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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38 스페셜

일상 속 택배 노동자

2020.11.09 | 상품을 문 앞에 전달했습니다

인터넷 쇼핑과 스마트폰 어플을 통한 소셜커머스 시장은 점점 거대해지고 있다. 당일배송을 최고로 여기는 분위기 속에서 우리가 가끔 잊는 건, 택배 상자 뒤에 사람이 있다는 사실일 것이다. 배송 서비스로 돈을 버는 노동자와, 돈을 벌어 배송 서비스를 사용하는 이용자의 이야기를 들었다.

아홉 번째라는 소식이 전해진 지난 10월 16일, 김지현 씨는 여느 때처럼 다음 날 도착할 것으로 예상되는 물건의 운송 현황을 조회했다. 내 물건이 어느 택배 허브를 거쳤는지, 택배 기사가 어느 동네에서 물건을 싣고 오가고 있는지 너무나 당연하고 편리하게 알 수 있다. “그 뉴스를 보고, 습관적으로 배송조회 페이지를 ‘새로고침’을 하는데 문득 ‘이게 맞는 건가’,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동안 늦게 받아본다고 생각했던 배송에 대해서도 고민하게 됐다. “분명 오늘 도착예정인데, 밤 10시가 돼도 안 오는 택배는 다음 날 오전에 도착하곤 했어요. 기사님도 퇴근하셔야 하니까 당연한 일이잖아요. 예전엔 그게 ‘밀렸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그마저도 빨리 처리하기 위해 기사님은 새벽부터 정신없이 뛰셨을 거란 생각이 들어요.” 택배 배송과 배달을 당장 사용하지 않는 건 불가능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택배를 이용할 것인지를 생각하는 이들은 분명 존재한다. 김지현 씨가 시작한 고민은 최영민 씨의 생각과도 닮아있다. 추석 이후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에는 ‘터질게 터져버린 CJ대한통운 상황’ 같은 식의 제목 아래, 산더미처럼 택배 상자가 쌓인 물류센터 사진이 올라왔다. 최 씨는 그 사진들을 통해서 사태의 심각성을 체감했다. “업체에선 일시적 상황이었다고 하지만, 택배 노동자들이 힘들게 일하는 건 사실이잖아요. 오히려 그 해명을 통해 택배 시스템을 다시 생각하게 됐어요.” 평소 택배를 자주 이용하는 최 씨는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먼저 되돌아보게 됐어요. 소비자의 권리라는 이유로 빠른 배송을 너무 당연하게 여겨왔던 것은 아닌지 하고요. 일단은 재촉하는 것부터 삼가려고요.”

고강도 노동은 당연해졌다
한 물류 업체에서 배송 업무를 담당하는 김경환(가명) 씨는 모든 택배 노동자가 과로에 시달리는 건 아니지만, 공감이 가는 사연들은 분명 있다고 말한다. “어느 기사에서 본 것 같아요. 화장실도 못 갈 정도로 바쁘게 일한다는 이야기요. 똑같은 경험이 있는 건 아니지만, 어떤 심정이고 상황이었을지는 이해가 가요. 끼니를 거르는 게 저에게도 당연하거든요.” 일이 힘들다는 사실에 익숙해지는 것과, 그 일이 똑같은 강도로 늘 계속된다고 생각하는 건 다르다고 그는 말했다. “물량을 보면, 가끔 앞이 깜깜해질 때가 있어요. ” 그는 집집마다 다른 ‘지정된 장소’에 물건을 배송하고, 대부분의 경우 고객에게 ‘문 앞이나 경비실에 두고 간다’는 안내 문자를 보낸다. 장시간, 고강도의 육체적, 정신적 노동을 견뎌야 한다.

