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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7 인터뷰

마지막 로맨티시스트 2

2020.10.30 | <마음에 부는 바람> 윤석호 감독

'마지막 로맨티시스트 1'에서 이어집니다

최근 드라마를 보면서 인상적으로 느낀 배우가 있나.
음, 요즘은 드라마를 잘 못 봤는데, <이태원 클라쓰>가 괜찮더라. 거기서 권나라가 느낌이 좋았다.

PD로서 배우의 옷차림이나 인물이 생활하는 공간의 색상 조합 같은 부분에도 깊이 관여했다. 대본대로 촬영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장면을 추가하거나 공간에서 영감을 받아 대본을 수정하기도 했다고 들었다. 예를 들어 <가을동화>의 주요 배경이 원래 병원이었는데 감독님이 우연히 폐교를 발견하면서 주요 촬영지를 그곳으로 옮기자고 작가를 설득해 대본을 수정했다거나 <겨울연가>에서 학교 담을 넘는 장면에서 유진(최지우)이 준상(배용준)의 등을 밟기 전에 신발을 벗는 설정으로 수정하는 식이다. 인물들의 감정을 설명할 수 있는 섬세한 장면을 감독이 현장에서 바꾸는 게 그때나 지금이나 흔한 일은 아니다.
아마 지금은 더 어려울 거다. 모든 게 짜인 환경에서 움직여야 하니까. 예전에 SBS가 개국하기 전에는 방송사가 두 곳밖에 없어서 지금보다는 감독의 권한이 많았던 것 같다. 그때는 배우나 작가들이 일할 수 있는 방송국이 두 곳밖에 없었는데, 지금은 채널이 아주 많지 않나. 그때는 작가주의 PD가 많았다. 황인뢰 선배나 김종학 선배도 그런 사람들이고. 지금은 시청자나 배우나 작가나 선택지가 워낙 많다. 채널도 많고 드라마도 많고. 제작 환경이 유명 작가나 배우 중심으로 옮겨간 것 같다.

<사랑비> 이후에 한 인터뷰에서 지금의 빠른 트렌드에 윤석호식 멜로가 맞는지 고민하는 모습이 드러난다. 대중은 빠르게 변하고 있고, 지금은 그 속도가 더 빨라졌다. 콘텐츠를 만드는 사람으로서 이런 변화가 버겁게 느껴지진 않나.
어쨌든 나도 나이를 계속 먹고 있으니까 지금 트렌디한 사람들이 보기에 낡아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나도 젊을 때 선배들이 하는 일에 ‘올드하다’고 비판했었다. 그래서 트렌드는 좋다, 나쁘다 평가할 수 없는 것 같다. 다만 내가 좋아하는 순수의 가치가 트렌드라는 이름 뒤에 너무 묻혀버리는 것 같아 아쉬움이 있다. 사랑은 ‘코어’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시간이 지나도 절대 변하지 않는 가치가 사랑이다. 잘 만든 사랑 이야기는 언제나 사람들이 좋아할 거라는 믿음이 있다. 근데 그걸 표현하는 방식에 대한 고민이 깊어진다. 영화 를 보면서 사랑 이야기를 저렇게도 할 수 있구나 싶었다. 기술이 아무리 발달해도 인간은 늘 외롭고 사랑하고 싶은 욕구가 있다. 는 AI(인공지능)와 사랑에 빠진다는 설정부터 굉장히 현대적이지만 순수한 사랑에 대한 갈구를 그리지 않나. 언제나 변하지 않는 순수한 사랑, 아름다움에 대한 이야기를 어떻게 풀 것인가. 이런 고민을 하고 있다.

