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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8 스페셜

옴짝달싹 못하는 택배 업계

2020.11.06 | 물류대란이 말하지 않는 것

추석을 앞두고 TV와 신문을 가득 채운 뉴스가 있었다. 택배 노조가 분류 작업의 부당성을 주장하며 파업을 예고했다는 내용이다. 추석 직전은 배달 물량이 특히 늘어나는 점과 물류 산업 점유율 1위인 CJ대한통운이 파업을 주도하고 있다는 점을 고려할 때 이는 ‘택배 대란’으로 이어질 수 있는 일이었다.

다행스럽게도 물류 대란은 일어나지 않았다. 정부와 택배 업계는 간담회를 열고, 추석 성수기 동안 허브터미널과 서브터미널에 하루 평균 1만여 명 규모의 인원을 투입하기로 합의했다. 대책위원회는 “약속한 대로 분류 작업 인력이 투입되지 않을 경우 다시 특단의 조치를 취할 수 있다.”며 불씨를 남겼지만 일단 파업은 철회했고 추석 물류 대란은 발생하지 않았다.

분류 작업,
대체 어떤 문제가
있었을까?
택배 노조가 파업을 주장한 핵심 이유는 바로 분류 작업이다. 우리가 택배를 맡긴 물건은 곧바로 배송지로 가지 않고 허브터미널로 이동한다. 여기에는 분류 작업을 하는 노동자들이 있다. 허브에 모인 수많은 물건들은 다시 지역별로 분류된 뒤 지역 서브터미널로 옮겨진다. 택배 기사들은 이 서브터미널에서 물건을 차에 싣고 우리 집 앞까지 배달한다. 택배 기사들이 문제를 제기한 것은 바로 이 서브 터미널에서 이루어지는 분류 작업이다. 서브터미널에서 자신이 배달할 상품을 분류하고 싣는 데 7~8시간이 걸리는데, 이건 택배 기사가 해야 할 노동의 범위가 아니라는 주장이다. 실제 택배노동자과로사대책위원회는 최근 택배 노동자 821명을 대상으로 실태 조사를 벌였는데, 택배 노동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71.3시간이고, 이 중 43%를 분류 작업에 쓰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택배 회사 측에서도 할 말은 있다. 회사 측은 서브터미널에서 하는 분류 작업은 엄밀히 말하면 분류 노동이 아니라 ‘자신이 배송할 물품을 인수받는 업무’라고 설명한다. 한 물류 회사 담당자는 “택배 기사들은 분류 작업을 누군가 대신 해줄 경우 더 많은 물건을 배송할 수 있기 때문에 이 같은 요구를 하는 것.”이라며 “업무가 과중하다면 개인이 배송 물량을 줄여야 한다.”고 설명했다.

법원도 택배 기사의 분류 작업이 ‘공짜 노동’은 아니라고 봤다. 법원은 ‘원고(택배 기사)들이 자신들의 책임 배송 지역 내에 배송하여야 할 물건들을 분류하였다 하더라도 피고(택배 회사)가 노무비 상당의 이득을 법률상 원인 없이 취득하였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시한 바 있다. 택배사의 분류 작업을 놓고 택배 기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하다. 택배 분류 작업에 가장 큰 목소리를 내는 곳이 CJ대한통운이고, 실제로도 CJ대한통운 택배 기사들이 분류 작업에 가장 긴 시간을 들인다. 그렇다고 해서 CJ대한통운 노동자가 다른 택배사 노동자보다 더 긴 시간을 일한다고 보기도 애매하다. 업계 점유율 1위인 CJ대한통운의 특성상 다른 택배사보다 커버해야 할 배송 범위가 좁기 때문에 배송 시간은 다른 택배사 기사보다 짧은 편이다. 다른 택배사 직원은 “실제 총 업무 시간은 차이가 없거나 오히려 다른 택배사가 더 긴 편.”이라고 설명한다.

올해만 8명,
반강제로 내몰린
장시간 노동
지난 10월 8일, CJ대한통운 택배 기사가 배송 업무 중 호흡곤란을 호소해 119 구조대에 의해 병원에 이송되었으나 끝내 사망했다. 올해 들어 벌써 8명째였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은 “평소 지병이 없던 A씨가 갑작스럽게 사망한 것은 과로 외에는 다른 이유를 찾을 수 없다.”면서 “정부와 택배 업계는 더 이상의 죽음을 막기 위한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택배사는 택배 기사들이 수입을 늘리기 위해 자청해서 일을 많이 한다고 설명한다. CJ대한통운은 올 상반기 택배 기사(1만 7,381명)의 평균 수입이 월 690만 원이라고 밝혔다. 이는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약 20.4%(117만 원) 증가한 수치인데, 코로나19 여파로 배송 물량이 증가해서 나타난 현상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이 690만 원을 택배 기사가 모두 챙기는 것은 아니다. 집배점 수수료, 차량 연료비, 세금, 운영비 등 필수적으로 지출하는 비용이 있다. 이를 제외한 금액은 약 524만 원이다. 적지 않은 금액이다. 하지만 이렇게 벌기 위해서는 장시간 노동을 해야 한다. 자신이 배송한 만큼 수입이 뒤따르는 택배 기사들은 시간과 노력을 들여 수입으로 치환한다.

