하게 이뤄져서 혼자 살더라도 사회에서 고립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 정신질환이 없어도 여성 홈리스는 사회활동 경험이 적다 보니 생활에 필요한 돌봄이 많이 요구된다. 독립생활 능력이 떨어지는 것이다. 아직은 남녀 일원화 체계지만 여성 특성에 맞는 지원 체계를 갖춰야 한다.
디딤센터 이용인들은 하루를 어떻게 보내나.
공동 작업장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2시까지 일하고, 나머지 시간은 자유롭게 보낸다. 일시 보호시설이라 여기서 주무시지 않고, 주변의 불안정한 거주지에서 생활하며 출근하는 분들이 있다. 디딤센터에서 제공한 두 달분 월세로 고시원에서 지내면서 작업장에서 번 돈으로 이후 월세를 충당하는 식이다. 다른 분들은 자기 방에서 쉬거나 외출하는 등 자유롭게 지낸다.
작업장에서는 어떤 일을 하나.
서울시에서 ‘특별자활 근로’ 명목으로 단기 공공 일자리를 제공한다. 자리 자체가 부족하기도 하지만 청소 같은 일이 대부분이다. 정신질환이 있으면 그 정도 노동도 하기 힘들다. 이외에 민간 일자리는 남성에 초점을 맞춘 일이 많다. 여성들은 접근 기회가 적고 일을 계속하기도 어렵다. 특별한 기술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이 더 많아져야 한다. 그런 취지로 디딤센터 내에 공동 작업장을 운영한다. 주로 머리끈을 투명한 봉투에 넣는 간단한 일이다. 건강이 좋지 않으면 쉴 수 있고, 일하다가 나갔다 올 수 있는 등 작업장 규율도 엄격하지 않다. 빅이슈도 여성 홈리스에게 일자리를 제공해줘서 한 달에 두 번씩 잡지 포장 일을 하고 있다. 긴급 비용이 필요한 분들을 보내는데 이틀간 두세 시간씩 일하고 오면 숨통을 틀 수 있다. 거리에서 오신 분들에겐 큰 도움이 된다.
디딤센터에 힘을 보태준 시민 중 기억에 남는 사례가 있나.
여성을 위한 기관이다 보니 생리대가 후원 물품으로 들어온다. 여성 청소년 홈리스들이 신발 깔창이나 휴지로 생리대를 대신한다는 이야기가 많이 알려지지 않았나. 또 어떤 여성분은 최근에 팬티를 후원해주셨다. 새 팬티를 보내면 따로 세탁을 해야 하는데, 이 점을 고려해서 본인이 직접 세탁하고 포장을 다시 해서 보내주는 정성을 보여주신 그분이 기억에 남는다.
부족한 물품이나 어려운 점은 무언가.
신발이나 속옷은 비싸서 디딤센터의 예산을 들여서 사기엔 재정 부담이 크다. 후원금이 부족하다는 점도 많이 느낀다. 정부 예산으로 필요를 다 충당할 수 없기 때문에 민간의 힘이 필요하다. 특히 긴급 비용이 절실하다. 여성 홈리스가 이곳에 처음에 오면 무일푼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당장 쓸 돈이 전혀 없다. 일자리를 알아보려 해도 교통비조차 없고, 조심스러운 이야기긴 한데, 흡연자 중엔 담배 살 돈이 없어서 꽁초를 주워 피다가 민원이 들어오기도 한다. 그 정도로 가난하다.
디딤센터의 앞으로 목표는 무엇인가.
일시 보호 이후 생활시설에서 안정을 취하게끔 하는 것이 목표였는데, 운영하다 보니 각자 욕구가 달라서 독립을 준비할 의지가 없거나 다른 방식을 찾는 분들도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우리가 답을 정해놓으면안 맞는 사람들이 탈락하게 되니까, 노숙을 벗어나는 경로를 다양화하고 싶다. 그 일환으로 센터 내 작업장을 독립된 일터 형식으로 발전시키고 싶다. 꾸준히 참여하는 분들이 출퇴근하고 사례관리 서비스를 받으면서 노숙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고 싶다.
글 양수복
사진 김상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