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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1 인터뷰

달콤한 인생

2021.05.24 |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를 운영하는 ‘녹싸’(박정수)와 직원 ‘녹밤’(이승환)은 매일 아이스크림을 만들어 쇼케이스를 채운다. 작은 가게에서 색색의 쇼케이스는 당당한 이 가게의 주인공이다. 두 사람은 아이스크림을 만들 뿐 아니라 공식 SNS 계정에서 라이브 방송을 진행하면서 손님들이 남긴 사연을 소개하고, 가게에 들른 사람들이 써준 방명록도 공유한다. 가게에 드나들던 손님이었다가, 두 사람의 에너지에 반해 라이브 방송 기획까지 맡고 있는 진예정 씨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못 먹는 재료라도, 만들기가 번거로워도, 그냥 재밌으면 일단 시도해보는 사람들이라고 느꼈어요. 오이를 못 먹어도 사람들이 좋아한다는 이유로 오이 맛 아이스크림을 만드니까요.”


‘녹기 전에’의 SNS 계정을 보고 있으면, 옹기종기 모여 아이스크림을 먹는 사람들의 풍경이 눈에 보이는 듯하다. 좋아하는 맛부터 처음 보는 맛까지 먹어보고 한껏 기뻐하는, 이런 기분을 펜으로 꾹꾹 눌러써 남기는 마음들. 녹싸와 녹밤은 그 달콤한 시간을 만들고, 모두와 즐기느라 바쁘다.

아이스크림 가게 ‘녹기 전에’는 어떤 공간인가요.
녹싸 익선동에 있던 ‘녹기 전에 밤’ 매장에서 이곳 염리동으로 이사 온 지 1년 조금 안 됐어요. 그때 인연을 맺은 많은 친구들 중 한 명이 녹밤이에요. 특히 녹밤은 술이 든 아이스크림을 판매하던 익선동 매장에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나 여기서 함께 일하게 됐어요.


아이스크림 맛이 주기적으로 변하고 새로운 맛도 추가되는데, 맛을 바꾸는 주기가 정해져 있나요?
녹싸 메뉴는 매일 변경해요. 지금까지 개발한 레시피가 260가지 정도 되는데, 새로운 맛을 생각하는 게 재밌어요. 주기가 있는 건 아니고 매주, 매일 조합이 다른 메뉴를 선보인다고 보시면 돼요. 3일 뒤에 뭐가 나올지는 우리도 감을 잡을 수 없어요.

‘민초단’(민트 초코 맛 아이스크림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각광받는 것처럼,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고 유행하는 맛도 다른데, 맛을 만드는 기준은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녹밤 녹색 아이스크림으로만 채우거나 민트 맛 아이스크림이나 구황작물로만 아이스크림을 만드는 등의 기획전을 하지 않는 이상, 잘나가는 메뉴에 더해서 가장 화려하거나 재밌는 신메뉴를 한두 가지 포함하는 편이에요. 새로운 게 언제나 좋은 건 아닐 수도 있으니까요.


최근엔 오이와 고수로 아이스크림을 만드셨죠. 녹싸님은 오이를 싫어하신다고 들었는데, 그런데도 만드신 이유가 있을 것 같습니다.
녹싸 대화 나누세요. 잠깐 나갔다 올게요.(모두 웃음) 오이랑 고수도 못 먹고, 예전엔 김치나 마늘, 상추도 잘 못 먹었어요. 내가 이걸 왜 팔고 있지 하는 생각이….
녹밤 저는 편식하지 않거든요. 재료에도 편견이 없고, 사실 오이와 고구마가 똑같다고 생각해요. 호불호가 있을 뿐, 모든 재료에 개성이 있다고 생각해요.
녹싸 이 밸런스가 되게 좋다고 생각해요. 저는 아직까지 입맛이 유아기에 머물러 있는 것 같거든요. 그래서 아이스크림을 좋아한다는 저만의 기반은 있는데, 다른 재료를 시도하기 어려워요. 늘 만드는 아이스크림 중 쑥과 깻잎을 활용한 것도 있는데, 이것도 잘 못 먹어요. 반면에 녹밤은 또 유당불내증이 있어서 아이스크림을 많이 먹지 못하거든요. 대신 재료에 대한 이해가 저보다 훨씬 높고 시도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요.
녹밤 맛은 다 볼 수 있는데 일정량이 넘으면 힘들어요.(웃음)