<느낌>(1994)이나 <프로포즈>를 보면 지금은 성립되지 않는 장면이 많다. 스마트폰으로 전화하거나 문자메시지를 보내면 바로 해결될 일인데 그땐 그게 없어서 서로 엇갈린다.(웃음) 기술이 발전했기 때문에 할 수 없는 방식의 사랑 이야기도 있다.
SNS 시대가 되면서 서로의 모든 걸 파헤칠 수 있게 됐다. 비밀이 없어진 것이다. 사랑에는 모종의 신비가 필요하다. 예전에는 나름대로 상상력을 발휘해서 사랑에 대한 공상을 키웠는데 지금은 SNS를 통하면 미리 다 알 수 있다. 나는 이런 신비의 아름다움을 경험한 세대인데, 요즘 세대는 경험하기 어렵겠구나, 안됐다… 이런 생각까지 할 정도다.(웃음) 애매모호한, 반투명의, 정체가 약간 숨겨진 것, 그런 것이 인간관계에서도 필요하지 않을까. 그래도 ‘썸을 탄다’는 말이 있더라. 이런 말이 나오는 걸 보면 아직은 사랑에 여지가 있는 것 같다. 초기작들에 대한 기사를 찾아보면 ‘신세대적’, ‘트렌디하다’, ‘젊다'라는 평가가 많다. 이런 평가를 가장 많이 받은 드라마가 <느낌>, <컬러> 시리즈와 <프로포즈>, <광끼>다. 이런 로맨틱 코미디를 또 만들 생각은 없나.
로맨틱 코미디 장르를 좋아한다. 코믹한 것에 호감을 많이 느낀다. 2000년대에 나 역시 세대교체가 된 면이 있다. 이후에 <가을동화>가 크게 히트를 치면서 멜로 중심으로 가게 됐다. 그게 내가 갖고 있는 또 하나의 딜레마인데, 초기작에도 내가 좋아하는 느낌들이 있어서 지금도 그런 작품을 기획하고 있다. 코믹한 느낌을 약간 넣어서 만들 생각이다.

<느낌>을 참 좋아했다. 세 형제의 캐릭터가 다 달라서 여자 시청자들에게 ‘뭘 좋아할지 몰라서 다 준비했어.’ 하는 느낌이었다. 마지막까지 우희진이 누구와 이어질지 알 수가 없었다. 지금도 찾아보면 <느낌> 의 결말에 관해 묻는 사람들이 있다.
이정재와 이어지지 않았나. (아니다. 이정재가 친오빠였다.) 아, 그랬나? 마지막에 바꿨나? 다시 봐야겠다.(웃음) 너무 오래됐다. 아마 작가랑 마지막까지 누구랑 이어질지를 정해놓지 않았던 것 같다. 그래서 정확히 기억나지 않는다.(웃음)

본인 작품을 다시 보나.
잘 안 본다. <겨울연가>는 가끔 보는데, <겨울연가>를 주제로 강의할 때가 많아서 강의 준비 때문에 본다 . 주로 ‘한류 콘텐츠’를 주제로 강의를 했기 때문에 <겨울연가>에 대해 자주 이야기한다. 요즘은 PD나 작가들이 방송국이 아니라 넷플릭스나 카카오TV와 손잡고 제작하기도 한다. VOD 플랫폼에는 관심이 없나 .
그 시스템에 대해 견문이 전혀 없다. 잘 몰라서 생각해보지 않은 면도 있다. 요즘은 넷플릭스에서 투자를 받아 만들기도 한다고 하더라. 그런 면에서 내가 유행을 못 쫓아가는 성향일 수도 있다. 어떤 채널을 통해 보여줄지보다는 내가 뭘 하고 싶은지에 주로 매달린다.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어떤 이야기를 더 할 수 있을까. 이런 기초적인 창작을 먼저 생각하게 된다. 근데 그게 잘 안 잡힌다. 그래서 이 얘기 했다가 저 얘기 했다가 하며 발전시킨 아이템만 100개가 넘는다. 창작에 매달리다 보니 투자 받고, 메커니즘을 만드는 데 소홀했다. 그래서 작품을 많이 못 하는 것 같다. 내가 프리랜서 PD였다면 연출을 제안받으면 편하게 여기저기서 만들었을 거다. 하지만 나는 내 제작사를 가지고 있는 오너PD라 이 안에서 뭔가를 해야 한다는 책임감이 강해서 시간이 더 걸린다. <마음에 부는 바람>은 일본에서 영화 연출을 제안받아서 그쪽에 혼자 가서 만든 거라 그나마 빨리 진행됐다.

