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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5 스페셜

웹소설 업계로 회귀했다

2021.02.26 | 내가 회사를 그만둔 이유

웹소설 초반부의 내용은 대체로 이렇다. 별 볼 일 없는 주인공이 있다. 영화라면 엔딩 크레디트에 이름도 못 올리는 엑스트라 배역이다. 그러던 주인공은 우연한 사건을 계기로 ‘회빙환’(회귀·빙의·환생) 한다. 세계는 역전되고 이제 주인공이 이야기의 주연이다.

2019년 회사를 그만뒀다. 그럭저럭 괜찮은 언론사였다. 꽤 오랫동안 기자를 하고 싶었기에 합격했을 때 누구보다 행복했다. 기자가 되고 싶었던 이유? 사회정의 구현 같은 대단한 목표 때문은 아니었다. 그저 사무실에서 엑셀 작업을 하는 것보단 재밌을 거라고 막연히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막상 현실이 되니 기자는 내가 생각한 것과 딴판인 직업이었다. 회사를 관두고 다시 백수가 됐다. ‘회사가 전쟁터라면 바깥은 지옥’이었다. 방황하던 나에게 누군가 달콤한 제안을 했다.

글먹 어때?글먹? 처음엔 글먹이라는 단어를 몰라서 구글에 검색해야 했다. 여러분의 검색하는 수고를 덜기 위해 설명하자면 ‘글 써서 먹고사는 것’, 즉 전업 작가와 동의어다. 그렇게 평생 소설 한 문장 쓸 생각 없던 사람이 난데없이 전업 작가의 길을 걷게 됐다.

웹소설도 도입부가 너무 길면 독자들이 떠나간다. 몇 년 전만 해도 주인공의 과거에 3화씩 할애했지만 이제 그렇게 쓰면 2화쯤에 댓글이 달린다. ‘전개가 느리네요. 하차합니다.’ 최근엔 과거 이야기를 아예 생략하고 회빙환 이후에서 시작하는 작품도 많아지고 있다. 이제 웹소설 세계에서 겪은 이야기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
얼떨결에 기자에서 웹소설 작가로 회귀했다. 하루하루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럴 때 웹소설 주인공들은 어떻게 할까. 그래 외쳐보자. “상태창!” 웹소설에서 회귀한 주인공들은 때로 ‘상태창’을 얻는다. 상대의 스탯이나 스킬이 보이는 편리한 능력이다. 나도 상태창을 외쳤다. 안타깝게도 아무것도 뜨지 않았다. 물론 진심으로 상태창이 뜨길 바란 건 아니다. 그렇지만 마치 상태창을 가진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을 한 적이 있다.

처음 웹소설을 읽었을 때 충격을 받았다. ‘기본도 안 된’ 글이 많았다. 대학생 때 글 써서 돈 버는 일은 대필 빼고 다 해본 터였다. 항상 좋은 글을 쓰진 못할지언정 어떤 글이 좋은 글인지 알아볼 안목은 있다고 자부했다. 플랫폼에 올라온 웹소설을 살펴보면서 절망과 희망이 동시에 찾아왔다. “세상에… 이렇게 글을 쓰면서 돈을 벌 수 있다고?”

나의 또 다른 오만은 서브컬처에서 나름대로 잔뼈가 굵었다는 자부심이었다. 고등학교 때 야간자율학습 시간에 판타지소설만 읽으면서 모의고사 언어영역은 항상 1등급을 받는 얄미운 녀석이 바로 나였다. 학원에 가는 날 부모님이 저녁값으로 5,000원을 주시면 삼각김밥으로 대충 때우고 남은 돈으로 만화책을 사서 읽었다. 흔히 웹소설이라고 쓰지만, 이는 매체의 특징을 나타낼 뿐 그 본질은 장르소설이다. 소비자로 오래 있었으니 생산자로 쉽게 변신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나도 이제 월에 천 버는 작가가 되는 거다! 겨울엔 따뜻한 치앙마이나 발리로 가서 호텔에 장기 투숙하면서 여유롭게 글을 쓰자!

물론 현실은 소설만큼 갈등이 쉽게 해소되진 않았다. 웹소설을 쓰면서 미처 몰랐던 위기가 끊임없이 닥쳤다. 조직에 소속되어 있으면 구성원의 성과와 큰 관련 없이 조직에 묻어간다. 내가 만약 서울대를 나왔다면 졸업 학점이 4점이든 3점이든 서울대생이다. 회사에서 일을 두 배로 한다고 월급을 두 배로 주진 않지만, 이번 기획을 망쳤다고 해서 월급을 절반으로 깎진 않는다. 그렇지만 웹소설 작가는 다르다. 하루 쉬면 ‘일당’이 날아간다. 법에서 정한 유급휴가도 없다. 내일 쉬고 싶으면 오늘 1만 자를 써야 한다. 30화까지 연재하고 유료화에 실패하면 한 달은 무급 노동을 한 셈이다. 조직에 있을 땐 조직의 장점보다 단점이 더 잘 보였다. 혜민 스님의 말이 맞다. 멈춰야 비로소 보이는 것들이 있다.

