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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1 스페셜

빙산을 깨다

2021.01.11 | 텔레그램 디지털 성범죄 추적단 불꽃

추적단 ‘불꽃’의 두 사람은 텔레그램 내 디지털 성범죄가 벌어지는 100여 개의 방에 잠입해 모니터링하고 취재한 결과를 세상에 알렸다. 텔레그램 ‘n번방’ 추적기인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에서 두 사람은 내내 성범죄 추적에 대한 단단한 의지를 보여준다. “누군가 꼭 해야 할 일이라면 그것은 바로 나였다.” 2020년 한국 여성들에게 거대한 용기를 전한 두 사람 옆에는 이제 수많은 ‘우리’가 있다. 디지털 성범죄라는 보이지 않는 빙산의 일각이 이제 막 깨지기 시작했다.

결코 쉽지 않은 과정이었을 텐데, 긴 시간 꾸준히 n번방 사건을 취재할 수 있었던 동기는 무엇인가요.
사건을 들여다볼수록 나와 내 친구들, 가족의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나아가 미래의 제 아이들에게 닥칠 수 있는 일이기도 하고요. n번방 사건을 지금 해결하지 않으면 더욱 악랄한 성범죄가 발전하는 기반이 될 거라고 생각했어요.

추적과 보도에서 가장 주의하고 염두에 둔 부분이 무언지 궁금합니다.
n번방 추적기가 단일 보도로 끝나지 않고, 많은 언론에서 다뤄줬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더불어 디지털 성범죄를 소재로 자극적인 기사를 쓰지 않기를 바랐고요. n번방 사건 해결을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도 알려지기를 바랐는데, 이런 부분을 우리의 추적기에 녹여내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n번방 사건을 추적하는 일은 두 분에게 어떤 영향을 남겼나요. 앞으로 삶의 방식에도 영향을 주게 될까요.
사건을 외면하면 피해자들에게 죄스러운 마음이 들 것 같았습니다. 사실 지난해 하반기엔 무기력과 분노를 많이 느낀 어려운 순간도 있었어요. 이런 힘든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분들이 늘어난 것만으로도 기운이 났어요. 특히 n번방 사건을 비롯한 성범죄와 어떻게 싸워나갈지 많은 분과 논의할 수 있게 되어 뿌듯합니다. 피해자들에게 우리가 가야 할 방향을 함께 안내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n번방 취재가 제겐 페미니스트가 되는 과정이었던 것 같아요. 음지에 있던 여성 혐오적 범죄의 심각성을 알게 됐고, 그동안 그냥 지나치던 일들이 많이 불편해졌으니까요.

디지털 성범죄 중 하나인 ‘지인 능욕’은 가해자들이 일상에서 손쉽게 저지르는 범죄예요.
성차별적이고 여성 혐오적인 사회는 이런 범죄의 확산과 어떤 연관이 있다고 보나요.
한국 사회에서 여성은 여전히 비주류로 취급받고 있다고 생각해요. 남성이 여성의 성을 사는 것이 자연스러운 사회생활의 일부로 여겨지고요. 지인 능욕은 중·고등학생 사이에서 빈번히 나타나는 범죄 중 하나인데, 10대 청소년들이 성인들의 성매매 행위 등을 보며 문제의식 없이 놀이 문화의 하나로 여긴 결과라고 봅니다.

취재 과정에서 성범죄 피해자와 대화하는 태도가 인상적이었습니다. ‘이것은 꼭 지켜야 한다.’라고 생각하신 피해자와의 소통 원칙이 있으셨을까요.
‘피해자의 목소리를 듣고 보도하는 게 목적’이라는, 정의 자체가 문제라고 생각했어요. 피해자는 우리를 만나주는 것만으로도 큰 결정을 한 것이니까요. 한 인간으로서 존중하고 최대한 범죄 피해로 인한 트라우마를 건드리지 않는 질문을 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피해자가 대답할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선 그 선택을 존중했어요.

