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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52 에세이

한없이 멀고도 가까운

2021.06.06 | 디저트가 필요한 순간

세상은 참 좁다. 특히나 우리나라로 한정 짓는다면 더더욱 그렇다. 괜히 한 다리 건너면 다 이웃이라는 말이 있는 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 때가 더러 있다. 한 사람의 생활 반경은 그보다 더 좁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 산다면 특히나 그렇다. 나를 비롯해 지방에서 상경한 친구들이 내심 신기해하는 것 중 하나가 딱히 ‘시내’라고 부를만한 곳이 없다는 점이다. 대부분의 지역이 모두 번화가이자 시내이다 보니 동네에서 조금만 나가면 원하는 곳들이 거의 다 모여 있다. 그러니 생활 반경은 자연히 좁아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인지 평소의 생활 반경을 넘어가게 되면 실질적인 거리감 그 이상으로 더 멀게 느껴지기도 한다. 이를테면 생활 반경이 홍대 부근인 사람은 강남까지는 잘 가지 않고, 가더라도 무척 멀다고 받아들인다. 강남에 거주하는 사람이 홍대에 대해 느끼는 감정도 비슷하다. 실제로는 지하철을 타면 40분 내외 그것도 환승 없이 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체감상으로는 1시간 30분 정도 지하철 여행을 하는 것처럼 느낀다. 어차피 내가 사는 지역에도 놀 곳은 많은데, 구태여 3~40분 걸려 다른 번화가를 간다는 데에서 괜한 시간 낭비를 하는 듯한 기분이 들기 때문이다.

항상 그렇게 심리적 거리감을 느낄 것 같다가도 의외로 단순하게 극복이 되기도 하는데, 그곳을 가야만 하는 목적이 생기는 경우다.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항상 ‘성수동’을 서울의 끝이라고 생각했다. 생활 반경을 기준으로 지하철 반 바퀴를 족히 가야하니 실제로 멀기도 멀었다. 체감으로는 서울에서 대전을 가는 것과 비슷했다. 1년에 네댓 번이나 갈까, 그것도 마음먹고 약속을 잡거나 어쩌다 출장 등으로 그 근처에 갈 일이 생겨야 갔지 혼자 들르는 일은 전무하다시피 했던 곳이 성수동이었다. 그러던 중 마침내 성수동에 가야만 하는 이유가 생기고야 말았다. ‘온더’가 문을 연 것이다.


뚝섬역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용하면서도 곳곳에 숨은 보석 같은 카페들이 많은 지점이 있다. ‘온더’도 그곳의 숨은 보석 중 하나로서 크루아상을 비롯한 페이스트리, 구움과자, 비엔누아즈리, 케이크 등을 판매하는 블랑제리 & 파티세리다. 영어로는 ‘On the’, 한자로는 ‘溫度’(온도)라는 상호의 의미는 어디에든 쓸 수 있는 ‘on the’라는 전치사처럼 블랑제리와 파티세리의 두 가지 영역에서 어느 한쪽에 치우치지 않고 모두를 위한 다양한 제품을 선보이겠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온더’의 어감이 ‘온도’와 유사한데 이 또한 누구나 가지고 있으면서, 어디에서든 접할 수 있는 ‘온도’처럼 친근하고 따뜻한 분위기를 담아내고 싶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 실제로영어에서도 ‘On’이라는 전치사를 심리적 거리감이 가까울 때 쓴다는 점을 생각하면 이보다 더 잘 어울리는 상호가 있을까 싶다. 전반적으로 우드로 마감된 가게의 전면부는 미니멀하고 캐주얼하면서도 한편으론 갓 구워진 빵의 노르스름한 겉면을 연상케 하는데, 이마저도 ‘온더’가 지향하는 분위기에 무척 잘 맞아떨어진다 싶다.

입안 가득, 프랑스


문을 열고 들어서면 여러 종류의 달콤한 빵과 디저트들이 깔끔한 테이블 위에 질서 정연하게 놓여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반겨준다. 하지만 문제는 이제부터다. 아름다운 결의 크루아상과 빵 오 쇼콜라도 먹음직스럽고, 폭신하고 달콤한 바브카도, 오후의 티타임에 함께 하기 좋은 마들렌과 휘낭시에에도 눈길이 간다. 케이크는 두말할 것도 없다. 고를 수 있는 종류가 많다는 건 즐거운 일이지만 동시에 행복한 고민을 주기도 한다. 그렇지만 어떤 것을 고르든지 간에 후회는 없다.


‘온더’의 빵과 디저트는 기본기에 충실하면서 각각의 구성이 무척 조화롭다. 특히나 부드러운 버터 풍미와 페이스트리 결이 섬세하게 살아 있는 크루아상에 커피를 곁들이면 프랑스가 부럽지 않을 정도다. 늘 서너 가지 정도 준비되는 마들렌 또한 입안에서 녹아드는 식감이 무척 인상적인 데다 아카시아 피스타치오, 바닐라 등 재료가 지닌 고유한 개성을 섬세하게 잘 살려낸 맛이어서 갈 때마다 꼭 하나씩은 집어오게 된다. 케이크는 적어도 한두 달마다 하나씩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있는데, 봄과 여름의 길목에서 만나볼 수 있는 제품은 타르트 아카시아, 타르트 이스파한, 타르트 모히토 등이 있다. 타르트 아카시아는 ‘온더’의 시그니처와 다름없는 케이크로 향기로운 아카시아 무스와 고소한 피스타치오 가나슈 조합의 타르트다. 누군가 ‘온더’를 처음 방문한다면 케이크 중에서는 가장 먼저 추천하고 싶은 케이크이기도 하다. 계절에 잘 어울리는 상큼한 타르트 모히토는 애플민트 가나슈와 라임 커드 덕에 시원한 모히토를 디저트로 먹는 듯한 기분이 들게 한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아하는 메뉴는 타르트 이스파한인데, 셰프님이 근무하셨던 프랑스 피에르 에르메의 장미 디저트인 이스파한에서 영감을 받은 타르트다. 부드러운 마스카포네 무스가 머금은 장미 향이 입안에서 은은하면서도 화사하게 피어나는데 동시에 리치 주스와 과육을 머금은 타르트의 고소한 맛이 장미 특유의 향긋함을 부담스럽지 않게 잡아주어 행복한 여운이 오래도록 남는다.


비록 지금도 성수동을 가기 위해서 지하철 반 바퀴 여행을 해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지만 이제는 ‘온더’ 덕분에 그 어느 때보다 가벼운 마음으로 갈 수 있게 되었다. 멀게만 느꼈던 곳을 기꺼이 찾아가게 만드는 파티세리 & 블랑제리, '온더’. 앞으로도 지금처럼 한없이 멀고도 가까운 거리감으로 만나고 싶은, 맛있고 멋진 가게다.

On the__
서울특별시 성동구 왕십리로14길 23
Tue-Sat 11:30-18:00

(소진 시 마감) Sun/Mon O
인스타그램 @on.the____


글 | 사진. 김여행
먼 타지로 떠나는 여행이든, 동네
카페 투어든, 항상 어딘가로 떠날
궁리를 하는 가장 보통의 직장인.
twitter @_travelk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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