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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274 에세이

여기서 우리 사랑을 이야기하자

2022.05.20

“너는 항상 나를 옳은 길로 가게 해.”
“그게 내가 생각하는 우리 관계의 정의야. 이름은 무지개.”
〈스물다섯, 스물하나〉중에서

세상의 모든 존재에는 이름이 있다. 아니, 이름을 붙이는 순간에 무언가는 우리에게 다가와 하나의 특정한 존재가 된다. 언어는 그렇게 존재하되 인식되지 못했던 것을 구체적인 무언가로 나타나게 하는 힘을 가지고 있다. 그렇기에 우리는 특별한 의미를 담고 싶은 관계에 특별한 이름을 붙이기도 하고, 끊임없이 새로운 이름들을 만들어내기 위해 머리를 쥐어짜기도 한다. 집을 짓고 건물을 세우는 데에는 돈과 허가가 필요하지만, 새로운 말, 특별한 언어를 만드는 데에는 돈도 제도권의 허락도 필요하지 않기 때문에, 언어의 세계에서는 누구나 자신만의 시를 지을 수 있고, 글을 엮을 수 있으며, 특별한 이름들을 가질 수 있다.

ⓒ unsplahs

여.우.사.이.

신촌로터리에 오랫동안 간판을 걸고 있었던 카페 여우사이. 여기서, 우리, 사랑을, 이야기하자던 그 낡은 간판이 그리운 것은 비단 정든 공간에 대한 향수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각종 SNS 등 온라인 세계에는 더 간이하게, 더 많은 사람들에게 우리의 생각을 쓰고 나눌 수 있는 공간들이 생겨났지만, 과연 진정으로 우리가 ‘이야기’ 할 수 있는 공간을 확보하고 있는가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있다. 불특정 다수에 대한 전파력이 높은 온라인 공간에서는 쉽게 나의 소리를 전할 수 있는 동시에 쉽게 오해받고, 쉽게 지탄받을 수 있기에 여러모로 눈치가 늘게 되는 것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게시물에 대한 사람들의 선호를 드러내는 ‘좋아요’ 기능을 없애자는 의견이 나오거나, 실제로 ‘좋아요’의 횟수를 감추는 기능, 댓글을 달지 못하게 댓글 창을 없애는 기능 등이 탑재되기도 하는데, 이는 사람들이 온라인 공간에서 타인의 평가나 반응에 매우 민감해져 있음을 보여주는 지표라고도 생각해볼 수 있다. 또 쉽게 글과 영상을 올릴 수 있는 만큼 쉽게 글과 영상을 지울 수 있다는 점 역시 우리의 이야기가 이전보다 쉽게 소멸해버릴 가능성을 안게 된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먼지 쌓인 일기장은 여러 번 이사를 하면서도 우연처럼 남아 있을 수 있지만, 실수로 누른 Delete 키 한 번에는 수천 개의 파일이 사라져버리기도 하기에 우리의 이야기는 어쩌면 이전보다 더 머물 수 없는 환경에 놓여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들은 강물처럼 흐른다

최근에는 인터넷 문화를 중심으로 젊은 사람들 사이에 다양한 말짓기 놀이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급식체’라면서 10대들이 사용하는 신조어와 은어를 재미있게 부르기도 하고, 회사원들이 사용하는 어투와 말의 뜻을 신랄하게 풀어내기도 한다. 부장님의 ‘끝인가요?’라는 말이 사실은 ‘너무 짧은데? 구체적이지 않은데? 빠진 건 없니?’를 의미한다든지, ‘저희에게 궁금한 걸 물어보세요.’라는 면접관의 말이 ‘질문하는 퀄리티를 통해 너를 평가할 거야.’라는 의미라든지 등, 언어학자들이 들여다볼 법한 언어 현상을 언어의 사용자인 언중이 직접 들여다보고, 그 미묘한 의미와 사용의 기제를 마치 놀이를 하듯 풀어내는 것은 과거에 소수 지식인과 정부가 주도해오던 이야기들이 이제는 흐르고 흘러 진짜 말의 주인인 언중에게로 돌아갔음을 보여주는 지점이라고도 생각된다.

기술의 발달과 온라인 공간의 특수성으로 인해 우리의 이야기들은 더 쉽게 쓰이기도, 더 쉽게 퍼지기도, 그리고 더 쉽게 사라지기도 한다. 더 많은 이야기의 주체가 생기기도 하였으나, 역설적이게도 동시에 더 많은, 보이지 않는 규제와 견제를 감당해내야 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우리가 그러한 이야기의 필요성을, 이야기 나눌 공간의 의미를 인식해야 한다는 점일 것이다. 돈이 없어도, 정부의 허가가 없어도 지을 수 있는 말의 집, 말의 세계. 그 말의 집에 사랑과 평화, 평등이 깃들 수 있도록 보이지 않는 견제와 규제를 견디며 더 옳다고 생각되는 뜻들을 모아가는 일. 그런 일을 《빅이슈》, 바로 지금 여기에서 당신과 함께 이야기해나가고 싶다.

글 | 사진. 김강희

  • 모자 가족 웅이네의 봄

    지방에서 올라온 홈리스 여성이 갈 곳이 없다며 우리 시설에 전화를 했다. 다섯 살짜리 아이를 동반한 상태였다.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요즘 같은 시기에는 선제 검사를 받아야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데, 아이와 함께 있으니 속히 오라고 해서 긴급 보호를 했다. (중략) 아이를 동반한 홈리스 여성이 안전한 거처를 찾는 건 혼자일 때보다 훨씬 더 힘든 일인데 걱정이다.

  • 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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