두 분이 생각하는 각자의 장점은 뭔가요?
녹싸 제가 기억력이 아주 좋지 않은데, 그 부분을 녹밤이 채워줘요.
녹밤 녹싸를 보면 손님들과 되게 창의적인 커뮤니케이션을 할 때가 있어요. 어떨 때는 상식에 벗어난 것 같은데, 그게 손님들께 먹힌다는 게 놀라워요.
녹싸 매장에서 제조와 응대로 할 일이 나뉘어 있잖아요. 녹밤은 키친에서 더 잘하는 친구고,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내요. 반면 저는 사람들과 소통하는 데 에너지를 훨씬 많이 쓸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요. 요즘 제조에서 손을 좀 떼니까 응대할 때 에너지를 잘 쓸 수 있게 됐어요.


손님들로 북적거리는 가게 분위기가 프랜차이즈 아이스크림 가게와 달라서 인상적이에요.
녹싸 제 인생의 유일한 화두로 꼽을 수 있는 게 시간인 것 같아요. 늘 시간이 흘러가잖아요. 그에 대한 생각을 많이 해요. 저는 원래 아이스크림 먹는 걸 좋아하는 게 아니라 지켜보는 걸 좋아했어요. 가만히 앉아서 뭔가를 지켜볼 때, 시간이 흐른다는 걸 알려주는 오브제가 시계랑 아이스크림이라고 생각했어요. 그 시간을 즐겁게 보낼 수 있는 매개가 지금은 아이스크림인 것 같아요.

그래서 간판이 시계인가요?
녹싸 맞아요. 시간에 되게 민감하고요. 인생을 풍요롭고 즐겁게 살고 싶은데, 그러다 보니 아이스크림을 파는 일 자체가 “제품을 소비하세요.” 하고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재미있게 살아가자고 제안하는 것 같기도 해요. 스마트폰도 연결 수단이잖아요. 대화를 하거나 뭔가를 시청할 수도 있고요. 아이스크림이 어떤 상황에서건 모자란 2%를 채워주는 역할을 한다고 생각해요.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넷플릭스 콘텐츠를 볼 수도 있고, 대화할 때 먹기도 하니까요. 그걸 통해 재미를 추구하다 보니 커뮤니케이션을 되게 중시하게 됐어요.


손님들의 적극적인 피드백, 카톡 오픈채팅이나 SNS를 통한 긴밀한 대화는 일종의 멤버십 같은 느낌도 드는데, 이런 소통은 두 분에게 어떤 의미인가요?
녹싸 커피는 문화로 보는 편이 자연스러운데, 아이스크림 문화라는 말은 접하기 쉽지 않잖아요.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커피는 여유롭게 마시면서 공간을 소비할 수 있는데, 아이스크림은 잠깐 먹으면 사라져요. 소비 시간이 짧아 다채로운 문화를 이루기가 어려운 것 같아요. 우리 아이스크림이 사람들 뇌리에 남게 하려면 미각으로는 부족할 것 같고요. 손님들이 SNS나 방명록에 남겨주시는 이야깃거리 중에 우리 매장에 대한 내용이 많잖아요. 사람들 머릿속에 아이스크림이 계속 자리 잡고 있어서 뇌리에서 ‘녹지 않는’ 게 좋았어요.

종종 단골들이 아이스크림 재료를 가게로 보내주시기도 한다는데, 보는 사람도 즐거워지는 일종의 엔터테인먼트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운영하는 입장에선 어떠셨나요?
녹밤 ‘새로운 재료가 계속 오면 어쩌지,’ 하고 걱정했어요.(웃음) 보통 메뉴 고민을 잘 안 하는데, 지금은 ‘레몬 딜 버터’라는 메뉴가 만들어졌지만, 처음에 허브인 ‘딜’을 손님께 받고 고민을 많이 했어요. 보내주신 정성이 있잖아요. 이런 일이 매일 반복된다면 내가 감당할 수 있을까 싶더라고요. 다행히 아직 그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어요. 손님들 덕분에 재료에 대한 시야가 넓어진 것 같아요.
녹싸 공부하는 느낌이라 좋아요.
녹밤 아이스크림엔 우유가 들어가잖아요. 그런데 레몬즙을 첨가하면 아이스크림 층이 분리되거든요. 레몬 맛을 어떻게 살릴까 하다가 ‘팔리니 리몬첼로’라는 리큐어의 알코올을 날려 첨가하고, 레몬 껍질을 갈아 넣었어요. 이런 연구 끝에 ‘레몬 딜 버터’가 만들어졌죠.
녹싸 아이스크림을 사 먹는 데 그치지 않고, 재료를 보내고 그 결과를 즐기는 ‘반응성’에 포인트가 있는 것 같아요. 요즘 세상에 즐길 거리가 많지만, 정작 마음에 다가오는 건 없어서 사람들이 이런 소비를 원했던 걸 수도 있겠다 싶기도 해요. 살면서 가끔은 이런 매장이 필요한 것 같아요.


