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안한 주말을 함께 할 빅이슈가 선택한 이달의 책 3권과 영화 2편을 소개한다.
BOOK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들>

“가장 취약한 곳에서 재난이 재생산된다. 불평등은 재난의 양상이 아니라 본질이다.” 코로나19 팬데믹이 장기화되며 한국 사회 곳곳에서 ‘발견된’ 그늘을 돌아보는 책이다. 인권활동가 미류, 문화인류학자 서보경 등 10인의 저자가 인권, 환경, 노동, 젠더, 인종, 장애 등 여러각도에서 코로나19 사태를 돌아본다. 여기에는 광장에서 쫓겨난 거리의 홈리스가 있고 이미 한번 사회로부터 격리된 수용 시설에 무기한 갇힌 장애인과 돌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또, 거리두기가 권장되는 와중에도 ‘반드시’ 제자리에서 노동을 수행해야 하는 보육,간병, 청소, 조리, 마트, 보건의료, 택배, 콜센터의 ‘필수 노동자’들도 있다. 그늘에 가려진 서로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 할지, 마스크가 답하지 못한 질문에 대한 답을 만들어가야 할 때다.
<이까짓, 털>

여자에게도 털이 난다. 파충류도 아니고, 사람마다 편차가 있고 털이 적게 나는 사람도, 많이 나는 사람도 있지만 여자에게 털이 난다는 이 당연한 사실은 비밀마냥 가려져온 지 오래다. 저자 윰토끼는 일본만화 <미녀는 괴로워> 주인공 칸나의 시그니처 포즈인 ‘만세’가 전신 성형 그리고 전신 제모 후 진정 아름다워진 자신을 드러내기 위한 장치임을 알고 깜짝 놀란 후 본격적으로 자신의 털을 탐구하기 시작한다. 아무리 칸나의 겨드랑이와 다리가 털 한 가닥 없이 매끈하다고 한들 여자에게 털이 없는 게 디폴트인 사회에서 그것은 자랑이 되지 못한다. 언제까지 겨드랑이와 다리, 비키니 라인, 그리고 반지를 낄 때까지 손가락 털을 신경 쓰고 살아야 할까. <이까짓, 털>과 함께 내 몸의 털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정립해보자.
<변신의 역사>

‘쉐이프시프터(Shapeshifter)’는 특별하다. <트와일라잇> 시리즈의 아름답고 섹시한 뱀파이어와 늑대 인간, 북유럽 신화의 오딘과 로키,그리스 로마 신화의 제우스는 모두 자유자재로 모습을 변신할 수 있는 쉐이프시프터들이다. 유령, 요정, 괴물 등 초자연적 존재들에게 꾸준히 관심을 가져왔던 저자는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 쉐이프시프터의 계보를 소개한다. 변신할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던 고대의 신, 그리고 신을 넘어서고자 변신의 주체가 된 인간, 전설 속 요정과 괴물의 설화를 소개하는 것에 이어 젠더 전환을 통해 일종의 셰이프시프팅을 경험하는 트랜스젠더까지 이야기는 확장된다. 변신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과 상상력이 만들어낸 셰이프시프터의 무한하고 흥미로운 세계가 책안에서 펼쳐진다.
MOVIE
<스파이의 아내>

전운이 감도는 1940년대 일본, 고베에서 무역상을 하는 유사쿠(타카하시 잇세이)와 아내 사토코(아오이 유우)는 서구적인 집에서 유복하게 살아가는 상류층이다. 전시에 전체주의 사상을 주입시키는 국가에 반항하는 남편을 따라 사토코 역시 서구적인 의복을 입고 위스키를 즐긴다. 유사쿠가 의약품 수입을 위해 만주로 긴 출장을 떠나자 사토코는 남편의 안전을 걱정하며 기다린다. 돌아온 남편은 어딘지 비밀스럽게 행동하지만 언제나처럼 사토코에게는 자세한 사정을 말하지 않는다. 사토코는 남편이 만주에서 목격한 일본의 만행을 전 세계에 폭로하려 한다는 것을 알게 되고 ‘스파이의 아내’가 된 자신의 운명에 고민하게 된다. <큐어>(1997)와 <크리피: 일가족 연쇄 실종 사건>(2016)의 구로사와 기요시가 멜로와 서스펜스가 결합된 시대극을 내놓는다는 소식에 의아했던 관객이라면 자못 만족할 만한 결과물이다. 역사 속에서 ‘매국노’가 되기를 자청한 스파이의 아내가 주체적으로 자신의 운명을 선택하는 과정을 그렸다. 국가에 충성하기보다는 ‘정의’를 선택하는 남자의 고뇌하는 표정이나 사랑하는 남편의 결정에 순종하는 지고지순한 아내의 눈물은 이 영화에 없다. 대신 역사에 휘말리기보다는 ‘진실을 목격하기’를 선택하는 사람들만 있을 뿐이다. 관객이 맘 편하게 영화를 보도록 내버려두지 않는 감독답게 눈과 귀에 요철을 긁어대는 장면이 이어진다. 제77회 베니스 국제영화제 은사자상(감독상)을 수상했다.
감독 구로사와 기요시
출연 아오이 유우, 타카하시 잇세이, 히가시데 마사히로
등급 12세 관람가
개봉 3월 25일
<암모나이트>

영국 남부 해변 마을 라임에서 화석을 수집해 생계를 이어가는 고생물학자 메리(케이트 윈슬렛)에게 어느 날 머치슨 부부가 찾아온다. 영국 박물관에 전시될 만큼 역사적으로 위대한 공룡 화석을 겨우 열한 살의 나이에 발굴한 메리의 명성을 듣고 찾아온 머치슨은 자신의 아내 샬롯(시얼샤 로넌)을 메리에게 부탁하고 먼 여행을 떠난다. 사람에게 마음의 문을 닫고 오직 암모나이트 발굴만 해오던 메리는 병약한 샬롯을 돌보면서 그녀에게 주체할 수 없는 애정을 느끼고 샬롯 역시 점차 메리에게 끌리는 자신을 발견한다. 두 톱 배우가 레즈비언 역할을 맡았다는 이유만으로도 화제가 된 영화다. <타오르는 여인의 초상>과 비교해 감상할 만한데 시대와 불화하는 두 여성이 함께 거친 파도가 치는 바닷가를 산책하고 메리가 샬롯을 드로잉하는 장면 등이 비슷하게 느껴진다. ‘여성’이라는 이유로 자신의 업적을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실존 인물 메리 어닝에서 영감을 얻은 이야기지만 무엇보다 배우들의 열연에 집중하게 된다. 연인을 눈으로 좇는 케이트 윈슬렛의 밀도 높은 연기는 관객이 함께 숨을 죽이고 연인의 사랑을 지켜보게 만든다.
감독 프란시스 리
출연 케이트 윈슬렛, 시얼샤 로넌
등급 청소년 관람불가
개봉 3월 11일
BOOK 글 양수복
MOVIE 글 김송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