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기사는 이전 기사 <총총걸음으로, 그럼 이만 총총>에서 이어집니다
특별한 용건이 있어 찾아온 건 아니야
방 창문 밖에 바로 굽이진 산등성이가 보이고 새소리도 이따금 들리니 마음이 편안하다.
꿈꾸던 나만의 집! 이런 게 없다가 최근에 생겼어. 비싸고 좋은 집을 사고 싶다는 말이 아니라, 집 안에 정원이 있었으면 좋겠어. 자연을 느낄 수 있는 집에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확실해진 거지. 또 유럽을 여행하면서 느낀 건데 테라스 문화가 참 좋더라. 테라스에서 일광욕을 하거나 차를 마신다든지. 집이 실용성을 떠나 내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곳이면 좋겠어.
김한민 선생님의 책*을 읽다가 알게 된 사실인데, 포르투갈에는 ‘창문하다(janelar)’라는 동사가 있대. 창문을 매개로 바깥세상을 만나며 사색하는 사람이 유난히 많기 때문’이라고 하더라. 자연이 있고, 창문하기 같은 여유를 누릴 수 있는 공간을 찾는다면 다음 걸음을 내딛고 싶을까?
다음이라면, 아마도 내가 결혼이나 독립을 할 때일 텐데… 지금은 가족과 살고 있는 현 상태가 좋아. 한평생을 살면서 지금처럼 가족과 함께 살 수 있는 시기가 생각보다 무척 짧은 것 같아. 그래서 당장은 다음 공간을 찾아 움직여야겠다는 욕심은 없어.
일현이 이 집으로 이사 오고 나서 처음 만나는데, 더 안정적이고 여유로워진 것 같아.
창밖이 온통 푸르름으로 가득했으니 지난여름 무렵이었던 것 같아, 막 이사 왔을 때 울컥했어. 원래 살던 곳은 임시 거처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서울에서 처음으로 이곳이 ‘집’처럼 느껴졌거든. 며칠 전에는 눈이 아주 많이 왔잖아. 창문을 열었는데 아이들 웃는 소리가 들리고, 눈사람을 만드는 사람들이 보이는 거야. 그 상황이 퍽 재밌었고, 사람 사는 곳 같다는 느낌이 들었어. 더불어 자연을 많이 느낄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니 만족도가 높아. 내 방은 내가 꿈꾸는 것과 괴리가 조금 있어. 굉장히 실용적으로 꾸며져 있거든.(웃음) 하지만 그 안에서 포근함을 찾으려고 해. 가구나 소품의 위치를 내 동선에 맞추면서 꾸며가고 있어. 무드등을 선물 받았는데, 밤에 휴대폰 볼 때 켜놓으니 좋아서 침대 머리맡에 두었고, 선인장과 커피나무를 키우고 있어. 참, 방이 추워서 침대에 텐트를 설치했는데 따뜻해서 좋더라. 누가 내 방에 들어와도 내가 안에서 무얼 하는지 보이지 않는 것도 장점이야.(웃음)
지금 하는 일은 어때?
이전에 다니던 회사에서는 내가 직접 아이들을 가르치기도 했어. 너무나 보람찬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나를 많이 소진하는 것 같기도 했어. 지금 회사에서는 지역 아동 센터에 모이는 아이들에게 좋은 멘토를 찾아 이어주는 일을 하고 있어. 기업에서 사업비를 따서 지역별로 센터를 선정하고 대학생 멘토를 선발해 아이들과 이어주는, 그러니까 각 주체를 연결하는 거야. 이렇게 교육의 선순환과 생태계를 만드는 일에 관심이 있는 건 확실해.
과외 같은 걸 해보고 싶어도 한 아이의 중요한 시기를 함께하는 데 나는 충분히 준비된 사람인가 싶어서 못했어. 그래서 일현이 굉장히 용기 있는 사람이라고 생각해. 아이들을 가르치거나 대할 때 마음을 어떻게 써?
내가 키우는 선인장을 대할 때와 같은 맥락일 거야. 매일 선인장을 생각하지만, 이 식물에 물이 꼭 필요할 때만 물을 주는 것처럼. 아이들이 편하다고 느끼게 하기 위해서는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적절한 거리를 둔 관심이 필요한 것 같아. 이 방식이 더 어렵지만 아이들을 존중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해.
우리가 어른으로서 어린이를, 다음 세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 무얼까?
얼마 전 <유 퀴즈 온 더 블럭>을 봤어. “신이 자기를 만들 때 어떤 것을 주지 않은 것 같아요?” 하고 한 아이에게 물었는데, 아이가 “신께서는 저한테 남김없이 전부 다 주신 것 같아요”라고 답하는 모습이 담긴 영상이었지. 과연 우리가 성인이 된 이후에 이렇게 생각한 적이 있을까? 세상이 따뜻해지려면 우리 어른들이 아이들을 많이 배우고 아이들의 태도를 살피며 아이들이 어떤 말을 할 때 그것이 어떤 생각에서 비롯됐는지 고민하고, 아이들이 그 생각을 지킬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하지 싶어.
추신
지금껏 나는 항상 일현을 총총걸음으로 쫓아다녔지.
이제는 나도 누군가에게 일현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
좋아하는 책에서 ‘산책이란 우아한 헛걸음’이라고 하던데. 내 헛걸음을 늘 우아하게 만들어줘서 고마워,
늘 내게 발맞춰 걸어준 것도. 그럼 이만 총총.
* <페소아>, 글 김한민, 출판사 arte
글 조은식
사진 이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