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를 처음 만난 곳은 코로나19가 한창이던 지난해 12월, 신사역 8번 출구 앞이었다. 두툼한 빨간 잠바를 입은 그는 허연 입김을 내뿜으며 《빅이슈》를 사라고 기세 좋게 외치고 있었다. 그 씩씩한 태도에 이끌려 가보니, 《빅이슈》 6종이 매대에 펼쳐져 있었다. 나는 한 부만 사려고 했는데, 그는 과월호부터 최근호까지 보여주며 여러 권을 사라고 능숙하게 영업했다.
그는 ‘상인’의 모습을 갖추고 있었다. 언젠가 북페어에 셀러로 참여했다가 책을 제대로 권하지도 못하고 엉거주춤하게 서 있었던 과거의 내가 떠올라 부끄러워졌다. 그 추운 날, 길거리에서 《빅이슈》를 사라고 외치고, 두 권 세 권 권하는 그 용기는 어디서 나오는 것일까. 빅이슈 판매원 (이하 빅판)의 구술생애사 첫 주인공으로 신사역에서 일하는 석재천 님을 만났다.
초짜 빅판이 영업왕이 되기까지
김은화(이하 김) 언제부터 빅판으로 일하셨어요?
석재천(이하 석) 여기서 일한 지 햇수로 9년 가까이 돼요. 내가 동자동에서 사는데, 《빅이슈》 코디가 2주에 한 번씩 우리 동네 와서 머리를 깎아주곤 했어요. 그 사람이 내보고 《빅이슈》 한번 팔아보라고 하대. 며칠만 기다려보라 하고 한다 했어요. 그때 남산에 올라가서 엄청 연습했어요. 《빅이슈》 사라고 하면서. 나도 원래 낯가림이 심한데, 그걸 없애기 위해서 사흘이나 남산에 올라가 연습했다니까요, 하하.
내가 처음 《빅이슈》를 팔았던 데가 건대입구역인데 2012년인가, 2013년인가 그랬을 거야. 건대입구역에서는 몸이 아파서 6개월밖에 못 했어요. 거기가 제일 노른자 자리야, 장사 잘돼. 놀러 오는 분이 많거든요. 지금은 코로나19 때문에 상권이 많이 죽었는데, 예전에 내가 처음 빅판 할 때는 많이들 사줬어요. 토요일, 일요일에 쉬려고 해도 아까워서 나가야 돼요. 평일에는 한 50권, 60권씩 팔았어요. 토요일은 80권, 90권. 그러니까 집에서 놀라카이 아깝더라고요.
김 밖에 나가서 누군가한테 책을 권하고 판다는 게 쉽지 않은 일이잖아요. 저도 책을 팔러 나간 적이 있는데 목소리가 잘 나오지 않더라고요. 선생님은 처음에 책 팔 때 어떠셨어요?
석 나도 제일 처음에 건대입구역에서 일할 때 사람들이 안 오면 어떡하지 했는데, 웬걸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오는 거라. 그때 내가 너무 무리했어. 6개월 동안 하루도 안 쉬고 계속 일했거든. 사무실에서는 쉬라고 쉬라고 하는데 계속했어요. 욕심 때문에 몸에 탈이 났지. 그때는 카드 내는 사람도 별로 없었거든요. 현금 주니까 돈맛을 알아 가지고. 그때가 제일 재미났지. 몸 피곤할 줄 몰랐어요. 장사가 잘되니까. 요새는 장사가 안 돼서 피곤하지 뭐, 하하. 그때하고 지금하고 비교하면 사실 일하기 싫다니까. 20권도 겨우 팔고. 옛날하고 비교하면 일하기 싫어요. 코로나19 앞에 메르스 때도 그렇고. 다른 사람들은 한 권도 못 팔고, 손님들이 접근을 안 한다는 거야. 나는 잘 파는데, 하하.
김 저 사람이 살 거 같다, 안 살 거 같다 감이 오나요?
석 알지. 딱 보면요, 안 살 거면 눈을 요리조리 굴리면서 싹 피해 가고, 살 거면 내 쪽으로 똑바로 걸어오거든요. 그러면 분명히 사요. 눈치도 보지 않고 바로 씩씩하게 걸어와요. 그 다음 날 되면 또 옆으로 쏙 빠져나가요. 신간 나올 때는 또 사고. 전에는 책 두세 권씩 가져갔는데 요새는 한 권씩만 사 가.
김 건대입구역 다음에는 어디서 일하셨어요?
석 사당역에서 하다가 이제 강남역에 갔거든요. 강남역 5번 출구. 거기서 한 3년 반 했나. 그쪽이 강남에서 제일 노른자 자리라. 강남에 백날 사람 많아봐야 소용없어요. 강남역 5번 출구는 그래도 사람 안 끊기고 꾸준하게 다녀요. 강남도 하루에 최소 50권. 지금은 판매가 그렇게 안 나와요. 나가봐야 실망, 실망인 거라. 신사역은 지난해 11월인가, 12월에 왔나. 거기도 자리가 좋은데 코로나19 때문에 장사가 안 돼요. 내가 옆에 가게 하는 사람한테 물어봤는데, 그 어묵 파는 데 있잖아요. 그 사람이 그러는데 매출이 5분의 1밖에 안 된대요. 예전에는 신사역도 사람이 많아서 막 터져 나갔지.
※ 이번 기사는 '잡지 파는 재미로 사는 사람 신사역 빅판 석재천' (2) 로 이어집니다.
글. 김은화 | 사진. 김근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