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216년,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칸나에 평원에서 로마 군대를 섬멸했다. 전 세계 사관학교 교재에 다 소개돼 있다는 칸나에 전투인데, 당시 한니발의 전술과 태도는 전투 지휘의 모범 그 자체라고 한다. 완벽한 승리, 그다음 이야기 역시 잘 알려져 있다.
로마 군대의 주력을 격파했음에도, 한니발은 로마시를 바로 공격하지 않았다. 그의 부하였던 마하르발은 “한니발이여, 당신은 승리하는 법은 알지만 승리를 어떻게 사용해야 하는지는 모르는 사람입니다.”라고 말했다. 로마는 다시 일어날 시간을 벌었고,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됐다. 그래서 후대의 많은 이들이 궁금해했다.
한니발은 왜 로마시를 곧장 공격하지 않았을까? 한니발은 전투 지휘에 대해서만 천재였을 뿐, 전략가로서는 형편없었던 걸까?
역사가들의 유력한 설명은 당시 한니발은 이탈리아의 다른 도시들을 포섭하여 로마시를 고립시키려 했다는 것이며, 이는 나름대로 합리적인 판단이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구상이 성공했다면, 지중해 연안의 패권은 카르타고가 차지했을 테고, 로마가 훗날 제국으로 성장하는 역사 역시 불가능했을 터였다. 실제로 한니발은 남부 이탈리아의 일부 도시와 동맹을 맺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로마시를 고립시킬 수준에는 못 미치는 불안정한 동맹이었다. 이후 13년 동안 한니발은 지지부진한 상태로 이탈리아 남부를 떠돌기만 했다. 그리고 결정적인 반격을 당하고는 몰락했다.
한니발에게 외교관 참모가 있었다면?
이제부터는 내 상상이다. 한니발은 왜 실패했을까? 한니발은 보병 9만여 명, 기병 1만 2천여 명, 코끼리 37마리를 이끌고 자기 땅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알프스산맥을 넘었다. 지중해 제해권을 잃어버린 카르타고가 이탈리아를 공격하려면, 다른 선택지가 없었다고 한다. 한니발이 이탈리아 북부에 도착했을 때, 그가 이끈 병력은 보병 2만여 명과 기병 6천여 명이었다. 알프스를 넘으며 겪은 고난이 숫자로 확인된다. 9만의 보병이 2만으로 줄었다. 사라진 7만여 명 가운데 한니발이 이탈리아에 다다랐을 때 꼭 필요했을 다양한 전문가 집단도 포함돼 있지 않았을까. 예컨대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와 동맹을 맺기 위해 필요했던 외교 전문가는 알프스를 넘을 수 있었을까. 아무래도 체력이 더 약했을 문관들이 험난한 산악 행군 과정에서 먼저 쓰러졌을 테다. 또 제한된 식량과 약품을 나눠 주는 순서 역시 어쩌면 당장의 전투에 쓸모가 있는 무관이 먼저였을 수도 있겠다. 이탈리아 현지의 언어와 문화를 이해하고, 외교와 행정에 익숙한 이들은 생존의 우선순위에서 밀려났을 수도 있겠다. 숨쉬기조차 버거운 알프스 산등성이에선, 다치고 지친 몸으로 산을 내려가 전투를 치러야 하는 입장에선, 그랬을 수 있겠다. 당장의 싸움에 집중해야 했고, 기적적으로 이겼다. 그때만 해도, 승리 이후까지 생각할 여유는 부족했을 테다. 일단 이기고 나서 생각하자 싶었을 게다.
주사위를 던졌더니 높은 숫자가 나왔다. 그렇다고 해서, 다음에 던졌을 때도 높은 숫자가 나오리라는 법은 없다. 매번의 주사위 던지기는 모두 독립적이다. 삶의 여러 과정도 비슷하다. 앞의 숙제를 잘 끝냈다고 해서, 다음 숙제가 더 쉬워지는 것은 아니다. 대학 입학 점수가 높았던 학생이라고 해서, 교수가 학점을 더 높게 주는 법은 없다. 당연한 일인데, 종종 잊는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가기만 하면, 나머지 일은 저절로 풀리리라 착각한다. 그렇지 않다. 살면서 치르는 대부분의 숙제는 독립적이다. 오늘 내야 할 숙제 때문에 고생했다고 해서, 내일 더 쉬운 숙제가 나오지는 않는다.
