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애하는 일현에게
안녕. 요즘 유난히 잘 지내느냐는 인사를 자주 듣는 것 같아. 가벼운 대답이 두려운 내게 쉬운 물음은 아니지만, 아마도 다들 같은 마음이라 그럴 테지. 오랜만이라는 말은 하지 않을게. 오늘날 우리는 단 몇 초 만에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고, 때로는 연락 빈도가 관계의 온도처럼 여겨질지라도. 만약 우리가 먼 옛날에 살았더라면 서신이 오가는 동안의 침묵을 어색해하지 않고도 서로를 생각했겠지. 집배원에게 총총걸음을 부탁할 수는 있겠지만.
우리는 처음 만났을 때부터 다양한 걸음을 함께해온 것 같아. 목적지를 향한 잰걸음, 샛길로 새는 거북이걸음, 갈지자를 그리다가 치는 네발걸음, 제자리걸음이나 헛걸음조차 즐거웠지. 때마침, 일현이 근처에 산책로가 있는 집으로 이사했다는 소식을 이제야 들었고, 같이 또 걷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
날씨 이야기는 생략할게, 무엇보다 안부가 궁금했어
나란히 느긋하게 걸으며 얘기하니까 좋다. 산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해?
보통 산책 하면 ‘어느 정도 시간을 들여 천천히 걷는 것’이라고 생각하잖아. 그런데 내게 산책이란 ‘바람 쐬고 싶을 때 잠깐 혹은 짧은 거리라도 걷는 것’이고, 무척 중요한 행위야. 대부분의 걸음은 목적지가 있잖아. 나는 발길 닿는 대로 걷는 것이 좋은데, 생각보다 일상에서 누리기가 어렵더라고. 걸을 때 내 마음가짐이 산책인지 아닌지를 결정하는 것 같아. 요즘 재택근무를 많이 해서 며칠 동안 아예 집 밖으로 나가지 않는 날들이 있는데, 가끔은 무척 답답해. 워낙 바빠서 산책을 자주 하지는 못하지만, 집 근처에 산책로가 있다는 사실 자체가 참 좋아. 마음만 먹으면 언제든 내려가 한 번씩 걷다 올 수 있으니까. 또 산책로가 놓인 산에 고양이들이 많이 살아. 고양이를 보면 기분이 좋잖아. 가끔은 고양이가 보고 싶어서 산책할 때도 있어.(웃음)
우리가 연합 동아리에서 처음 만났을 때 일현은 선배이자 부장이었지. 스무 살이던 나는 미처 알지 못했어. 늘 듬직했던 일현이 그때 얼마나 책임감을 느꼈을지를.
돌이켜보면 나는 항상 바빴어. 그건 아마도 늘 어떤 자리를 맡았기 때문인 것 같아. 학창 시절, 해마다 임원을 맡았어. 내가 열심히 노력하면 여러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영향을 끼칠 수 있다고 믿었고, 그건 더 재밌는 경험을 위한 것이니까 가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거든. 진심을 다해 노력하면 그 마음이 닿았고, 멋진 인연과 결과물 등으로 이어졌어. 그 보람은 대체 불가능하더라. 바쁘지 않으면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조바심에 시달리던 시기도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 나에 대해 점점 더 많이 알아가고 알게 된 내 모습에 만족감을 느끼며 나를 갉아먹는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해. 나에 대해서 알아간다는 것, 참 멋진 일이지 않니?
글 조은식
사진 이규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