드라마로 얻은 명성에 비해 영화 연출이 늦은 편이다. 영상미에 집중하는 만큼 큰 스크린으로 보여주고 싶은 욕심도 있었을 것 같다.
영화는 스크린이 크기 때문에 화면에 담는 영상의 디테일에 신경을 많이 써야 하더라. 영화를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한국에서는 잘 진행되지 않았다. <겨울연가>의 영화화를 제안받았는데, 드라마에서 이미 충분히 한 이야기라 영화로 만드는 데 매력을 못 느꼈다. 이번에 영화를 하면서 놀란 게 음향이다. 화면도 화면이지만 영화관의 오디오에서 나오는 바람 소리가 굉장히 큰 감동을 주더라. 이 영화에서 바람이 중요한 소재다 보니 이런 음향에도 신경을 많이 썼는데, 영화관에서 이런 디테일한 부분까지 들으니 소리의 힘이 대단하구나 싶었다. 이미지뿐 아니라 소리를 잡는 부분에 대해 영화를 하면서 많이 배웠다. 드라마가 산문이라면 영화는 시 같다. 이미지의 힘이 그만큼 중요하다. 드라마는 대사로 화면을 채워야 하고, 시청자가 집중할 수 있게 계속 뭔가를 던져줘야 한다. 하지만 영화는 이미지로 커뮤니케이션 할 여력이 더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은 저예산 영화도 많이 제작하고, 작은 영화관이 많다. 그걸 보면서 나도 저예산으로 할 수 있는 데까지 계속 연출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모든 연출작에서 로맨스를 다뤄왔다. 본인에게 로맨스란 무엇인가.
사랑에는 두 가지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일상을 공유하는 사랑, 하나는 신비가 유지되는 사랑. 둘 다 사랑이지만, 내가 생각하는 로맨스는 설렘이 유지되는 신비한 사랑 쪽이다. 그런 사랑을 다루는 드라마를 만들어왔다. 결혼하면 싸우기도 하고 정이 개입하고 자식을 낳고 일상이 되지 않나. 이것도 더 큰 의미의 사랑이지만, 로맨스는 설렘이 있고 상상력이 발휘되는 그런 좋은 순간인 것 같다. 그래서 많은 연애소설이 ‘두 사람이 결혼했습니다.’ 하면 끝난다. 결혼은 현실이고 인간을 성장시킨다면 로맨스는 사람을 계속 설레게 한다. 나는 남녀 주인공이 끝내 함께하지 못하고 서로를 그리워하며 사는 것도 해피 엔딩이라고 본다. 꼭 결혼하고 영원히 함께해야 해피 엔딩이 아니라.

<겨울연가> 일본 방영 10주년 기념 인터뷰에서 준상과 유진의 후일담으로 두 사람이 결혼해서 잘 살고 있을 거라고 하지 않았나. 그럼 결혼한 두 사람에겐 로맨스가 없는 건가. <가을동화>는 새드 엔딩이지만 오히려 그 편이 해피 엔딩인가.
아, 그런 말을 했었나. 인터뷰 당시에는 결혼하기 전이었나.(웃음) 함께 일상을 꾸려가는 사랑도 물론 중요하지. 근데 일상이 되지 않은 미완성의 사랑도 해피 엔딩이라고 생각한다. 헤어졌어도 마음속에 계속 바람이 부는 거다. 그 바람이 불 때마다 사랑을 하고 있는 거다. 둘이 같이 떠나서 결혼하고 잘 산다고 그게 꼭 해피 엔딩이 아니라.

앞으로 계획이 궁금하다.
드라마와 영화 모두 기획 중이다. 요즘은 주 52시간 근무제도 있어서 대본을 미리 써놓고 촬영까지 사전에 다 해놓는 경우도 있더라. 내가 해온 방식은 아니기 때문에 좀 낯설지만 어느 정도는 만들어놓고 시작할 생각이다. 신인 작가와 같이 대본을 쓰고 있는데, 작업하다 보면 결국 거기에 또 내가 투영되더라. 우리 때는 대본에 문학적인 베이스가 많았는데 요즘 작가들은 영상 세대라 대본이 영상적이더라. 작업 방식이 달라서 나는 내 방식대로, 작가는 또 작가대로 하며 대화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지 못한 재치를 그 친구한테 배우기도 하고, 상호보완적으로 작업하고 있다. 그런데 결국 최종 결정자가 감독인 나니까 나다운 게 나오지 않을까 싶다. 선하고 아름다운 것, 긍정적인 영향을 주는 영상을 계속 만들고 싶다.


김송희
사진 강민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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