불꽃의 추적기는 성범죄 피해자에게 ‘피해자다움’이라는 잣대를 들이대는 태도에 반박했다고 생각합니다.
피해자의 이야기를 들을 때 갖추어야 할 태도는 어떤 걸까요.
성범죄의 원인이 가해자가 아닌 다른 곳에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밤늦게 다녀서, 짧은 치마를 입어서…. 성범죄 피해자를 대하는 경찰 역시 랜덤 채팅을 왜 했는지, SNS에 사진을 왜 올렸는지 등을
추궁하면서 책임을 묻기 바쁩니다. 피해자에게 책임을 묻는 태도가 잘못이라는 걸 아셨으면 합니다.

불필요하게 피해 사례를 강조하는 언론이 여전히 많습니다. 언론이 대신 어떤 정보를 전달해야 할까요.
n번방 관련 보도도 그렇고, 성범죄 보도의 경우 가해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달하면서 가해자가 범죄를 저지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음을 애써 설명하는 보도 태도가 많아요. 가해자의 행위를 정확하게 전달하고, ‘음란물’ 등 부정확한 단어 대신 ‘디지털 성범죄’, ‘성착취물’ 등 명확한 명칭을 사용하길 바랍니다.
문형욱과 조주빈은 범죄 혐의만 열네 가지 이상입니다. 성범죄 피해자는 당해도 싸다는 인식이 들게 서술하는 대신, 피해자 보호에 경각심을 일으키는 내용을 보도했으면 합니다.

n번방을 포함한 성범죄의 근절을 위한 필수 조건은 뭘까요.
n번방 방지법이 제정되었는데 이 법은 디지털 성범죄를 단편적인 시각에서 본 법이라 아쉬운 점이 많습니다. 여러 종류의 딥페이크 범죄를 포함하지 못할 뿐 아니라 성착취물을 시청한 사람들을 처벌할 근거도 미비합니다. 박사방에는 학창 시절 담임선생님을 수년간 스토킹한 피의자가 있었어요. 스토킹은 다른 범죄로 이어질 가능성이 큰데도 처벌할 법적 근거가 부족합니다.
랜덤 채팅 앱에 존재하는 범죄자들이 미성년자들에게 쓰는 수법인 ‘온라인 그루밍’에 대한 제재도 대단히 미흡해요. 더불어 성범죄 피해자에 대한 법률적 지원이 촘촘히 이뤄져야 하는데, 피해자들에 대한 지원과 함께 시민들의 참여도 빼놓을 수 없을 것 같아요. 피해 상황을 목격했을 때 신고나 문제 제기를 하는 분이 많아졌으면 합니다.

추적단 불꽃의 2021년 목표는 무언가요.
더 많은 분들에게 디지털 성범죄의 심각성을 알리고 싶습니다. 가끔 “내 인생 살기도 힘든데 좋지 않은 얘기는 외면하고 싶다.”는 이야기를 듣는데, 부디 많은 관심을 가져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유튜브와 SNS 등 다양한 통로로 디지털 성범죄의 실체를 알리기 위해 노력하고자 합니다.

올해도 살아남은 모든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나요.
성범죄 가해자들의 연대는 아주 끈끈해요. 경찰 조사를 받는 방법, 형량을 낮게 받는 방법을 수시로 공유하고 있어요. 그럴수록 피해자들은 자신의 피해 사실을 알리기 어려워져요. 그분들에게 용기를 드리고 싶습니다. 저희 책 제목이 <우리가 우리를 우리라고 부를 때>잖아요. 우리는 모일수록 강해진다는 걸 알려드리고 싶어요.
무기력에 빠진 분들이 자신에게서 원인을 찾지 않으셨으면 해요. 가해자들의 레이더에 포착되었을 뿐, 여러분에게 범죄 책임이 있는 게 아니니까요. 산책이나 음악 감상 등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보내시고, 저희가 보내는 마음으로 조금이나마 용기를 얻으셨으면 좋겠습니다. 도움을 청하는 손길을 한 번만 뻗으면 함께할 이들이 분명히 있어요.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해주세요.


성폭력 피해를 이야기할 수 있는 곳
한국성폭력상담소 02-338-5801
여성긴급전화 1366

추적단 불꽃은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의 연락을 기다립니다.
56[email protected]


황소연
사진제공 이봄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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