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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4 스페셜

문명의 목격자들 —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 (1)

2022.05.09

[©unsplash]

간격이 넓은 승강장, ‘1역사 1동선(교통약자가 스스로 지하철 역사 내부를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는 동선)’이 확보되지 않은 곳곳의 지하철역뿐 아니라, 휠체어를 탄 장애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운 공간은 여전히 많다. 장애인들은 지금, 어디로든 자유롭게 출발하고 도착할 권리를 위해 힘차게 이동하고 있다. 권리보장의 다음 단계를 향하는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전장연)의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에 함께했다.

4월 18일,
내 맘대로 정할 수 없는 출발 시간

‘장애인 권리예산 보장을 위한 인수위 답변을 촉구하는 삭발식’이 14일째 이어지던 날, 오전 8시 서울 지하철 3호선 경복궁역. 경찰들의 무전기에서 “‘휠체어 장애인들’이 이동하고 있다”는 말이 새어나왔다. 이날의 삭발자인 양선영(한울림장애인자립생활센터 소장) 씨는 이렇게 발언했다. “오늘 아침 5시부터 일어나서 준비를 했는데, 그럼에도 조금 늦었습니다. 장콜(장애인 콜택시)을 예약했는데도 늦게 도착해서 지각을 할 수밖에 없었거든요.” 그는 평소 지하철을 잘 이용하지 않는다. 허리에 핀이 박혀 있어 휠체어가 턱이나 단차를 지날 때 받게 되는 통증 때문이다. “오늘은 지하철 직원들이 이동 발판을 알아서 깔아주니 편했지만, 일상에서 발판을 깔지 않아도 휠체어가 편히 다닐 수 있는 환경이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습니다.” 그는 많은 직원들과 함께 이동하는 상황에 대한 부담도 밝혔다. “이렇게 다른 시민들의 주목을 받으며 움직이는 게, 제가 왕 대접받는 것도 아닌데…. 여러 감정이 들었습니다.”

전동차와 승강장 사이의 간격이 넓은, 단차가 큰 역에서 휠체어가 탑승하기 위해서는 역마다 ‘이동 발판’이 갖춰져 있어야 하고, 장애인이 이를 사용하기 위해선 직접 역에 연락을 해야 한다. 환승을 한다면 그 횟수는 더욱 늘어날 것이다. 직원이 이동 발판을 가지고 오는 동안, 장애인 승객은 열차를 몇 대 보내야 할 가능성이 크다.

경복궁역에서의 삭발식 후, 활동가들이 혜화역으로 이동해 선전전 마무리를 하는 게 매일의 식순이다. 경로는 경복궁역→충무로역→명동역→한성대입구역→혜화역 순서. 비장애인이라면 거치지 않아도 될 역을 경유하는 이유는, 엘리베이터 탑승 횟수 때문이다. 전장연 김필순 기획실장은 이것이 “혜화역까지 가장 적게 엘리베이터를 타고 가기 위한 최선의 동선”이라고 밝혔다. 이렇게 이동하지 않으면 한두 번 더 엘리베이터를 타야 하는데, 이것은 장애인에겐 2~30분 정도의 시간이 소요된다는 의미다. 비장애인이 모두 탑승한 뒤 빈 엘리베이터를 기다리는 시간까지 헤아려야 한다. 김 실장은 “엘리베이터가 있어 리프트보다 안전하게 이동할 수 있지만, 여전히 장애인들은 비장애인보다 더 많은 시간을 이동하는 데에 써야 한다는 뜻”이라고 덧붙였다.

경복궁역에서 혜화역으로 가는 길,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의 휠체어 탑승으로 열차가 지연되고 있다.”는 역사 내 방송이 나왔다. 스톱워치로 시간을 잰 결과, 3호선 충무로역에서 하차 시 42초가 걸렸다. 문이 열린 뒤 이동 발판이 설치되고 휠체어 탑승자와 비장애인 승객 모두 하차 후, 발판이 다시 철거된 시간을 포함해서다. 휠체어 탑승자들이 승강장에 모두 도착하길 기다리며, 충무로에서 명동 방향으로 향하는 4호선 하행선의 문 열림 시간을 쟀더니 29초가 걸렸다. 약 13초 차이였다.

4월 19일,
연신 사과하다

전장연이 대통령직인수위에 답변을 요구한 기한 전날. 삭발식이 진행되는 경복궁역에 더욱 많은 사람들이 모였다. 역에서는 ‘전국장애인철폐연대’라는 잘못된 명칭으로 단체를 지칭하는 방송이 흘러나왔다. 박경석 전장연 상임공동대표가 말했다. “장애인 철폐 연대가 아니라, 장애인 차별 철폐 연대입니다. 한국 사회가 장애인을 철폐하고 있지 않은지 묻고 싶습니다.” 그는 동대입구역으로 이동해, 지하철 문 사이에 휠체어를 멈춰 세웠다. “시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이 열차는 10분간 움직일 수 없습니다.” 지난 4월 16일, 이 역에서 발생한 승강장과 열차 사이에 한 지체장애인의 다리가 빠졌던 사고를 상기하기 위해서였다. 지나가던 시민이 “너무하는 거 아니에요? 출근은 해야 할 것 아니에요!”라고 소리쳤다. 박 대표가 설명을 이어갔다. “여기가 단차입니다. 장애인이 이 사이에 다리가 끼이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더 이상 그렇게 이동하기 싫습니다. 안전하게 이동하게 해주십시오.” 승강장과 열차 사이는 척 보기에도 성인 손 한 뼘을 가뿐히 넘는 길이다. 주의하지 않으면 비장애인도 발이 빠질 수 있고, 150kg이 넘는 전동휠체어 바퀴도 쉽게 지나기 어려운 구조다. 약 10분 뒤 박 대표의 휠체어가 하차했다. “시민 여러분, 저희는 인수위에 장애인 권리보장을 위한 예산을 반영해달라고 촉구한 뒤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저희 요구가 적어도 50%라도 담겨 있다면, 기다리겠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21일 오전 7시부터 지하철 출근길에 많은 장애인들이 타게 될 겁니다. 그럼 많이 늦어질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그는 시민들에게 연신 사과했다.

이 글은 문명의 목격자들 — 장애인 이동권 투쟁 현장 (2)로 이어집니다.

| 사진. 황소연

  • 모자 가족 웅이네의 봄

    지방에서 올라온 홈리스 여성이 갈 곳이 없다며 우리 시설에 전화를 했다. 다섯 살짜리 아이를 동반한 상태였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선제 검사를 받아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아이와 함께 있으니 속히 오라고 해서 긴급 보호를 했다. (중략) 아이를 동반한 홈리스 여성이 안전한 거처를 찾는 건 혼자일 때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인데 걱정이다.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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