소비자들은 ‘쿠팡’과 ‘쓱배송’, ‘새벽배송’, 일반 물류 업체 등을 아우르며 다양한 택배 업체를 이용한다. 택배·배달 노동자의 노동환경 문제 역시 소셜커머스와 물류 업체를 가리지 않고 발생한다. 쇼핑 플랫폼에서 택배비 할인과 무료배송을 강조하고, 택배비를 내는 것이 손해라는 인식이 퍼져나가면서 무료배송도 트렌드처럼 자리 잡았다. 특히 비대면 거래·결제가 코로나19 시대를 나는 전략으로 부각되면서, 일상에서 택배와 배달은 더욱 당연해졌다. 소비자에게 택배를 안전하게 배달해야 하는 노동자들은 지금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 10월 26일 기준, 무려 13명의 택배 노동자가 사망한 이 상황을 동료들은 위태롭게 지켜보고 있다. 전국택배연대노동조합 김세규 교육선전국장은 “택배 기사들은 동료들의 과로사를 보며 ‘나도 저렇게 되지 않을까’ 상당히 우려 한다.”고 말한다. “사실 이용자분들은 택배 기사들의 과중한 업무 소식을 접하면, ‘늦어도 괜찮다’고 격려를 많이 해주세요. 그런 캠페인도 있었고요. 다만 이런 빠른 배송 형태는 택배 업체 간 과도한 경쟁이 만든 결과입니다. 편리하다는 이유로, 사람이 할 수 없는 업무 강도는 사라져야 한다고 봅니다.” 특히 최근 보도를 통해 부각된 택배 분류 작업은 택배 노동자들이 무임금으로 7~9시간을 써야 하는 업무다. “장시간 택배 분류 작업을 하면 그 여파로 늦은 밤이나 새벽까지 배송 업무를 해야 하는 상황이 벌어집니다.” 김 국장은 많은 택배 기사들이 이용자들에게 좀 더 나은 서비스를 제공하고 싶어 하지만, 노동환경을 개선하려면 연이은 택배 노동자의 과로사에 대해 사측이 책임감 있는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늦어도 괜찮으니 안전하기를
김 국장의 말대로, 당일·새벽배송이 당연한 것으로 인식되는 것을 경계하는 이들이 있다. 주로 식료품 주문을 위해 배송 서비스를 이용하는 이주현 씨는 새벽배송을 이용하다 문득 의아해진 경험을 전했다. “밤 11시 전에 시키면 새벽에 도착하는데, 무리하는 것 아닌가 싶더라고요. 물론 택배는 어디서나 필요한 서비스지만, 배송 속도가 너무 빠른 건 좀 이상한 것 같아요.” 이 씨는 1인가구가 늘어나면서, 출근길에 바로 택배를 확인할 수 있는 새벽배송 수요가 많은 것도 이해가 가지만, 택배비가 저렴하다는 문제는 분명하다고 말했다. “이래도 되는 건가 싶어요. 인건비가 저렴하다는 증거 아닐까요?”
SNS에는 지금도 ‘#택배기사님감사합니다’, ‘#늦어도괜찮아’라는 해시태그를 통해 많은 시민들이 택배 기사들을 응원하고 있다. 이용자들 중엔 간식이나 손 소독제, 음료를 문 앞에 준비해두는 이들도 있다. 빠른 배송 속도에 적응해버린 자신이 두렵다는 김지현 씨가 말했다. “저 역시 여름엔 작은 페트병 생수를 얼려 문 앞에 준비해두곤 했는데, 그것만으론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어요. 누군가의 선의로 해결될 수 없는 문제 아닐까요.” 택배 노동자와 이용자, 모두가 두려워하는 ‘택배대란’ 뒤엔, 빠르고 정확한 일처리를 쉴 틈 없이 요구받는 택배 노동환경이 있다. 이젠 ‘내 택배가 어디쯤 왔는지’ 궁금해하는 것만큼, 당일·로켓·새벽배송이 왜 ‘평균’이어야 하는지 의문을 품어볼 때가 아닐까.


황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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