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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8 에세이

당신의 하이틴 패션은?

2020.11.13 | 존재하지 않았던 옷

옷에 대한 열망이 극단으로 치닫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있다. 가족이 골라준 옷만 입는 경우도 있겠지만, 특히 청소년 시기엔 자신의 스타일에 집중하게 되는 순간이 분명 온다고 생각한다. 수학여행을 위해 며칠 동안 고민해서 마련한 옷, 그날만 가능한 헤어스타일 등을 표현하는 건 답답한 학교생활에서 그나마 숨통이 트이는 일이다.
나는 성인이 되어서야 갖고 싶은 옷을 비교적 맘껏 살 수 있었지만, 10대를 그나마 좋게 기억하게 만든 어떤 옷들이 있다. 후드 티나 박스 티가 그랬다. 하지만 옷을 고르고 구매하는 대부분의 시간은 나에게 고통이었다. 경제권을 쥔 엄마와 내가 생각하는 좋은 옷의 기준은 너무나 달랐고, 옷을 고르고 집에 오는 길에 나는 청소년 특유의 무기력과 슬픔에 잠겼다.
그런 내가 영화나 음악을 통해 접한 하이틴 패션에서 인상 깊었던 건, 주인공들이 멋지다고 생각했던 옷과 어른들이 생각하는 괜찮은 옷의 기준이 크게 달라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좀 언짢은 표정을 짓더라도, 그 자리에서 옷을 갈아입으라고 지시하는 어른들은 서양 하이틴 영화 속엔 거의 없었다. 프롬 무도회 드레스는 물론이고, 평소 학교 갈 때 입는 옷에도 별 태클을 걸지 않는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가진 그들이 부러웠다. 베벌리힐스 등 부유한 동네가 배경인 때문일까, 아니면 가장 강력한 훈육 조치가 ‘외출금지’ 정도인 서양의 정서 때문일까? 어쨌든 그 덕분에 우리는 1990년대와 2000년대 초반의 풍요로운 하이틴 스쿨룩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

하이틴들은 진짜 좋아할까?
한국에서 ‘하이틴 패션’을 잘 구현하기로 소문난 몇몇 쇼핑몰 홈페이지를 방문했다. 아가일 무늬의 니트, 체크무늬 플리츠스커트 등이 잘 판매되는 아이템이다. 강렬한 원색의 옷도 있지만, 파스텔 톤의 핑크, 블루 계열로 포인트를 준 것이 훨씬 많다. 눈에 띄는 건, 몸의 라인을 드러내는 옷들이 대다수라는 점이다. 10대들은 정말 이 옷을 자신들의 스타일이라고 생각할지 문득 궁금했다. 한국의 하이틴들은 주로 겨울에는 패딩, 여름에는 생활복을 입을 테니 말이다. <글리>, <퀸카로 살아남는 법>, <클루리스>, <프린세스 다이어리> 속 소녀들의 패션에서 아이디어를 얻은 것이 분명해 보이는 아이템들이 소비자를 유혹하고 있었다. 영화에서 방금 튀어나온 듯한 패턴을 비롯해, 2020년대의 유행을 반영한 카디건과 탑을 레이어드한 상의와 크고 작은 리본 및 레이스도 눈에 띄었다.
실제로 개인 혹은 소규모 SNS 마켓의 계정에는, 패션과 더불어 사진이나 아이콘 등으로 ‘하이틴’을 콘셉트로 내세우며 그 분위기를 상징화하는 경우가 많다. 특히 스마트폰 카메라 필터의 ‘파란 나비’와 ‘주근깨’ 아이콘, 헬로키티와 마이멜로디, 미피 같은 아기자기한 캐릭터가 주를 이루는 사진 프레임들이 그렇다. 어디서 본 것 같지만 뭐라고 설명할 수 없는 특유의 ‘느낌적인 느낌’들은 ‘하이틴’이라는 커다란 분위기 안에서
뒤죽박죽 섞인다. 말보다 이미지로 승부하는 계정일수록, 그 요소를 끝없이 재발견해낸다.

<금발이 너무해>에서 아리아나 그란데까지
특히 하이틴스러움은 공간, 사진, 패션, 문구류, 심지어 폰트를 가리지 않고 다양한 분야를 장악한다. 하나의 작품으로 보이기도 하는 그 이미지들은 머라이어 캐리가 2000년대에 발매한 앨범 커버들 같기도 하다. 그 역시 나비를 아트워크에 자주 활용했고, 반짝이는 무언가나 틴에이지 영화의 주인공들이 좋아할 법한 요소들이 뮤직비디오에 잔뜩 등장한다. 또 <퀸카로 살아남는 법>과 <금발이 너무해> 속 핑크 톤으로 꾸며진 공간이 재현되는 과정으로도 보인다. 실제로 아리아나 그란데는 ‘Thank u, next’ 뮤직비디오에서 하이틴 무비의 공식을 가져와 본인 방식대로 패러디하기도 했다.
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반의 분위기를 재현하는 ‘하이틴 무드’가 인기를 끄는 이유는 뭘까. 이 패션 공식이 청소년들이 성인이 된 이후에도 영향을 준다는 사실이 흥미롭다. 실제로 10대 때 입어본 적 있는지와 상관없이, 모두가 새로운 하이틴을 만들어나가는 느낌이다. ‘미니멀’과는 거리가 멀고, 결과적으로 내 인생에 존재한 적 없던 하이틴 패션이지만 핑크와 퍼플을 필두로 한 특유의 색감은 모두를 매료시키기에 충분하다.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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