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토 시오리(伊藤詩織). 1989년생. 다큐멘터리 영상 작가. 저널리스트. 프리랜서로 뉴스나 다큐멘터리 프로그램을 제작해 일본과 외국 매체를 통해 공개하고 있다. 2017년, 자신의 성폭력 피해 사실을 고백하며 일본 #MeToo 운동의 상징이 됐다. 2020년 미국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으며, (문예춘추)를 썼다. 차세대와 미래를 위해 힘쓰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어 한다. 진지한 눈빛이 무척 인상적이고, 씩씩한 성격과 풍부한 표정이 돋보이는 이토 시오리. 다큐멘터리 영상 작가로, 저널리스트로 세계를 누비는 그녀에게 저널리스트로서 하는 일, 성폭력에 대한 견해, 해외에서 취재하며 깨달은 것들을 들어보았다.
런던에서 영상 제작사 설립
_사건 보도에 미온적인 일본 언론
이토 시오리가 기자가 되기로 결심한 것은 미국 캔자스주의 한 고등학교에서 유학 생활을 할 때였다. “당시 저와 캔자스 밖을 이어준 유일한 정보원이 TV 뉴스 프로그램이었어요. 외부의 정보가 얼마나 필요한지 뼈아프게 느꼈거든요. 이후 학비를 모으려고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일본의 현립 단과대학을 다녔어요. 등록금이 거의 안 드는 독일 대학에서는 학점을 따고, 2012년에 고대하던 뉴욕대학교에서 저널리즘과 사진을 배우기 시작했죠.”
그는 통신사 인턴 등을 거쳐 2018년 친구와 함께 런던에서 하나시 필름(Hanashi Films)이라는 다큐멘터리 제작사를 설립했다. 이토는 “생각해보니 지난 십수 년간 지금처럼 일본에 오래 있었던 적이 없네요.”라고 회고했다. “지난해 1월까지는 서아프리카 시에라리온에서 여성 할례 문제를 추적 취재했어요. 여성 할례는 사회 공동체에서 성인으로 인정받기 위한 통과의례로 행해졌던 거예요. 2년쯤 전부터 촬영했는데, 코로나19가 확산되는 바람에 중단돼버렸죠.”
그는 지금 어떤 주제를 주로 취재하고 있을까. “제 지인 중 부친을 여읜 후에야 자신의 뿌리가 한국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포토 저널리스트 야스다 나쓰키라는 분이 있어요. 그분이 자기 조상을 찾아 나서는 여행에 동행하거나, 어둠 속에서 목소리만으로 상호작용을 체험하는 소셜 엔터테인먼트 ‘다이얼로그 인 더 다크’에서 만난 사람들을 따라가보기도 했고, 군마현의 사원에서 코로나19 때문에 직장을 잃고 모국에 돌아갈 수도 없게 된 베트남 기능 실습생들과 함께 지내기도 합니다.”
이토의 작품은 주로 한 사람에게 초점을 맞추고, 그의 생애나 그 배경에 있는 사회문제를 탐구한다. 이 같은 방식을 취하는 데에는 그가 직접 겪은 일이 계기가 됐다. 2015년 봄, 이토는 전 TBS 기자에게 성폭행 피해를 입은 후 해당 사실을 2017년 기자회견과 저서 에서 고발했다. “저 같은 심경에 빠진 사람이 조금이라도 줄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한편으론 제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존재라는 걸 뼈저리게 깨달았죠. 사회적 지위가 높은 사람의 목소리는 크고 또렷하게 들려요. 언론인은 모름지기 권력 남용을 감시하는 쪽이어야 하는데, 당시 언론인들이 이 사건을 보도하는 데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는 게 무척 안타까웠어요.”
일반화된 비정상을 바꾸다
_“폐쇄적인 자세가 중상모략을 조장한다”
이토는 현재 프리랜서 기자로 수많은 사람이 원래 이런 식이었다며 방임했던 ‘일반화된 비정상’에 이의를 제기하고자 한다. 다만, 성폭력 문제에 더욱이 내가 목소리를 높여야 한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미국에서 시작된 #MeToo 운동의 영향을 받아 일본 사회도 달라지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일본에선 매월 11일 꽃을 들고 모여 성폭력에 항의하는 ‘플라워 데모’(꽃 시위)를 벌인다. 이토도 현장에 참가한 적이 있다. “형법 개정을 요구하고 성범죄에 대한 부당한 무죄판결에 이의를 제기하는 운동이지만, 피해자 개개인이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내는 ‘그룹 테라피’의 장처럼 보이기도 했어요.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일을 마음 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공공의 장소가 생긴 것, 그리고 그 목소리를 듣고 전하는 언론이 많아진 것은 큰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그는 일본이 아직 건전하고 건설적인 대화를 하기는 어려운 사회라고 느낀다. “장래를 위해 무언가를 개선하자는 의견이어도 자신과 맞지 않는다고 생각하는 순간 벽을 쌓는 경향이 있어요. 이건 특정 계층 혐오 발언이나 온라인상에서 벌어지는 비방으로도 이어지는 문제예요.” 이토는 비판은 필요하지만 비방은 인간의 존엄성을 해치려는 의도일 뿐이라고 말한다. “저도 미국 고등학교에서 토론 수업을 경험해보기 전에는 그 사실을 몰랐어요. 옳고 그름을 차치하고 한쪽 입장이 되어 다른 의견에 귀 기울이면서 논의해보는 건 무척 신선한 경험이었어요.”
이토는 성폭력을 고발한 이래로 이성 친구들과 여러 가지 논의를 했다고 한다. 유튜브를 통해 편향된 여성관을 받아들이고 드러내는 친구와 다투다가 사이가 틀어지기도 했다. “그들에겐 살아가는 데 젠더가 모종의 장벽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배우거나 생각해보거나 이야기해볼 기회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법정에서는 자신의 성폭력을 향한 인터넷에 떠도는 비방과 맞서 싸웠다. “온라인에서는 자기가 한 말이 상대방에게 어떤 비수가 되어 꽂히는지 현실감이 느껴지지 않는 거예요. 이 재판이 그런 공론의 장을 제공하는 플랫폼의 책임을 상기하는 것은 물론, 자기가 한 말에 책임을 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논의하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어요.”
※ 이번 기사는 <여전히, 침묵에 도전한다 2>로 이어집니다.
글 가즈키 마리코(香月真理子)
사진 요코제키 가즈히로 (横関一浩)
번역 신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