결국 문제는 ‘분류 작업’ 자체가 아니라 택배 업계의 장시간 노동에 있다. 택배사 측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CJ대한통운은 지난해부터 ‘휠소터*’를 도입했다. 휠소터를 이용하면 화물이 일차적으로 자동 분류가 되기 때문에 택배 기사가 분류 작업에 들이는 시간이 그만큼 줄어든다. 실제로 CJ대한통운에서 일하는 한 택배 기사도 “이전에는 기사가 주소를 일일이 확인하고 다닥다닥 붙어 분류해야 했지만 지금은 그 작업을 휠소터가 대신하기 때문에 배송에 필요한 체력을 비축할 수 있다.”라고 설명한다. 하지만 이는 업계 1위 업체인 CJ대한통운에 국한한 이야기다. 낮은 배송 원가를 겨우 맞춰야 하는 다른 택배사 입장에서는 수백억 원에 이르는 비용이 발생하는 휠소터 도입은 아직 꿈도 꾸지 못한다.

과도한 경쟁 끝에 2,500원으로
고정된 택배비,
비용 절감만으론 한계 있어
택배 회사의 영업 이익률은 1~2%에 불과하다. 서비스업 평균 영업 이익률이 4~5%라는 점을 고려할 때 수익성이 매우 낮은 사업이다. 특히 택배사는 2000년대 초부터 급격하게 늘어났고 대형 유통 업체의 등장, 전자상거래의 활성화와 맞물려 수요가 증가하면서 정부가 진입 장벽을 낮췄다. 회사가 많아지자 경쟁이 심해졌고 택배 가격은 물가 상승률과 정반대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2,500원이라는 택배 가격은 꽤 오랫동안 고정된 ‘배송 정가’로 굳어졌다. 이 2,500원을 가지고 택배사, 택배 분류자, 배송 직원들이 나눠 갖는다. 턱없이 부족하다. 이 중 택배 기사가 가져가는 돈은 700원 정도다. CJ대한통운 측이 설명한 대로 월수입 690만 원을 올리기 위해서는 하루에 400건 가까운 물건을 배송해야 한다. 물론 일을 덜 하면 된다. 그러나 ‘한 건만 더 배달하면 내 자식들한테 더 좋은 옷 입힐 수 있다.’는 부모 마음으론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다 누군가는 과로로 병을 앓거나 목숨을 잃는 사태까지 이어지게 된다.

결국 해법은 두 가지 축으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는 택배 단가를 올리는 것이고, 둘째는 택배 노동자의 총 업무 시간 혹은 총 배달 건수를 제한하는 것이다. 어느 하나만 해서는 해결되지 않는다. 두 가지 조건을 동시에 충족해야 한다. 택배 기사도, 택배사 측도 이 점을 알고 있다. CJ대한통운 측은 최근 택배 요금 인상을 주장하면서 “CJ대한통운을 제외한 택배사들도 택배 요금 정상화에 동참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는 택배사들이 얼마나 과잉 경쟁을 하고 있는지 단적으로 보여주는 대목이자 동시에 가격 결정권이 자신들에게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는 말이다.

실제로 택배사들은 대기업이라도 ‘갑’의 위치에 있지 않다. 갑은 주된 고객사인 유통사다. 경쟁 업체가 워낙 많은 탓에 한쪽에서 요금을 올리면 다른 업체로 이동해버린다. 그래서 CJ대한통운이 다른 업체에 동시 가격 인상을 제안한 것이다. 그러나 유통사에도 사정이 있다. 택배 요금이 오르면 그 부담을 소비자가 고스란히 져야 하는데, 그러면 온라인 쇼핑몰 이용률이 떨어지고 결국 매출이 줄 수밖에 없다는 설명이다. 낮은 배송비 덕분에 온라인 커머스가 유지되는데 택배 가격이 인상되면 온라인 커머스 자체가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는 입장이다.

개별 소비자, 온라인 유통업체, 택배사, 택배 운송 노동자 모두가 팽팽한 줄다리기를 벌이는 가운데 2,500원이라는 배송 가격은 수년 동안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쩌면 이 방정식은 업계의 자율적인 조정으로는 풀 수 없을지 모른다. 택배사와 택배 노동자들의 갈등은 물류 업계 내부의 문제지만 여기에 유통 업체가 끼면 이는 더 이상 내부적으로 풀기 힘든 과제가 된다. 결국 정부가 주도권을 쥐고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단순히 ‘대란’만 막기에 급급할 것이 아니라 택배 비용을 현실화하고, 이와 함께 택배 업계의 만성적인 과로 환경을 개선하기 위한 사회적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

*택배 상품에 부착된 송장의 바코드를 빠르게 인식한 후 컨베이어 벨트 곳곳에 설치된 소형 바퀴(휠)를 통해 택배 상자를 배송 지역별로 자동 분류하는 장비. CJ대한통운 홈페이지의 설명 인용.


백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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