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계절에 먹으면 더 맛있는 것들이 있다. 여름의 수박, 가을의 찐 밤, 겨울의 귤… 뭐 이런 것들. 하지만 이런 건 부자가 되지 않아도 쉽게 먹을 수 있는 식품들이고, 진짜 제철에만 먹을 수 있는 음식이 있다는 걸 내 맘대로 돈을 쓸 수 있는 어른이 되고서야 알았다. 이를테면 초봄의 두릅, 가을의 전어와 곶감, 초겨울의 방어…와 같은 것들. 회라는 것은 자고로 부모님이 특별한 날 사주지 않으면, 먹을 수 없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은 외식을 좀처럼 하지 않았기에 나는 수산물 회센터라는 곳도 20대가 되어서야 처음 가봤다. 잘 안 먹어본 음식이기에 회가 왜 맛있는 건지도 몰랐다.
처음 회센터에 간 나를 놀라게 한 것은 상다리가 휘어지게 나온 스키다시 접시들이었다. 그중에서도 내 미각을 사로잡은 것은 뜨거운 주물에 올려진 콘치즈였는데, 옥수수를 마요네즈, 설탕에 조리고 시판용 치즈를 뿌린 그것이 너무 맛있어서 두 번이나 리필했다. 나는 콘치즈와 단호박조림과 같은 밑반찬에 팔을 뻗어 먹고 또 먹었다. 그것은 내가 익히 알고 있던 맛 중에서도 최고였다. 회 맛을 도통 몰랐기에 횟집에선 뭘 많이 먹어야 ‘가성비’ 높은 젓가락질이 되는 줄도 몰랐다. 다행히 지금은 내가 어떤 어종의 맛을 선호하는지 아는 어엿한 소비자로 거듭났고, 계절이 겨울의 길목으로 접어들면 ‘방어 회동’을 계획한다.
성공의 맛
회는 혼자 먹기엔 가격이 부담스러워 친구 두어 명을 모아서 날짜를 잡는다. 작년에도 겨울이 깊어지자 친구들과 방어를 먹으러 갔다. 왁자한 횟집에 들어가 ‘방어 中자’를 시키고 어울리는 술도 시키면 음식이 나오기도 전에 흥이 난다. 와, 내가 친구들이랑 횟집에 오다니. 당당하게 방어도 시키고 소주에 매운탕도 먹을 거야! 뭔가 제대로 된 사회인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그리고 기름진 방어를 상추 위에 눕혀 마늘과 고이 접어 입에 넣었을 때, 나는 이렇게 외치고 말았다. “우와, 우리 성공했다. 방어야 방어. 이 정도면 성공한 거 아니야?” 잠깐 눈을 휘둥그레 떴던 친구들이 네 말이 뭔지 알겠다며 깔깔깔 웃으며 화답했다. “맞네, 성공했네. 우리끼리 방어도 먹으러 오고. 누가 사주는 것도 아니고 내 돈 내고!”
20대에 만나 함께 30대가 된 친구들이었다. 만날 때마다 떡볶이, 라면 뭐 이런 것만 섭취한 것은 아니지만, 서로가 매일 얼마나 선택과 집중을 해가며 가성비 높은 소비를 해야 하는지 형편을 너무 잘 알았다. 매일 쓸 수 있는 돈은 정해져 있고, 그게 매우 적으니 이것을 선택하면 저것을 할 수 없었다. 집세를 내고 생활비를 하고, 또 최소한으로 필요한 비용들은 왜 그렇게도 많은지… 숨만 쉬는데도 돈이 질질 샌다. 내 호주머니에 구멍이라도 난 것처럼 들어오는 돈은 없고 예상치 못하게 나가는 돈만 많았다. 서로 형편을 너무 잘 알기에 ‘우리 언제 만나자.’는 약속도 선뜻 할 수 없었다. 친구 한 번 만나면 2~3만 원은 금세 나가니까, 한 달에 한 번 얼굴 보기도 힘든 랜선 친구도 있었다. 어느 날은 운 좋게 누군가에게 점심을 얻어먹을 수 있었다. 점심 값으로 쓸 계획이었던 6천 원이 굳었다. 나는 그 돈으로 조각 케이크를 샀다. 녹차 케이크는 한 조각에 정확히 6천 원이었다. 커피를 주문하면서 손가락으로 유리 너머 초록색 케이크를 가리켰다. “녹차 케이크도 하나 주세요.” 비상시를 위해 6천 원을 아껴둬도 좋으련만 나는 그보다는 6천 원을 녹차 케이크로 탕진하고 싶었다. 먹고 싶어도 비싸서 참아야 했던 녹차 케이크를 포크로 한 입 떠먹으며 실실 웃었다. 아, 정말 너무 너무 너무 맛있다. 성공하면 매일 사 먹어야지. 그때나 지금이나 내가 상상할 수 있는 성공이란 겨우 이런 것이다. 부드러운 녹차 크림의 맛, 기름진 방어의 맛. 그 맛을 원할 때 즐길 수 있는 것.
‘성공’에 적정 기준이 있어서, 연봉이 얼마 이상이 돼야 하고, 자기 소유 집이 몇 채 있어야 하며 유명세가 있어야 하는 거라면, 나는 전혀 성공하지 못한 사람이다. 하지만 우리는 올겨울에도 방어를 먹으며 외칠 것이다. “헐, 나 성공한 것 같아!” 다행히 우리에게 성공이란 건 그런 것이다. 거리낌 없이 녹차 케이크를 주문할 수 있고, 제철에 더 맛있는 음식을 함께 먹을 수 있는 것. 성공? 그까짓 거 돈으로 사겠어.
글 김송희
일러스트 조예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