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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47 에세이

이 시국에 파리로 간 것에 대하여 1

2021.03.31 | 모니카 인 파리

또 하나의 해외살이 에세이다. 다만 시국이 시국인지라 탈조선의 희망을 주는 내용은 아닐 것 같다. 나는 졸업을 3학점 남겨두고 교환학생으로 파리에 와버렸다. 출국일이 다가올수록 미친 짓이라는 생각이 들긴 했지만, (부모님을 제외하고는) 주변에는 걱정하는 이들보다 부러워하거나 응원해주는 사람들이 훨씬 많았다. 넷플릭스 드라마 <에밀리, 파리에 가다>의 에밀리처럼, <섹스 앤 더 시티>를 찍지는 못하겠지만, 지금 같은 때에도 사람 사는 곳은 다 거기서 거기라는 정도만 이야기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1월 28일
벌써 도착한 지 4일째다. 인천국제공항에서 출발할 때부터 하도 긴장해서 잠이 하나도 안 왔다. 출발 전부터 감기를 2주 넘게 앓고(무서워서 코로나19 검사까지 했다) 속이 계속 좋지 않아서 걱정했는데, 역시 출국 준비하느라 긴장하고 스트레스 받아서 그랬던 거였다.
출국 일주일 전부터 변종 바이러스로 인한 프랑스의 국경 강화 정책에 따라 비유럽국가에서 출발하는 모든 입국자는 PCR 음성 확인서를 의무적으로 제출하고 7일간 자가격리를 마친 후 재차 PCR 검사를 받겠다고 ‘맹세’해야 하는 규정이 생겼다. 위치 추적 앱까지 설치해 철저하게 입국자들을 모니터링하는 우리나라를 포함한 몇몇 국가와 달리 프랑스의 자가격리는 말 그대로 양심에 맡기는 방식이다. 하여 자가격리를 어디서 하는지에 따라 그 강도가 달라지는데, 나는 국제 기숙사촌에 거주하기 때문에 자가격리 방침이 매우 엄격한 편이다.

한국인답게 자가격리 중에도 계속 빈둥빈둥 있기 뭐해서 어제부터 뭔가를 할 작정을 하고 컴퓨터에 앉았다. 온라인으로 은행 계좌를 만들어보려고 했지만, 프랑스에서는 온라인으로 무언가를 한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은행 계좌를 만들려면 휴대폰이 필요하고 휴대폰을 개통하려면 은행 계좌가 필요하고… 우리나라 행정 시스템이 얼마나 잘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은행 계좌와 휴대폰, 집을 외국에서 구하는 과정은 누구에게나 힘들겠다는 생각이 새삼 들었다. 그래도 우리나라는 이 정도는 아닐 거야…. 내가 만난 프랑스 사람들은 참 요상한 게 시간 약속은 절대 안 지키면서 뭐 하나 하려고 하면 무조건 방문 약속을 잡아야 한다. 여하간 방문 약속 하나 잡는 것도 은행 사이트가 갑자기 로딩이 안 돼서 다시 될 때까지 기다리고 있다. 코로나19가 프랑스 인터넷의 발전에 그나마 좀 기여한 줄 알았더니 기여한 게 이 수준이다. 어휴…, 어제는 온라인으로 장을 보려다가 갖고 있는 카드가 모두 해외 카드라고 결제가 거절되어 거짓말 조금 보태어 이러다 굶어 죽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과장된 소식을 들은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은 난리가 났었다. 집에 늘 몇 개는 굴러다니던 사과와 바나나가 이렇게 귀한 것일 줄이야…. 한편으로 중산층으로 혜택을 누리며 살아왔다는 사실을 다시금 깨달았다. 물론 여기서도 내 출신과 학생 신분만으로도 해결되는 것이 많아서 특별히 불행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다. 파리는 학생으로 살기에 참 좋은 도시다. 한편으로는 학생 신분이 끝나는 순간부터 파리는 지옥 같다는 생각도 든다. 집 구하기도 힘들고, 직업 구하기는 더 힘들겠지.

자가격리가 얼른 끝났으면 좋겠다. 한국에서 2주간 (가족조차 못 만나고) 격리하는 분들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만약 한국에서 하는 강도로 파리에서 일주일이라도 격리해야 한다면 참 막막했을 것이다. 이 또한 외국인이 아닌 내국인이기에 노력해서 얻은 것이 아니라 특혜라고 생각한다.

특혜라고 하니 생각나는 것이 있는데, 바로 프랑스의 주택 보조금 제도다. 이건 자가격리가 끝난 뒤 은행 계좌를 만들고 직접 해봐야 알 것 같은데, 외국인에게도 주택 보조금을 준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다. 물론 외국인은 서류를 더 까다롭게 심사하고 외국인으로서 서류를 준비하는 절차에 시간과 비용이 훨씬 많이 들긴 하겠지만, 일단 자격을 갖추면 내국인과 동일한 권리를 누리게 해준다는 사실이 참 놀랍지 않은가! 의료보험도 마찬가지다. 이 또한 서류의 바다를 헤매고 끔찍한 행정 절차를 거쳐야 가능하기 때문에 좋다고만은 말할 수 없지만 어찌 됐건 체류증이 있는 외국인 학생이라면 의료보험번호를 무료로 받을 수 있고 권리 행사가 가능하다. 학생으로 살기는 참 좋은 도시다.

요즘 내 낙은 중고 거래로 나오는 자질구레한 생활용품을 구경하는 것이다. 타지에서 힘들게 생활하는 한국 학생들끼리 거래하는 일이 많아서 서로 격려하고 측은히 여기는 태도가 기본으로 깔려 있다. 동양인 혐오가 심하다고 알려진 파리의 북쪽보다는 남쪽에서 거래하는 일이 더 잦다. 물론 4년 전에 관광차 파리에 왔을 때도 북쪽은 위험하기로 소문이 자자했는데, 그 근처에서 이제껏 먹은 쌀국수 중 가장 맛있는 쌀국수를 먹었기 때문에 내 개인적인 인상이 소문과 충돌하는 부분이다. 다음 주 자가격리가 풀리자마자 중고 거래도 하고 은행 계좌도 만들고 친구네 집에 저녁도 먹으러 가고 싶다. 이러다 병나는 건 아닌가 걱정된다. 병나면 그야말로 큰일이다.

※ 이번 기사는 '이 시국에 파리로 간 것에 대하여 2'에서 이어집니다


문재연
디지털 문학 플랫폼 ‘던전’에서 영화 에세이 시리즈 ‘싸우자, 취향아.’를 연재하고 있다.
커서 뭐가 될지 모르겠다.
브런치 @puppysizedelepha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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