매월 초 진행하는 SNS 라이브 방송을 위해 ‘악필대회’나 ‘무엇이든 칭찬해드립니다’ 등 이벤트를 기획하고 계시죠? 이렇게 손님들이 기록을 남기는 건 어떻게 시작된 건가요?
녹싸 가게의 방명록이 원래는 스케줄러였어요. 일과를 적으면서 시간에 대해 생각해보자는 의미였는데, 다들 방명록을 남기시더라고요.(모두 웃음) 그림을 그리는 손님도 있었고요.


라이브 방송 보고 팬이 되어 찾아오는 분들도 있을 것 같아요.
녹싸 맞아요. 아이스크림 맛에 대한 칭찬도 기분이 좋지만, 라이브 방송이라는 우리의 시도를 잘 봤다고 말씀해주시는 것도 좋아요. 이런 말을 하려는 분들은 가게 문을 열고 들어올 때 눈빛부터 달라요.(웃음) 오시기 전부터 가게에 대한 즐거운 경험을 갖고 오는 분들이죠. ‘먹혔다’는 느낌이 들어서 좋아요.

260여 가지 아이스크림 레시피를 개발하셨는데, 또 도전해보고 싶은 재료가 있나요?
녹싸 해산물이 어려워요. 저희가 캔 참치로 아이스크림을 만들고 있는데, 맛이 괜찮거든요. 언젠가 다른 해산물도 활용해보고 싶어요.
녹밤 전 새로운 조리 도구나 기법과 관련한 고민이 많은데, 요즘 훈연을 어떻게 아이스크림에 입힐지 고민하고 있어요. 설탕을 태운 느낌의 캐러멜이 아니라 다른 방식의 캐러멜도 시도해보고 싶고요.


가장 기억에 남는 아이스크림 맛과 그 이유가 궁금합니다.
녹밤 지금은 ‘레몬 딜 버터’가 가장 기억에 남아요. ‘스니커즈’ 맛도 만들기가 번거로운 편이에요. 이 맛의 포인트는 초콜릿, 땅콩 젤리, 캐러멜의 조화거든요. 먼저 다크 초콜릿 맛, 피너츠 버터 맛 아이스크림을 층층이 쌓아요. 그 사이에 캐러멜을 넣어야 하거든요. 한 입 베어 물었을 때 스니커즈 특유의 식감이 살아나야 하니까요. 그런데 여기 들어가는 캐러멜도 한 번 볶은 땅콩에 설탕을 입혀, 굳히고 깨서 층층이 넣어야 해요.

이 작은 가게에 들름으로써 손님들이 얻어 갔으면 하는 게 있다면 뭔가요?
녹싸 맛보다 어떤 ‘기분’에 가까운 것 같아요. 좋은 공간을 봤을 때 드는 기분이요. 문을 나설 때 기분이 좋았으면 해요.
녹밤 각자 재밌어하는 포인트가 다르잖아요. 우리 가게에 와서 아이스크림을 먹지 않아도, “괜찮네.” 하고 나가기만 해도 충분하지 않을까 싶어요.


이 코너의 정해진 질문인데요. 두 분은 ‘여기서 뭐 하세요’. 이 공간에서 두 분이 하고 싶은 일은 무엇인가요?
녹싸 전 결국 생산자라고 생각해요. 메뉴나 아이스크림과 결부된 어떤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요. ‘녹기 전에’ 주어진 뭔가를 삶이라고 생각한다면, 전 그동안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고 싶어요. 어쩌다 아이스크림이 세상에서 없어진다 해도, 새로운 걸 담아내는 또 다른 그릇을 찾을 것 같아요.
녹밤 녹으면 좀 어때요. 식어도 맛있는 음식은 맛있잖아요. 녹으면 녹은 대로, 녹거나 식더라도. 그렇게 천천히 가도 좋을 것 같아요.


녹기 전에
서울특별시 마포구 염리동 148-22
수~월요일 12:00~22:00 (일요일 20:00까지)
화요일 휴무
인스타그램 @before.it.melts


황소연
사진 김화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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