전술의 천재였던 한니발이 전략의 바보였을 리는 없다. 수학을 아주 잘하는 사람은 물리도 곧잘하게 되는 것처럼, 한 분야의 천재는 인접 분야에서도 재능을 보이기 마련이다. 다만 한니발은 여유가 없었던 것 같다. 눈앞의 승리에만 집중하느라, 전투 승리를 디딤돌 삼아 정치적 패권을 얻는 데 필요한 외교와 행정, 문화 역량을 확보하고 보존하는 일에는 신경을 쓰지 못했던 모양이다. 고대 이탈리아의 언어와 문화, 역사, 정치 등에 정통한 문관이 알프스 행군에서 살아남아 한니발 곁에 머물렀다면, 그래서 카르타고 군대가 칸나에 전투 승리를 지렛대로 삼는 외교 역량을 갖췄다면, 우리가 읽는 유럽 역사는 많이 달랐을 수도 있겠다.
정치 공부에 왕도는 없다
물론 역사 이야기에서 가정법이란 부질없는 짓이다. 그럼에도 가정법을 길게 이어간 것은, 최근의 어떤 경향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였다. 공부 잘하는 청소년들이 인문, 사회과학 전공을 기피하는 현상이 날로 심해진다. 숫자와 물질을 다루는 기술과 지식은 보편 교양의 범주에서 배제하거나 은근히 낮춰 보면서 인문, 사회과학을 신비화하던 봉건적 습속은 이제 거의 사라졌다. 문학적 역량과 인문 소양으로 사람들을 줄 세워서 권력을 분배했던 조선 시대 과거제도의 영향도 지워졌다. 이는 일정한 사회 진보의 결과이며 어느 정도 반가운 일이다.
그러나 이제는 그 반작용도 생각해야 한다. 고도성장과 민주화 투쟁을 거친 한국 사회는 어쩌면 알프스를 넘는 한니발 군대에 빗댈 수 있겠다. 눈앞의 전투에만 최적화돼 있다. 막상 전투에서 이긴 뒤에는, 그 승리를 어떻게 활용해야 할지에 대해 알지 못한다. 전투 대신 선거 혹은 적폐 청산, 아니면 경제 성장 등을 대입해도 뜻이 통하리라고 본다. 선거 승리를 디딤돌 삼아 더 나은 사회를 만드는 역량, 일부 대기업의 성공을 활용해서 더 건강한 경제로 나아가는 역량, 몇몇 영화와 드라마의 흥행을 지렛대로 삼아 더 풍요로운 문화 생태계를 일구는 역량 등에 대해 자신감을 가진 정치인이 몇이나 될까? 별로 없을 게다. 그리고 이 같은 역량 역시 나름의 전문성이다. 벼락치기 준비로 뛰어난 과학자나 의사, 엔지니어의 실력을 갖출 수는 없다. 정치 실력이라고 해서 다를 까닭은 없다. 청소년 시기부터 긴 안목을 갖고 쌓아가야 한다. 그리스 수학자 유클리드는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다고 했다. 충분한 시간과 노력을 들이지 않고 더 빠르고 쉽게 기하학 개념을 깨우치는 길은 없다는 뜻이다. 정치 공부라고 해서 다를 리는 없다.
한니발의 군대가 칸나에 전투 승리를 활용하는 외교 역량을 하루아침에 쌓을 수 없었던 것처럼, 한국 사회 역시 현대사의 굵직한 사건들을 제대로 소화해서 개혁의 동력으로 삼는 정치 역량을 거저 얻을 수 없다. 재능 있고 열정적인 청소년 가운데 누군가는 문학과 역사와 정치를 차분하게 익혀가야 한다.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벌어지는 혼탁상이 두려운 이유 중 하나도 그것이다. 또래 다수는 별 관심 없는 정치와 역사의 과제에 대해 자기 삶을 밀어 넣어볼까 고민하는 어떤 청소년, 그 누군가마저 정치의 가능성에 대해 냉소할까 봐, 그게 두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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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성현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