전업 작가로 살면서 또 한 가지 의외의 사실을 발견했다. 내가 생각보다 다른 사람을 좋아한다는 것이다. 돌이켜보니 2020년은 태어나서 처음으로 새로운 인간관계를 형성하지 않은 해였다. 물론 사회적 거리두기를 잘 실천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이 시국이 끝난다고 해도 다른 사람을 만날 수 있을지 잘 모르겠다. 다른 사람과 정신없이 부대끼며 살다가 불현듯 혼자가 됐다. 한순간 정체되고 우울한 기분에 빠지기 쉬웠다. 사람을 만나는 게 싫어서 기자를 때려치운 인간이 다시 사람이 그리워졌다. 두 직업이 정규 분포의 양극단에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을 땐 이미 늦었다.

웹소설을 쓰면서 처음에 한 착각도 하나둘 깨져나갔다. 글을 쓰는 것과 소설을 쓰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나는 글을 쓰는 잔재주가 있었던 거지, 이야기를 재밌게 구성하는 능력은 없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다. 비록 문장이나 구성은 조금 서툴러도 재밌는 이야기가 시장에서 통하는 법이다. 콘텐츠의 본질이 무엇인지 그때는 미처 몰랐다. 서브컬처 문법에 정통하다고 생각했지만 웹소설이라는 장르의 맥락은 다르다는 것도 너무 늦게 알아챘다. 하긴 영어와 독일어가 같은 뿌리에서 갈라져 나왔지만, 영어를 배운다고 독일어를 잘하는 건 아니잖은가. 웹소설을 잘 쓰려면 웹소설을 잘 알아야 했다.

편집자에게 원고를 부탁받았을 때 별다른 고민 없이 수락했다. 고생한 이야기라면 얼마든지 쓸 수 있었다. 그러나 어떤 희망적인 이야기를 해야 할지에 대해선 의문이 들었다. 여전히 집값이 내 통장 잔고보다 가파르게 오르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플렉스 하면서 소설을 쓴다는 계획은 점점 더 멀어지고 있다. 물론 이 일에도 낙관할 지점은 있다.


K-콘텐츠 밸류 체인
로켓에 올라타세요.
구글의 에릭 슈미트가 지금은 페이스북 최고운영책임자(COO)로 있는 셰릴 샌드버그를 영입하면서 한 말로 유명하다. 유명세 덕에 오남용도 심해서 이제 누군가 이 말을 하면 감동보다 의심이 먼저 들 수도 있다. 바로 지금처럼. 그렇지만 커리어 결정에 도움을 주는 통찰을 담고 있다고 생각한다. 약간 과장을 보태자면 웹소설을 쓰는 건 로켓의 빈자리에 타는 셈이다.

언제나 그렇듯이 낙관론과 비관론이 대립한다. 한쪽에선 웹소설 플랫폼의 기업공개(IPO) 금액이 뉴스에 실리고 다른 쪽에선 웹소설의 폭풍적인 성장세도 이제 성숙기에 접어들었다는 말이 나온다. 한때 그저 꼴을 갖춘 웹소설을 쓰는 것만으로도 돈을 벌 수 있었던 운 좋은 시대가 있었던 건 사실이다. 이제 나처럼 돈 냄새를 맡은 사람들이 몰려들면서 웹소설이 그 단계는 벗어난 것 같다. 그렇지만 여전히 앞날이 부정적인 요소보다 긍정적인 요소가 많다고 생각한다. 바로 K-콘텐츠라는 밸류 체인 덕분이다.

전 세계인이 한국산 콘텐츠에 열광한다. 그 꼭대기에는 영화와 드라마가 있다. 가장 아래쪽에는? 웹소설이 있다. 국산 영화나 드라마가 잘나가는 것과 웹소설이 잘나가는 것이 무슨 관계가 있느냐고 궁금해할 수 있다. 영화와 드라마는 대규모 자본과 인력을 투입하는 프로젝트다. 성공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이익이 크지만 실패했을 때 위험도도 높다. 검증된 감독, 검증된 작가, 검증된 배우를 쓰면 되지만 그래도 위험은 상존한다. 가장 안전한 선택은 검증된 이야기를 쓰는 것이다. 드라마, 영화 수요가 많아질수록 검증된 웹소설을 찾는 수요도 늘어날 것이다.

물론 특정 업계의 미래는 아무도 섣불리 예측할 수 없다. 201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장르소설은 아사 직전이었다. 물론 뛰어난 작가들이 있었지만 평범한 재능으로는 평범한 수입도 얻지 못하던 시기였다. 장밋빛 전망을 보고 웹소설을 쓰겠다는 건 전 재산을 테슬라 주식에 투자하는 것과 비슷한 행동일지도 모른다. 콘텐츠 업계의 트렌드 변화는 갑작스레 찾아온다. 기세등등하던 홍콩 영화와 J-POP도 이제는 한물갔다. 내가 평생 웹소설을 쓴다고 <전지적 독자 시점>이나 <나 혼자만 레벨업> 같은 작품을 쓸 수 있을까? 아직은 잘 모르겠다.

전망이나 현실이 어떻든, 나는 오늘도 마감과 마감 사이에서 열심히 글을 쓴다. 웹소설의 기쁨과 슬픔에 대해서 구구절절 적었지만, 글을 쓰는 순간이 되면 머릿속엔 캐릭터와 플롯만 남는다. 비록 수입도 부모님의 시선도 회사에 다닐 때만큼 우호적이진 않은 것 같지만 오늘도 에버노트를 켠다. 꼭 서로 좋아서 죽고 못 살아야 좋은 커플인 건 아니다. 헤어지지만 않아도 그럭저럭 괜찮은 거 아닐까? 아직은 웹소설 쓰는 게 나쁘진 않다.


M
웹소설 작가. 대체 역사 붐은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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